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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32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2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32화

32화. 사신의 최후

 

 

"흑귀. 그것은 아직 안 돌아왔나?"

"그래. 아직이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군. 혹시 실패했을 가능성은?"

그러자 짙은 어둠 속으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흑귀라 불린 자는 한참을 그렇게 웃은 뒤에야 말을 이었다.

"솔직히 그럴 수도 있다. 졌을 수도 있지. 다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천마의 자식이다. 쉽진 않다고 생각하네만."

"그래. 그렇지. 한낱 새끼라도 엄연히 범은 범이니까. 그러나…… 걱정 안 해도 된다."

흑귀의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어둠 속으로 울려 퍼졌다. 그 안에는 그의 자부심과 자존심이 진득이 배어 있었다.

"그것은 무림의 쓰레기들을 청소하기 위해 만든 최적의 도구. 아직 미완성이긴 해도 소교주의 공격은 그것에게 절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소교주가 화경의 경지라 해도 절대 이기지 못한다."

 

***

 

팡! 팡팡!

거친 파공음이 연달아 일었다. 천강과 사신은 수차례 공방을 주고받으며 붙었다 떨어지길 반복했다.

"넌 뭐냐? 대체 어디서 굴러들어온 놈이냐?"

"궁금한가?"

"그럼 궁금하니까 물어보지."

"내가 어디서 왔는지가 왜 궁금하지?"

사신이 다시금 날아든다. 천강은 똑같이 맞붙는 대신, 이번에는 수면을 두 차례 밟고 몸을 비틀어 사신의 공격을 회피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몸을 회전해, 발차기로 사신을 물속으로 처박았다.

풍덩.

거센 물거품이 일기를 잠시, 벽에 붙기가 무섭게 물 밖으로 튀어나오는 녀석. 천강의 얼굴에 낭패감이 올라왔다.

'아니, 무슨 몸이 저리 단단해?'

강기에 가까운 내공을 실은 공격이었다. 심지어 급소에 제대로 들어갔다. 그런데 놈은 아무런 타격이 없어 보였다.

마치 느낌만으로는 금강불괴를 때린 것 같은 기분.

'왜 지금 이 순간, 과거 소림사 땡중 놈과 싸운 게 떠오르는지 모르겠네.'

놈이 다시금 달려든다. 천강은 이번에도 물을 딛고 녀석의 공격을 피하며, 놈의 질문에 대한 답을 했다.

"너처럼 단단한 녀석은 소림사 땡중들 외엔 처음이거든!"

천강의 교묘한 발길질에 다시금 물속에 처박히는 사신. 그러나 이번에도 아무런 타격 없이 물 밖으로 나온 녀석이 씨익 웃었다.

"후후후. 너희 무림인들은 늘 그렇지. 자신보다 약한 이들은 대화할 가치도 없다는 듯 바로 죽이고. 자신보다 강하면 꼭 누군지, 어디 출신인지 묻지. 이리 만나 칼을 섞은 것도 인연이라느니 하며."

"이봐. 무림인들에게 대해 안 좋은 감정이 있나본데…… 그건 꼭 무림인이라서가 아니라 본래 인간사가 그래. 인간이란 생물이 그런 거라고? 강자에겐 굽신거리고 약자에겐 강하고."

"마교의 소교주 아니랄까봐, 참으로 솔직하구나. 특히 너희 마교 놈들은 힘없는 이들은 사람 취급도 안 하는 놈들이지."

"마교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는데? 바로 내일부터 쥐 굴에 가서 애들 가르쳐도 되겠어?"

픽 웃으며 말을 받는 천강. 그러나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천마의 소교주? 이건 또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아까 처음 달려들 때도 그 비슷하게 소리쳤던 것 같다. 마교의 소교주 천강 죽어라 였지, 아마?

'날 소교주로 오해하고 암살자를 보낸 건가?'

천강은 뭔가 상황이 잘못 돌아가도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대체 어떤 새끼야? 어떤 놈이 내게 소교주 껍데기를 뒤집어씌운 거야? 설마 소운 녀석인가?

갖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그걸 가만 지켜볼 적이 아니었다.

"날 이긴다면, 내가 어디서 왔는지 가르쳐주마!"

젠장. 천강이 놈의 공격을 피해 반대편 벽에 달라붙었다.

방법이 보이질 않는다. 방법이. 북명신공은 통하지 않고, 외부 타격과 내가중수법은 효과가 극히 미비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녀석의 내기 공격 또한 천강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것. 희한하게 뺏는 건 안 되도, 놈이 방출하는 기운은 자연스레 흡수가 가능했다.

'이대로 싸우는 건 소모전인데.'

말 그대로, 둘 중 기가 많은 쪽이 이기게 될 상황.

그 때,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걸까? 놈이 허리춤에서 검을 빼들었다. 그걸 보자마자 천강은 바로 몸을 돌려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내 살다살다 작전상 후퇴를 할 줄이야……!'

내부도 외부도 완벽에 가까운 방어를 할 수 있는 무공이라니.

순간 혈강시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으나, 그러기엔 이지와 감정이 너무 또렷했다.

사삭. 사사삭.

등 뒤에서 검풍들이 쏘아져 날아온다. 천강은 곧바로 거대한 공동 안으로 들어선 뒤, 기둥 하나에 가만히 매달렸다.

사신 또한 천강이 매달린 기둥 제일 가까이 있는 것에 똑같이 매달린다.

"도망쳐도 소용없다. 넌 오늘 여기서 죽는다."

"미안하지만 이건 도망치는 게 아니야. 작전상 후퇴라는 멋진 말이 있다고? 그리고 오늘 여기서 죽는 건 내가 아니라 너다."

"그 자신감…… 어디 지켜보겠다!"

녀석이 폴짝 뛰어 천강에게 날아든다. 천강은 몸의 체온을 확 낮추고는 녀석의 공격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회피했다.

'언제 나타나는 거냐?'

영물이라면 분명 이 싸우는 소리도, 기운도 느꼈을 것인데.

특히나 동물은 제 구역이라는 게 있다. 그 안에 들어온 침입자를 가만 두지 않는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저 멀리서 한 차례 파도가 일었다.

'왔구나!'

물결만 일뿐 그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며, 천강은 놈이 사냥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사신은 녀석의 존재에 대해 아직 깨닫지 못했는지, 엄청난 살기와 검풍을 뿌려대며 천강을 쫓아다녔다.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거냐! 너희 마교는 싸움을 즐기는 미친놈들이 아니더냐!"

매섭게 쏘아 붙이는 사신에게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저 씨익 미소 지을 뿐이다. 그러다 섬뜩. 물 밑에서 묘한 기운이 느껴졌을 때, 천강은 수면을 박차고는 있는 힘껏 옆으로 몸을 날렸다.

크워어어-

마치 지옥의 심연이 열리듯, 거대한 뱀의 아가리가 밑에서부터 솟구쳐 오른다. 놈의 갑작스런 등장에, 사신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올라왔다.

"왜 영물이 이런 곳에?!"

"여어. 잘 가라고, 친구."

"너 이 자식……!"

팡.

지옥문이 닫혔다.

흑요석의 빛깔을 지닌 그것의 주둥이는 서서히 물속으로 되돌아갔다. 이후엔 마치 이곳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함만이 맴돌았다.

그저…… 아직 진정이 덜 된 파도가 기둥과 부딪치며, 요란한 물소리를 만들어낼 뿐.

'후우. 그래도 어찌어찌 끝났나?'

딱 그런 생각이 들 때였다.

크오오오-

갑자기 물속에서 거센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이곳의 주인이 물 밖으로 나와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쿵. 쿠구구구.

마치 태풍이 들이닥친 바다를 연상케 하듯 물이 거세게 출렁이고, 놈이 몸을 벽에 부딪칠 때마다 천정으로부터 흙 부스러기가 우수수 떨어진다.

그리고 그 때, 천강은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쇄도해 오는 걸 느꼈다.

"거기 서라!"

"아, 그냥 얌전히 죽지 뭘 또 살아서 기어 나와!"

"오늘 네놈 목을 반드시 가지고 갈……."

그러나 사신의 말은 채 이어지지 못했으니, 먹이감의 발악에 분노한 이곳의 주인이 그를 공격한 것이었다.

크아아-

"큭……. 귀찮게 달라붙지 마라!"

검기가 실린 검풍이 흑사에게로 쏘아져 나간다. 그러나 단단한 피부에 막혀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한다.

천강은 한 쪽 기둥에 매달려 두 존재의 싸움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일단 저 두터운 피부를 가르려면 강기는 사용할 줄 알아야겠군.'

상처는커녕 흠집도 안 나다니. 화경이 돼서도 과연 잡을 수 있을지 솔직히 미지수였다.

그걸 사신도 느낀 걸까? 아가리를 벌리고 다가오는 흑사에게서 도망 다니며, 입 안에 검기를 날리기 시작한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검은 뱀. 그때 녀석이 갑자기 입을 크게 벌렸다.

푸하아악-

공기 중으로 습한 기운이 퍼져 나간다.

'이것은 독……?!'

이대로는 안 되겠다 판단한 흑사가 독무를 내뿜은 것.

천강은 재빨리 호흡을 멈추고는 수면 위를 내달렸다. 그리고는 단번에 빛이 들어오는 구멍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다.

푸른 하늘과 그 위를 떠다니는 새하얀 구름. 초록빛의 나무들과 그 사이로 흐르는 작은 물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후욱후욱. 젠장……. 진짜 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바로 몸 상태를 확인한다. 옷이 녹아 흘러내리고 있다. 반응은 물론, 퍼지는 속도도 굉장히 빠른 독 종류인 듯하다.

그래도 천만 다행인 건,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얼마 전 흡수한 백사의 내단이 단단히 효과를 발휘한 게 분명했다.

쿠웅.

땅이 거세게 흔들린다. 그러더니 갑자기 굴 안에서 한 남자가 튀어나온다.

"네, 네 놈……."

"여어. 너도 용케 살아 도망 나왔구나?"

"네놈을…… 죽이겠다. 네놈을 죽이고…… 무림인들도 다 죽이겠다……."

사신이 네 발로 기어 천강에게로 천천히 다가온다. 녀석의 몸은 실시간으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독이 약점이었던 건가?'

필사적으로 기어오는 녀석.

그러나 천강의 앞에 도착할 즈음에는 더는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사신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나직이 되뇐다.

"무림인놈들…… 다 죽일 것이다……. 무슨 한이 있어도……. 반드시 다……."

털썩.

그걸 끝으로 뼈 한 조각 안 남기고 놈은 절명했다. 그 어떤 공격에도 쓰러지지 않았던 것치고는 정말 너무도 허무한 죽음이었다.

'킁. 물어볼 게 참 많았는데.'

대체 누가 보냈는지, 무슨 무공을 익혔는지, 또 왜 자신을 천마의 자제로 생각했는지 등등을.

그러나 이미 죽어버린 자에게 어찌 묻겠는가.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그 때, 무언가가 천강의 이목을 잡아끌었다.

반짝.

'음? 뭐지……?'

일으켜 세웠던 몸을 다시 쭈그려 앉고는, 사신 놈이 녹아 사라진 곳을 가만 살펴본다. 음울한 빛을 띠는 검은 가루가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다.

'처음 보는 광물인데?'

혹시나 이게 사신 놈에 대한 단서가 될 지도 모른다 판단한 천강은 주변에서 이파리가 큰 낙엽을 뜯어와 그것들을 담아 챙겼다.

그리고는 알몸으로 찬찬히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오목골이로군. 옛날 그대로네.'

거처가 그대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50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천강이었다.

 

***

 

쾅!

노인이 망치로 돌벽을 후려친다. 그 손길질 한방에 벽이 산산조각이 나 우수수 부서져 내린다.

"다시 한 번 말해보라. 뭐라고?"

"오목골에 여울나무 훈련장을 만들 생각이니 협조해 달라 말했습니다, 괴기나한님."

"허튼 소리!!"

노인의 우렁찬 목소리에 사람들이 몸을 움츠린다.

오목골이 어디인가? 흑살마신과 그 스승이 기거하던 곳이다. 맹익은 그 제안을 추호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적삼혈마. 똑똑히 들으라. 한 번이라도 더 그딴 소리 지껄이면, 아주 그 얼굴을 작살을 내줄 것이다."

"……잠시 다들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사람들이 하나둘 물러나 자리를 비운다. 마교의 진법 기계부문 작업실 내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는다.

적삼혈마는 찬찬히 걸음을 옮겨 맹익 앞에 섰다.

"괴기나한님. 이제 그만 포기하시죠. 그리 버텨본들, 당신의 옛 선배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모습을 비출 것이었다면 진즉에 비쳤겠지요. 혹시 압니까? 공사가 시작되면 그제야 허겁지겁 나타날지."

그러며 한 발 더 다가오더니, 귓가에 대고는 나직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건 경고 차원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자꾸 그런 식이면 이번엔 손녀도 위험할 것입니다. 아드님처럼 언제 어디서 비명횡사 당하는 꼴은 없어야 할 것 아닙니까?"

실눈을 뜨며 빙긋 미소 지은 남자가 찬찬히 물러난다. 그는 손을 한 차례 흔들며 노인에게 말했다.

"일단 오늘은 영감님 체면을 봐서 그냥 물러나겠습니다만……. 다음에는 꼭 저희 의견에 동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만."

"이런 호랑말코 같으니라고! 그럴 일 없으니 당장 꺼지라!"

신경질적으로 벽 부수는 소리가 작업실 밖까지 크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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