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8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8화
28화. 자, 그럼 이제 설명을 해 보실까
"……그런가? 알겠다. 조언 고맙다, 천강."
"일단 한 쪽으로 빠져 있어. 얜 내가 처리할 테니까."
천강의 한마디에 소운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뭐? 처리? 처~리? 하……! 이번 1년차들이 아주 단단히 미쳤구나!"
그가 누구인가. 이곳 암운곡에서 5년차들을 제치고 최강자의 위치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의 아비는 마교 서열 89위 일휘혈마이고, 그 또한 빠른 시일 내에 마교를 이끄는 마두가 될 몸이었다.
그런데 뭐? 처리?
"건방진 녀석. 과거에도 꼭 너 같은 놈들이 있었지. 한낱 개 주제에 범을 못 알아보고 덤비다가 목 날아간 놈들 말이야."
"내가 보니까 이번에 그 개는 너인 것 같은데?"
"이 새끼가……! 네가 묵범귀영의 기록을 깼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쾅. 땅을 박차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소운이 검을 내세우며 쇄도해왔다. 그 검 주위로는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니 무슨 검기를……?! 천강, 피해!"
"99번!"
연화와 묵현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온다.
그냥 칼부림도 아니고 검기를 실어 휘두르다니? 명백히 죽이겠단 의도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걸 마주하는 천강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그 건방짐, 네 목숨으로 갚아라!"
좌로부터 횡으로 공기를 가르고 날붙이가 날아든다. 정확히 목으로 날아드는 검날의 움직임에 천강의 손이 그제야 까딱 움직였다.
그 모습에 소운의 입가엔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겨우 그 정도 실력으로 내게 까불다니! 늦었어!'
목이나 허리를 비틀어 회피하는 것보다 지금 나아가고 있는 자신의 칼이 더욱 빠르다.
즉, 피하는 건 불가능. 승부는 이미 난 거나 다름없는 상황!
그때 갑자기 천강의 손이 위로 슥 올라왔다.
'멍청한 자식! 검기를 손으로 막을 수 있을 줄 아느냐!'
그런데 그게 현실로 일어나고 말았다.
"어……?"
검 끝이 소년의 목옆에 우뚝 멈춰 선다. 손가락 두 개에 붙들린 검신이 위아래로 잘게 부르르 진동한다.
천강의 손에 순백의 기운이 강하게 응집된 걸 본 소운의 눈이 단번에 휘둥그레졌다.
"그, 그, 그것은…… 강기……?!"
***
3일 전.
노인의 말을 따라 통증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독기를 돌린 천강.
'다 되면 기의 바다에 합류 시키라 하셨지.'
그에 기의 바다에 합류시키려 하자, 갑자기 내단의 기운이 화악 온몸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어어?'
그것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제 아무리 천강이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바로 뒤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잔잔히 들려왔다.
"강제로 끌어오려 하지 말고, 최종 목적지가 기의 바다라는 것만 인지시키거라."
불안하지만 이제와 별다른 방도가 없는 만큼 노인의 말을 가만히 따른다. 그러자 내단의 기운이 손끝 발끝까지 후욱 퍼져나가며 모든 혈도들을 뚫기 시작했다.
"큭……."
정말 거침없는 횡보였다. 그렇게 피부 위까지 나아가며 노폐물들을 제거한 기운은 이내 빠르게 기의 바다로 모이며 이번엔 혈도들을 깨끗이 정돈했다.
우웅.
기의 바다에 모인 세 개의 기운.
눈을 뜬다. 피부 위에 더러운 노폐물이 배출된 게 느껴진다.
"흥미롭네요. 환골탈태는 아닌 것 같은데……."
"방금 내가 가르쳐 준 방법을 꼭 기억하거라. 이 방법을 쓴다면 내단 흡수를 9할 이상…… 아니, 거의 10할 가까이 성공할 수 있다. 영약의 내기 또한 온전히 흡수하는 건 물론이고."
그럴 수가……!
독이 든 내단의 흡수 성공률은 채 5할이 되지 않는다. 흡수하다가 실패할까 하여 내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런데 그런 높은 성공률과 효율이라니……?
"감사합니다, 사학 어르신."
"끌끌. 그래.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몸속에 든 기운까지 마저 정돈하고 가거라."
"제가 이곳에 오래 있으면 폐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다. 나 또한 사람 보는 즐거움이 있어 그런 것이니……."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천강은 임맥에 머물러 있는 세 개의 기운을 하나로 뒤섞기 시작했다. 그것은 늘 하던 일로, 정확히 이틀이 지나서야 천강의 기운과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르신.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할지."
"아니니라. 나중에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기로 하지 않았느냐? 끌끌."
"그랬지요. 그래도 후배로서 너무 많이 받기만 하는 건 아닌가 싶어……."
"받는 건 후배 때 해야 하는 법이다. 힘이 있으면 굳이 받을 필요가 없지."
"하핫. 알겠습니다. 저도 그 말씀, 꼭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천강이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 그러다 이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이야기한다.
"그러고 보니 지금 암운곡에 있다고 했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내 조언하나 해주지."
"감사히 받겠습니다."
노인이 턱의 수염을 쓸며 나직이 이야기했다.
"암운곡에서 사백동굴로 향하는 지하수로가 있을 게다. 그 수로 반대편으로 내려가 보거라."
"거기에 뭔가 있는 겁니까?"
"그래. 그곳에 거의 천 년이 다 되어가는 흑사 한 마리가 살고 있다. 놈을 잡아 내가 가르쳐준 방법으로 내단을 흡수한다면, 온전한 만독불침과 함께 쉽게 환골탈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독불침……!
"감사합니다, 어르신!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다. 그럼 어서 내려가 보거라. 지금 자네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로."
그렇게 천독불침의 경지에 도달함과 동시에 초절정 수준에 이른 천강이었다.
아직 환골탈태를 하지는 못했지만 깨달음은 현경에 근접해 있는 천강에게 강기 비스무리 한 걸 구현해 내는 건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너의 건방짐, 목숨으로 갚으라는 말… 참으로 인상 깊었어."
소운이 칼자루를 쥐고는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러나 붙들린 칼끝은 꼼짝도 하질 않는다.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녀석에게 천강이 씨익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까 네가 한 말…… 그대로 돌려주지."
"어어?"
단전에 있던 기운이 검안으로 쭉쭉 빨려 들어간다. 소운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재빨리 검에서 손을 뗐다. 아니 떼려했다.
그러나 떨어지지 않는다.
"어어어?"
"암운곡의 규칙. 외부 세력이 개입할 수 없다는 말 참 좋아. 지금 여기서 널 죽여도 문제 삼을 수 없단 뜻이잖아?"
"자, 잠깐. 살려줘! 제발 살려줘!"
"네가 횡포를 부리는 동안 주위에 좀 물어보고 다녔어. 살릴 가치가 있는 놈인지, 없는 놈인지 판단이 안 서서. 근데 듣기론 너 때문에 자살한 이들이 상당하다고 하더라고?"
"그, 그건……."
"그래서 직접적으로 물었지. 네가 죽기를 원하느냐고. 그랬더니 대답들이 가관이더군."
천강의 이를 드러내며 진하게 웃어보였다.
"네 후배들 중, 네가 죽기를 원치 않는 놈이 단 한 명도 없었지 뭐야?"
"잠깐만! 제발 목숨만! 목숨만은……!"
"잘 가라고. 무덤 위에 꽃 하나는 놓아줄 터이니."
"아, 안 돼. 끄, 끄아아아악!"
손을 떼고는 고개를 내린다. 열다섯 살 즈음 되어 보이는 소년이 가랑이를 축축이 적신 채 쓰러져 있었다.
천강은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겨우 말 몇 마디에 겁먹어 기절하기는. 몸만 커졌지 수준은 옛날만 못하구만."
심지어 근성도 없다. 강기가 별건가? 발악 한 번쯤은 해 볼만 하지 않은가 말이야.
'쯧쯧. 이런 게 암운곡 최강이라니. 수준 떨어져서 같이 못 놀아주겠구만.'
그렇게 싸움이 일단락되고, 고개를 들기가 무섭게 두 아이가 뛰어와 안겨왔다. 연화와 무진이었다.
"형님!"
"천가아아앙!"
그 주위로 다른 아이들 또한 다가와 둘러쌓는다.
"참네. 너희들 뭐하냐? 다들 안 떨어져?"
그러나 꼼짝 않는 아이들.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며 같은 동기들에게 그는 존경과 귀감, 그리고 의지가 되는 존재가 되어 버린 탓이었다.
그러나 그걸 모르는 천강은 그저 작게 투덜대었다.
"어휴. 이것들 귀찮게 진짜……. 때려서 떼어낼 수도 없고."
그때 거구의 사내가 그에게로 다가왔다.
"하하핫! 싸움 구경은 잘 했다. 네가 묵범귀영의 기록을 깬 녀석이라고?"
"누구……십니까?"
고개를 든다.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로 거대한 신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이 쪄 보일 만큼 크게 부푼 근육들.
권광투마라는 별호와 연화의 아버지라는 걸 제외하고는 아는 게 없는 천강의 질문에, 거구의 남자가 크게 웃으며 자기를 소개했다.
"난 권광투마라 한다. 마교에서 17번째로 강하다고 불리고 있지."
서열 17위……?! 천강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솔직히 그동안 쥐 굴에만 있었던 탓에 현 마교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감을 못 잡고 있던 상태였다.
동기 아이들이나 조교들을 보면 전체적으로 수준이 올라가지 않았나 생각이 들면서도, 초아의 스승이자 그의 동기였던 주태 녀석이 마교 서열 7위인 걸 떠올리면 새삼 웃음밖에 안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자가 17위…….'
강하군. 전생으로 치면 마교 서열 6위 정도는 된다고 봐도 되겠어.
그것이 의미하는 봐는 꽤 컸다. 그만큼 마교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올라갔단 뜻이니까.
천강의 눈이 자신을 찬찬히 살피기를 끝내자, 남자가 아까보다 더욱 진한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금 자네가 옆에 끼고 있는 딸아이의 아비지."
"응? 예에?"
순간적으로 이해를 못해 어리둥절하던 천강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니, 얘 언제 이리 붙어 있었어?'
눈앞에 마두를 살핀다고 집중하는 사이, 어느새 연화가 천강의 팔 하나를 꼬옥 안고 있었다.
"자, 그럼 이제 좀 설명을 해 보실까."
권광투마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다. 그리고는 뻣뻣이 굳은 얼굴로 묻는다.
"자네. 우리 딸과 무슨 사이지?"
***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공간.
또옥또옥. 나지막이 물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어느 고요한 곳.
어둠 속으로 한 목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진다.
"무림인이란 어떤 자들인가?"
"무를 숭상하고 힘을 추구하며…… 그것을 휘두르는 자들. 겉으로는 고귀한 가치를 따르는 것 마냥 떠들어대나, 실상은 욕심과 힘에 취해 자신보다 약자를 짓밟는 이들."
"그럼 마교란 어떤 자들인가?"
"그나마 무림인들 중 겉과 속이 똑같은 족속. 다만 그런 까닭에 일정 선이라는 게 없어 더욱 위험한 놈들."
"그렇다. 무림인은 그런 놈들이다. 강호의 도리 운운하지만 제 욕심을 채우는데 급급한 쓰레기들이지. 마교 또한 마찬가지."
어둠 속으로 남자의 질문이 다시 이어졌다.
"자넨 무림인인가?"
"아니. 난 무림인이 아니다."
"그러면 평범한 사람인가?"
"사람도 아니다."
"그럼 자넨 누구지?"
남자의 질문에 이름 없는 자가 대답했다.
"난 괴물. 사신……. 어둠을 삼키는 더 큰 어둠. 무림인들을 이 세상에서 없앨 유일한 존재."
"그렇다. 그댄 사신이다. 악을 처단하기 위해 하늘의 부름을 받은 자."
약간의 희열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그것에게 명했다.
"그러니 지금 그 맡은 일에 충실하라, 사신이여. 그 시작은 암운곡이다."
"암운곡……. 소교주……."
어둠 속에서 두 눈이 번뜩였다.
"천강을…… 죽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