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6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6화
26화. 천산의 보고
천산의 보고.
천마신교의 수많은 보물들이 잠들어 있는 곳.
진귀한 물건들이 잔뜩 자리한 까닭일까? 그곳은 마교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천산 꼭대기 가까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 가는 길이 까마득한 절벽이라는 것.
'여전하구만. 이곳은…….'
50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험난한 지형.
까딱 발이라도 잘못 짚었다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 구덩이에 빠질 것 같은 곳을, 천강은 흑철마괴의 뒤를 따라 찬찬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낭떠러지에 가까운 절벽을 쭉 타고 올라가자, 건물 하나가 그들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 흑철마괴. 뒤에는 누구인가?
미풍의 바람을 타고 나지막이 말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죽은 자의 혼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 암운곡 묵범귀영의 기록을 깬 아이다. 그 보상을 주기 위해 들렀다."
- 뒤에 그 아이가…….
여러 개의 시선이 느껴진다. 족히 삼십여 명은 되는 숫자가.
'이들이 마교의 보물을 수호하는 검은 그림자 흑영대…….'
마교에는 여러 은밀한 단체들이 있다. 천마의 보필부터 해서, 간자들을 찾아 처단하는 이들까지.
그들 중 그나마 제일 쉽게 볼 수 있는 집단이 있다면 바로 이들이리라. 천산의 보고에 접근하면 바로 경고를 보내오기에.
- 들어가도 좋다.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두 사람을 지켜보는 시선들 또한 사르륵 사라졌다.
흑철마괴는 천강을 데리고 건물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안으로는 너만이 진입할 수 있다. 난 밖에서 대기할 터이니 갔다오거라."
"알겠습니다."
거대한 문을 열고 안으로 진입한다.
크고 훵한 공간에 달랑 책상 하나가 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는 한 노인이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이곳에 사람이 오다니……. 간만이로군."
"누구십니까?"
"이곳을 관리하는 자다. 여러 이름이 있지만, 흠……. 그냥 편히 사학 어르신이라 부르거라."
"알겠습니다, 사학 어르신."
"끌끌. 그래. 미리 전갈은 받았다. 네가 묵범귀영의 기록을 깼다고?"
노인이 천천히 천강에게 다가온다.
백발의 머리칼과 수염, 긴 눈썹이 버드나무처럼 기다랗게 내려앉은 모습이 마치 신선을 연상케 한다. 그는 천강의 이모저모를 찬찬히 살피더니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흥미롭군. 재미있는 내기 운용이야. 이 세상의 모든 무학과 그 원리가 반대로 흐르다니……. 끌끌."
"예? 그게 무슨……."
"말 그대로다. 네가 익힌 무공은 이 세상의 원리와 정반대라 할 수 있다. 아니, 아니지. 여러 개천이 흘러 바다로 모이니, 이 또한 이 세상의 이치라 할 수 있을지도. 정말이지 흥미로운 무공이 아닌가."
천강은 속으로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 자신이 익힌 무공의 원리를 정확히 간파한 것이다.
"과거에 이런 무공을 익힌 자가 한 명 있었지."
"그게 누굽니까?"
"무제(武帝)."
"무제요?"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러나 그 설명을 듣는 순간, 천강의 눈은 단번에 크게 뜨였다.
"무의 정점에 오른 자이자, 초대 교주와 함께 신교를 세운 인물이지. 종국엔 등선해 자취를 감추었다 기록된 인물이고. 그의 무공을 세상에선 이리 칭한다네. 북명신공."
노인이 천강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천강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으로 그저 하하 웃어보였다.
"그래서 자네 이름이 뭐지?"
"천강입니다."
"흥미롭군. 많고 많은 이름 중 천강이라니."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니라. 그건 그렇고 그 무공을 어떻게 익혔느냐? 그건 절대 혼자 깨우칠 수 있는 무학이 아니거늘."
천강은 고민이 들었다. 딱 봐도 보통 노인네는 아닌 것 같은데…….
보는 것만으로 상대의 내기운용을 깨우칠 정도면, 적어도 현경의 고수. 천강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침음을 흘렸다.
그러자 노인이 껄껄 웃기 시작했다.
"곤란하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 끌끌. 널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으니……."
노인이 천강에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초록빛이 은은히 빛나는 열쇠였다.
"이곳 천산의 보고는 총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네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이 위에 자리한 1층뿐이다."
"전부 다 둘러볼 수는 없는 건가요?"
"아쉽게도 그렇다."
끙. 어쩐지……. 이제 겨우 열 살짜리에게 천산의 보고를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왠지 뒤통수를 거하게 얻어맞은 기분에 씁쓸함이 조금 올라왔다.
"그럼 어서 올라가 보거라."
"예, 그럼."
발걸음을 옮겨 계단을 찬찬히 오른다. 그 끝에는 문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쉽게 파악 불가능한 복잡한 진법으로 방비된 문. 천강은 그곳에 자리한 홈에 열쇠를 끼워 넣었다.
그러자 철그덕 소리가 나더니, 진법이 빠르게 해체되며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천강은 그 안으로 찬찬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홀로 남은 공간에서 노인은 소년이 사라진 곳을 향해 잔잔히 미소 지었다.
"끌끌. 환영하네. 무제(武帝)의 후학이여."
***
평이한 공간. 다소 서늘함이 감도는 곳.
문양 하나 없는 단조로운 바닥에 창고마냥 선반들이 놓여있고. 시전 상인이 물건을 팔기 위한 목적으로 진열해 놓듯, 그 위로 각종 물건들이 가지런히 나열돼 있다.
천강은 찬찬히 둘러보며 그것들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이 층은 무공서와 영약들만을 모아놓은 건가 보군."
빛바랜 서적들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합마공, 선천공…… 음? 이건 자하신공? 왜 화산파의 비급이 여기에?'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자하신공이 분명하다.
그에 뭐라 쓰여 있나 보려했으나, 진법이 걸린 끈으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 아마 강제로 뜯는다면 이걸 보상으로 선택했다 뭐 그런 식으로 간주되는 듯했다.
천강은 그걸 다시 내려놓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무공서들보단 이왕이면 영약 쪽이 좋겠지."
무공은 북명신공 하나면 충분하다. 그 아류인 흡성대법을 통해 이미 마교 최강 자리에도 올라보지 않았던가?
굳이 더 익혀야 할 게 있다면 보법, 신법, 경공 정도.
그러나 그거 없이도 이미 높이 올라가본 만큼, 천강은 무공서들에서 시선을 떼 영약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내성. 독에 대한 내성을 올려주는 게 있을 거야."
상자들이 쭉 나열되어 있다. 그 밑으로 안에 든 영약의 이름과 정보가 쓰여 있다.
'만년설삼, 인형삼……. 만년하수오도 있군.'
보기만 해도 꿀꺽 침이 고이는 것들이 수두룩했으나, 천강은 고개를 홱홱 저으며 발길을 옮겼다.
- 천강아. 흡성대법의 크나큰 약점 중 하나는 독이다. 지금 이걸 먹으면 천독불침의 경지엔 이를 수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 기회가 되거든 어떻게든 만독불침의 경지에 이르도록 정진해야 한다. 알겠느냐?
확실한 건 아니지만, 북명신공 약점 또한 흡성대법과 동일할 것이다. 천강은 스승의 말씀을 떠올리고는 마음에서 피어오르는 욕망을 애써 억눌렀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는 그때, 드디어 적합한 물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천 년 묵은 백사의 내단』
흡수하는데 성공한다면 천독불침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찾았다. 독을 가진 영물의 내단!'
이거면 어느 정도 독에 대한 걱정은 덜 수 있으리라.
천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
"음? 그거로 선택한 게냐?"
"예, 사학 어르신."
사람 머리만한 크기의 작은 함.
천강이 그것을 건네자, 노인이 그것을 받아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봉인의 끈을 풀어주었다. 그 안에는 은은한 백색의 빛이 나는 구슬이 놓여 있었다.
"알다시피 이건 천 년 묵은 백사의 내단이다. 내력 증진과 독에 대한 내성을 만들어주는 효능이 있지. 물론…… 성공적으로 흡수한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노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오른다.
"감당할 수 있겠느냐?"
"글쎄요."
"실패하면 주화입마에 빠질 것이니라. 혹은 살이 다 녹아 문드러진다든지. 요놈 독은 꽤 독하거든."
"한 번 해봐야죠."
"끌끌. 좋은 패기로다."
단순히 패기만으로 대답한 건 아니었다.
이미 스승과 함께 독이 든 내단을 섭취해본 경험이 있기에 나온 일종의 경험치였다. 자신감까진 아니고.
'전생을 통틀어 나도 딱 한 번 해본 것뿐이니까.'
그때 노인이 엄청난 제안을 했다.
"영 뭣하면…… 내가 좀 도와주마."
"참말이십니까?"
"그래. 귀한 영약과 뛰어난 인재를 동시에 잃는 건 원치 않으니…. 대신 나중에 내 부탁하나 들어주는 건 어떠하느냐?"
천강 입장에선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현경급 고수와 연이 닿는다는 건 좋은 것이니까.
"그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래그래. 절대 위험한 부탁은 안 할 터이니, 걱정 안 해도 될 것이다. 그쪽에 앉거라."
천강이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자, 노인이 그 뒤에 자리했다.
"이제 내단을 섭취하거라. 진기로 감싸는 걸 잊지 말고."
시키는 대로 백색의 영약을 입에 넣는다. 진기로 감싸기가 무섭게 빠르게 녹아 몸 곳곳으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천강은 근육과 피부가 굉장히 따끔거림을 느꼈다.
'시작부터 이 정도라니……. 전생에 먹었던 것보다 독한데?'
그러나 이미 경험이 있는 만큼, 당황하지 않고 흩어진 독기를 하나하나 한쪽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그때 등으로 노인의 손바닥이 닿는 게 느껴졌다. 그에 따라 빠르게 기의 바다로 흘러들어오는 다량의 기운.
"다행이로고. 아직 등 쪽으로는 통로를 뚫어놓지 않았구먼."
그래서인지 대량의 기운 중 일부는 그 흐름을 벗어나, 천강의 몸 내부를 돌 수 있었다. 노인의 기운이 독기를 품고는 천강의 명치 부근을 뱅글뱅글 돌기 시작한다.
"자, 이런 식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돌리는 것이다. 기의 바다에 합류시키지 않고, 명치 부근을 계속 맴돌면 된다."
노인의 손이 떨어졌다.
닿아있는 건 아주 찰나의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의 바다는 노인의 진기로 가득했다. 하나로 만들면 이젠 조교 초아보다도 내공 양이 많아질 정도로.
"딴 생각 말거라. 집중해라."
그래. 일단은 이 일에 집중하자…….
잠깐 딴 길로 새어간 정신을 다잡고, 백사의 독기가 어린 기운을 단중 부근으로 원을 그리며 계속 돌린다.
천강은 고통에 입술을 짓씹었다.
'큭…….'
내면에서부터 엄청난 통증이 일었다.
진기로 촘촘히 감싸고 있음에도 맹독의 기운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는 탓인지, 원을 그리는 궤적을 따라 강한 통증이 뒤따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상처가 생기는 순간 기의 바다에 있던 천강의 기운이 올라와 빠르게 재생하고 있다는 점 정도.
그것이 아니었다면, 장기 내부는 진즉에 다 녹아 없어졌을 터였다. 그러나 끊임없이 지속되는 고통에 천강의 얼굴은 주름으로 그득해졌다.
대체 언제까지 돌려야 하는 거지?
"계속 돌리는 게다. 통증이 잦아들 때까지 말이다. 돌리고 돌리다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된다면, 그때 기의 바다에 합류시키면 될 것이다."
왜 굳이 이렇게……?
의문이 들었다. 그냥 남들이 다 하는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면, 크게 고통스럽지 않아도 천독불침의 경지에 능히 도달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이런 방법을 써야 하는 건지.
그러나 현경급 고수가 그걸 모를 리 없을 터.
천강은 고통을 인내하며, 노인이 시키는 대로 묵묵히 기운을 돌리는 데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