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1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5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1화
21화. 암운곡
"다들 조심히 내려가도록."
암운곡. 천산의 두 산등성이 사이, 계곡 옆에 위치한 거대한 구멍.
깊이는 얼추 100장 즈음 되고 너비는 웬만한 마을 하나보다도 더 크다.
그래서 이곳에 막 처음 들어선 쥐 굴 출신들은 밧줄을 이용해 내려가야만 했다.
20여 개의 밧줄을 통해, 아이들이 하나둘 밑으로 내려갔다.
"천천히 내려가라. 잘못하면 손 다 까진다. 떨어지면 그대로 사망이니 주의하고."
"꿀꺽. 네, 네엣."
"아아……. 나 고소공포증 있어서 올라가는 건 잘 해도 내려가는 건 못하는데……."
천강 일행과 2번 패거리, 그리고 마교 자제들은 제일 마지막에 내려가게 되었다.
혹여나 내려가는 도중, 위에 있던 아이가 실수로 떨어져 함께 낙사하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배려였다.
"그럼 이제 너희들 차례다. 내려가라."
밧줄을 잡고는 내려가기 시작하는 15명.
그들의 눈에 암운곡의 풍경이 속속들이 들어왔다.
'분위기는 그대로여도 지형은 많이 변했군.'
암운곡은 실시간으로 구멍이 커져가는 곳이다.
매년 비가 많이 오는 시기면 계곡의 물이 불어나면서 이 안으로 다량의 물과 흙이 쏟아져 내리는데, 그때 가장자리가 함께 깎여나가는 탓이다.
그래서인지 50년 전보다 굴은 더 커져 있었다.
거대한 원통형으로 나 있는 구멍 가에로 수많은 굴들이 눈에 들어온다. 천강 바로 옆에 있던 연화가 그걸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묻는다.
"저것들은 뭐야?"
"숙소다. 각 사람마다 하나씩 배정받지."
"헤에……. 그런데 사람이 몇 없네?"
"다들 훈련하느라 자릴 비워서 그럴 거야."
2년차까진 빡세게 굴린다.
그런 뒤 3년차부터는 서서히 자율에 맡기는데, 그쯤 되면 2년간 한 게 있기 때문에 다들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 나와 구경하는 이들은 그 대부분이 별 볼일 없는 놈들이라 보면 되었다.
"난 도착! 빨리 내려와, 천강!"
이곳저곳 둘러보는 사이, 어느덧 바닥에 도착한 연화.
천강 또한 속도를 내 밑으로 주르륵 내려섰다. 그러자 곧 귀로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여전하구만.'
암운곡 바닥. 햇빛이 거의 닿지 않는 이곳의 대부분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물줄기.
천산의 지하수였다.
목이 마른 아이들이 하나둘 그 안으로 들어갔다가 도로 밖으로 빠져나온다.
"아 씨. 개 차가워!"
"와아. 아니, 무슨 물이 얼음장 같냐……?"
천강 또한 다가가 그곳에 손을 대 보았다.
살이 아리다. 벌써부터 이곳에서 훈련 받을 걸 생각하니 아랫도리가 오그라든다.
"너희들은 여기서 잠시 대기하고 있어라. 모르는 건 2년차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교관과 조교가 한쪽으로 사라진다. 이곳에 내려온 걸 암운곡 총책임자에게 보고하러 가기 위한 것이리라.
그리고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한쪽에서 나타나는 한 무리의 소년들.
그들은 암운곡 3년차들이었다. 이제 막 이곳에 입성한 1년차들을 잡도리 하러 나온 것이었다.
"여어. 너희들이 이번에 온 신입들?"
"맞습니다. 선배님들, 평안히 주무셨습니까?"
"삼식아. 내가 너한테 물었니? 쟤들에게 물었지. 자, 내 앞으로 다 집합."
11명의 소년 중 가운데 있는 녀석이 까딱까딱 손짓한다.
그러나 사전에 암운곡에 대해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눈치를 봤다.
"이것들 봐라? 선배가 말하는데 말을 안 들어? 이것들을 콱!"
"그, 그치만 암운곡에서 선후배는 있어도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건 오로지 교관과 조교뿐이라고 들었……."
"이게 미쳤나? 암운곡 1년차가 말대꾸?!"
거센 발길질이 이어진다. 워낙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모두가 대응하지 못했고, 이제 막 암운곡에 도착했던 그 아이는 발길질 단 한 방에 입에서 피를 쏟아내며 쓰러졌다.
말 그대로 사정 봐주지 않고 기를 실어 살격을 날린 셈이었다.
"씨발. 이것들 말로 하면 안 되겠네? 이번 기수 1-10번 앞으로 나와."
"막패 선배, 진정하세요. 이번 기수는 건들지 않는 게 좋습니다!"
암운곡 2년차인 삼식이가 재빨리 달려 나가 3년차들을 말린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을 위인들이라면 애초에 이런 일을 하지 않았으리라.
"왜? 이들 중에 교주 아들이라고 있간? 엉?"
"그건 아니지만…… 이번 기수엔 마두 자녀만 2명이 있다고요!"
"그래서 뭐? 마두의 새끼들은 사람 새끼 아냐? 똑같이 암운곡에 들어왔으면 그 규율을 따라야지!"
'그 규율이란 게 원래는 없는 거였잖아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화만 돋을 뿐인 걸 아는 삼식이는 그 말을 삼켰다.
그에 따라 다시금 소리치는 막패.
"1번부터 10번까지 나오라고!"
그걸 본 천강은 픽 웃음을 흘렸다. 보아하니 자격지심으로 마교 출신 자제들을 갈구는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저러다 졸업 후 쥐도 새도 모르게 땅속에 묻힐 텐데. 멍청한 자식.'
아무리 생각해도 대가리가 돌로 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 천강은 결국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그걸 들은 막패, 얼굴이 험악해진다.
"너 방금 실실 쪼갰냐?"
"그랬다면?"
"그랬다면……? 이게 진짜 미쳤나? 어디서 하늘같은 선배에게 반말을……!"
옆차기가 빠르게 날아온다.
그러나 천강은 녀석에게 한 발짝 다가감으로써 손쉽게 그 피해를 최소화시켰다.
'어어? 내기를 실은 발차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아무리 물리 피해를 최소화 시켰다 해도 표정 하나 안 변하다니?
"이놈! 좀 하는 놈인 모양이구나! 그럼 어디 이것도 막아봐라!!"
각종 발차기가 날아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방에서 몰아친다. 그러나 천강은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 모든 공격을 다 받아냈다.
"헉. 허억. 이런 미친……."
거칠게 숨을 토해내는 막패와 그저 평온한 얼굴의 소년.
천강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더 안 덤벼?"
"네, 네까짓 거!"
"그래. 그래야지. 좀 더 제대로 차봐. 내공도 제대로 실어서 말이야."
막패가 힘껏 발을 놀린다. 천강 웃으며 그걸 받아낸다.
상대가 기를 실어 발차기를 날리면, 그때마다 손으로 받아내며 그 기운을 모조리 흡수중인 천강.
결국 놈은 천강에게 발을 날리기 시작한지 단 2분 만에 자신의 진기를 모조리 소모했고, 천강은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놈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그걸 보고는 무리가 크게 놀라 떠들었다.
"대, 대박."
"역시 99번!"
"정말 최고다! 천강! 천강!"
1년차 쥐 굴 동기들은 천강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고.
"3년차 선배가 타격을 전혀 못준다고?"
"새, 생각보다 더 거물인 모양인데?"
2년차들은 자신들이 본 것이 진짜인지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마지막 3년차들은…….
'뭐야? 복수하겠다고 한꺼번에 달려들 줄 알았더니, 도망가네?'
그랬다. 쓰러진 막패라는 놈을 들고는 꽁지 빠지게 도망가고 있었다.
'이런 배알도 없는 것들.'
역시 이 시간대에 띵가띵가 놀고 있는 놈들 중엔 제대로 된 놈은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암운곡 첫날부터, 잡도리 하러 온 선배를 역으로 잡도리하며 제대로 입성 신고를 한 천강이었다.
***
"이 새끼들……. 적당히 좀 할 것이지."
3년 차에게 발길질을 당해 내상을 입은 아이를 보곤 조교가 인상을 찌푸렸다.
한눈에 봐도 위독한 상태.
그러나 그녀는 2년차 둘을 시켜 치료실로 이송하는 것으로 본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그것이 못마땅한 연화가 따지고 들었다.
"조교님. 다짜고짜 와서 살격을 날렸는데, 아무런 처벌도 없이 이러고 끝인가요?"
"그렇다면?"
"그건 안 될 말입니다! 그냥 넘어가는 건 말이 안 된다 생각합니다!"
가만 보면 1번 쟤는 정파 새끼들을 보는 것 같단 말이지.
겉만 번지르르한 가짜들 말고, 진짜 정파 놈들 말이다.
정의를 추구하고, 강자로서 힘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으며 약자를 보호하는 뭐 그런 거.
연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나서는 아이들. 그러나 조교의 얼굴은 시큰둥하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야 당연히……."
"잘 들어라. 이곳 마교는 힘이 우선시 되는 곳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고, 강한 자는 뭘 해도 용서가 되는 곳. 이곳을 졸업할 때까진 어느 정도 보호를 해주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약한 자를 지켜줘야 할 의무는 없다."
"큿……."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는 연화.
조교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슥 훑는다. 눈빛에 약자를 멸시하듯 깔보는 기세가 역력하다.
가만히 있으려다 그것이 좀 거슬린 천강은 툭 한마디 내뱉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저희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 조교님에게 배웠습니다. 암운곡에서는 오로지 교관과 조교의 말만 따르면 된다고. 그런데 그걸 3년차들에게 이야기하니 콧방귀를 끼며 비웃고는 발길질을 하더군요."
적당한 거짓말을 섞어 혀를 놀리자, 조교의 눈이 크게 뜨였다.
"비웃……었다고?"
"그렇습니다. 아주 소리 내어 웃던데요?"
그러고 천강은 1번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요 눈치 없는 꼬맹이는…… 고개를 갸웃거렸을 뿐. 그러나 다행이도 주변 동기들이 바로 옹호하고 나서서 거짓말이 탄로 나진 않았다.
"맞아요. 심지어 막말도 했습니다, 조교님."
"여기에 교주 아들이라도 끼어있냐면서, 마두 새끼들도 선배에게 존칭 하는 규율은 꼭 지켜야 한다고 했었지 아마?"
조교가 고개를 홱 돌려 2년차들을 바라본다.
그들 또한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곧바로 이마에 핏줄이 올라오는 그녀.
"이것들이 건방지게……. 야, 삼식이!"
"예, 예."
"너 그 새끼들 한 놈도 빼놓지 말고 다 이리로 데리고 와. 난 애들 방배정해주고 올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2년차들의 얼굴이 확 펴진다. 몇몇의 얼굴엔 미소까지 걸린다. 아무래도 그들 또한 저들에게 쌓인 게 꽤 되는 모양이다.
"나머진 다들 날 따라와라!"
***
방은 70년 전과 크게 별다를 바 없었다. 침대 하나 없는 그저 평이한 공간.
"참고로 이번 합격자가 너무 많아서 몇몇은 방을 같이 써야 한다."
그러면서 방을 잡아주는 조교. 천강은 그녀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럼 여기 무진이와 제가 한 방을 쓰겠습니다."
"형님……."
"아, 혼자 방을 쓰고 싶은 거야? 그럼 말을 하고."
"아닙니다! 혹시라도 제가 폐가 될까 하여……."
폐는 무슨. 다 생각이 있는 천강은 조교에게 제안을 했다.
"대신 좀 큰 방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방은 둘이서 자기엔 너무 작은 것 같네요."
"그래. 알겠다. 큰방으로 주지. 다른 이들도 듣거라. 이 둘 외에도 22명은 한방을 써야하니, 미리 말을 맞추고 온다면 큰 방을 내어주겠다."
그렇게 98번 아우와 천강은 한 방을 쓰게 되었다.
"형님. 이방 다른 방의 5배는 되어 보이는데요?"
"아우야. 이 형님 말만 잘 따르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지는 법이다."
방 크기로 보아하니, 아마 1-10등에게 주기로 되어 있는 방이었을 것이다. 천강은 머리를 써 그걸 후딱 중간에 가로챈 것이고.
그때 귓가로 들려오는 연화의 목소리.
"오오. 이방도 나쁘지 않네."
"네 방은 어떤데?"
"와봐. 보여줄게."
밖으로 따라나서는 두 사람.
암운곡은 나선형으로 올라가며 방이 배치되어 있는 구조다. 연화의 방은 약 7장가량 떨어진 곳으로 바로 그 둘의 옆방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방으로 구경을 간 천강과 무진은 눈이 휘둥그레 질 수밖에 없었다.
"대박……."
"……."
그도 그럴 게, 같이 쓰겠다며 큰 공간을 배치 받은 천강네 방보다 족히 두 배는 더 컸기 때문이다.
'이래서 뒷배가 없으면 서럽다니까.'
마두의 자녀라는 신분 하나로 이런 방을 배정받다니.
"막 여기 뒹굴러 다녀도 되고, 안에서 뛰면서 훈련해도 괜찮을 것 같더라고. 심지어 안쪽엔 침대도 있다?"
하……. 이런 좀생이 놈들.
"심심하면 자주 놀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