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9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9화
19화. 유명인사가 되다
천강이 2번에게 쏘아져 나갔다.
그러면서 그는 동작을 크게 만들었다.
'기세를 탄 것처럼 무식하게 달려드는 거야. 마치 한방에 끝내버리겠다는 듯, 최대한 동작을 크게 하는 거지.'
즉, 일부러 빈틈을 만든다.
보통 경험 많은 이들이라면 이런 식의 함정에 걸리지 않을 것이나 열 살배기가 무슨 경험이 있겠는가?
예상대로 도망만 치며 기회를 노리던 2번이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는 천강이 오른팔을 휘두르는 박자에 맞춰 안쪽으로 파고들어오기 시작했다.
'당황하는 척 하는 거다. 눈을 크게 뜨고, 내지르던 주먹을 멈춰 엉거주춤 자세를 만드는 거야.'
2번의 오른손에 날붙이가 나타난다. 자신에게 일격을 먹일 준비를 하는 것이리라.
'속도는 분명 녀석이 빠르다. 그러나 미리 공격당할 곳을 안다면 방어하기는 쉬운 법.'
2번이 날붙이를 역수로 쥐고는 천강의 오른쪽 옆구리를 향해 찔러 들어왔다.
혹여나 천강이 방어에 성공할 경우, 재빨리 무기를 회수하기 위해 약간의 머리를 쓴 것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푸욱.
"?!"
어느새 옆구리 위로 올라와 있는 천강의 왼손이었다.
바닥으로 뚝뚝 붉은 액체가 떨어진다. 그것은 2번의 날붙이가 천강의 주먹 손등에 박히면서 나오는 핏방울이었다.
천강은 있는 힘껏 주먹에 힘을 줘, 손목을 비틀었다.
깜짝 놀라 재빨리 날붙이를 회수하려는 녀석. 그러나 손등에서부터 손바닥까지 뚫고 들어간 날붙이는 천강의 뼈와 근육에 끼어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그 사이 천강은 오른팔을 재빨리 움직였다.
그의 오른손은 아까 주먹을 휘두른다고 2번의 등 위에 머물러 있었고, 당황한 탓에 미처 대응하지 못한 2번은 천강에게 손쉽게 등을 내어주었다.
"끝이다."
녀석의 등과 손이 맞닿는 순간, 막대한 기가 손을 타고 쏟아져 들어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2번이 날붙이를 버리고 도주를 하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흡성대법이든 북명신공이든 한 번 잡히면 온몸에 기운이 쭉쭉 빨려나가는 탓에 뿌리칠 힘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떼어내기 위해 기운을 끌어올리면 올릴수록 더 빨리 뺏겨버리니, 말 그대로 거미줄에 걸린 벌레가 발버둥치는 꼴.
'팔 같은 데도 아니고 등을 잡힌 상태다. 이건 일류라고 쉽게 못 떼어내!'
결국 순간적으로 기력을 다 뺏겨, 두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녀석은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늘 공허하던 2번의 얼굴에 처음으로 경악이 떠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강은 곧바로 녀석의 목을 양팔로 움켜쥐었다.
버둥버둥.
'독한 녀석. 비명 한마디 안 내지르네.'
누가 암살자 출신 아니랄까봐.
아무튼 자신에게 까불면 어떻게 되는지 주변에게 보여주기 위해, 천강은 본보기로 죽기 직전까지 녀석의 목을 졸라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콱 죽여 버리는 게 속 편했으나, 어찌됐든 녀석은 마두의 자식. 뒷감당이 안 될 짓은 안 하는 게 좋았다.
그에 적당히 하고 놔주자, 녀석이 의아한 눈으로 천강을 올려다본다.
"뭐?"
"콜록. 콜록콜록. 어째서…… 살려준 거지……?"
"내 맘."
"?"
"이유 따윈 없어. 그냥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그럴 뿐이다."
천강은 왼팔에서 날붙이를 빼 녀석에게 던져주었다. 그것은 어린 아이의 검지 정도 되는 날을 가진 아주 조그만 칼이었다.
"그리고 66번 데려가라. 앞으로 밑에 것들 잘 단속해서 까불지 않도록 신경 좀 쓰고."
"어째서……?"
"왜 66번도 살려 주냐고?"
끄덕.
별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귀찮음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천강이 보기에 66번은 인성이 좀 문제였을 뿐 크게 대성할 놈이었다.
마교 출신도 아닌 놈이 마교 자제를 일대일로 처바른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녀석이 자신에게 철저히 밟혔다.
이제 앞으로는 누군가 한 판 붙자고 시비를 틀면 간단하게, '66번 녀석은 이기고 나서 와라. 그때 상대해주겠다.' 뭐 그런 식으로 대응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걸 굳이 사실대로 말해줄 이유는 없기에 천강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내 맘."
그러고 돌아서는데 2번이 천강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던졌다. 그것은 주머니로, 안엔 웬 가루가 들어있었다.
"이건 뭐냐?"
"콜록콜록. 해, 해독제다. 내 단도엔 독이 발라져 있다."
어쩐지 팔이 좀 아리다 했더니, 그런 거였나?
애들 싸움이라 독 따윈 안 쓸 거라 생각했는데…… 나도 생각이 짧았군.
딱히 무공 따윈 익힐 이유가 없으니, 일단 암운곡 들어가면 체력단련 하면서 독에 대한 방비부터 세우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왜 해독제를 주는 거야? 가만 놔두면 자연스레 복수를 할 수 있을 텐데."
그러자 2번, 별 거 아니라는 얼굴로 왈.
"내 맘."
귀여운 자식.
왠지 조금은 마음에 들라하는군.
"자, 그럼 마지막 싸움을 시작해 볼까? 13번 어디 있냐? 후딱 튀어나와라."
해독제를 입에 털어 넣은 천강이 주위를 둘러보자, 한쪽에서 한 소년이 주춤주춤 거리며 나타났다.
"오. 그래도 용케 도망 안 가고 거기 있었네? 진즉에 도망가고 없을 줄 알았더니."
"내, 내가 도망 따윌 왜 해?"
"그래. 남자라면 그 정도 기개는 있어야지. 자. 어여 들어와."
천강이 손짓을 한다. 13번이 우물쭈물 거린다.
2번과의 엄청난 싸움을 봐버린 탓에 기가 완전히 죽어버린 탓이다. 그러나 봐줄 생각이 좁쌀만큼도 없는 천강은 손을 계속 움직였다.
"자꾸 그렇게 내빼서 날 짜증나게 만들었다가는…… 내가 감정 조절을 못해 네 목을 비틀어 버릴 지도 몰라."
그제야 가까이 다가오는 녀석.
13번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주먹을 쥐고는 큰 소리로 외치며 달려들었다.
"가, 간다앗……!"
그러나 겁에 질린 탓에 제대로 보법도 시전 못한 녀석이 무슨 상대가 될까?
13번에게 단번에 달라붙어 녀석의 공력 또한 빼앗은 천강은 그대로 복부에 한방 제대로 넣어주었다.
퍽.
"꾸에엑."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환호.
그렇게 천강의 싸움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이번 싸움을 통해 천강은 굉장한 유명인사가 될 수 있었다.
"야야. 아까 봤어? 진짜 장난 아니더라."
"그러니까! 난 2번하고 99번하고 둘이서 짜고 움직인 줄 알았다니깐? 와아……. 어떻게 저렇게 움직이지? 특히 마지막 칼 받아내는 건 정말이지……! 어후. 소름 돋아."
"나도나도. 하아. 난 대체 언제쯤 저렇게 강해지냐?"
일단 쥐 굴 동기들 사이로는 사실상 최강자로 공교히 되었고.
"야. 나 잠깐 훈련 좀 하다 온다."
"나도. 갑자기 훈련 마렵네."
"야! 너희들 다 가면 어떡해, 이 미친 것들아? 배식 준비해야지!"
암운곡 2년차 선배들에겐 경쟁 상대이자 자극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중 몇몇에게는 일말의 의문까지 들게 만들었으니…….
아는 만큼 보인다고, 기에 민감한 이들은 본 것이다. 손을 댄 순간 상대는 내력이 바닥나고 반대로 천강의 내력은 급격하게 불어난 것을.
"방금 무슨 기술이었지? 넌 아는 거 있어?"
"아니. 나도 저런 건 처음 봐."
그때 뒤늦게 도착한 조교가 교관에게 다가왔다.
"교관님, 저 왔어요. 근데 진짜 200명이 넘는 것 같네요. 어떻게들 통과했데요?"
"……."
"저어…… 교관님?"
그러나 불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남자.
그에 조교 소용이 그의 눈앞에 손을 흔드는 순간, 교관이 그녀의 팔을 덥석 움켜쥐며 물었다.
"이번 쥐 굴 교관 대표가 누구였지?"
"그…… 흑철마괴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비격창마의 눈이 잘게 떨렸다.
'그렇다면 마지막 그 기술은 설마……?'
흡공!
마교의 역사상,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기운을 흡수하는 마공은 단 두 개뿐이었다.
그중 하나는 바로 흡성대법.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해, 단 5년 만에 서열 1위에 오른 괴물 중의 괴물인 흑살마신이 익힌 무공.
50년 전, 마교 서열 1위에서 84위까지 모조리 숙청시킨 그의 업적은 지금도 수많은 마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회자될 정도였다.
이후 종적을 감추었으나 마교 사람들은 그가 천산 은밀한 곳에 기거하며 천마를 보필하고 있다 믿고 있었고, 그것은 간악한 외부 세력이 마교를 집어삼키는 것을 다소 억제시켜주고 있었다.
'하지만 흡성대법일 리 없다.'
흡성대법은 부작용이 심한 무공이라고 들었다.
흑살마신의 경우에 쥐 굴 졸업 후 10년간 그 스승의 아래서 철저하게 관리를 받았다고 했으니, 그걸 고증으로 삼아볼 때 저 소년은 나이가 너무 어렸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뿐인데…….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비격창마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모든 게 들어맞았다.
소년이 들어온 시기도, 그 순간 쥐 굴을 담당한 감독관도, 그리고 소년이 사용하는 무공까지.
'천마신공……. 설마 천마의 자녀가 들어온 것인가……!'
***
"그러니까 먼저 들어왔던 7명이 뒤에 애들이 못 올라오게 밧줄을 자른 것으로 인해, 방금 싸움이 일어났다 이 말이지?"
"예. 맞습니다, 조교님."
"그럼 저 많은 인원이 다 그 절벽을 타고 올랐단 이야기란 이야기인데……."
"저희도 솔직히 그게 조금 이해가 안 갑니다. 그게 벽 타고 오를 만큼 만만한 언덕입니까? 아직 제대로 보법도 안 익힌 애들에게?"
"흠……."
교관의 지시 아래, 정보를 파악하고 다니는 조교 소용.
암운곡 2년차들에게서 대략의 상황을 전해들은 그녀는 졸업관문을 통과한 모든 이들을 불러오라 지시했다.
"당사자들에게 직접 들어야겠다."
2년차들이 빠르게 쥐 굴 아이들을 모은다.
모두가 다 모인 걸 확인한 그녀는 무리 전체를 추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현 상황이 이해가 안 가서 그런다. 너희들 모두 어떻게 통과했는지를 들어봐야겠다. 이곳에 도착한 순서대로 한명씩 앞으로 나와 내게 설명하도록."
웅성웅성.
소란이 이는 무리.
그도 그럴 게, 여기 있는 인원 중 2번 패거리를 제외하고는 다 비밀통로를 이용했다. 정상적으로 졸업관문을 치르지 않은 만큼, 문제를 삼을 게 불 보듯 뻔했다.
"젠장. 99번, 이거 우리 탈락 시키는 거 아냐?"
"형님, 저희 괜찮을까요?"
그러나 태평한 얼굴을 하고 있는 천강. 도리어 조교에게 다가가 번쩍 손을 든다.
"조교님."
"무슨 일이지?"
"지금 조교님께서 이해가 안 되는 건, 너무도 많은 인원이 통과한 것 때문에 그런 것 아닙니까?"
"그렇다."
천강은 그녀에게 사실을 모두 토로했다. 대신 약간의 거짓을 섞어.
"실은 저와 함께 들어온 200명은 비밀통로를 통해 이곳에 왔습니다."
"뭐? 비밀통로?!"
비밀통로의 존재를 아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조교인 그녀조차도 모르는 건 지극히 당연한 사실.
그래서인지 그녀나 암운곡 2년차들이나 하나 같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아니…… 비밀통로라니?!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았지?"
"저희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밧줄은 끊기고 그저 어떻게 벽을 타고 올라가야하나 곰곰이 생각하는데, 저희보다 앞서 나가던 5명이 갑자기 사라진 게 찜찜해 그들의 흔적을 추격했습니다."
말을 하며 슬쩍 마교 자제들을 확인한다. 모두가 얼굴이 크게 구겨져 있다.
설마 하니 본인들을 따라왔을 거라고는 생각 못한 모양이다.
그런 그들의 표정을 즐기며 천강은 느긋하게 말을 맺었다.
"그러다 비밀통로를 발견했고, 다섯 명의 흔적을 따라 쭉 이동하다 보니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정말이냐?"
천강의 이야기를 다 들은 조교가 마교 자제들에게 확인 차 묻는다.
다섯 명이 똥 씹은 표정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아……. 이것들이 지금 장난 하나?! 졸업 관문이 애들 장난으로 보여? 엉? 야, 삼식이."
"예? 예, 조교님."
"이것들에게 밥 주지 마. 어디서 시험도 제대로 치르지 않은 것들이 밥을 먹으려고 해? 내가 너희들! 시험 다시 치르게 해준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교관에게 돌아가는 그녀.
200여명의 동기들이 다가와 천강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저기…… 괜찮을까?"
"그냥 둘러대는 게 낫지 않았어?"
그러나 천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는 게 낫다."
"그래도…… 정말 시험을 다시 치르게 되면 어떡하려고?"
"절대 안 그래. 그러니 걱정들 말아라."
재시험을 치르는 순간 여기 있었던 일이 윗선에 보고될 것이다.
그러면 위에서 내려와 그 시시비비를 따지고 책임을 물을 것이니, 교관이든 암운곡 총책임자든 피하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를 부정합격자로 떨어뜨릴 수도 없지.'
마교 일원의 아이들이다. 그중에는 비밀통로도 알고 있을 정도의 핵심 인물과 깊게 연관이 되어 있다.
그러니 절대 일을 크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천강의 예상대로 이번 일은 그냥 조용히 묻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