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8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8화
18화. 2번과의 한판
퍽.
"크억."
퍽퍽.
"끄으윽……."
퍽퍽퍽퍽퍽.
"꾸에엑."
천강의 매타작에 66번이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꿈틀거렸다.
싸울 때는 급소만 때리더니, 이제 와서는 반대로 급소만 피해 때리는 그 악랄함에 녀석은 부르르 치를 떨었다.
'차, 차라리 그냥 기절을 했으면…….'
그때 천강이 행동을 멈추고는 쭈그려 앉으며 묻는다.
"너 방금 차라리 기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아, 아니……."
이 녀석 귀신인가? 어떻게 내 생각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올려보는 66번에게 천강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기절해도 소용없어. 바로 깨워줄 테니까."
"어, 언제까지 맞아야 되는 겁니까? 오늘 안에는 끝나긴 하는 겁니까?"
"오오. 우리 돼지. 그래도 눈치는 좀 있어? 바로 경어로 바꾸고 말이야. 그래. 언제까지냐면……."
천강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탁탁 털었다. 그리곤 뜬금없이 왈.
"너 혹시 공자님이 뭐라 하셨는지 알아?"
"예에? 아뇨……."
"공자님께선 말씀하셨지. 상처는 잊되, 은혜는 결코 잊지 마라. 분명 저번 사건으로 인해 난 우리 사이의 일이 다 청산되었다고 생각했다 만은……. 아무래도 넌 아니었던 것 같단 말이야."
"그, 그건……."
"그때 확 그냥 죽여 버리려다, 그래도 같은 쥐 굴 출신으로 일말의 정이 앞서 용서를 해주었는데 그걸 원수로 갚다니……. 그러니 내가 이번엔 어떻게 하겠어?"
"사, 살려주십시오!"
66번이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는 상태에서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천강의 얼굴엔 그저 진한 미소만이 지어져 있을 뿐이다.
"내가 왜?"
"하,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분수를 알고 다시는 까불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천강이 66번을 살려줘야 할 이유가 없었다.
사람은 때때로 손을 제대로 써야 할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이번에도 용서를 해주면 이놈은 다음번에도 또 다시 기어오르려 할 거다. 그때도 이번처럼 운이 따라준다는 보장이 없었다.
더구나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만큼, 본보기로 삼기에는 명분도 연출도 최고로 좋은 상황이었다.
그에 손을 쓰려는 순간,
"잠깐."
주위를 둘러싼 무리 안에서 한 소년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2번이었다.
"2번이 움직였어."
"어떻게 되려는 거지?"
"66번은 2번과 형님 아우 하는 사이니까, 역시 한 판 붙지 않을까?"
"오오. 쥐 굴 내 두 최강자의 싸움이라니!"
아이들이 저마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두 사람을 지켜본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암운곡 2년차들이 그들을 흥미로운 얼굴로 바라봤다.
"방금 싸울 때 봤어?"
"어. 공격 하나하나가 진짜 매섭더라. 그런데 움직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저건 절대 신입 수준이 아니야. 보통은 3년차는 되어야 저런 움직임이 나온다고."
"한 자리 수 번호대도 아니고, 99번이 저 정도라니……. 이번 신입들이 확실히 괴물이 많긴 한가 보네."
2번이 천강 앞에 멈춰 선다.
언제나와 같이 감정이 없는……. 아니, 메마른 무표정한 얼굴.
서늘함보다는 공허한 눈으로 천강을 응시하며 2번이 입을 작게 달싹였다.
"얘는 내 밑의 사람이다."
"그래서?"
"사정은 방금 들었다. 이쯤 손을 봤으면 충분하다 생각한다. 그러니 이만 끝내주길 바란다."
"어이. 이쪽은 나를 포함해 200명이 전부 죽을 뻔했거든?"
"66번도 방금 죽을 뻔했지. 결과적으로 양쪽 다 죽은 사람은 없으니 된 것 아닌가?"
천강은 진심인가 하여 녀석을 가만 바라보았다.
'이 녀석 골 때리네.'
세상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천태만상으로 생긴 것이 모두 다르듯, 저마다 사고방식도 추구하는 가치도 각각 다르다.
천강은 눈앞에 소년이 상당히 자기중심적이고 괴짜의 성격임을 직감했다.
"죽이고 살리는 건, 이번 일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나와 이 녀석이 결정할 일이다만?"
"내가 거둔 아이다. 거부한다."
"그럼 네가 대장으로서 제대로 사과하던가. 허리 숙이고 우리 모두에게 사과하면 그리 해줄게."
"혀, 형님……!"
66번이 2번을 올려다보며 걱정스레 외친다.
자기 때문에 그런 일 할 필요 없다 뭐 그런 말을 하려던 거겠지.
그래도 이번엔 2번이 한 번 고개를 숙이는 게 나았다.
그리한다면 자신의 형님 체면을 위해 앞으로는 함부로 나대지 않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건 2번 녀석에게도 득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번의 입에서 나온 대답에, 66번도 천강도 그대로 벙찐 얼굴이 되었다.
"싫다. 아니, 할 수 없다."
"뭐……?"
"난 누군가에게 사과를 할 수도, 허리를 숙일 수도 없는 몸이다. 그러니 사과니 사죄니 난 할 수 없다."
이건 뭔 개소리야? 지가 무슨 황제라도 돼?
슬슬 말상대 하기도 짜증이 난 천강이 되물었다.
"그럼 어떡하자고?"
"그냥 이쯤에서 서로 끝내는 걸로 하지."
"그렇게 못하겠다면?"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수밖에."
"쿡. 재미있네."
천강의 입 끝이 귀에 걸린다. 초승달 마냥 곡선으로 휘어진 그의 눈이 정확히 2번을 응시한다.
"그래. 한판 붙잔 의미지?"
"……."
그 말을 끝으로 두 소년이 거리를 벌리고 자세를 잡았다.
서로를 응시한 채, 찬찬히 걸음을 옮기며 뱅글뱅글 원을 그리는 두 사람.
2번을 살피는 천강의 눈 꼬리가 살짝 꿈틀한다.
'쳇. 귀찮게 됐군. 하필 암살자 계열이라니.'
펑퍼짐한 소매와 기척이 최소화된 걸음. 무미건조한 얼굴과 살기를 완전히 감추는 완벽한 기술까지.
영락없는 암살자다.
그것이 못내 거슬린 천강이 입술을 짓씹었다.
'조금은 귀찮은 싸움이 되겠어.'
흑살마신 천강. 과거 그의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바로 보법이었다.
굳이 익힐 필요가 없어 제대로 된 경공을 익히지 않은 천강에게 늘 암살자는 귀찮은 상대였다.
갑자기 쏜살같이 달려들어 기습을 하고는, 실패하면 엄청난 속도로 줄행랑을 쳐댔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들어오는 공격을 그대로 맞아주고 목을 부러뜨렸었지.'
그러나 그건 기가 온몸에 차고 넘쳤던 전생 때에나 가능한 이야기. 지금의 천강에게는 그 정도의 진기가 없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려다간 도리어 내가 위험하다.'
조금은 귀찮아도, 간만에 제대로 싸워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생각을 끝내기가 무섭게 2번이 훅 치고 들어왔다.
스스슷.
아까까지만 해도 빈손이었던 2번의 손아귀에 조그마한 날붙이가 쥐어져 있다.
쇄도해오는 직선 공격을, 발 한쪽만 이동해 몸을 90도로 움직여 피한 천강은 그 회전력을 이용, 팽이 돌듯 움직이며 2번에게 달라붙었다.
그런 뒤 그대로 옷을 확 움켜쥐려는 순간, 봄바람에 부는 미풍 마냥 유유히 빠져나가는 녀석.
'흠. 생각보다 몸이 더 유연한데……?'
자세를 바로 하고 2번을 쳐다본다.
어느새 암기를 숨겼는지, 양손 그 어디에도 날붙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대충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 지는 봤으니, 이 방법 아니면 저 방법이겠군.'
잠깐 맞붙는 사이 녀석의 보법을 유심히 지켜본 천강.
암살자들은 다리 기교만 봐도 반은 알 수 있다. 움직임으로 먹고 사는 놈들이기에.
그에 보는 순간 천강은 알 수 있었다. 녀석의 신법이 대략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를 말이다.
그건 전생에 수많은 암살자들에게 호되게 고생하며 습득한 일종의 경험치였다.
천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올라온다.
"그런 식으로 해서 66번을 구할 수 있겠어? 전력으로 들어와 봐라, 꼬맹아."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맞붙었다.
사사삭. 사사사삭.
2번의 맹공이 천강에게 쏟아진다.
환영까지 이는 그 엄청난 공세에, 싸움을 지켜보며 떠들던 주위는 삽시간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앞으로 나아가며 계속 공격을 퍼붓는 2번과 뒤로 뒷걸음질 치며 그걸 회피 혹은 방어하는 천강.
'보인다. 이럴 땐 이런 식으로, 요땐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구만?'
진짜 암살자라면 파악하는 게 이리 쉬울 리 없으나, 상대가 아직 어린 꿈나무에 불과한 만큼 천강은 단 1분 만에 녀석에 대한 거의 모든 걸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럼 슬슬 반격에 나서볼까?'
방어만 하던 행동에 반격을 섞는다.
그러자 2번의 눈이 번쩍 뜨이더니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확 벌렸다.
그에 쫓아가나, 내빼는 속도가 더 빠르다.
'하아……. 이런 쥐새끼 같은 녀석. 암살자 놈들은 이게 문제라니까.'
하나 같이 촉이 좋아, 놈들에 대해 파악을 끝내고 반격을 할라 치면 꼭 이렇게 몸을 빼 도망갈 준비를 한다.
몸이 후끈 달아올라 제대로 한 판 붙을라하면 정작 녀석들은 그 판을 접고 있는 것이다.
'특히 얜 더 눈치가 빠른 것 같네. 공격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신체 접촉을 피하다니.'
딱 한 번. 잡기만 하면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관절기를 써서 뼈를 부수건, 북명신공으로 내공을 뺏던 바로 끝을 볼 수 있으리라.
'씁. 조금 다치더라도 어떻게든 잡아봐?'
날붙이 종류나 길이로 봐선 심한 타격을 받아봐야 관통상.
고민을 하다 결정을 내린 천강이 자세를 낮추었다. 그 모습에 2번 또한 몸을 따라 낮추었다.
두 사람 사이로 흐르는 짙은 긴장감.
'한 합에 끝낸다.'
천강이 두 눈을 부릅뜨고는 2번을 향해 강하게 쏘아져 나갔다.
파앙!
***
"교관님! 교관님!"
"무슨 일인데 그리 부산을 떠는 거냐?"
암운곡 주변, 천산의 산등성이 중 한 자락.
교관을 급히 찾는 목소리에 그의 옆에서 대기 중이던 조교가 이쪽이라며 소년을 불러들였다.
두 사람을 발견은 그는 곧바로 달려와 뛰어온 그 이유를 보고했다.
"큰일 났습니다."
"큰일?"
"방금 약 200여명의 아이들이 암운곡에 도착했습니다!"
"뭐? 200명?!"
조교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교관 또한 티는 내지 않았으나 놀라긴 매한가지.
많아봐야 150명 정도로 예상했는데, 200명이 훌쩍 넘는 인원이 졸업관문을 통과했다고?
물론, 대기근의 상처가 아물고 중원이 살만해지면서 아이들의 체격은 과거와 다르게 커졌다. 그에 따라 졸업관문을 넘어서는 이들 또한 많아지는 추세이고.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200명은 너무 많은 숫자였다.
"소용아. 넌 그 아이랑 같이 오거라."
"에? 자, 잠깐만요. 교관님? 교관님!"
암운곡으로 전력으로 복귀하는 비격창마.
'대체 이번 시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안 그래도 최근 마교 내에서 암운곡 출신들의 수준이 이전 같지 못하다는 말이 도는 상황이었다.
암운곡과 쥐 굴을 없애거나 여울나무 숲 쪽과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그런 상황에서 이런 과다 합격자의 문제가 발생해버린다면,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그의 눈에 이내 한 무리의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에서 맞붙고 있는 두 소년도.
막바지에 다다랐는지 크게 밀리는 한쪽.
그때 둘의 싸움을 지켜보던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저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