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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49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8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49화

49화. 사냥개

 

 

"천강, 어디가?"

"저 잠시 먼저 자리 좀 비울게요!"

밥 먹자마자 후다닥 식당 밖으로 뛰쳐나가는 천강. 그는 곧바로 암운곡 숙소 훈련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가면 5년차 대표 방중을 만날 수 있을까 해서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곳에서 훈련 중인 한 소년. 봉을 잡고 휘두르는 모습이 제법이다.

"선배."

"음? 천강? 이곳엔 무슨 일이지?"

"선배 혹시 이번 시합 이기고 싶지 않아?"

그러자 방중이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이기고 싶지 않은 사람이 다 있을까? 근데 갑자기 그건 왜?"

"그럼 선배 나랑 훈련하자."

"훈련?"

"어. 내일 선배가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내가 만들어 줄게."

"하핫. 말은 고맙지만, 내일 내 싸움 상대가 웅이란 녀석이다. 하루 뚝딱 요령을 배워 이길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냐."

그러나 천강의 얼굴엔 자신만만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 천강이야. 묵범귀영의 기록을 깬 암운곡의 최강자 천강! 속는 셈 치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푸른 하늘.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아침.

천산의 끝자락에서 수많은 이들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무대 중앙 위에 선 마인은 마교 주민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며 양팔을 넓게 펼쳐 보였다.

"기경만회 5일째 경기에 오신 주민 여러분, 모두 환영합니다!"

우오오오오-

"어제까지 79대79로 동점을 기록한 것 모두 아실 겁니다. 예. 몇몇 분들은 밤새 기대 되서 잠도 못 주무셨다고요? 하하핫. 사실 저도 간밤에 잠을 설쳤습니다."

사회자가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말을 잇는다.

"누가 이길지 술 마시면서 이야기하다 동료랑 의견이 안 맞아 주먹다짐 좀 했거든요! 아이고. 어제 맞은 데가 아직도 아프네."

"하하하핫."

그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에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

어느 정도 열기가 좀 해소된 걸 확인한 마인은 무대 밖으로 서서히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이곳에 오기 직전에 받은 쪽지를 꺼내 펼쳐들었다.

"자, 그럼 기다리고 기다리던 경기를 이제 시작해 볼까요? 우선 첫 번째 경기는…… 음?"

말을 하다가 멈추고는 몇 번이고 다시 쳐다보는 사회자. 그는 고개를 한 번 갸웃하더니,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흥미롭네요. 첫 경기부터 아주 치열합니다. 첫 시합은 5년차들의 결투가 진행되겠습니다!"

우와아아아-

사람들의 우렁찬 함성이 울려 퍼졌다. 보통은 5년차 경기를 제일 마지막에 하는데, 희한하게도 이번 기경만회는 첫 번째에 치러졌기 때문이다.

"훈련생들 입장해 주세요!"

좌우 정반대 입구에서 들어서는 두 소년. 암운곡에서는 봉을 들고, 여울나무에서는 검을 들고 무대 중앙으로 올라선다.

두 사람이 올라서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저마다 누가 승리를 거머쥘지 예측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순수하게 암운곡 측 실력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군 그려."

"아무래도 그러겠지. 기습이 아닌 이상, 무기 중에는 봉 만한 게 또 없지 않나? 사거리 조절도 되고 형(形) 또한 변화무쌍하니."

"대신에 이도 저도 아니면 참으로 힘든 게 또 봉이지. 아직 나이가 어리니 높은 숙련도를 바랄 수는 없겠고. 정말 누가 이길지 알 수가 없구먼."

"그래서 더 흥미진진한 게지!"

추측이 난무한다. 몇몇 군데에선 내기도 이루어진다.

그러나 대체로 하는 말들은 비슷했다. 검보다는 봉을 다루는 이에게 주안점을 둔 것이다.

"인사."

관중석을 향해, 그리고 서로를 향해 포권을 취하는 두 사람.

여울나무의 대표 웅은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상대 방중을 쳐다봤다. 그는 오늘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런 기회를.'

영달이란 동기의 그늘에 가려 5년의 세월을 그늘 속에 지냈다.

분명 실력은 비슷하거늘 1년차 때의 성적이 늘 꼬리에 따라다녀, 그는 매번 2인자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마침내 그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오늘 난 한 발 앞으로 내딛는다. 세상 모두가 나 웅이란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사회자가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자세를 잡는 두 소년.

'오늘 이 자리가…….'

마인이 손을 그대로 내리긋는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시합의 시작을 알린다.

'내 화려한 인생의 시작이다!'

몸을 낮추고는 단숨에 앞으로 돌진하는 웅. 그런데 그는 그대로 깜짝 놀라 숨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전광석화와 같은 몸놀림으로 봉을 찔러오는데, 그게 하필 남자의 중요부위를 노리고 날아든 것이다.

"히익?! 무, 뭐야!"

허겁지겁 검으로 봉을 쳐낸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상대는 집요하게 거기만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받아랏! 비격창술 제 4식, 9연격!"

슈슛. 슈슈슛.

"이익! 이 미친 새끼가!"

재빨리 옆으로 회피를 하며 위협용으로 검을 휘두른다. 그러나 사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은 탓에 상대는 가볍게 피하고. 이내 다시 고간을 향해 공격해 오는 적.

"미, 미친 놈아! 거기 좀 그만 노려!"

소리를 쳐도 소용없다. 묵묵히 그곳만 노린다.

웅 입장에서는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도 그럴 게, 얼마 전 꼬맹이 한 녀석 잡는다고 쫓다가 멍이 들 정도로 거기를 세차게 얻어맞은 적이 있었다.

그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러한 경험이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보일 정도의 고통. 이틀간 제대로 걷지 못할 수준의 통증.

그 붓기가 빠진지 채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 그날의 공포가 뇌리에, 그리고 가랑이 사이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또 거기를 노린다고?

웅이의 움직임이 점점 부자연스러워진다. 그날 밤 맞는 순간 느꼈던 고통이 새록새록 떠올라, 몸의 움직임을 서서히 봉쇄해 간다.

'제, 젠장!!'

결국 공격은커녕 방어에 급급하다 유효타를 내어준 소년.

다행이 중요부위는 지켰으나 손등에 맞으면서 검이 바닥에 떨어지고. 그렇게 첫 싸움은 암운곡의 승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암운곡 방중 승!"

봉을 쥔 오른팔이 하늘 높이 쳐들린다. 방중은 고개를 쳐들고는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

그리고는 관중석 한쪽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곳에는 암운곡 최강자 천강이 자리하고 있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교환하는 두 사람.

'고맙다, 후배!'

'별 말씀을요, 선배.'

봉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방중. 그는 이날의 가르침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게 되고, 훗날 고간앙마라 불리며 강호를 뒤흔드는 고수가 된다.

고간에 재앙을 떨어뜨리는 마인이라 해서 붙은 별호였다. 그의 이름만 들어도 정파인들은 치를 떤다고.

물론, 먼 훗날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아무튼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그렇게 암운곡과 여울나무의 첫 대결은 암운곡의 승리로 결정이 나게 되었다.

 

***

 

"준비 되었느냐?"

선수 대기실. 한 중년 남자의 질문에 소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소녀는 특이하게도 허벅지 아래에 의족을 차고 있었다.

"투파창귀님. 저, 정말로 이기면 그 애를 살려 주시는 거죠?"

남자는 고개를 들어 소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그녀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글쎄. 너 하기에 달렸다고 볼 수 있겠지."

어젯밤. 여울나무 교관 전용 휴식처.

중년남자의 등장에, 여울나무의 두 책임자가 고개를 숙인다.

"투파창귀님. 오셨습니까?"

"그래. 적삼혈마. 내 자네들을 이리 부른 것은 물어볼 것이 있어 그러네."

"무엇인지요?"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기경만회, 이길 수 있겠는가?"

적삼혈마와 호접일검이 잠깐 서로를 쳐다본다. 그중 적삼혈마가 앞으로 나아와 대표로 대답했다.

"이기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길 것이고요. 이미 2, 4년차는 저희의 압승이고, 5년차 또한 저희가 이길 가능성이 7할 이상입니다."

"빙빙 돌려 이야기 하지만, 결국 운이 없으면 질 수도 있단 이야기로구먼?"

투파창귀의 날카로운 정곡에 적삼혈마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자넨 늘 그게 문제야. 너무 조심성이 많아."

"그치만 이미 독을 썼기 때문에 더 문제 일으키기엔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쯧쯧. 답답하긴. 누가 그리 티 나게 하라 했나? 내 한 수 가르쳐주지. 호접일검. 가서 1년차 대표를 데리고 와보게."

"예? 무슨 일을 하시려고……?"

밖으로 나간 교관이 1년차 대표와 함께 나타난다. 투파창귀는 그 소년을 잠깐 보더니, 손을 움직여 왼쪽 어깨에 매달린 비파를 튕겼다.

그러자 그 순간, 쏘아져 나가는 날카로운 음공.

"아……?"

털썩.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외마디 비명을 외친 소년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고, 이내 부르르 떨다 곧바로 절명했다. 죽은 아이의 몸을 공력으로 들어 올려 이리저리 살핀 투파창귀는 만족스런 얼굴로 말했다.

"산속에 갖다 버려. 티 나지 않게 말이야."

"투파창귀님! 대체 왜……!"

"자, 그럼 이제 1년차 대표를 새로 뽑아야겠지?"

"설마 일부러 그러신 겁니까?"

"암. 그럼 일부러 그런 거지. 1, 5년차의 결과를 불안하게 끌고 가느니, 이왕 하는 거 확실한 게 낫지 않겠나?"

적삼혈마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그걸 본 투파창귀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웃어라. 웃음 뒤에 네 속마음 감추는 게, 네 장기 아니냐?"

"……예."

"그리고 다 여울나무와 너를 위해 벌인 일인데…… 여기 호접일검은 몰라도 적어도 넌 웃어줘야 내가 피를 본 보람이 있지 않겠느냐?"

그제야 뻣뻣이 굳어 있던 적삼혈마의 얼굴에 미약하게나마 미소가 지어졌다.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는 투파창귀가 말을 이었다.

"1년차 대표가 갑자기 실종됐다. 아픈 것도 아니고 다친 것도 아니라면, 필히 다른 선수가 나서는 걸 허용할 터. 맞나?"

"그렇습니다. 신원만 확실하다면,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따로 준비해둔 이가 있습니까?"

"그래. 이번에 데려온 사냥개를 쓸 생각이다."

"그 계집애라면…… 뜻대로 움직이겠습니까? 고집이 보통이 아니던데."

"움직이게 만들어야지. 제까짓 게 버틴다고 아무렴 나보다 더 고집이 셀까? 흥."

투파창귀가 호접일검에게 손짓 한다. 호접일검이 눈치 빠르게 알아듣고는 시체를 들고 밖으로 빠져나간다.

"이번에 소교주를 잡을 거라 했던가?"

"그걸 어떻게……."

"그들에게 전해라. 그놈 옆에 보면 남자애 하나가 있는데, 걔를 인질로 잡으라고. 그러면 천마 애새끼도 움직이고, 내 멍멍이 또한 움직일 테니."

"청청. 그 아이를 살리고 싶으냐?"

"네에……!"

"그럼 무조건 이겨라. 그래야 그 애가 살 것이다. 근데 미리 이야기 하지만, 아무리 너라도 상대하긴 쉽지 않을 거다. 1년차라도 명색이 마두의 자녀. 기교는 물론 내력도 이미 절정이다. 설렁설렁 했다간 오히려 질 것이다."

청청 또한 알고 있었다. 상대는 연화. 그냥 싸워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여울나무 최강자인 무휘가 나선다 해도 쉽게 승리를 점칠 수 없으리라.

투파창귀가 팔을 들었다. 그러자 각종 악기가 소녀의 눈앞에 쭉 늘어섰다.

"어느 것으로 할 테냐?"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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