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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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48화
48화. 치열한 접전
"우오오오오!"
암운곡 숙소 내로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입가에 기쁨을 가득 머금은 5년차 대표가 동기들에게 큰 소리로 묻는다.
"애들아, 우리가 총 몇 승했지?"
"67승!"
"적은?!"
"13!"
"크으! 어제 오늘 뛴 애들 모두 잘했어!"
시합 시작 전만 해도 대부분이 질 걸로 생각했다. 이미 작년 4년차 때, 대략 상대의 실력 파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데 이런 결과라니!
연일 이틀 지속된 승전보에 5년차들이 신나 방방 뛴다. 그 밑의 후배들도 모두 기쁜 마음으로 축하한다. 암운곡은 축제 분위기로 완연했다.
그 시각 여울나무 교관 전용 휴식처.
"이유가 뭐랍니까?"
적삼혈마의 질문에, 5년차를 종합 담당하는 호접일검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것이…… 다들 몸 상태가 안 좋다고만 합니다."
"확실히 몸 상태가 안 좋은 것 같긴 하더군요. 평소와 달리, 제대로 신법과 보법을 펼치지도 못하고. 휘두르는 공격에도 힘이 온전히 실리지 못하고요. 흠……. 추풍환검?"
"예."
"알아보라 한 건 어떻게 되었습니까?"
남자가 고개를 젓는다.
"역시나 독 같은 건 없었습니다. 암운곡이 그런 수를 쓰는 곳은 아니니까요."
"그렇겠지요. 꾸준히 입지가 밀려나고 있음에도 고지식한 점은 절대 버리지 못하는, 거긴 그런 곳이니까요."
생각에 잠긴 실눈의 사내.
그가 한참을 턱을 쓸다가 나직이 물었다.
"혹시 티 나지 않게 은밀히 작업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씀은…… 암운곡 애들 음식에 독을 타라는 말씀이십니까……?"
호접일검과 추풍환검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나 그 시선의 끝에 자리한 실눈의 사내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독이라뇨. 그저 상한 음식을 먹어 탈이 나는 정도면 됩니다."
"적삼혈마님.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우리는 그런 수를 쓰는 곳이니까요."
"예?"
"암운곡은 몰라도, 우리는 이기기 위해서라면 사파마냥 온갖 더러운 수를 쓰는 그런 곳이니까요."
"……."
잠깐 멈추었던 적삼혈마의 말이 나직이 이어진다.
"아직 두 분은 모르시겠지만, 흑살마신의 거처 일로 문제가 생겼습니다. 꼬리를 밟혔고, 그로 인해 내년 저희 재정이 3할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경만회까지 패배하면, 총 4할이 줄어드는 셈입니다."
"그런 일이……."
"이대로라면 재정 상황이 녹록치 않습니다. 여기서 밀리면, 마교를 집어 삼켜도 그들과 동등한 지위를 갖기 어렵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두 사내의 고개가 숙여졌다. 이번 기경만회에서 꼭 이겨야만 하는 이유를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추풍환검이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는 말했다.
"어떻게든 그 건은 제가 해결해 보겠습니다."
"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호접일검. 그들은 언제 들어오기로 했습니까?"
"모레 혹은 글피 밤입니다. 마을 어귀에서 일을 보고 갈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군요. 그 시간 근무를 서는 그림자들은 제가 조정해 보지요. 그 외에 보고할 게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이만 해산하십시오."
휴식처 밖으로 물러나는 두 사람. 그때 적삼혈마의 그림자가 한 차례 일렁였다.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뭐지?"
"이번 기경만회에서 소교주를 잡기 위해 움직일 거라 합니다."
"……알았다.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고 전해라."
"명."
기경만회 3일째 날이 밝았다.
아침 해가 뜨자마자 경기장은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얼마 안 있어 응원하는 이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그런데 어제와는 경기장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여울나무. 여울나무!"
"오오오. 여울나무 숲 잘한다!"
갑자기 밀리던 여울나무 측이 크게 승리를 거머쥐고 있었던 것. 그로 인해, 이번에는 마교 주민들의 입에서 여울나무를 칭송하는 소리가 떠들썩하게 울려 퍼지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암운곡 교관들의 인상은 하나 같이 좋지 못했다.
특히 이번 기경만회 5년차 담당을 맡은 비격창마의 경우엔 화를 참지 못해 주먹으로 바닥을 쉴 새 없이 후려치고 있었다.
"이것들이…… 치사하게 애들 먹을 것에 독을 쓰다니요!"
"진정하게. 저들이 저런 이들이란 것을 깜빡한 우리 잘못이지. 끌끌."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흑학대신? 의원 말에 따르면, 아이들 상태로 볼 때 내일까지는 온전히 힘을 내지 못할 거랍니다. 교주께 말씀드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증거가 없어서 안 되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교주께선 이미 알고 계실 터."
흑학대신이 수염을 쓸며 나직이 말한다.
"우리가 한 방 먹었군."
"어이, 암운곡 새끼들. 어제까지는 잘만 하더니, 오늘은 왜 그렇게 힘들 못 쓰시나?"
"뭐야? 이것들이 어디서 독을 풀어 이겨놓고는 잘난 척을 해!"
"뭐? 증거 있어? 졌으면 실력이 없는 지 탓을 할 것이지, 독? 하……. 웃기지도 않아서."
"뭐라고?! 이런 썅!"
두 집단의 아이들이 무기를 꺼내든다. 경기장 앞은 순식간에 험악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진정들 해라, 훈련생들."
"각자 숙소로 돌아가도록."
마인들이 제지에 하나둘 무기를 거두는 아이들. 그러나 두 집단 사이로 흐르는 분위기는 굉장히 싸했다. 마치 터지기 직전의 폭탄처럼.
"가자."
"숙소로 돌아가자."
다음날도 전체적으로 여울나무가 우세한 상황이 이어졌다. 어느덧 나흘간의 점수 격차는 크게 좁아졌고, 시합이 끝날 즈음에는 흥미롭게도 동점에 다다르게 되었다.
암운곡 79승, 여울나무 숲 79승.
이제 남은 경기라곤, 각 기수별 대표가 한 명씩이 나와 맞붙는 자리뿐.
이들의 1승1승은 대략 10승의 가치가 있었고, 특히 5년차의 경기 같은 경우엔 수석의 명예를 안을 수 있는 만큼 아주 중요한 경기들만 남았다고 볼 수 있었다.
'암운곡을 꺾고 반드시 추가 예산을 따내야 한다.'
'여울나무를 이겨, 암운곡이 살아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나흘째 밤. 양 진형 책임자들의 투지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여기야, 여기!"
연화가 폴짝폴짝 뛰며 소리친다. 그 옆에선 천강과 초아가 손을 흔든다. 무진의 옆에 선 청청은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다가가 합류했다.
"청청, 우리 뭐 먹으러 갈까?"
"전 아무거나 좋아요."
"그럼 고기 먹으러 가자, 고기!"
"넌 진짜 허구한 날 고기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천강. 옆에서 공감하고 나서며 초아가 톡 쏘아붙인다.
"야, 꼬맹이. 너 그러다 돼지처럼 뒤룩뒤룩 살찐다?"
"아, 뭐래. 아줌마가."
"뭣? 아줌마? 너 내가 그리 말하지 말랬지? 이 땅딸보 먹보 꼬맹이가!"
"뭐라곳?!"
"누님. 참으세요. 연화 너도 그만 해."
허구한 날 티격태격 하는 연화와 초아. 그런 둘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천강. 그리고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어떻게든 말리는 무진까지.
청청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주변에 이런 환경이 조성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행복해. 이 시간이 쭉 계속 지속됐으면 좋겠어.'
그러나 시선을 내리자 현실이 그녀를 일깨웠다.
그녀의 복식은 갈색. 저들은 흑색.
그녀는 여울나무 숲. 저들은 암운곡.
- 암운곡은 우리와 적이다. 늘 그것을 명심해야 한다.
문득 교관이 한 말이 머릿속을 울린다. 왜 저들이 적이지? 같은 마교 동료 아닌가?
"뭐해, 청청? 이리와."
"으응."
식당에 들어가 앉는 천강 일행.
주문을 마친 초아가 주변을 슥 둘러보며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이야. 점수가 동점이라 그런가? 분위기가 장난 아닌데?"
"확실히 어제하고는 또 다르네요."
어제까진 서로 욕을 해대는 게 술 취한 비렁뱅이 같은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전쟁이 일어나기 딱 하루 전날 밤을 맞이하는 사람들 같았다.
말없이 식사를 하는 모습들에서, 마치 칼날 위를 걷는 것만큼이나 서늘한 기운이 풍긴다고 할까?
얼마 전 식중독 사건이 있었던 탓에 양 진형 모두 숙소 밖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으나, 음식이나 제대로 소화를 하련지 모르겠다.
"그런데 누님. 저 궁금한 게 있어요."
"응. 뭐든 물어보렴. 우리 천강의 질문이라면 난 그 어떤 거라도 대답해줄 의향이 있으니까."
초아의 눈짓에, 천강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나직이 물었다.
"그런데 기경만회에서 승리하면 뭐가 좋은 가요?"
"아, 그거? 뭐 일단 명성을 날리게 되고, 1년간 수고 많았다며 교주가 해당 진형에 상금을 주지?"
"애걔……. 그게 끝이에요?"
"응."
"근데 왜 이렇게 못 이겨서 안달이래요?"
어찌나 치열하게 싸우고 이기려 하는지, 난 또 천산의 보고라도 들어가게 해주는 줄 알았네.
그 표정을 읽은 초아가 픽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그 상금이 어마어마해. 1년간 재정적으로 도움이 될 정도로."
"그래봤자 위 대가리들 배만 채우는 거 아녜요?"
"꼭 그렇진 않지? 내가 듣기론, 이번에 우승하면 암운곡에선 한 사람당 침대 하나씩은 놓아준다고 하더라고."
"예?"
방금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침대라고?
'이건 이야기가 좀 많이 다른데?'
솔직히 화경 고수씩이나 돼 가지고 땅바닥이나 침대나 잠자는 게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고수도 사람이다.
침대가 따뜻하고 편한 건 똑같다. 그저 땅바닥에서 자도 남들보다 덜 피로한 것 뿐.
"그리고 그 외에 고기도 조금 더 자주 등장한다든지."
"고기?!"
이번엔 연화의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기 시작했다. 초아는 고개를 주억이며 약간의 설명을 더 이어나갔다.
"아무튼 그래. 그 외에 부수적인 효과로는…… 1년간 마을에서 그 우승 진영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막 졸업해 강호로 나서는 5년차들에겐 좋은 이점이 된다는 거지. 중원으로 가려면 보통은 이 마을을 들르니까."
그러나 연화와 천강의 귀엔 더 이상의 이야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연화는 오로지 고기, 천강은 침대를 생각할 뿐이다.
'하아. 어떻게 하면 이기게 할 수 있을까.'
천강의 머릿속이 팽그르르 돌아간다.
이기면 5년 동안 침대 위에서 잘 수 있다는 건데.
"누님. 누님이 보시기엔 각 기수별로 승패가 어떻게 나뉠 것 같나요?"
"음……. 글쎄. 일단 2, 4년차는 여울나무가 압도적이고, 우리는 3년차가 강한 편이지?"
"나머지는요?"
"여울나무 1년차에 대한 정보는 아직 없어서 모르겠는데…… 먹보 실력이면 승리는 거의 확실할 테고. 아무래도 5년차가 문제야."
초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잇는다.
"원래라면 우리가 졌을 건데, 영달이란 애가 어디서 코뼈가 부러져 돌아오는 바람에 출전을 못하게 됐거든. 그래서 한 단계 낮은 웅이란 애가 참전하기로 했고, 걔 실력이 우리 쪽 애랑 비슷비슷해."
……아무래도 연화의 과일꼬치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아무튼 이로써 확실한 승패를 알 수 있는 건 세 판.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여울나무가 2승, 암운곡이 1승.
'그렇다면 1, 5년차에서 승리를 거머쥐어야 한단 이야기인데…….'
1년차는 몰라도, 5년차는 다 방법이 있지.
천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