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44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44화
44화. 형을 닮아가는 아우
무진과 소녀,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는 무리.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진다. 긴장감이 빠르게 고조된다.
"근데 진짜 안 나서도 돼?"
무진이가 걱정이 되는지 초아가 천강의 옆구리를 콕콕 찌른다. 그러나 천강은 그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괜찮아요. 어디 가서 맞고 돌아올 진 몰라도 절대 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치만 지금 무진이는……."
무슨 의미인지 안다. 점혈을 당해 제대로 힘을 못 쓰는 상태니까, 그걸 풀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거겠지.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 말은 안했지만, 무진이는 언제든지 스스로 점혈을 풀 수 있었다. 그냥 있는 힘껏 힘을 주면 점혈이 맥없이 풀려버렸다.
그걸 아는 천강은 이리 여유로운 것이었고.
'물론, 그게 다는 아니지만…….'
무진이 눈에 힘을 주고는 주변을 슥 훑는다. 갈색 무복을 입은 아이들이 몸을 풀고 있다. 그걸 본 소녀가 뒤에서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저, 저기…… 도와준 건 고맙지만, 지금이라도 그냥 돌아가는 게……."
"아니. 걱정 안 해도 돼.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우리 형님만큼은 아니어도 나도 꽤 강하거든."
천강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오른다. 때론 저런 자신감 넘치는 행동이 상대에게 의문을 품게 만드는 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말은 들은 무리는 몸을 움찔 떨었다. 그리고는 서로를 쳐다보며 눈빛을 교환.
'야, 좀 이상하지 않냐?'
'그러게.'
'나이가 이제 열 살 밖에 안 돼 보이는데…….'
'이제 1, 2년차 아냐?'
'그럼 대표 자격으로 경기에 참여하러 온 거란 소리잖아. 그런 경우 보통은 마인들의 자녀라고. 최악의 경우 마두 자녀를 건드는 꼴이야. 이 시기엔 절대 피해야 해.'
'젠장.'
그러나 보는 눈이 많고, 자존심도 있어 쉽사리 물러나지 못하는 무리.
그때 천강이 나섰다.
"어이. 여울나무 친구들."
"누가 누구랑 친구야?"
"너무 그렇게 성질내지 말고. 보아하니 단체로 여기 한 명을 밟는 게 영 구색이 안 살아서 망설이는 모양인데. 맞나?"
무리가 서로를 쳐다본다. 천강은 한마디 더 얹었다.
"보는 눈도 많은데 이대로 그냥 가자니 체면도 안 살고. 그렇지?"
그제야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천강이 검지를 치켜들었다.
"그래서 내가 제안을 하나 하려는데 말이야. 어때? 쌈박하게 일대일로 싸우는 거지. 대신 진 쪽은 패배를 인정하고 순순히 물러나기. 이후엔 이 일로 보복하는 일 절대 없게 하기. 그에 대한 증인은 여기 모인 모두가 하는 것으로. 어때?"
웅성웅성.
이곳저곳에서 소란이 인다. 여울나무 패거리는 서로 토론을 하느라, 그리고 주변 구경꾼들은 어느 쪽이 이길지에 대해서.
그리고 대다수는 일단은 여울나무 쪽이 이길 거라 추측하고 있었다. 물론,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지만.
"2대2로 싸웠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그러게. 일대일이라니. 결과가 너무 뻔하잖아? 저 남자앤 내공도 별거 없고만."
"이제 1년차인 것 같은데?"
그랬다. 남들이 보기엔 무진의 내공은 그저 삼류 정도 수준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상태였다. 그러니 응당 여울나무 패거리의 승리를 점치는 것이었고.
그리고 그걸 똑같이 느꼈을 상대들이 그 제안을 절대 거부할 리 없었다.
"야, 하자."
"그래. 구경꾼이 한 가득이야. 이 정도면 제 아무리 마두라도 마교 주민들 눈치 보느라 보복 못해."
"그럼 누가 나갈까?"
"야야, 내가 할게."
한 소년이 앞으로 나온다. 그는 아까 소녀를 발로 차 넘어뜨린 장본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강우. 이번 여울나무 숲 졸업자 중 한명이었다. 그는 건들건들 걸어 나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무진에게 말했다.
"어이, 쥐새끼. 지금이라도 도망가려면 가라. 괜히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두들겨 맞고 질질 짜지 말고. 평생 웃음거리 되고 싶은 건 아닐 거 아냐?"
그러나 무진의 대답은 간단했으니…….
"쫄았냐? 뭔 계집처럼 말이 많아? 마교인답게 그냥 시원하게 주먹으로 붙자고."
평소 무진 같지 않은 대답. 그러나 그 효과는 매우 탁월했다. 인파가 열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오오!"
"이야. 아직 어린놈이 참 멋지다……!"
"암! 그래야 신교답지!"
천강에게 배운 대로 한다더니, 그 건방지고 자신만만한 어투와 행동까지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무진이었다.
'스승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구만.'
아무튼 천강의 의도대로 판은 깔렸다. 이제 무진이 잘만 싸우면 되는 상황. 사람들로 이루어진 원형 경기장에 두 소년이 자세를 잡고는 서로를 견제한다.
허리에 손을 얹은 채 턱을 치켜들고는, 무진을 바라보며 강우가 소리쳤다.
"어이, 땅꼬마. 그래도 나이 차가 있는데 몇 수 양보해 줄까?"
"그런 거 없어도 돼. 덤벼."
"누가 널 위해서 주겠데? 주위를 봐라. 구경꾼 분들이 많이 모였는데, 너무 싱겁게 끝나면 예의가 아니지 않겠어?"
마치 다 이긴 싸움 마냥 으스대는 소년.
그런데 그의 입장에선 그럴 만했다. 자신은 일류, 겁 없이 덤비는 눈앞의 꼬맹이는 삼류밖에 안 되어 보였으니까.
'졸업예정자인 내가 1년차에게 진다? 하……! 마두 자식이 와도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지!'
설령 강호의 이름난 고수의 제자가 와도, 그게 고작 열 살이라면 그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나이의 벽이란 그런 것이다. 특히 이런 어린 나이일수록 더.
그에 소년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4년 차이가 나니, 4수 양보해주지! 어디 한 번 마음껏 들어와 봐라! 하하핫!"
"좋아. 그 제안 받아들이마. 대신 말 번복하지 마라."
"걱정마라. 사내가 돼서 쪼잔하게 그런 일을 할 쏘냐!"
그 배포 있는 행동에, 이번엔 사람들이 강우를 치켜세우며 잘한다 소리쳤다. 열기는 순식간에 후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 속에서 유일하게 천강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천강. 왜 그래? 역시 이대로 싸우기엔……."
"아뇨. 그게 아니고요. 그냥 상대가 불쌍해서요."
"응?"
"보면 알아요."
그리고 그 순간,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에 산들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어어?"
"야, 저거 뭐야?"
초아의 고개가 돌아간다. 경기장 한 가운데로, 한 소년이 허리를 살짝 숙인 채 오른팔을 뒤로 젖히고 있다.
그 팔 주위로는 기이하게 기의 폭풍이 응집되고 있었다. 그걸 보고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상대.
무진이 입가에 진한 미소를 띠우며 말한다.
"4수 양보해 준다고 했지? 일단 한 방 간다."
"자, 잠깐……. 이건 뭔가 예상과는 많이 다른……."
"단 일격에 천지가 무너지고 요동을 치니."
무진이 주먹을 꽉 말아 쥔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앞으로 쭉 내뻗는다.
"그 포효가 천리에 달하리라!"
지천뇌공. 권(券).
파아앙!
엄청난 파공음이 일었다. 축제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는 온데간데없고 고요한 침묵만이 나지막이 내려앉는다.
뿌연 흙먼지가 휘날리는 곳. 누군가 기를 사용해 그것들을 가라앉히고, 사람들은 싸움의 결과…… 아니, 일격의 위력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주먹을 내지른 채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무진과 경기장 바깥까지 밀려난 그 상대 강우를.
두 팔을 교차해 방어 자세를 취한 여울나무 쪽 소년의 팔이 미친 듯이 부들부들 거린다. 모두의 예상을 깬 그 반전에, 사람들은 마치 도박판에 들어선 것 마냥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오오오! 그래. 이거지!"
"방금 봤어? 겨우 주먹질 한 번에 저런 위력이라니!"
"기운을 숨기고 있었구만! 어린 녀석이 대단해!"
무진이 손을 한 차례 턴다. 그리고는 바로 전투 자세를 취하는 걸 보며, 강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무,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이건 마치…… 무휘 새끼를 상대하는 것 같잖아?'
무휘는 여울나무 숲 최강자이다. 올해 4년차로, 절정 수준에 도달한 실력자 중 실력자였다. 그런데 눈앞에 아이의 주먹은 그 정도 수준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괴, 괴물……."
기세가 꺾인 소년이 뒤로 한 발짝 물러난다. 그리고 그걸 못 느낄 무진이 아니었다.
'속전속결! 입을 열기 전에 처리한다. 형님처럼!'
애초부터 항복을 받아들일 의사가 없었던 무진은 빠르게 녀석에게 달라붙었다. 깜짝 놀라 위협용으로 팔을 휘두르는 녀석.
그러나 다른 건 몰라도 쥐굴에서부터 매일 같이 천강이랑 격투와 몸싸움을 벌여온 무진이다. 그걸 피해 안쪽으로 파고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 또한 졸업 예정자인 만큼 구르고 구른 인물. 강우가 몸을 확 낮추며 무진을 붙잡았다.
'이 건방진 놈이……! 차라리 잘 되었구나!'
다른 건 몰라도 동기들보다 체격이 좋은 탓에 몸싸움만큼은 자신 있는 그였다. 강우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무진을 번쩍 들어올렸다.
'멍청한 녀석! 거리를 벌리면서 타격을 주는 방법으로 갔어야지. 이 안쪽까지 바짝 파고들어? 넌 끝났어!'
몸싸움에서는 체급이 깡패인 법이다. 무진의 발이 땅바닥에서 들려 멀어졌다. 그러나…….
퍽.
"컥……."
"오. 옆구리가 꽤 튼튼하네? 그럼 한 번 더 간다!"
퍽.
"크헉……."
무진을 들어 올렸던 소년의 몸이 그대로 무너진다. 그걸 본 사람들은 너도나도 경악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주먹이 얼마나 강하면 땅에 발을 딛지도 않았는데 저런 위력이 나오는 것이여?"
"정말 엄청난 인재로구만!"
초아 또한 의문인 건 마찬가지.
"아니, 저게 가능해?!"
그러나 천강은 이리 될 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무진이 익힌 지천뇌공이란 그런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무진아. 점혈할 시간이다."
"예, 형님. 잠깐만요."
"응? 아까부터 뭘 하는데 손과 팔에 기운이 뭉쳐있어?"
"아아……. 기가 방출되는 통로를 넓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순간적으로 다량의 기운을 방출할 수 있다고 스승님께서 그러셨거든요."
'그래서 가능한 거지. 간단한 손짓에도, 어마어마한 위력이 나올 수 있었던 건 말이야.'
회상에서 빠져나온 천강이 고개를 든다. 이미 싸움의 승패는 나뉜 지 오래였다. 그저 어디선가 자주 보던 광경이 펼쳐져 있을 뿐.
퍽.
"야, 잠깐! 나 뼈, 뼈 맞았어……!"
퍽퍽.
"야이 씨! 치사하게 같은 데만……."
퍽퍽퍽.
"거긴 절대 안 돼! 남자의 생명……!!"
누구네 동생 아니랄까봐, 고놈 참 맛깔나게 잘 때리는구나. 천강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올라왔다.
"자, 잠깐. 잠깐만 내 말 좀 들어봐……!"
"아냐. 일단 조금만 더 맞자."
"아니 멈추라고! 항복 할 테니까! 악. 아악! 진짜 미치겠네!"
"응? 뭐라고?"
"항복. 항복!!"
주먹이 멈춘다. 그러나 머리 위로 들린 손은 내려가지 않고 그대로 있다. 마른침을 삼키며 그걸 지켜보던 강우가 조심스레 물었다.
"호, 혹시 뭔가 원하는 거라도 있는 거냐?"
무진이 씨익 천강과 같은…… 아니, 악당과 같은 미소를 짓는다.
"여어. 눈치가 빨라? 뭐 좋아. 우리 형님 같았으면 앞으로 일각은 더 팼을 테지만, 시간 관계상 넘어가도록 하지."
"고, 고맙다……."
"자, 내가 원하는 건 이거야. 앞으로 저 애 괴롭히지 마.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무슨 의민지 알겠어?"
"저 애라면…… 혹시 독각귀……."
"독각귀?"
"아, 아뇨. 청청 말씀하시는구나. 알겠습니다. 절대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뒤에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만약 괴롭힌단 소식이 내 귀에 들려오면, 나 졸업한 이후에 각오들 해야 할 거야."
매서운 시선에 여울나무 놈들이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무진의 첫 주먹이 선보여진 순간부터, 그들의 기세는 이미 완전히 꺾인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가라."
"예, 예. 그럼 저희는 이만……."
우르르 사라지는 여울나무 패거리. 그렇게 싸움은 무진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축하하듯 사방에서 갈채가 터져 나왔다.
짝짝짝짝짝.
"키야! 아주 잘했어! 멋져!"
"어린데 제법이야!"
"4년 후의 암운곡이 참으로 기대되는구만! 여울나무 숲이 많이 분발해야겠어!"
"당장 4년 후까지 갈 필요가 있는가? 당장 이번 기경만회도 암운곡이 이기겠구먼!"
마교 주민들은 좋은 구경을 시켜주어 고맙다면서, 하나 같이 교주와 암운곡을 칭송했다. 그리고 그 소식은 기경만회를 맞이하여 한창 날을 세우고 있는 두 집단의 귀에 빠르게 흘러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