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39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39화
39화. 아우 무진의 몸이 이상하다
"아직까지 안 돌아왔나?"
짙은 어둠이 자리한 어느 공간.
누군가의 질문에, 다른 이가 한 박자 늦게 대답한다.
"……그래. 아무래도 이 정도면 실패했다고 봐도 좋겠군."
"무림인을 상대할 최종병기니 사신이니 하더니…… 별거 없었구만?"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어둠 속에 나직이 울려 퍼진다. 그는 낮게 웃으며 상대를 향해 약 올리듯 질문했다.
"이거…… 우리가 백귀를 꼬드겨서 데려왔어야 했나?"
"흥. 웃기는 소리. 내가 만든 그것은 완벽했다. 아마 실패를 했다면 단 하나."
"뭐?"
"독이다. 시간이 부족해 유일하게 대비 안 한 게 독이었다. 미완성이라 부른 것도 그런 탓이었지. 아마 당했다면 독에 당했을 것이다."
"흐음. 독이라……. 뭐 변명으로는 그럴싸하군. 실패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다시 보내겠다. 이번에는 완벽하게……."
"아니 됐어."
말을 자른 이의 목소리가 조금씩 멀어진다.
"이번에는 다른 이가 움직이기로 했다. 넌 그것을 완벽하게 만드는 데에만 집중하도록. 이전처럼 불량품을 만들지 말고 말이야. 알겠지?"
그것을 끝으로 어둠 속으로는 그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어때?"
천강의 질문에 연화가 폴짝폴짝 뛰며 소리쳤다.
"좋아!"
"그럼 누님은요?"
박쥐마냥 천정에 거꾸로 매달린 초아가 윙크하며 말한다.
"천강, 누님이 너 사랑하는 거 알지?"
"아, 예에……."
그러고는 양손을 내밀어 볼을 잡으려는 걸, 천강은 이리저리 피하며 무진을 쳐다보았다.
무진이 준비되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님. 그럼 이제 무진이 차례입니다."
"알았어."
"무진아, 잘해!"
심호흡을 하는 아이.
"후우. 형님.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괜히 귀한 영약을 날리는 건 아닌지……."
"걱정 마라. 이전에 먹은 것과 똑같이 하면 된다."
"그래도……."
"이걸 먹고 나면 몸뚱어리는 초절정이 되도 네 깨달음은 아직 삼류에 불과해. 무공 숙련도는 더 미숙하고. 앞으로 갈 길이 머니, 걱정하는 데에 힘 빼지 말거라."
"넵. 알겠습니다, 형님."
세 사람 사이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무진이가 만년하수오를 삼킨다. 그리고는 흡수를 위해 내기를 운용한다.
그런 그때였다.
"응?"
갑자기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무진의 몸에서 엄청난 열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어? 천강, 이거 괜찮은 거야? 몸에서 막 열꽃이 피는데?"
당황한 연화가 천강과 초아를 번갈아 쳐다본다. 천강은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주의를 주고는 무진에게 말했다.
"내기 운용에 집중해라, 무진아."
그러나 말은 그리 해도, 천강 또한 난생 처음 보는 기이한 현상에 당혹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부작용인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그러기엔 너무나도 평온한 무진의 얼굴.
그렇다고 가만 놔두기에도 뭐한 게…… 몸이 마치 뜨겁게 달군 용광로처럼 불그스름해졌고, 주변에 노닐던 대자연의 기운은 그 뜨거운 몸 안으로 흡입되듯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환골탈태를 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인데……?'
그러나 문제는 환골탈태가 아니라는 것. 피부에 새살이 돋고 그래야하건만, 그러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때 상태 점검을 위해 무진의 몸에 손을 댄 초아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천강! 이거 위험해! 기운이 흘러넘쳐서 임독양맥을 강제로 뚫으려 하고 있어!"
"젠장."
천강은 바로 무진의 몸에 손을 대 기운을 힘껏 빨아들였다. 그러자 무진의 몸 안에 가득 차있던 진기가 천강에게로 흘러들어오고, 붉게 물든 피부도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괜찮니, 무진아?"
"예, 형님. 살짝 덥다는 느낌이 있을 뿐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자꾸만 몸에 기가 흘러 들어옵니다."
"뭐?"
천강은 깜짝 놀라 무진의 몸에 손을 다시 갖다 대보았다. 아까 분명 단전에 있는 기운을 다 빨아들인 걸 확인했는데… 하아? 새롭게 내기가 들어차 있었다.
'이 무슨 해괴한?'
심지어 그것으로 만족하기 않고 순식간에 차오르면서, 다시금 정수리를 향해 쏘아져 올라가고자 했다.
그에 재빨리 다시 흡입을 하나…… 하고 또 해도 끝없이 차오른다.
"젠장."
"천강! 무진이 괜찮은 거야?!"
그를 쳐다보는 세 명의 시선.
뭐라 답을 해줄 수 없다. 천강 또한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다고 가만있을 수도 없었다.
'분명 뭔가 방법이…….'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누님. 신선환 지금 있으십니까?"
"어, 어? 여기."
초아가 천강의 의도를 깨닫고는 바로 내어준다. 천강은 그것을 잠시 노려다보다 무진에게 먹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님이 가르쳐 주세요."
"똑같아. 그냥 평소대로 내기 운용을 하면 돼. 그러면 자기가 알아서 노폐물을 녹일 거야."
무진이 내기 운용을 시도한다. 신선환의 기운은 빠르게 임독양맥의 길을 정돈해 나갔다. 천강은 불안한 듯 주먹을 쥐었다 피길 반복했다.
빨리. 빨리 뚫려야 하는데…….
"누님, 아직 멀었나요?"
"아직이야."
무진의 단전에 진기가 거의 다 차오른 게 보인다. 단전이 가득 차고 나면, 아마 저 기운들은 다시 정수리를 향해 쏘아져 나갈 것이다.
그러나 현재 임독양맥은 신선환의 기운이 길을 정돈 중인 상황.
채 길이 뚫리기 전에 저 기운이 솟구친다면, 주화입마는 피할 수 없으리라.
그렇다고 당장 신선환이 하나밖에 없는 상태에서 무진의 기운을 빨아들일 수도, 그렇다고 가만 놔둘 수도 없는 그런 곤란한 처지에 천강이 입술을 짓씹었다.
'제발 빨리……!'
그러나 길이 다 정비되기 전, 단전이 먼저 차올랐다. 초아가 급박한 얼굴로 외쳤다.
"늦었어! 당장 빨아들여야 해!!"
"제길."
손을 뻗는다. 무진의 기운이 천강에게로 쏟아져 들어온다. 그런데 그 순간 천강은 느낄 수 있었다. 막 임독양맥이 열리고 있는 무진의 상태를.
단전으로 빨려들어 간 대자연의 기운이 무진의 정수리를 타고 위로 솟구친다.
후두둑.
무진의 코에서 붉은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그렇지만 다행이도 위험한 상황은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천강과 그 일행들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
"흠……. 굉장히 흥미롭군."
무진의 상태를 본 흑철마괴의 얼굴에 놀랍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늘 무감정을 일관하던 그의 평소 모습과는 사뭇 다른 게, 그가 지금 얼마나 놀라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대자연의 기를 바로 본인의 진기로 만들 수 있다는 것부터가 놀라운데, 그게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급격한 흐름이라……. 정말 어떤 면에선 탐이 나는 몸뚱어리로군."
그랬다. 이는 마치 생사경에 도달한 몸뚱어리와 마찬가지 아닌가?
현재 무진의 몸은 정수리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자연의 기를 흡수하고, 이후엔 정수리를 통해 방출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빠져나가는 속도보다 들어차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
"흐름을 막는 게 아예 불가능하나?"
"예, 교관님. 어떻게든 하려해도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들어온답니다."
"그나마 기운을 사용해 방출하는 건 되니 천만다행인데……. 문제는 잠잘 때로군."
현재 무진의 단전 크기와 상황으로는 길어야 일각이었다. 단전을 완전히 비우고도 일각이면 흘러넘치는 것이다.
"가만 놔두면 어떻게 되지?"
"한 번 지켜보았는데, 마치 폭발할 것처럼 안에서 부풀어 오르더군요."
"흠. 일단 혼자서 해결할 수는 있고?"
"아뇨. 아직 검기도 못 만드는 아이입니다. 내기를 사용하는 것보다 흡입되는 양이 더 많습니다."
"곤란한 상황이로군."
흑철마괴의 미간이 작게 좁혀졌다. 천강은 그런 그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그런데. 혹시 천산의 보고에 한 번 더 갈 수 있을까요?"
"그건 왜지?"
"그곳에서 사학 어르신께 도움을 요청해볼까 합니다."
"사학 어르신이라……. 분명 그분이라면 이에 대한 해결책이 있겠지. 그러나 안 된다."
얼굴에 흉터가 그득한 남자가 아무런 감정이 없는 얼굴로 이야기했다.
"천산에 보고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다는 건, 그분과의 만남의 기회 또한 가질 수 있단 걸 의미한다. 단순히 물건 하나 뚝딱 들고 나오는 게 전체 보상이 아니란 의미다."
그런 건가. 확실히 그런 분이라면 한 번 만남을 갖는 데에도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당장 천강부터가 큰 문제없이 환골탈태와 만독불침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습득하지 않았던가?
"그럼 다시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교에서 큰 공적을 세우거나 혹은."
"혹은?"
"천산의 보고에 들어갈 만한 가치 있는 물건을 들고 오면 되겠지."
천산의 보고에 들어갈 만한 가치 있는 물건…….
"있다면요?"
"……정말인가?"
흑철마괴가 천강의 눈을 가만히 살핀다. 천강은 그 시선을 잠시 마주하다가 품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흑요석의 빛깔이 나는 작은 병이었다.
"그게 무엇이지?"
"일각산독입니다. 55년 전 사천당문의 가주가 직접 만든 희대의 독으로, 이것에 스치면 제 아무리 화경이라도 단 일각에 중독. 죽음을 피할 수 없죠."
"하……! 하하하핫!"
그 말을 들은 흑철마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초아가 그 옆에서 놀랍다는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와아. 교관님이 이렇게 웃는 건 처음 보네."
그는 한참을 그리 웃은 뒤에야 천강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매번 날 놀라게 하는군, 99번. 아니…… 천강."
"이번 말고는 딱히 놀랄 만한 게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그런가? 쥐 굴에서 제일 먼저 죽을 거라 예상했는데 살아남고, 체급 차가 엄청난 66번을 두들겨 패고. 졸업관문 때에는 비밀통로를 이용, 이후엔 마두의 자제와 싸워 이겼다. 심지어 묵범귀영의 기록도 깼고."
내가 그동안 그렇게 많은 일들을 벌였었나?
직접 듣고 나니, 새삼 요란하게 일을 벌이고 다녔구나라는 걸 깨달은 천강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화경에 도달한데다가 일각산독을 들고 있으니, 아무리 나라도 아니 놀랄까?"
"자, 잠깐만요, 흑철마괴님! 화경이라뇨?"
초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천강은 굴 밖을 살짝 살핀 뒤 작게 이야기했다.
"비밀로 해주십시오, 교관님."
"원한다면 그리 해주지."
아무래도 내기를 숨기는 데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아무튼 이거면 가능할까요?"
"확신은 없지만, 스치기만 해도 화경의 고수를 죽일 정도의 독이라면…… 가능하겠지. 다만 시간이 걸린다."
"무슨 시간이요?"
"절차를 밟을 시간."
"그럴 시간 없습니다."
천강은 느끼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무진이의 기운을 흡수하고는 있지만, 채 반나절을 버티지 못할 것이란 것을.
이미 천강의 몸속에도 무진이의 기운이 가득 들어찬 상황이었다.
"형님, 전 괜찮습……."
"아니. 지금 바로 무진이랑 가겠습니다."
흑철마괴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길 인도는 해주도록 하지. 그러나 그들이 쉽게 통과시켜 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럼 우리 갔다 올게."
"아, 알았어. 둘 다 잘 갔다 와!"
"무진아 잘 갔다오렴. 그리고 천강, 넌 갔다 와서 나랑 단둘이 이야기 좀 해."
매섭게 노려보며 말하는 초아에게 천강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가파른 절벽을 오른다. 중간중간 무진의 내기를 흡수하며 최대한 빠르게 천산의 보고로 향한다.
얼마나 빠르게 차오르는지, 어느덧 천강의 몸속엔 무진의 기운이 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많지 않은 시간. 그때 무진을 들쳐 메고 앞서가던 흑철마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왔다."
고개를 든다. 절벽 위로 홀로 서 있는 천산의 보고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마치 그것의 등장을 알리듯, 바람을 타고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귓가로 날아왔다.
- 흑철마괴. 무슨 용무인가?
"천산의 보고에 넣을 물건을 들고 왔다."
- 사전에 들은 이야기가 없다. 돌아가라.
천강은 앞으로 한 발 나서며 이야기했다.
"그럼 사학 어르신을 잠깐이라도 만나게 해주십시오."
- 불허한다.
"급한 일입니다. 그리고 아마 사학 어르신도 이 아이의 상태를 보시면 크게 호기심을 가지실 것입니다."
- ……아무리 급하더라도 절차를 따라야 한다. 그것이 규칙. 우리는 규칙을 따를 뿐이다.
젠장. 고개를 돌려 무진을 바라본다. 흡수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내기가 단전에 반 이상 차오르고 있다. 여기서 돌아간다면 무진은 필히 죽는 상황.
"천강 형님……. 전 괜찮습니다."
"그래, 99번. 일단은 돌아가도록 하지. 절차는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그러나 기다리는 선택지는 어디까지나 천강이 계속 흡수를 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가능한 말. 자신의 무공 취약점을 함부로 드러낼 수 없는 천강 입장에서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우득우득. 소년이 목을 좌우로 푼다. 그리고는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간다.
- 거기서 한 발이라도 더 나아온다면 죽일 것이다.
짙은 살기가 담긴 경고성 발언이 날아온다. 그러나 천강의 입가엔 도리어 진한 미소가 걸렸다.
"그래?"
화아악- 존재감이 희미하던 천강에게서 강력한 기운이 쏟아져 나온다. 천강은 당당히 한 발 앞으로 내딛으며 말했다.
"어디 그럼 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