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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37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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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흑살마신 37화

37화. 환골탈태와 화경

 

 

눈을 감고는 가만히 집중한다.

흑사에게서 취한 내기가 자꾸만 기의 바다를 벗어나 신체 곳곳으로 퍼져 나가려 했다. 그러면서 미세하게 신체가 파괴되고 복구되길 반복한다. 따끔거리는 건 덤.

적당한 평지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천강은 그 독기들을 자신의 기운으로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단중 부근을 뱅글뱅글 돌리기 시작했다.

'분명 사학 어르신이 그러셨지. 흑사의 내단을 취해 그 기운으로 이렇게 하면 쉽게 환골탈태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심지어 만독불침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만약 들은 그대로만 된다면, 앞으로 독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볼 수 있었다.

천강은 눈을 감고는 계속 기운을 원으로 돌렸다.

그렇게 얼마나 했을까? 갑자기 막혀있던 임독양맥이 서서히 뚫리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통로를 막고 있던 노폐물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마치 뜨거운 불에 서서히 녹아 흘러내리는 광물처럼, 체내에서 유일하게 막혀 있던 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오오. 드디어 화경이 되는 건가!'

그러나 온전히 뚫리기 전, 다 중화되어 버린 독기운. 녹아내리던 노폐물의 흐름이 멈춰버렸다.

천강은 입맛을 다시며 일곱 진기를 하나로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그런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 그럼 하던 거 마저 하러 가볼까?"

 

***

 

지하수로 깊은 곳. 한 인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뱀대가리야! 어디 있냐!"

하아. 저 인간 또 왔네.

매미 마냥 기둥에 매달려 빽빽 소리치는 인간을 보며, 흑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처음에는 내단과 구슬의 기운을 뺏긴 게 너무 화가 나, 다시 등장하는 순간 아주 죽일 각오로 덤벼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처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드니, 도리어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입안으로 쏙 들어오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자신의 기운을 뺏은 뒤에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돌아갔다.

그게 너무 열 받아, 흑사는 한참을 길길이 날뛰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 뭐 먹은 게 있어야지.

그러고 두 시진 있다가 다시 나타난 녀석.

'이번엔 쉽지 않을 거다, 인간!'

아가리를 벌려 달려드는 척 하며, 흑사 자신의 장기인 독무를 내뿜는다.

푸하악-

전방을 향해 분사되는 독액.

건방지고 미련한 인간은 그 수에 꼼짝없이 당하고, 흑사는 만족스런 얼굴로 입을 닫았다. 그러나 다시금 시작된 강탈의 시간이었다.

크오오오오!

흑사는 눈물을 머금고는 기운을 또 내줘야만 했다.

그리고 또 다시 찾아온 고난의 시기.

'이번엔 안 돼. 절대 안 돼.'

안 들키게 꼭꼭 숨어있어야지.

"어? 거기 있었구나?"

히익?! 흑사가 깜짝 놀라 허겁지겁 도망간다. 그러나 천강이 조금 더 빨랐다.

인간이 몸에 달라붙는다. 흑사는 입을 꾹 다물고는 절대 열지 않았다.

'이, 이러면 못 뺏어가겠지?'

그러나 몸에 달라붙은 채로 다시 뺏기 시작하는 녀석.

'아, 진짜 미치겠네!'

인간은 다시 만족스러울 만큼 챙겨 조그마한 굴로 몸을 숨겼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번뇌라는 걸 해본 적 없는 흑사 인생 999년 만에 최대 위기였다.

 

***

 

"와아. 이거 완전 맛집일세?"

어디까지나 환골탈태의 목적으로 흡수하고는 있으나, 덩달아 내기도 증가하면서 단 4회 만에 천강은 약 80년치 내공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것까지 온전히 흡수하면, 기존에 천강이 가지고 있던 것까지 합쳐 약 110년치 내공을 체내에 모으게 되는 셈.

왠지 모르게 감개무량해지는 천강이었다.

'이번에는 되려나?'

임독양맥도 어느덧 거의 다 뚫린 상태다. 그걸 몸도 느끼는지, 기존과는 다르게 혈류와 기의 흐름이 매우 빠르고 활발해졌다.

그러나 흥분은 금물. 마음을 애써 진정시킨 천강은 눈을 감고는 독기를 뱅글뱅글 회전 시켰다.

그것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며, 천강의 몸속에 유일하게 막혀 있는 혈도를 정돈하기 시작했다.

스르륵.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 통로.

갑자기 배와 등으로 대자연의 기운이 흡입되기 시작했다. 마치 새로운 길을 개척하였음을 축하하러 온 사절단처럼, 그 기운들은 천강의 몸 안으로 들어와 임독양맥을 타고 정수리를 향해 쏟아져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혈이 완전히 뚫렸을 때,

'드디어……!'

천강은 몸에 변화가 이는 걸 느꼈다.

뼈와 근육이 우득우득 비명을 내지른다. 피부는 마르고, 그 아래서 새 살이 돋아난다. 전생에 한 번 겪어본 변화를 다시금 체험하는 천강의 얼굴엔 진한 미소가 걸렸다.

'화경부터는 깨달음의 경지. 이제부턴 좀 여유롭다고 볼 수 있지.'

전생에 현경의 문지방까지는 보고 죽었으니, 대략 흑살마신 때 갖추었던 무력의 7할 정도는 회복했다고 볼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 남은 3할조차도 시간이 자연스레 해결해 줄 문제.

그런데 그 때, 천강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잠깐. 그러고 보니 지금 환골탈태를 해도 되나? 어린아이 때 환골탈태를 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는데.'

대부분 나이가 들어 환골탈태를 하다 보니 젊어지거나 반로환동하는 게 대다수였으나, 지금 천강의 나이는 이제 겨우 열 살.

문득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성장이 딱 열 살에서 멈추는 건 아닐까 하여.

'젠장. 그러면 안 되는데.'

아무리 육체를 벗어난 경지라 해도, 싸움에서 공격 유효거리…… 즉 사거리는 꽤 중요한 요소이다.

상대와 실력이 동등하다는 가정 하에, 그만큼 불리한 조건을 안고 가는 셈이기에.

'아냐. 희망을 잃지 말자. 듣기론 싸움에 최적화되는 몸을 갖게 된다고 했잖아.'

혹시나 성인의 몸으로 변하지 않을까를 기대하는 천강. 그러나 야속하게도 변화된 그의 체구는 그대로였다.

신선의 골격을 갖춘다는 의미답게, 육체적 성장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성인이 될 때까진 추가로 클 수도 있으니, 지금은 좋은 일만 생각하도록 하자.'

모든 무림인들이 꿈꾼다는 꿈의 경지, 화경에 도달하고도 웃을 수 없는 천강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천강은 몸 상태부터 확인했다.

몸이 가볍다. 그것도 매우.

몸이 깃털과 같단 표현이 제일 정확하리라.

천강은 다시 지하수로로 내려갔다.

 

***

 

"뱀대가리야~ 어디 숨었냐?"

저거저거 또 왔네. 하아…….

흑사가 푹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는 지하수로 한 쪽 끝, 깊은 물속에 웅크리고 앉아 조용히 침묵했다. 저 인간이 자신을 못 찾고 그냥 돌아가길 바라면서.

'요샌 사냥감도 이곳에 잘 안 들어오는데…….'

한 때는 이곳에 인간들이 자주 들어오는 때가 있었다. 그 시절엔 정말 빠르게 성장했다.

산삼을 먹으면서 기를 흡수할 수 있는 체질이 된 탓에, 무림인들을 잡아먹으면 쉽게 내단을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흑사의 고개가 푹 수그러들었다.

'후우. 망한 거지. 망한 거야.'

무려 100년 치 기운을 뺏겼다. 그런데 요 근래 추이를 보면, 200년이 지나도 복구를 못할 것 같다.

흑사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아, 몰라. 승천이고 뭐고 이제 다 필요 없어. 그냥 되는대로 살래.'

천강의 횡포로 인해 인생무상의 진리를 강제로 깨달아버린 흑사였다. 그때였다.

"여어. 거기 숨어 있었구나?"

흑사의 얼굴에 뜨악한 표정이 올라왔다. 그러나 흑사는 애써 못 들은 척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난 지금 자고 있는 거야. 지금 이건 꿈이라고, 꿈.'

그러나 천강이 힘껏 발로 수면을 내려치자, 펑! 물이 갈라지며 흑사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불과 두 시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무위에 흑사의 눈이 동그래졌다.

화경에 경지에 다다르면서 한계가 사라진 탓에, 천강의 내력 발산이 폭발적으로 발휘된 것이었다.

이 인간 뭐야? 무서워…….

"야, 너 내 말 쌩깔래?"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흑사는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는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천강은 흑사의 코 위에 서서 눈을 가늘게 떴다.

"또 숨을 생각?"

도리도리. 흑사는 조그마한 인간에게 아무런 발악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에 울상을 지었다.

그리고는 셈을 해보았다. 이번에는 모아둔 내기를 얼마나 뺏길지. 그런데 인간 왈.

"야, 나 이제 갈 거다. 네 덕분에 잘 성장했다고 인사하러 왔어."

……응? 뭐야. 간다고? 정말로?!

"그러니 잘 지내라고. 그럼 나 간다."

손을 한 차례 흔들고는 수면을 밟고 시야에서 사라지는 인간. 거무튀튀하던 흑사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흑사는 꼬리를 들어 올려, 신나게 좌우로 흔들며 외쳤다.

'고마우면 다신 오지마라, 인간!'

 

***

 

푸른 하늘. 그 아래 분홍빛 꽃잎이 흩날리는 어느 숲.

나무로 된 상과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있고, 하나둘 사람들이 나타나 그곳에 앉는다.

상석을 기준으로 좌측으로는 갈색 무복을 입은 이들이, 우측으로는 흑색 무복을 입은 이들이 자리한다.

모두가 모인 걸 확인한 일필일사가 상석에 앉아 작게 미소 지으며 이야기했다.

"교주님께서 자리를 비우셔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 무엇 때문에 모인지는 아시겠지요?"

고개를 끄덕이는 양쪽 사람들. 일필일사가 바로 본론을 꺼내들었다.

"하계 태풍이 들이닥치기 전, 여울나무 숲과 암운곡 양쪽의 실력을 확인하는 자리를 갖겠습니다. 경기 방식이나 날짜를 정할 것인데, 사전에 협의가 된 부분이 있습니까?"

매년 치러지는 연례행사인 만큼, 어느 정도 이야기는 오갔을 터. 양측 대표인 적삼혈마와 흑학대신이 고개를 들었다.

마교 서열 2위 일필일사의 질문에, 두 사람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날짜는 정해졌습니다만……."

"끌끌. 경기 방식이 늘 문제 아니겠소?"

여울나무 숲은 대부분의 훈련을 산속에서 치른다. 오르막, 내리막, 절벽, 나무 등등을 사용해 훈련을 감행했다.

그러나 암운곡은 차가운 물속 혹은 수면 위나 동굴 내에서 훈련을 한다.

훈련법이 다른 만큼, 그리고 결과에 따라 마교 내에서의 위상이 달라지는 만큼, 경기방식 선정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양측 진형이었다.

"그래도 오늘 안으로는 자리를 파할 수 있겠죠?"

"아무래도 방식은 전년도와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흑학대신?"

"끌끌. 그보다 나은 방법이 있을 순 없겠지요."

전년도 방식이라면 바로 대전 형식. 일필일사가 확인 차 묻는다.

"그럼 작년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을 하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두 대표.

"그럼 올해 여울나무 숲과 암운곡의 성과 측정은 작년과 동일하게 가도록 하겠습니다. 일자는……."

"칠 일 후입니다."

"알겠습니다. 칠 일 후. 참가 인원의 숫자 또한 작년과 동일합니까?"

앉아 있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빠른 합의가 도출되다니 정말 보기 좋은 광경이군요."

"구 마교의 관습은 벗어던져야지요."

"좋은 자세입니다. 그럼 오늘 결정된 사항은 양측 교관들과 총책임자, 그리고 교주의 임시 대리인 저 일필일사가 공증합니다. 일주일 후, 양측 모두 좋은 결과를 보여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만 회의를 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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