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76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7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76화
76화. 잠잠하던 두 현경이 움직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기까지 끊임없이 투쟁한다.
살기 위해서,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서.
자연도 마찬가지다. 약육강식. 약하면 먹히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전쟁터인 자연은 그것의 가장 원초적인 행태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 끊임없을 것 같은 투쟁도 좀 사그라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다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이다.
다치는 게 명백해지는 시점에서 동물은 몸을 사린다. 조금이라도 다치는 순간, 그게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마교는 자연 그 자체다.
사실상 현경급 고수들이 서로 싸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혹여나 싸웠다가 부상을 입거나 세력이 기울기라도 한다면, 다른 현경들의 사냥감이 될 수 있기에.
그러나 자신보다 약한 이를 사냥하는 거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그러니까…… 암운곡의 그 아이가 소교주가 확실하다 이 말이렷다?"
"예, 어르신. 한 달에 한 번, 소교주 교육을 시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마교 서열 3위 만천옥주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올라왔다.
"흑도마황 놈도 움직이겠구만?"
"아마 그럴 겁니다. 일필일사나 투파창귀는 안 움직일 가능성이 크지만요."
"하긴. 일필일사야 교주의 개니까 뭐 그렇겠지. 그런데 투파창귀는 왜?"
"요새 후계자 교육으로 바쁜 모양입니다. 설령 그렇지 않아도 워낙 예측 불가능한 인물 아닙니까?"
"흠. 그렇지. 항상 웃고 다녀 그 속을 알기 어렵다는 적삼혈마보다 더 머릿속이 음흉한 새끼지."
그런 투파창귀 놈이 움직인다면 나설 기회조차 없겠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부하 녀석 말대로 놈이 움직일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일단은 지켜볼까?'
그러다가도 순간 드는 생각.
'아냐. 암운곡의 교관들이 없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야.'
분명 소교주 정식 발표가 났으나, 교주 쪽에선 어떻게든 그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을 강구할 것이다.
사고를 치려면 그 전에 쳐야 한다.
"오룡대를 불러라."
"예? 어르신, 겨우 열한 살 애 하나 잡는데 그들까지 부르는 건……."
"이왕 일처리 하는 거 확실히 하는 게 좋겠지."
그리고 그 사실을 보고받은 마교 서열 4위 흑도마황.
"만천옥주 놈이 오룡대 놈들을 보냈다?"
"예. 그렇다고 합니다."
"재미있군."
오룡대는 만천옥주의 최측근이자 그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이다.
마음먹고 마교 서열에 참전하게 된다면, 능히 다섯 모두 마두에 들어설 수 있을 정도로.
'나야 교주 쪽과 반목하는 여울나무에 속해 있으니 그렇다지만, 중립에 이렇다 할 세력도 없는 주제에 소교주를 건드리다니.'
꼴에 욕심은 많아서……. 교주 자리가 과연 네까짓 놈에게 넘어갈 성싶으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흑도마황님?"
"일단 우리는 좀 기다린다."
"그래도 혹시나 그쪽에서 교주의 증표인 반지를 먼저 가지게 된다면……."
"으흠. 그건 절대 안 될 일이지! 제자 놈을 불러와라."
"도패천황 말입니까?"
"그래. 오룡대 놈들을 꺾고 반지를 찾아오려면 우리도 확실하게 가는 게 좋겠지."
그렇게 천강을 암살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두 현경이었다.
***
"오랜만이구나."
"아, 사학 어르신."
이런. 분명 아무런 기척도 없었는데?
천강은 후다닥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경에 대한 깨달음을 위해 잠시 사색에 잠겨 있는 사이, 이곳의 관리자인 노인이 그의 앞에 나타나 있었다.
두 손을 모아 포권을 취한 소년이 인사를 올린다.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그래그래. 너도 잘 지냈느냐?"
"예."
천강이 숙였던 시선을 들어올린다. 그 순간 노인은 천강의 가슴팍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목걸이는?"
"아, 교주님에게 받았습니다."
"끌끌. 그렇구먼. 그래. 대강의 이야기는 밖에 있는 이들에게 전해 들었다. 이곳을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고?"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럼 열쇠를 줄 터이니 어서 올라가 보거라."
그러나 소년은 고개를 젓는다.
"그보다는…… 실례가 안 된다면 어르신께 현경에 대한 깨달음을 듣고 싶습니다."
"허허. 위층에 자리한 보물들 때문에 온 게 아니었더냐?"
"예. 저건 그저 어르신을 만나기 위해 움직이다보니 겸사겸사 함께 얻게 된 것입니다. 호기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랬다. 천산의 보고는 어디까지나 이 노인 분을 만나기 위해 왔을 뿐. 2층에 뭐가 있나 궁금하긴 하나, 그것이 천강에게 매우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이미 인간이 모을 수 있는 내기의 한계치까지 모은 탓에 영약은 의미가 없었고, 최강의 무공을 가지고 있는 만큼 다른 무공은 크게 필요치 않았다.
심지어 전생에도 무기는 그저 손에 익을 정도만 다뤘었기에, 무기 욕심조차 없는 천강이었다.
그런 소년의 기색을 눈치 챈 걸까? 노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욕심은 있되, 물욕은 없다니. 흥미롭구먼. 끌끌. 그래도 일단 올라가 보거라. 모처럼 왔으니 좋은 물건들 구경은 해야지?"
"예, 그럼."
왠지 그걸 원하는 것 같아 천강은 순순히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열쇠를 하나만 내어주는 노인.
"저어. 2층 열쇠도 주셔야……."
"흠흠.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는 걸 깜빡했구먼. 듣거라. 이곳은 마교 내부에 있긴 하나,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제 아무리 교주가 허락했다한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이곳 천산의 보고다."
그런…….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풀린다했다.
노인은 천강의 손에 초록빛 열쇠를 올려주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시키는 일을 하나 완수한다면 그땐 허락해주도록 하겠다. 어떠하느냐?"
"그리 하겠습니다.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르신."
소년이 열쇠를 사용해 1층 공간으로 들어선다. 이후 서서히 닫히는 문을 보며, 노인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끌끌. 갈수록 마음에 드는 아이로고. 아무튼 북명신공을 완성한 것을 축하한다, 무제(武帝)의 후학이여!"
***
한 번 본적 있는 익숙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중원 어디선가 지나다 들렀을 법한, 평이한 시전(市廛) 형태의 모습이.
이미 이곳에 뭐가 어디에 있는지를 다 알지만, 천강은 한쪽 끝에서부터 찬찬히 하나씩 물건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만년설삼, 만년하수오, 인형삼…….'
역시……. 영약 쪽은 딱히 도움이 될 만한 게 없다. 다른 무인들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욕심을 냈을 것들을 소년은 그저 싸구려 물건들 구경하듯 슥 보고 지나쳤다.
"그나마 이쪽이 좀 볼만하려나."
영약구경이 끝이 나자, 이번엔 빛바랜 비법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 있는 모든 걸 자유로이 이용 가능한 천강은 봉인된 무공서를 하나하나 뜯어 그 내용을 살펴보았다.
'저번에 꽤 궁금했었지. 진짜 자하신공인지.'
왜 화산파 장문인이나 익힐 수 있는 비급서가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천강은 서적을 들고 자리에 앉아 그 내용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음……. 정말 신기하네. 내용을 보아하니 진짜인 것 같긴 한데.'
읽다보니 뭔가 깨달음도 오고 재미가 있다.
그에 아예 무공서들을 싸그리 들고 와 옆에 쌓아두고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읽어나가는 때였다.
우웅.
'두꺼비처럼 몸을 웅크리고 일격에 쏘아져 나간…… 음?'
묘한 기운에 소년의 고개가 머리 위로 들린다. 그러나 다시 느껴보려 해도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기분…… 탓인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읽다 만 합마공 무공서를 다시 읽어나가는 소년.
그런데 어느 순간, 또 다시 기의 파동이 느껴졌다. 출처가 불분명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천강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마치 자신은 여기 있으니 어서 찾아달라는 듯한 모양새.
이곳에 생명체라곤 딸랑 본인 혼자밖에 없는 이 상황에서 천강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요새 현경에 대한 깨달음을 얻겠다고 물아일체 수련을 너무 많이 한 탓인가?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날 부르는 존재가 있다니?'
천강이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질 않자, 계속 주기적으로 보내오는 신호.
꿈은 아닌 것 같다.
그에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 흐름의 진원지를 추적해, 한 선반 아래쪽을 손으로 슥슥 훑어보았다.
'음? 뭐가 있네?'
쭈그리고 앉아 아래를 쳐다본다. 어두운 그늘 속으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눈으로는 보이지 않아도 손바닥 감촉으로는 분명히 느껴졌다.
'선반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매달려 있는 건가?'
조심조심 풀자, 툭. 바닥에 떨어지는 그것.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는 순간, 소년의 눈은 확 크게 뜨였다. 전생에 한 번 본적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북명신공 비급?"
북명신공 비급서가 흰 빛을 발하며 잘게 떨고 있었다.
***
"여기인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마교의 훈련장이?"
암운곡의 거대한 구멍이 내다보이는 계곡 근처.
다섯 존재가 그 구멍을 찬찬히 내다보고 있다. 그들은 만천옥주가 보낸 오룡대. 소교주를 죽이고 그가 가진 교주의 증표를 가져가기 위해 보내진 특급 살수들이었다.
그중 중앙에 서 있던 이가 옆에 사내에게 물었다.
"광룡. 이곳 출신이라고 했나?"
"그래. 간만에 오니 기분이 묘하군."
"우린 이곳이 처음이니, 네 의견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움직이겠다."
"알겠다."
그러고는 안으로 내려서려는데, 그들 중 유일하게 몸의 곡선이 유려한 이가 주변을 슥 한 번 훑어보더니 말했다.
"근데 천룡. 얘네들 그냥 두고 갈 거야? 영 거슬리는데."
"그렇긴 하지만, 만약 소교주가 우리 눈을 피해 이곳을 도망친다면 그땐 그 위치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너무 많아. 반 정도는 죽이고 가는 게 어때?"
"나도 공감한다, 천룡. 한두 명도 아니고…… 숫자를 좀 줄이고 가자고."
오룡대가 서로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약속이라도 한듯 갑자기 단체로 사라졌다.
"끄아악!"
"커, 커억……."
"무, 무슨?!"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계곡 주위로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그리고는 이내 잠잠해져 물소리만이 나직이 울려 퍼질 때, 암운곡 계곡 위로 다시 다섯이 모였다.
"잔챙이들도 다 처리했겠다, 그럼 이제 내려가지."
달빛이 미치지 않는 어두운 그늘에 몸을 숨겨, 다섯 존재가 은밀히 내려간다.
바닥에 안착한 그들은 곧 하루 일과를 마치고 곳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근데 우리 외에도 더럽게 많네."
그랬다. 암운곡 밑바닥으로는 이곳 아이들도 많았지만, 그런 그들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캐묻고 있는 자들 또한 상당했다.
"다들 그 반지를 노리는 것이겠지. 그 안에 신묘한 힘이 있다고 하잖나."
"그냥 상징적인 물건 아니었어?"
"듣기로는 그 안에 천마신공의 구결과 신검이 자리한 곳의 위치가 적혀있다고도 하더군."
"그래서 이 난리인 거로구나? 버러지 같은 것들이. 지들 분수를 모르고."
음룡이 건곤권을 움켜쥔다. 광룡이 그녀를 만류했다.
"이곳은 교주도 함부로 간섭을 못한다는 암운곡이다. 이곳에서 티 나게 살육을 저질렀다간 바로 모가지다. 참아라."
"쳇. 어쩔 수 없구만.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일단 우리도 각각 흩어져서 아이들에게 수소문해 보자고. 일각(一刻) 후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지."
"하아. 정보수집이야? 난 그거 재미없는데."
음룡이 투덜거리나 이미 그녀 빼고는 다 흩어진 상황. 그녀 또한 한숨을 푹 내쉬고는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세 아이들을 붙잡고는 물었다.
"애들아. 혹시 천강이라고 아니?"
"네. 근데 누구세요?"
"나? 음……. 난 그러니까……."
세 아이가 서로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천강이 어디 있는지 궁금하신 거예요?"
"맞아! 혹시 어디가면 만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까? 이 언니가 꼭 좀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러거든. 만약 천강을 만나게 되면, 언니가 나중에 꼭 그 보상을 해줄게."
"그냥 가르쳐 드릴게요. 어차피 다른 분들에게도 다 말씀드렸으니까요."
한 소녀가 암운곡 지하수로를 가리킨다.
"저기 보이시죠?"
"응. 지하수로 말하는 거지?"
"네. 양 방향 중 오른쪽이에요. 하류방향이요. 한 시진 좀 넘게 나아가면 거대한 공간이 나오는데, 거기서 수련하고 있겠다고 했어요."
"어머멋. 고마워!"
흩어졌던 오룡대가 다시 모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들은 답변을 서로 공유했다.
"대답이 다 동일한 걸 보니 거짓은 아닌 것 같군."
"확실히…… 다른 놈들의 향하는 동선을 봐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가면서 보이는 잔챙이들은 다 죽여도 되지?"
"물론."
오룡대를 포함 수많은 이들이 암운곡 지하수로 하류로 들어섰다. 그 모습을 아이들은 가만히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