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73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73화
73화. 소문
"뭐라고 하는가?"
교주의 물음에 흑철마괴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대로입니다. 천산의 보고를 자유롭게 이용할 권리를 꾸준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고집이 있는 아이로군."
"그러니 그 나이에 그 실력을 갖춘 거겠지요."
대체로 고집이 있는 이들이 뭐든 이루어내는 법이다. 거기에다 재능까지 더해진다면 세상을 놀라게도 하는 법이고.
"우리로서는 급할 이유가 없으니 기다리도록 하지. 그래. 내 아이는 어떻게 됐나?"
"미리 매수해놓은 쥐 장수를 통해 쥐 굴까지 무사히 들어갔습니다.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것입니다."
"잘했군. 정말 수고가 많았네. 그럼 이제 내 아이가 쥐 굴을 졸업하기 전에 주변을 빨리 정돈해 놓는 일만 남았구만."
그에 막 편안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밖에서 누군가 후다닥 달려와 교주 앞에 섰다. 그는 마교 서열 13위 천수마검이었다.
"교주님! 큰일 났습니다!"
"뭔데 그리 호들갑인가? 자네답지 않게?"
"지금 마교 내로 소문이……!"
"소문?"
***
"여어, 애들아!"
암운곡 지하수로.
사백동굴로 향하기 위해 몸을 풀던 아이들이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뒤로 돌린다.
그들 뒤로는 졸업해 이곳을 빠져나갔던 5년차 이십여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방중 선배?!"
"선배님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방중이 대표로 웃으며 답한다.
"교관도 없이 후배들이 개고생하고 있는데, 나 몰라라 할 순 없어서 왔다."
"예? 위에서 허락을 해줬습니까?"
"어. 너희들도 알잖냐. 곧 신입들 들어오는 거. 거기에 맞춰 신청했더니 위에서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판단했는지 승인 떨어지더라."
보통 한 해에 투입되는 조교는 총 열한 명.
그러나 두 배에 가까운 인원이 신청했음에도 허락이 떨어진 건, 암운곡 교관 배치가 현재 난항을 겪고 있단 의미기도 했다.
"언제부터 투입 되십니까?"
"오늘부터. 초아님과는 이미 이야기 끝났다. 일단 너희들 도와주다가 중간에 쥐 굴로 잠깐 갔다 올 예정이다."
"오오!"
아이들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하루 빨리 강해져서 정파 놈들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도, 그를 뒷받침해 줄 스승이 부족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서로 즐거이 이야기를 주고받기를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 방중.
"근데 천강은? 안 보이네? 먼저 출발한 건가?"
"따로 훈련하고 있습니다. 어디 가서 누구에게 배울 수준은 아니잖아요."
"어디 있는데?"
"아마 지하수로 저 안쪽에서 명상하고 있을 걸요?"
"그래? 흠. 잠깐 개인적으로 할 이야기가 있는데."
그러자 한 소년이 앞으로 나왔다. 그는 천강의 의형제인 무진이었다.
"제가 인도해 드리겠습니다, 선배. 이쪽으로 오시죠."
무진이 방중을 이끌고는 지하수로 안쪽으로 들어간다.
사백동굴과 반대편 방향으로 반 시진 정도 이동한 두 사람은 곧 조그마한 평지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한 소년을 볼 수 있었다.
소년은 이미 그들이 올 것을 알고 있었는지, 그들이 오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여어. 방중 선배, 오랜만이네."
"그러게. 잘 지냈지?"
"나야 늘 잘 지내지. 그런데 선배가 여기는 어쩐 일이야? 중원에 가서 참한 색시 찾고 다니느라 바쁠 줄 알았는데?"
"야! 그것 때문에 거기 지원한 거 아니거든!"
심장이 쿵쿵 뛰고 얼굴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게 영락없었지만, 천강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진짜 무슨 일이야?"
"아. 문득 지나가다 들은 말인데 말이야. 왠지 너한테는 꼭 이야기 해줘야 할 것 같아서."
"뭔데 그래?"
"사람들이 그러더라. 이번에 쥐 굴로 들어오는 이들 중에 교주의 자식이 있다고. 지금 암운곡에 있는 건 가짜라고."
무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선배. 그게 정말입니까?"
"어. 지금 마교에 소문이 쫙 퍼졌어. 아주 난리도 아니야. 근데 무진이 너도나도 알다시피 우린 봤잖아. 천강이 소교주라는 걸."
마교에 알려진 흡공은 단 두 가지다.
흑살마신이 익힌 흡성대법. 그리고 천마가 익힌 천마흡기공.
그에 천강의 흡공을 본 사람들은 말론 안 해도 모두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천강이 바로 천마의 자식이라고.
그런데 진짜 자식이 따로 있다니?
그러나 이야기를 듣는 천강의 얼굴엔 미소가 그득하다.
"방중 선배. 마교 내에 소문이 쫙 퍼졌어?"
"그래. 퍼진 정도가 아냐. 아마 마인들 중엔 모르는 이가 없을 걸?"
씨익.
"그렇다면 지금쯤 우리 교주님께서도 아주 단단히 머리를 싸매고 계시겠네?"
***
5일 전.
천마로부터 퇴짜를 맞은 천강은 곧바로 일귀에게 지시했다.
"마교 내로 소문을 좀 만들어줬으면 하는데. 가능해?"
"물론입니다. 소문이라면 하급 마인들을 이용하면 될 터. 혹시 몰라 미리 여러 적합자들을 점찍어 두었습니다."
역시. 일 잘하는 이는 뭔가 다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움직여준다.
천강이 흡족한 미소를 머금으며 물었다.
"혹시나 꼬리가 잡힐 가능성은?"
"없습니다. 역용술을 이용해 소문을 퍼뜨린 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면 됩니다."
"그렇단 말이지?"
흑살마신의 철칙. 받은 건 돌려주기.
그것에 높고 낮음의 차별은 없다. 제아무리 교주라도 날 이용해 먹었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마교 곳곳에 소문을 퍼뜨려. 이번 쥐 굴에 교주의 자녀가 참여할 거라고."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앞으로도 날 이용해 먹으려면 그 대가를 아주 톡톡히 치러야 할 거야.
천강의 명을 받은 무영삼귀는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리 점찍어둔 마인들을 잽싸게 처리한 뒤, 그들의 행태를 따라하며 천강이 시킨 말을 퍼뜨린다.
소문은 잔잔하지만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몇 발을 건너뛰자,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 온 마교가 떠들썩해졌다.
그리고는 불과 5일 만에 암운곡 조교들까지 알 정도로 번지게 되었다.
그로 인해 천강의 예상대로, 현재 교주는 아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쾅.
"그게 무슨 소리인가!"
"……말 그대로입니다. 이번 쥐 굴 인원 중에 교주님의 자제분이 있다는 소문이 마교 내로 파다하게 번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천수마검의 보고에 교주가 이마를 짚었다.
'대체 누가……. 분명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거늘.'
의심 갈 만할 이들을 애써 떠올려보나 예상가는 인물은 없었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는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이 일은 최측근들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들은 절대 배신할 리가 없었다.
'아니면 그때 그 소년이?'
그런데 암운곡은 외지로부터 철저히 단절된 공간.
외부에서 누군가 들어간다면 모를까, 아직 이렇다 할 인맥도 없는 소년이 이런 소문을 만들어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무엇보다 이제 겨우 열한 살 된 어린애지 않은가?
설마하니 아직 젖살도 덜 빠진 그런 어린 아이가 이토록 음흉한 수를 쓸 거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는 천마였다.
"소문의 근원지는 찾았는가?"
"찾긴 찾았습니다. 근데 그게……"
"왜 말을 못하는가? 어서 말해보게!"
천수마검이 미간을 좁히며 대답했다.
"소문의 근원지로 추정되는 인물이 총 다섯이온데, 모두 죽었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모두 자신의 근무지 혹은 숙소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하?"
소문을 잠재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이야기를 꺼낸 이를 잡아들여, 거짓임을 재배포하는 것.
그러나 그 근원지가 된 이들은 모두 죽었다. 이젠 걷잡을 수 없이 퍼질 것이다. 그들의 죽음까지 엮어서.
천마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
"자네, 들었는가?"
"뭔데 그러나?"
"작년에 묵범귀영의 기록을 깬 귀재(鬼才) 말일세."
"아, 그 흑살마신과 이름이 똑같다는 소년?"
"그래. 그 소년이 아니 글쎄 교주의 자식이 아니었다고 하지 뭔가?"
"그게 뭔 개소리야?"
작년에 마교를 뜨겁게 달구지 않았던가? 묵범귀영의 기록을 깬 소년이 나타났는데, 그게 바로 교주의 아들이었다고.
그런데 이제 와서 그게 아니라고?
어서 말해보라며 눈을 크게 뜨는 마인. 동료가 손바닥을 펼친다. 술 한 잔 사라는 뜻이다.
"알았네! 내 오늘 밤 살 테니 어서 말해보게!"
"흠흠. 그렇다면야. 이번에 열리는 쥐 굴에 교주의 자녀가 포함되어있다는 소릴세."
"그게 정말이야?"
"그렇대도? 지금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정도로 소문이 퍼지고 있어서, 아주 난리도 아닐세."
"에이. 뭐 소문이야 뜬구름 잡듯 벼리별 말이 다 도는 것 아닌가?"
"이번엔 진짜인 모양이네. 그 이야기를 했던 초기 발설자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했네. 교주의 친위대에게 죽은 게지."
그러자 이야기를 듣던 마인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아니, 그러면 작년에 들어왔던 그 소년은 대체 뭔가? 교주의 자녀도 아닌데 묵범귀영의 기록을 깼다는 건가? 흡공도 쓰고?"
"그렇지! 그래서 지금 그 소년에게 접근하는 이가 한둘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왜?"
"왜긴? 암운곡을 졸업하기 전에 미리 자신들의 사문으로 들이려는 거 아닌가?"
그리고 실제로 천강은 자신을 찾아오는 수많은 이들로 인해 굉장히 바쁜 상태였다.
"흠흠. 마교 서열 74위이신 원융폭마께서 잠깐 널 보고 싶어 하신다."
"마교 서열 81위이신……."
"반갑다. 나는……."
쉴 새 없이 찾아오는 인파. 얼마나 많은지 길 인도 하는 아이들만 30명이 넘게 투입될 정도다. 그러나 천강은 웃으며 다 돌려보냈다.
"제가 중요한 깨달음의 순간에 있는 지라. 실례 좀 하겠습니다."
"그렇다면야… 별 수 없지."
무인에게 있어 다른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깨달음을 얻어 다음 경지로 돌파하는 것.
천강의 변명에 모두가 이해 한다는 듯 순순히 물러났다.
그렇게 약 세 시진 정도 지나서야 천강에게도 여유가 생겼다.
"후우. 일단은 더는 안 오는 건가?"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군."
"일귀도 고생 많았어. 내 옆에서 계속 대기하느라."
"아닙니다. 별로 안 기다렸습니다. 그건 그렇고 엄청나게 왔다 가는군요."
"오늘만 몇 명이나 오고 갔지?"
"117명입니다. 소속이 겹치는 이들을 하나로 묶으면 21곳입니다."
엄청나구만. 100명의 마두 중 무려 21명이 내게 관심을 표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건 그렇고,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긴 했네."
"예?"
"아무것도 아니다."
소년은 전생의 시절을 떠올렸다.
50년 전, 천강이 죽을 당시만 해도 마교에 사문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개개인이 스스로를 대표할 뿐.
그런데 지금 마교에는 흥미롭게도 사문이라는 게 생겨 있었다.
마교에서 힘 꽤나 쓰는 마두들이 문주를 맡고, 그 아래로 마인들이 모여 세력을 형성하는 식이다.
마치 마교라는 거대한 땅덩어리 안에, 여러 군벌들이 존재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교주의 위치가 약해졌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마교가 그만큼 커졌단 의미인가.'
어느 쪽이 됐건, 과거에서 살다 넘어온 사람으로서는 흥미가 일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주군. 괜찮겠습니까?"
"뭐가?"
"이러면 주군 입장에서는 교주 쪽 세력의 비호나 권세를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시는데……."
"아아. 걱정 마. 금방 다 찾아올 테니까."
"예?"
"소교주의 권리도 권세도 모두 다 돌아오게 될 거야."
천산의 보고에 대한 출입 권한까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