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66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66화
66화. 괴물
'뭐 저런 괴물들이…….'
살면서 수많은 괴물들을 보아왔다.
물 위를 들판 걷듯 걷고 성을 담장 넘듯 넘으며, 새처럼 공중을 나는가 하면 작은 동산을 일격에 날려버리는 그런 인간들을.
무림은 그런 곳이었다.
평범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계와는 전혀 별천지의 세계.
황궁 또한 그런 무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준조 또한 살면서 수많은 무림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 그도 저런 이들은 난생 처음이었다.
쾅. 쾅. 쾅쾅쾅.
땅에 거센 진동이 인다. 바닥이 분화구마냥 점점 밑으로 꺼져갔다.
'아, 아니…… 저런 파괴적인 주먹에 벌써 수십 대를 처맞고 있는 데도 안 죽는다고?'
더 입이 떡 벌어지는 건, 그런 일격을 쉬지 않고 내려치는 소년이었다.
아까 현경을 쓰러뜨릴 때만 해도 보통이 아닌 건 알았지만, 소년의 머리통에 대고 적들이 뒤에서 검기가 둘린 검을 무자비하게 내려치는데도 전혀 끄떡없었다.
아파하기는커녕, 도리어 힘이 난다는 듯 더욱 신나 날뛴다.
특히 소년의 입가에 걸린 진한 미소는 또 어떻고……. 그래. 미치광이 마냥 웃고 있는 얼굴을 보는 순간, 준조는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놀릴 수밖에 없었다.
'도, 도망가야 돼. 어떻게든 저 소년이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도주해야 해!'
거의 굼벵이마냥 땅바닥을 기다시피하며 도망을 치는 준조.
"하하하핫. 어디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구나!"
뒤쪽에서 소름 끼치는 광소가 들려온다.
준조는 필사적으로 바닥을 기었다. 그 광소가 옅어져, 떨리는 몸뚱어리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될 때까지.
'이제 충분히 멀어졌나?'
한숨을 돌리고는 몸을 내려 본다. 반 시진 정도 긴 탓인지 온몸이 땀으로 가득하다.
특히 그의 옷 전면은 그의 필사적인 사투를 보여주듯 온통 흙으로 도색된 상태였다.
'후우. 좋아. 아직 하늘은 날 버리지 않았어.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뛰자. 곧바로 태감(太監)에게 가서 이 사실을 전달하는 거야.'
그렇게 서쪽 방향을 향해 헐레벌떡 뛰어 도망가는 그때였다.
싸아아-
갑자기 준조는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이, 이게 대체……?"
고개를 좌우로 움직인다.
짙은 어둠에 잠긴 사위 속으로 사사삭- 어떤 민첩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자신을 중심으로 뱅글뱅글 돌고 있다는 것을.
"우, 웬 놈이냐! 정체를 드러내라!"
그 순간 우뚝 멈춰선 그것.
어둠 속으로 한 쌍의 눈동자가 보인다. 그것은 시리도록 푸른빛이 감도는 눈이었다. 절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짐승의 것이라 하기에도 뭐한…….
"저, 저리 가! 오지 마! 썩 꺼져!!"
준조가 발걸음을 되돌렸다. 어떻게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이곳이 그의 인생에 종착지였던 모양이다.
퍽.
둔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세상이 핑그르르 돌아간다.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기우뚱 기울어진 세계 속에서, 준조는 눈처럼 새하얀 갈기를 볼 수 있었다.
'시, 신수 백ㅎ……?'
***
'어지간히도 질기구만.'
무슨 문어도 아니고 말이야. 때려도 때려도 큰 변화가 없다.
그래도 쉼 없이 내려치자 조금씩이지만 사신 놈의 얼굴이 뭉개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숨을 거두었다.
"자, 그럼 이제 한 놈은 끝났고."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뒤에서 공격을 해대던 두 사신이 깜짝 놀라 뒷걸음친다.
아까까지만 해도 감정 따위는 전혀 못 느낄 것같이 굴던 녀석들의 얼굴엔 눈에 띠게 당혹스러움이 그득했다.
"다음은 누구?"
두 사신이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갑자기 몸을 홱 돌리더니,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내빼기 시작했다.
"하. 어딜?"
암운행보.
소년의 신형이 흐릿해졌다가 한 녀석의 뒤에서 나타난다. 녀석의 발목을 움켜쥔 천강은 곧바로 반대편으로 움직여 다른 한 놈 또한 그대로 낚아챘다.
도망가는 두 녀석을 제압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아주 찰나에 불과했다.
'정말이지 예전이라면 생각도 못할 일이네.'
도망치는 암살자 놈들을 쫓아서 잡아들이는 날이 다 올 줄이야.
팡. 팡. 팡.
"죽어랏!"
"좀 죽엇!"
천강의 손에 붙들린 채 어떻게든 탈출해보겠다며 발악하는 녀석들. 검으로 천강을 내려치는가 하면 붙들리지 않은 발로 마구 발길질을 해댄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붙잡히기 전에도 통하지 않던 공격이다. 이제와 통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천강에게 그들의 저항은 마치 사람 손에 붙들린 가재나 게가 발악하는 꼴에 불과했다.
'아니지. 가재나 게는 아프기라도 하지.'
얘네는 오히려 기운을 회복시켜 주네?
"너희는 내가 특별히 신경 써서 저승으로 함께 보내줄게."
일단 한 놈을 바닥에 힘껏 내려친다. 그리고 그 위에 다른 하나를 얹어, 하나로 겹친다.
그런 뒤 그 위에 올라타 다시 주먹을 휘두르는 천강.
"얼마나 내려치면 되려나. 응? 아까 대략 오백 번 정도 내려쳤으니 이번에도 그쯤 걸리려나?"
사신들의 얼굴이 처음으로 공포감으로 물들었다.
그들은 얼마 전 받았던 교육을 떠올렸다.
'너희들은 이제 죽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자살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고, 다른 이에게 죽고 싶어도 너흴 죽일 수 있는 존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내기가 광활해진 탓에 수명 또한 늘어나 버렸지.'
그러면서 흑귀란 자는 말했다.
'그런 너희들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하늘이 너희에게 준 천수가 끝이 나는 것. 그러니 두려움을 갖지 마라. 죽음의 공포는 너희들의 것이 아니다. 과거를 잊어라. 이젠 너희들이 공포 그 자체이니라.'
그래. 분명 죽지 않는다 했다. 죽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고 했다. 그 자신들이 죽는 건 오직 수명이 다해 생명의 기운이 꺼질 때 뿐. 분명 그랬을진대….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그들의 동료가 보인다.
사신들은 섬뜩한 미소를 지은 채 주먹질을 해대는 소년을 불러 세웠다.
"자, 잠깐."
"잠시 우리랑 이야기를……."
그러나 숫자 계산과 자기 생각에 빠진 천강은 그 이야기를 일절 듣지 못했다. 그저 쉼 없이 주먹을 휘두를 뿐이었다.
쿵.
"우, 우리 협상을 좀……."
쿵.
"컥. 자, 잠시 할 말이 있……."
쿵쿵쿵쿵.
"꾸에엑."
사신들이 말을 걸든 말든 그렇게 한참을 때리던 천강, 그러다 문득 한 궁금증이 그의 손을 멈춰 세웠다.
'그건 그렇고, 참 신기하네. 이놈들 화경도 못 단 주제에 내기는 왜 이렇게 많아?'
그렇잖은가? 지천뇌공을 오백 번이나 사용하다니. 이 정도면 천강 자신보다도 내기가 많을 정도다.
'많은 정도가 뭐야. 거의 네, 다섯 곱절은 되는 것 같은데?'
그에 두 사신에게 물으나…….
"아……아아……."
"으어어……."
말하는 기관이 망가져 말을 못하는 두 사람.
"아, 미안. 말하기도 힘든 사람에게 괜한 질문을 했네. 그럼 다시 주먹 들어간다."
"끄어어어! (자, 잠깐!)"
"어, 어어! (말할게. 말한다고!)"
그러나 다시 주먹이 내려오고, 두 사신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극한의 답답함에서 뿜어져 나오는 울분이었다.
"내가 몇 까지 셌더라? 아. 이백십일, 이백십이……!"
쿵. 쿵.
"끄어어. (말 좀 들어어!)"
***
새벽빛이 밝아오는 아침.
동쪽으로부터 순백의 빛이 나타나 칠흑 같은 어둠을 걷어내고, 밤의 장막에 가리어 있던 하늘의 푸른빛이 제 색을 되찾아간다.
그 아래 자리한 초록빛 숲 또한 마찬가지…여야 했으나, 풍미관 북쪽 경계 숲은 마치 커다란 전투라도 치른 것 마냥 초토화되어 있었다.
그 폐허 속에서 한 소년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드디어 끝인가?"
비틀거리는 행태가 뭔가 굉장히 힘들어 보이지만, 소년의 얼굴엔 개운함이 그득했다.
"어디보자. 대략…… 한 놈 당 평균 사백 대씩은 쥐어박은 셈이네?"
중간에 흡수할 내기가 다 떨어져 끝을 못 보는 건 아닌가 했으나, 신기하게도 놈들은 내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러다보니 다행히도 놈들을 저승으로 보내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간만에 치열한 전투였어!"
소년이 거대한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온다. 천강은 여명의 밝아오는 빛을 보며 활짝 미소 지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그러고 보니 나 뭐하다 이러고 있었지?"
분명 어젯밤 북명신공을 완성해 신이 나 숙소로 돌아가다가, 중간에 신수를 마주쳤다.
일생일대 없을 일이라 정신없이 쫓아가는데, 웬 정신 나간 현경 놈이 시비를 트네?
그래서 밟아주는데 갑자기 특이한 독을 쓰는 놈이 나타나고. 그게 궁금해서 물어보려 했더니, 이번엔 사신친구 세 명이 등장해서 방해.
그런데 놈들이 생각 외로 튼튼해서…….
"하아."
상황파악이 끝난 천강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내가 진짜……. 어린애가 됐다고 생각도 어려졌나. 그놈의 호승심이 뭐라고. 에잇. 그건 그렇고, 그 새낀 어디 갔어?"
천강이 투덜투덜 거리며 발을 움직인다.
신수 일은 날아가 버렸지만, 아직 그의 호기심을 자극한 독의 정체는 남아 있는 만큼 그 표정은 꽤 밝았다.
대체 어떤 독이길래 현경을 그리 쉽게 죽일 수 있는 거였지? 기존에 만들어낸 일각산독을 강화한 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기대 가득한 얼굴로 준조의 흔적을 쫓아가는 천강.
그러나 그런 소년의 얼굴은 곧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에……?"
소년이 후다닥 뛰어간다. 그리고는 머리와 몸이 분리된 시체를 살폈다.
"어, 어떤 놈이야……."
몸을 부들부들 떨기를 잠시, 천강이 하늘에 대고 빽 소리쳤다.
"어떤 새끼가 이놈을 죽인 거야아아! 그 독 진짜 궁금했는데에에에!"
소년의 분노를 담은 그 외침은 풍미관 북쪽에서 쩌렁쩌렁 울렸고, 그게 얼마나 큰지 풍미관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었다고 한다.
아무튼 밤새 움직였는데도 이렇다 할 소득을 얻지 못한 소년의 어깨는 축 처졌다.
"후우. 일단 뭐하던 놈인지나 좀 알아볼까."
한쪽에 따로 분리된 머리를 챙겨와 목 위에 배치한다. 그리고는 이래저래 살핀다. 그런데 천강의 눈에 다시금 호기심이 돌았다.
"응? 희한하네. 나이가 불혹(不惑)은 되어 보이는데 수염이 없어?"
슬쩍 잘린 단면을 보니 성대도 안 발달해 있다.
"혹시 여잔가?"
가만 기억을 더듬어 보니, 확실히 목소리도 그다지 남자답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복식은 아무리 봐도 남자의 것.
천강은 호기심이 샘솟는 걸 느꼈다.
'대체 얜 남자야, 여자야?'
그에 순간 아랫도리를 만져보려다, 뭘 또 그런 데까지 만져볼까 싶어 천강은 자리에서 그냥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만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어떤 문양이 천강의 눈을 사로잡았다.
허리를 숙여 그것을 집어본다.
패(牌)다. 신분을 증명하기 위한 용도로 보인다. 일부가 훼손되어 알아볼 수 없었으나, 한 글자는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동(東)?"
동쪽에서 왔나? 동쪽의 새외 세력?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챙겨두면 유용할 것 같은 기분.
천강은 그 패를 챙겨 주머니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덧 아침 햇살이 완연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