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61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61화
61화. 북명신공의 완성
암운신공을 배워 은신력을 드높인 이후, 천강의 행보는 거침이 없어졌다.
대낮엔 기습으로 기절시켜 흡입하고 도망가고, 밤에는 몰래 숙소로 쳐들어가 기운을 쪽쪽 빨아먹는다.
그렇게 나흘이 지나자, 풍미관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흉흉한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들었어? 관리자들 말에 따르면 구미호가 나타난 게 아닌가 이야기 하더라."
"어떤 관리자는 그러던데? 역병으로 추측한다고."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이야기 하는 여울나무 아이들.
그들은 설마 천강이 내기를 빨아들여 생긴 일이라곤 조금도 생각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중에도 예리한 이들은 존재했다.
"내가 볼 땐 암운곡에서 수 쓴 거라니까? 어떻게 거기만 증상 나타나는 이가 한 명도 없어?"
"에이. 그래도 그건 좀 억측 같은데."
"아니, 그렇잖아. 그 요괴가 왜 우리만 골라서 흡입을 해? 뭐 우리 몸에 꿀이라도 발라져 있나?"
그러나 그들의 의견은 금세 묵살이 되었으니…….
"야야. 나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래. 그쪽도 쓰러져서 빌빌 대는 이들이 있다고 하더라. 우리한테 숨기려고 감춘 거란다."
"뭐야. 그런 거야……?"
물론 거짓이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지고, 여울나무의 전력이 확 줄어든 걸 확인한 천강이 미리 애들과 작전을 짠 것이었다.
이미 천강에게 홀라당 마음이 뺏긴 아이들은 천강이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그대로 따랐고, 천강은 그런 애들에게 지시했다.
"우리 쪽에서도 하루에 5명씩만 쓰러지자."
"의심받을까봐 그런 거지? 좋아."
"대신 누구를 쓰러지게 할지는 방중 선배랑 소운 선배가 정해줘. 이왕이면 몸 상태가 안 좋은 애들로. 어찌됐든 아직 시합은 끝난 게 아니니까."
"맡겨만 둬."
그렇게 선별된 인원을 천강이 쪽 빨아들여 쓰러뜨린 것이었다.
그러자 암운곡 짓이 아닌가 의심을 하던 사람들도 모두 생각을 고치고는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언제 자신의 차례가 될지 모르기에 그런 것이었다.
'제대로 된 고수 한 명만 있었어도 바로 증상을 알아봤을 텐데. 쯧쯧.'
최소 절정. 그것도 나이 좀 있고 경험도 많은 이가 있었다면, 바로 내기와 생기가 빼앗겨 일어난 증상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풍미관엔 그 정도의 실력자들은 없었다.
초절정인 초아조차도 처음에는 천강이 한 짓이 맞는지 어리둥절해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아, 근데 너무 졸리네.'
천강의 눈이 거의 감기다시피 한다. 밥 먹는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중 무려 열두 시진을 내기 흡수와 융합에만 쏟았더니, 정신력이 버티질 못한 것이다.
"천강. 오늘 밤은 그냥 좀 자."
"아녜요. 움직여야죠."
"야. 이미 내가 봤을 때 승부는 났어. 그냥 좀 자!"
천강이 비틀거리며 일어나자, 아이들 또한 합세해 말했다.
"맞아. 너 요새 너무 밤낮으로 무리했어. 오늘은 좀 쉬어."
"우리가 내일 더 열심히 할 테니, 천강 넌 좀 자."
그러나 자신의 볼을 세차게 두 번 쳐 잠을 깬 천강이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움직여보고. 상황 봐서."
"에휴. 야, 같이 가!"
혹시나 작업하다 조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 초아가 따라가고. 그걸 본 아이들은 굳은 얼굴로 마음을 다졌다.
"천강이 저리 열심히 하는데 우리도 질 순 없지. 내일부터는 더 빡세게 움직이도록 한다!"
"오오오!"
***
'거의 다 완성됐어. 곧 천 명이야.'
조교와 암운곡 아이들을 합하면 오백 명이 넘는다. 암살자들과 그 외에 싸웠던 이들을 합치면 얼추 육백도 넘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까지 엿새간 숨 쉴 틈 없이 흡수했으니 거의 천 명을 다 채웠을 터.
'계산대로라면 오늘 밤이 마지막.'
뭐 꼭 그게 아니라도 천강은 느끼고 있었다.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것을.
임맥에 자리한 기의 바다가 천강에게 계속 신호를 보내온 것이다. 다 끝나간다고.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다고.
'아마 다섯 안팎이야.'
천강은 피로한 정신을 붙잡고는 초아와 함께 여울나무 숙소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그늘 속으로 스르륵 파고들었다.
암운신공.
짙은 어둠이 두 사람의 몸을 빠르게 덮어나간다. 발소리는 물론 숨소리, 옷자락 소리까지 외부와 완벽히 차단한다.
천강은 능숙하게 문으로 다가가, 뒤를 슥 바라보았다. 여울나무 측 불침번 네 명이 장작불 앞에 모여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초아는 문의 경첩 부분을, 그리고 천강은 손잡이와 바닥이 만나는 면을 암운신공으로 감쌌다. 그리고는 문을 열자, 마치 미끄러지듯 스르륵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그대로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천강."
"네."
"너 지금 하는 이 일…… 네 무공과 연관이 있는 거야?"
음. 슬슬 눈치챌 때도 됐지. 아니, 오히려 눈치 못 채는 게 이상한 것이리라. 초아라면 능히 첫날 알아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야길 꺼낸다는 건, 참견하고 싶지 않으나 천강의 몸 상태가 걱정이 돼 그런 것이란 뜻.
암실에서 나온 이후로는 쭉 호의를 보여준 그녀에겐 굳이 숨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천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아요."
"그래도 좀 천천히 해. 누가 보면 마치 시한부 선고라도 받은 줄 알겠어. 잠시 미룬다고 죽는 것도 아니잖아?"
"뭐 그렇죠."
생각해보면 전생의 습관이 남아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숨통을 조여 오는 이종진기들을 보며, 어떻게든 살기 위해 조금이라도 빨리, 더 빨리 움직이던 그 시절의 습관이.
"오늘 아니면 내일 정도에 휴식을 취할 생각이에요."
"잘 생각했어. 이왕이면 오늘인 게 좋겠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걷길 잠시, 두 사람은 어느덧 건물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초아가 살짝은 놀란 얼굴로 말했다.
"분명 우리 쪽 숙소랑 형태가 같다면, 이 방 엄청 큰 걸로 아는데……. 안에 두 명밖에 기척이 안 느껴지네?"
그랬다. 방이 원체 크다보니 암운곡에서는 30명이 자는 숙소였다. 그런데 이곳에선 고작 두 명이 자고 있었다.
"누구지?"
의아함을 품고는 문을 연다. 그러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청청……이네?"
"그러네요."
"오호. 투파창귀의 제자가 됐다고 하더니, 3개월 전하고는 대접이 완전히 달라졌네."
확실히……. 당시엔 선배들과 동기들에게 발길질 당하며 괴롭힘 당했었는데, 지금은 고급스런 침대 위에서 비싼 담요를 덮고 잠자고 있었다.
천강은 우선 다른 한 아이에게 다가가 그녀를 기절시켰다. 그리고는 내기를 빨아들여 하나로 만들었다.
우웅.
몸을 한 차례 흔드는 작은 진동.
천강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제 남은 건 한 명.'
앞으로 한 명만 더 흡수한다면, 북명신공이 완성된다.
천강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스승님. 이 제자, 그토록 찾아 헤맸던 북명신공의 완성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천강은 떨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청청에게 천천히 손을 가져다댔다.
그런데 그 순간, 누워있던 아이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이번엔 제 차례인가요?"
"……알고 있었어?"
"예. 구소환패(九霄環佩)가 가르쳐 줬거든요."
고개를 내린다. 청청의 옆, 침대 위로 칠현금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처음 볼 때부터 보통 물건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자아가 깃든 신병이기(神兵利器)였다니.
"한 번 손 대봐도 돼?"
"예."
손을 슬쩍 내밀어 고금 위에 올려본다. 그러자 곧바로 앙칼진 목소리가 머릿속에 날아들었다.
- 꺄아악! 어디서 더러운 손을 대! 이 쇠똥구리 같은 게!
"……."
흥미롭네.
천강은 다른 욕설이 더 날아들기 전에 재빨리 손을 털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청청이 누운 옆 침대에 앉아 그녀에게 물었다.
"근데 왜 말 안 했어? 내가 하는 짓이란 거, 관리자나 다른 애들에게 알렸으면 됐잖아? 네가 말했으면 믿었을 텐데."
"도와주셨으니까요. 3개월 전 그 때…… 다른 사람들은 다 못 본 척하는데, 무진이도 그렇고 천강도, 초아 언니도 그렇고 나서서 절 도와주셨으니까요."
덕분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에 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청청은 그 때의 그 순간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
"그때 도와주신 덕분에, 제 인생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어요.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랬어요."
그랬던 건가.
- 천강 선배. 흑흑. 옆에 있어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전생의 기억이 스치듯 머릿속을 지나간다. 맹익 녀석, 잘 지내고 있겠지?
청청이 천강의 손을 잡았다.
"제 내기 필요하시죠? 가져가세요."
"그래."
도움을 주고 합당히 받는 일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는 천강은 그 내기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그 순간, 변화가 시작됐다.
'이건……?'
다르다. 이전의 흐름과는 다르다. 전에는 바깥으로부터 들어온 내기가 임맥으로 흘러들어가 기존에 있던 기운과 층을 이루고, 천강이 임의로 그걸 저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체내에 청청의 기운이 들어오는 순간, 갑자기 임맥의 기운이 요동쳤다.
처음에는 물방울 한 방울 떨어뜨린 것과 같은 작은 파문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이내 점점 커져 파도가 되었고, 조금 더 지나니 격류가 되어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그리고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기운을 빠르게 뒤섞기 시작했다.
쿠콰콰콰콰-
체내 내부에서 거친 소용돌이가 인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 서서히 속도를 줄여간다.
조금씩. 아주 천천히 잦아들고.
마침내 바람 한 점 없는 호수와 같이 잠잠해지는 순간, 천강은 몸에 변화가 이는 것을 느꼈다.
'기가 중단전으로 안 돌아가고 임맥에 그냥 머물러 있어?'
본래 내기 융합이 끝나면 새로운 기운이 들어올 때까지는 중단전으로 돌아가 있던 기운들이었다.
그런데 중단전으로는 소량만 가있고, 마치 이제부터는 임맥 또한 제 집이라는 듯 눌러 앉아있었다.
'세상의 일반 무학들과는 궤도를 달리 한다더니.'
완성된 이후의 행보도 천강의 예상을 단단히 벗어나는 북명신공이었다.
"천강? 왜 갑자기 막 웃어?"
"괜찮으세요?"
"아아. 괜찮아. 그냥 잠깐 놀랐을 뿐이야."
그러면서 천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초아의 손을 잡았다.
"누님, 잠깐 실례 좀 할게요."
"으응? 어, 그래."
기운을 살짝 흡수해본다. 초아의 내기가 엄지를 타고 흘러들어온다.
그런데 들어오기가 무섭게, 임맥에 고요히 자리하던 기의 바다가 갑자기 맹렬히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숨에 초아의 내기를 빨아들였고, 그대로 융합해 하나로 만들었다.
다시 잠잠해지는 기운.
"하, 하하핫."
드, 드디어!
- 처음에는 꼬박 하루가 걸리지만, 열 사람의 기를 섞으면 기의 바다가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서 한 시진이면 조화를 이루고. 백 사람의 기를 섞으면 조화를 이루는데 일각이면 충분하며. 천 사람의 기를 섞으면, 적의 기를 내 것으로 하는데 거리낄 것이 없다.
'과연……! 흡수하는 순간 내 것이 되다니!'
이는 그야말로 최강의 무공이라 부를 만하지 아니한가!
천강은 이곳이 여울나무 숲의 숙소라는 것도 잊은 채 큰 소리로 웃어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