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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94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9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94화

94화. 화정마녀

 

 

"방금 싸움 봤는가?"

"권광투마의 여식도 대단하지만, 그 상대…… 완전 애랑 놀듯 가지고 놀더군."

"소교주는 소교주라는 것이겠지."

처음엔 믿지 않았다.

소교주가 나타났는데 그 실력이 너무도 뛰어나 묵범귀영의 기록을 갱신할 정도라고 소문이 났을 때, 그들은 교주 쪽에서 무언가 장난질을 한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이후 소교주가 고작 2년차에 초절정 수준에 도달했다고 했을 때에도, 마교의 세력을 끌어 모이기 위한 수작에 불과했다 여겼었다.

그런데 완전 예상 밖이었다. 조금 전 그들이 본 소교주는 지금껏 그들이 암운곡 외부에서 들었던 것보다도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분명 내기로 둘린 주먹에 맞았는데도 아무런 타격이 없어보였지."

"그래. 심지어 내기로 몸을 강화하지도 않았었다."

"회피도 놀랍더군. 비록 공격을 제대로 피해내진 못했지만, 분명 그 상황에선 최선의 움직임이라 할 만 했다."

"못해도 10년 이상의 경험치는 쌓인 몸놀림이었지."

고개를 주억이던 신입 교관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결론을 내린 것이다. 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저 정도면 이미 암운곡뿐만 아니라 여울나무를 통틀어 절대적 자질. 의심할 여지가 없군."

"동감한다. 분명 소교주다."

"그럼 적삼혈마 쪽엔 내가 전하도록 하지. 이번 신입이 소교주로 볼 수 있는 자질이 있긴 하나, 그 재능이나 실력이 크게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라고. 가짜 소교주에 비하면 한참을 못 미친다고."

그들은 천강과 연화의 싸움을 다시금 상기하며 조용히 흩어졌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흑철마괴의 입가엔 만족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

 

연화를 따라 천천히 밖으로 나아간다.

불빛들이 사라지고 일순 어둠이 드리우더니, 이내 저 멀리서 환한 빛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출구였다. 그에 속도를 조금 높이자, 제일 후미에서 따라오던 진악이 옆으로 따라붙으며 조용히 천강에게 물었다.

"너지?"

"뭐가?"

"날 대신해 화살받이가 되어주고 있다는 사람."

말 참 곱게 쓰는구만. 당사자 앞에서 화살받이라니.

"난 천진악이야. 진짜 소교주."

"어, 그래."

"뭔 대답이 그래? 야. 나 진짜 소교주라고."

그러나 천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너 내 말 무시해?"

"그래. 무시한다. 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야. 너 지금 내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건 모르겠고, 나 같으면 목숨이 아까워서라도 절대 그런 소리 입 밖으로 안 낼 거다. 농으로라도 말이야."

그제야 뭔가 깨달았는지 녀석이 입을 다물었다.

본인이 조금은…… 아니, 꽤 많이 철없는 행동을 했다는 걸 안 것이다.

'그래도 눈치는 있어 천만다행이군.'

먼저 나간 연화를 따라 동굴 밖으로 나아간다.

환한 빛에 적응이 끝나자, 천강은 녹림이 우거진 숲과 그 앞에서 대기 중이던 한 여인을 볼 수 있었다.

한눈에 봐도 '나 성깔 좀 있소'하게 생긴 그녀는 세 사람을 보며 고개를 주억였다.

"연화, 오늘은 조금 늦었네?"

"응. 천강이랑 한 판 하고 왔어."

"오. 결과는?"

뭔가 기대에 찬 눈빛. 하긴. 요 근래 가문비기를 가르치고 있다니 그 결과가 궁금하긴 하겠지.

특히나 연화가 보여준 경이로운 행동들을 떠올려보면 충분히 이해도 갔다. 물론, 그녀가 원하는 대답은 안 나왔지만.

"당연히 졌지!"

"뭐? 연화야. 당연히 지다니? 우리 가문의 비기는 상대가 그 어떤 강자라도 순식간에 끝을 볼 수 있는 엄청난 무공이야."

"알긴 아는데, 상대가 천강이잖아? 나는 전력으로 임했는데 천강은 내기 한 톨도 안 쓰고 날 상대했어. 마지막엔 결국 내가 먼저 지쳐 쓰러지고 말았고. 헤헷."

지쳐 쓰러질 때까지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고?

화정마녀가 천강을 위아래로 훑는다. 한참을 그러던 그녀는 이내 눈을 작게 뜨며 천강에게 확신에 찬 어조로 물었다.

"화경에 도달했나 보네?"

"그렇죠. 이미 연화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요."

"마교 내로 알려진 것과는 꽤 차이가 있네. 분명 신선환을 받아 간 기록은 없었는데."

"신선환 없이 도달했습니다."

천강을 바라보는 화정마녀의 얼굴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득해졌다.

생환율 1할에도 못 미치는 도전을 한 녀석이 나타났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미친놈."

"칭찬 감사합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근데 너희들은 왜 나온 거냐?"

화정마녀의 질문에 연화가 대신 대답했다.

"어. 천강이랑 저기 누구더라……."

"진악이다."

"그래. 진악! 나 훈련할 때 옆에서 같이 훈련하고 싶대. 그래서 그러라고 했어!"

"연화야? 수련 중에 다른 이랑 함께 하다니. 그게 말이 된다 생각하니?"

양 볼이 좌우로 길게 늘어지는 형벌에 처한 연화가 아등바등했다.

"그, 그치만……."

그래도 머리는 있는지 차마 고기 때문이라고는 말 못하고, 천강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소녀.

천강은 잘했다며 찡긋 한 번 웃어주고는 앞으로 나섰다.

"저희도 여기 밖에서 훈련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그러려면 관리 감독하는 교관이 따로 있어야 하잖습니까. 그래서 연화에게 부탁 좀 했습니다."

"너희의 사정 따위 내 알 바 아니다. 돌아가라."

"연화도 괜찮다고 했는데 그냥 허락해 주시죠. 절대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이의 무공을 탐하는 대가는 크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죽고 싶지 않다면 그냥 돌아가라."

온몸에 서늘한 살기가 짓쳐든다. 그런 건 난생 처음 겪어보았는지, 뒤에 있던 진악이 주춤주춤 물러나는 게 보였다.

'하긴. 화경이 내지르는 기세에 고작 열 살짜리 어린애가 배기겠어.'

하지만 천강은 도리어 입가에 미소를 띠운 채 응대했다.

"그럼 이렇게 하지요. 저랑 일대일 해서 화정마녀님이 이기시면 저희는 물러나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기면 같이 훈련하는 것으로, 어떠십니까?"

"흥. 내가 그 제안에 왜 응해야 하지? 해볼 가치도 없는 일."

"아, 쪼셨습니까? 그럼 그냥 두렵다 하시지."

"뭐?"

천강은 일부러 얄미운 말만 골라서 화정마녀를 자극했다. 작년에 소운 사건을 겪으며 볼 수 있었던 그녀의 불같은 성격을 노린 것이다.

"하긴. 그 정도 자신감과 배포가 있었다면 진즉에 마두에 들으셨겠죠. 그래도 한편으로는 뛰어난 통찰력에 놀랐습니다. 제가 화정마녀님보다 더 강한 걸 깨닫고는 무모한 싸움은 피하시는 것 아닙니까?"

"야야, 천강! 뭐라는 거야? 언니 화나게 하면 너 진짜 죽어!"

"에이. 걱정 마. 너 화정마녀님 성격 몰라? 화낼 거였으면 진즉에 주먹 날아왔어. 벌써 싸움 시작하고도 남았다고. 안 그래?"

"확실히 그건…… 그렇지?"

그러며 슬쩍 고개를 돌려 여인의 얼굴을 보는 연화.

화정마녀의 이마에 핏발이 섰다. 천강은 그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한 사발 추가로 들이부었다.

"그래도 걱정 마십시오. 조금 전 있었던 일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연화네 언니니, 친히 명예는 지켜드리…."

덥석. 채 말이 끝나기 전, 천강은 멱살을 붙들린 채 그대로 허공에 떠올랐다.

"애새끼가 겁대가리를 상실해가지고. 소교주라는 신분 믿고 설치나 본데, 그리 죽고 싶다면 응해주지. 대신 뒈질 각오는 해야 할 거다. 난 네가 소교주건 마두 자식이건 일체 신경 안 쓰니까."

"그거야 저보다 강하다면 말이죠."

"하. 이 새끼가 끝까지……!"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 여자가 해당하리라.

"좋다. 따라와라."

천강을 놓아주고는 화정마녀가 앞장서기 시작했다. 연화는 그 옆에 붙어 어떻게든 화를 가라앉히려 애쓰고, 진악은 천강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너 진짜…… 배포가 무지막지하구나?"

"그러니까 화살받이를 했겠지? 그건 그렇고, 좀 교육이 됐나?"

"뭘?"

"지금 이 마교에서 소교주에 대한 대우 말이야. 이곳 마교는 말이야. 상대 지위가 마두건 소교주건 관심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며 천강이 말을 이었다.

"약하면 죽고, 강하면 살아남고. 그게 마교란 곳이다. 금방 화정마녀가 지껄이는 소리, 그냥 화나서 한 말이 아냐. 속의 진심이 묻어나온 말이다."

그랬다. 이따 붙어보면 알겠지만, 아마 조금도 봐주지 않고 달려들 것이리라.

"그러니까 살고 싶거든, 앞으로는 입 딱 다물고 최대한 빨리 강해져라. 그게 너랑 네 아버지를 위한 길이다."

이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아까 동굴에서 나오며 진악이 자신의 신분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것 같아, 경고를 좀 해준 천강이었다.

또한 지금은 임시로 소교주 자리를 누리고 있지만, 딱히 교주까지 되고픈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건 그렇고, 연화네 가문 사람은 참으로 단순해서 편하구만.'

진짜로 싸움에 응할 줄이야.

천강은 멍 때리는 진악을 이끌고는 재빨리 화정마녀의 뒤를 따랐다.

 

***

 

"규칙은 간단하다. 상대가 전투불능 상태가 되거나 항복 의사를 표시하면 그것으로 승부는 끝이 난다."

연화와 화정마녀의 개인훈련장소.

위로는 작은 폭포가 자리하고, 주위로는 봄의 따스한 기운이 완연하다.

사백동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곳은 천강도 익히 아는 장소였다.

암운곡에 고급 인사가 배치될 경우, 종종 그 부모들이 자식을 잠깐 불러내 교육을 시키곤 하는데 그곳이 바로 여기였던 것이다.

천강이 주변을 둘러보며 사색에 잠기자, 화정마녀가 살기를 드러내며 물었다.

"이해했나?"

"네. 그럼 바로 시작하죠."

천강과 화정마녀가 자세를 잡는다. 천강은 뒷짐을 지고, 화정마녀는 자세를 낮추고.

누가 봐도 명백히 하수를 대하는 자세.

"건방진……."

화정마녀의 이 가는 소리에 연화가 어색하게 웃으며 팔을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뒤로 쭉 빠지며 팔을 힘차게 내리그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시작!"

연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곧바로 달려드는 화정마녀.

아까 죽이겠다 한 말이 진정 농이 아닌 듯, 그녀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살격을 내질렀다.

팡. 팡. 팡팡팡팡!

폭포 위로 파공음과 폭음이 연달아 인다. 주먹과 발이 쉴 새 없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그러나 그걸 모조리 피해내는 천강의 얼굴엔 긴장감보단 불만이 그득했다.

'역시 아까 그 도발만으로는 부족했던 건가?'

나름 강하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그녀는 연화가 보여줬던 가문의 비기를 전혀 쓰지 않고 있었다.

즉, 아직도 전력을 내지 않고 있다는 뜻.

'하.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런 도발을 했는데? 이런 식의 싸움이면 섭섭하지.'

곧바로 천강의 주둥이가 움직였다.

"실력이 정말로 실망스럽군요. 이제 전부입니까?"

"하! 어디서 반격도 못하고 간신히 피해만 다니는 주제에 입을 놀리느냐!"

"아까 연화만 해도 제 얼굴에 일격을 먹였는데, 그보다 못하니 드리는 말씀 아닙니까?"

그러며 천강은 화정마녀와 얼굴을 마주 댔다. 그리고는 진심을 다해 비웃었다.

"풉."

그러자 곧바로 튀어나오는 반응.

"이, 이 새끼가……."

제자리에 우뚝 멈춰선 화정마녀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진다. 목부터 이마 위까지 근육이 수축하고, 그 위에 선 뚜렷한 핏발이 그녀가 지금 얼마나 열 받았는지를 보여준다.

"야, 천강! 거기서 언니를 한 번 더 도발하면 어떡해! 너 진짜 죽고 싶어?!"

걱정 가득한 목소리가 날아드나, 천강은 일부러 보란 듯이 손을 들어 보이며 여유를 부렸다. 그리고는 한마디 추가.

"걱정 마. 어차피 내가 이길 테니까!"

"야!"

그리고 그 순간,

팡!

화정마녀의 주먹이 바람을 가르고 쇄도해왔다. 몸을 살짝 비틀어 피하고자 했으나, 정확히 피할 곳을 알고 따라오는 주먹.

'드디어 사용하는 건가!'

코앞에 다다른, 담묵빛 내기에 둘린 주먹을 보는 소년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올라왔다.

천강은 희열에 찬 눈으로 화정마녀의 내기운용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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