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91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91화
91화. 걷히지 않은 의심
천마신공의 환검 기술들은 상대하기가 굉장히 까다롭다.
허초라 해도 그 하나하나가 일정 이상의 파괴력을 품고 있어, 어느 게 진짜인지를 구별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직 기감이 덜 발달한, 화경이 되지 못한 이들을 상대로는 거의 전승에 가까운 승률을 보이곤 했다.
'천마신공 환검결 제 1식, 춘풍낙화!'
그에 진악은 이 한 합에 싸움이 끝날 것을 확신했다. 그래. 분명 그리 생각한 그때였다.
퍽.
"어?"
시야가 홱 돌아간다. 턱 밑이 찌릿 거린다. 순간적으로 흐릿해진 시야가 정상으로 되돌아왔을 때, 그의 눈은 암운곡 너머 어둑어둑해진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나…… 지금 맞은 거야?'
붕 뜬 감각을 감지해낸 진악은 곧바로 몸을 말아 핑그르르- 바닥에 착지하는데 성공했다.
그런 그의 눈은 꽤 혼란스러웠다.
"퉤. 어떻게?"
상대를 본다. 분명 방금 일격은 절대 막을 수 없는 것이었는데?
"묻지 말고 덤벼. 나 너 빨리 쓰러뜨리고 밥 먹으러 가야 되니까."
"뭐?"
"아, 뭘 멍 때려. 안 오면 내가 간다!"
파바밧-
연화의 신형이 좌우로 빠르게 움직인다. 일단 한 대 맞아 기세가 꺾인 진악은 곧바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몸을 낮추고 상대가 영역 내로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리고는 빠져나갈 수 없는 거리까지 들어오는 순간,
'천마신공 쾌검격 제 3식, 선풍지회!'
진악의 검이 빠르게 움직이며 전방위를 휩쓸었다.
칼날 같은 바람. 어찌나 빠른지 검에서 나는 소리부터가 남달랐다.
'연격!'
이후에는 상대를 향해 집요하게 쫓아가며 맹공을 퍼부었다. 달빛에 천진악의 검광이 수차례 번뜩였다.
그 말도 안 되는 신위에 좌중은 숨죽이는 소리로 그득했다.
"와아. 무슨 속도가……."
"저게 1년차의 실력이라고?"
그러나 그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일이 나타났으니…… 그것을 받아내는 상대가 그 모든 공격을 다 피한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막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건 누구나가 하는 거니까.
피하는 것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동체 시력이 발달한 몇몇 괴물들은 쾌검을 모두 피해내는 기행을 펼치곤 하니까.
그러나 눈앞에 상대는 뭔가 달랐다. 보고 피하는 것 같긴 한데, 근본적으로 뭔가 달랐다.
퍽.
다시 한 번 들어온 상대의 공격. 아니, 반격. 진악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복부를 부여잡고는 그 앞에 무릎 꿇었다.
무려 오십여 번을 휘둘렀으나 단 한 번도 맞추지 못한 상황에 그의 자신만만한 기세는 확 수그러들었다.
"더 할래?"
"……."
"그럼 끝난 거다? 야, 애들아! 밥 먹으러 가자!"
싸움을 끝내자마자 애들을 데리고 우르르 식당으로 몰려가는 소녀.
김빠졌다는 듯 한숨을 내쉰 소운도 그 뒤를 따라가고, 그렇게 암운곡 밑바닥에는 몇몇 애들과 천강, 무진, 그리고 1년차들만 남게 되었다.
"연화가 실력이 많이 늘었네?"
"예, 형님. 최근에 화정마녀님이 사백동굴 밖에 오셔서 따로 무언가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화정마녀가?"
그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 방금 그 말도 안 되는 능력은?
연화의 움직임이 암운곡 애들 중 빠른 편이긴 하나, 조금 전 쾌검들을 보고 피할 수 있는 수준은 못 되었다. 그러나 모두 피해냈다.
그것이 천강의 관심을 샀다.
"뭔가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이리 강하게 든 건 오랜만이네."
거의 10년만인 것 같다. 그런 천강의 중얼거림을 들은 신병이기들이 난리를 피웠다.
- 쓸데없는 것에 관심 갖지 말고 검을 휘둘러라!
- 그래! 오늘 치 아직 1000번 더 남았다!
- 소년. 지금 일정도 다 소화 못하면서 남의 것을 탐내다니요!
그러나 전생부터 무언가 배우고 싶은 것이 생기면, 어떻게든 몰래 훔쳐봐서라도 배운 천강이다.
피할 수 없는 공격들을 피해 내다니. 천강은 모처럼 배움의 욕망이 샘솟는 걸 느꼈다.
그런 그때였다. 식당으로 뛰어갔던 연화가 다시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아직 주저앉아 있는 진악에게 손을 내밀며 왈.
"너도 같이 밥 먹자."
"뭐?"
"한 판 했으니 배고플 거 아냐? 자, 가자."
"어? 자, 잠깐. 나는……."
그러나 상대 의사 따윈 듣지 않고 억지로 끌고 가는 연화.
"야, 1년차들. 너희들도 후딱 와라. 암운곡은 밥 때 늦으면 밥 못 먹는다!"
그렇게 그곳엔 무진과 천강만이 남게 되었다.
"연화 쟨 여전하네."
"친화력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것도 그렇고. 식욕 말이야."
"아……. 그래도 많이 나아진 겁니다. 요새는 조금 참을 줄 안다고 할까요?"
저게 나아진 거라……. 누구에게 시집갈진 몰라도 그 미래가 심히 궁금해지는구만.
"그럼 우리도 갈까?"
"예, 형님."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천강은 한쪽을 향해 슥 고개를 숙였다.
그 시선 끝 그늘 속에는 흑철마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무진 말대로 연화 녀석의 친화력은 알아줘야겠네. 내가 나설 필요도 없이 잘 해결하다니.'
사실 흑철마괴가 암운곡에 급히 와 달라 부탁한 것은 외부 시선도 시선이었지만, 소교주가 한 성격 하는 것이 주원인이었다.
'천강. 소교주님이 성깔이 있다 보니, 암운곡에서 필히 사고를 칠지 모른다.'
'어느 정도인데 그럽니까?'
'자기가 최고인 줄 안다. 그런데 문제는 그만큼의 실력도 재능도 있다는 것이다.'
감이 바로 왔다.
'지위가 있다 보니 매 맞을 일도 없었을 테고, 그나마 뭐라 할 수 있는 아버지는 얼굴 비치기도 힘들 정도로 바쁜 상태. 어떤 성격인지 감이 확 오는군요.'
'암운곡 인원들과 분란이 없게 잘 녹아들도록 도와줬으면 한다. 지금 성격이라면…… 솔직히 교주가 되긴 힘들다.'
'걱정 마십시오. 자고로 매질도 해본 녀석이 더 잘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주 뼛속까지 고쳐놓아, 애들과 잘 어울릴 수 있게 만들어 놓겠습니다.'
그에 반 죽일 생각으로 각오하고 왔더니, 연화가 알아서 잘 해결해줘서 딱히 움직일 필요가 없게 된 천강이었다.
'그래도 버릇이란 쉬이 고쳐지지 않는 법.'
한 번 손보긴 해야 할 거다.
천강은 무진과 함께 암운곡 식당으로 향했다.
***
"저 애가 그 앤가? 이번에 소교주로 오해를 받았다던?"
연화와 진악이 싸움에 돌입하기 직전, 어둠 속으로 그들을 주시하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암운곡에 새로 들어온 신입 교관들이었다.
그들은 새로 들어온 신입 대표를 매서운 눈으로 훑어보았다.
"확실히 내기가 남다르군."
"남다른 정도가 아니다. 너무 많아."
"저 정도면 못해도 상급 영약을 서른 개가량 처먹여야 나오는 내기양이다."
"그래. 절대 평범하진 않아. 의심스러워. 쥐 장수를 통해 외부에서 들여왔다 말했나?"
"듣기론 그렇다."
마두의 자녀도 아니고, 아무런 연줄도 없이 외부에서 들어온 수준이 저 정도라니.
"뭔가 냄새가 나는데."
특히나 진악이 기술을 펼치는 순간, 그들은 거의 확신했다. 지금 저 소년이 진짜 소교주라고.
그러나…….
퍽. 단 한 방에 역으로 나가떨어지는 소년.
심지어 그 이후로도 위협적이고 빠른 쾌검을 선보였지만, 단 한 대도 맞추지 못했고. 역으로 복부에 일격을 허용하면서 싸움은 싱겁게 끝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마치 식전에 가볍게 몸 풀었다는 듯 식당으로 사라지는 연화를 본 그들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방금 걘……."
"권광투마의 여식이다."
"일개 마두의 자녀가 저 정도라고? 요새 애들 수준이 높다더니, 이 정도였단 말인가?"
작년 천산 기경만회 이후로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아졌단 평가가 지배적이었는데, 그걸 이제야 깨닫는 신입교관들이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잘못 생각했던 모양이로군."
"그러게 말이네."
"보고는 조금 미루도록 하지. 더 지켜본 뒤 확신이 서면 하세."
***
'흐음. 대체 어떻게 그걸 피한 거지?'
아무리 생각해보고 생각해봐도 연화의 움직임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무려 현경인 자신이 이해를 못할 기술이라니.
'보법인가? 아니면 신법? 무슨 특수한 형(形)이 들어간 반격 초식?'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이지만 하면 할수록 즐겁다. 어떤 무공인지는 몰라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물밀듯 샘솟는다.
"형님.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그 전에 무진아."
"예, 형님."
"애들에게 가서 몰래 전하렴. 내가 암운곡 최강자인 거 한동안 좀 숨기라고."
"그 1년차 대표 때문이지요?"
역시 우리 무진이. 눈치 하나는 초아를 넘어선다니까.
천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무진이 빠르게 걸음을 옮겨 식당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 천강은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으슥한 어둠 속으로 자릴 옮겼다.
"주군, 인사드립니다."
"오랜만이네, 일귀. 그동안 별 일 없었지?"
"예. 다만 빠르게 보고 드릴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일귀로부터 한 차례 미약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주변에 혹여나 듣는 귀가 있나 확인하는, 일종의 그의 습관이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일귀가 보고를 시작했다.
"일단 여울나무 쪽에서 아직 주군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예. 그래서 이번 신입 교관들을 모두 매수했고, 그들을 통해 1년차 대표를 주시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 그렇단 말이지?
"이거 아무래도 내가 소교주라는 걸 한 번 더 보여주는 게 좋겠네."
"굳이 그럴 필요 있습니까? 이미 챙길 건 다 챙기셨으니, 이쯤에서 적들에게 의심의 여지를 심어주는 것도 좋을지 모릅니다."
"물론 그럴 지도 모르지."
"혹 거래에 성실히 임하실 생각이십니까?"
암살자들은 다른 건 몰라도 거래와 신용만큼은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이들.
천강이 침묵하자, 그걸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인 일귀의 얼굴엔 존경심이 올라왔다.
심지어 신병이기들 또한 마찬가지.
- 역시 우리가 택한 인물답구먼!
- 암! 거래를 했다면 성실히 임해야지! 그게 정도(正道) 아닌가!
- 정말 멋져요, 소년!
그러나 천강의 속내는 전혀 달랐으니,
'아직은 아냐. 소교주 신분으로 해먹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누리고 진액을 쪽쪽 빨아먹을 때까진 절대 안 되지.'
1년간 소교주로 오해받으며 개고생했다. 아직 그것에 대한 보상을 반도 못 받았다고 생각하는 천강이었다.
'이왕 하는 거 확실히 하는 게 좋겠지.'
소년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올라왔다. 종종 그런 표정을 짓는 주군을 봐온 일귀는 잠시 침묵을 유지해, 자신의 주군이 생각을 마치길 기다렸다.
"그래. 다음은?"
"적삼혈마가 무슨 일을 꾸미는 것 같습니다."
"일을 꾸민다? 뭔지는 아직 못 알아냈고?"
"예. 아무래도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야 얻을 수 있는 정보인지라……. 죄송합니다."
"아니다. 적이 무언가를 꾸미고 있단 것만 알아도 그 계획은 이미 반은 실패한 거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지. 수고했다. 그럼 이제 끝?"
식당에서 무진의 기운이 밖으로 나오는 게 느껴진다. 그것을 똑같이 느꼈는지, 일귀가 조금은 빠른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하수로를 오고 가던 중 우연히 사람 하나를 생포했습니다."
"생포? 누군데?"
"암룡이라고…… 이번에 투파창귀에게 몰살당한 만천옥주의 핵심전력, 오룡대 중 하나입니다. 쓸 만한 정보가 있을까 하여 붙잡아두었고, 고문할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오룡대라……. 들어본 적 있다.
능히 마두에 들 실력들이나, 만천옥주의 원활한 정보수집과 더러운 일처리를 위해 서열경쟁에 참여하지 않은 고수들이라고.
"고문하지 말고 잘 설득해봐."
"회유하란 말씀이십니까?"
"어. 그 머리와 몸속에 무림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면, 분명 복수하려 할 거다."
아마 혼자만 살아남았으니 더더욱 그리하겠지.
"우린 그걸 이용해 자발적으로 우리에게 동참하게 만든다."
"그래도 쉬이 전향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저희 같이 애매한 집단에 있느니, 교주 쪽으로 바로 달려갈지도 모릅니다. 능히 마두에 들 실력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전혀 걱정할 것 없다는 듯 천강이 환히 웃었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 그러면 필히 우리 제안에 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