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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89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6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89화

89화. 투파창귀의 저력

 

 

마교서열 4위 흑도마황.

아니, 이제는 만천옥주가 사라졌으니 마교서열 3위 흑도마황. 그것은 교주를 제외하곤 이 자가 마교에서 3번째로 강하단 의미였다.

그랬을 것인데, 지금 당사자는 말도 안 되는 일을 겪고 있었다.

"무, 무슨……."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흑도마황의 동공이 크게 떨렸다.

공격을 하는 족족 다 막아내고, 기술을 날리는 족족 다 파훼하다니.

문제는 투파창귀 본인이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당사자는 싸움 시작 이후 팔짱 한 번 풀지 않고 있었다. 처음 그 자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흐아아앗!"

흑도마황이 최후의 발악을 하듯 온 내기를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단숨에 투파창귀에게 좁혀들어 흑색 도를 무식하게 휘둘렀다.

후웅. 단숨에 반으로 쪼개버리겠다는 듯, 허공에서부터 그의 도가 바람을 가르고 내려간다.

그러나 여전히 미동도 않는 녀석. 그 순간 투파창귀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파아아앙!

폭음이 인다. 강기와 강기가 맞부딪치며 강한 폭발이 일었다. 싸움의 결과는….

"큭."

달려들었던 흑도마황이 도리어 강하게 튕겨져 나갔다. 그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땅바닥에서 일어설 생각도 못한 채, 마교서열 1위의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네 개의 악기가 비호하듯 투파창귀의 앞을 방어하고 있다. 방금 그를 막아선 건 고작 저 네 개의 기물들이었다.

"하……."

머리가 차갑게 식는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녀석의 머리통을 부숴버리겠단 생각이 가득할 땐 몰랐는데, 머리가 차갑게 식자 갑자기 이전엔 안 보이던 것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신병이기란 게 이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건가?'

싸움이 끝났다 판단했는지 그제야 발을 놀리는 상대. 흑도마황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이 호선을 그린다.

"뭐하나? 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내게 대든 건가?"

뿌득. 할 말이 없다. 흑도마황이 이렇다 할 말대꾸도 하질 못하자, 투파창귀의 입꼬리가 스윽 말려 올라갔다.

"이건 뭐…… 실력이 내 후계만 못하구만. 이런 녀석의 제자였으니, 암운곡에서도 화를 피하지 못하였던 것일 테지."

"네 이노오옴!"

그러나 벌떡 일어서려던 흑도마황은 그대로 몸을 주저앉힐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엄청난 기운이 쏟아져 내려와 그의 움직임을 봉쇄한 것이다.

간신히 고개를 들어 시선을 위로 향한다. 여덟 개의 악기가 그의 머리 위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쪽팔린 줄 알아라. 명색이 현경인데 이 무슨 꼴인지. 쯧쯧쯧."

"너 이 새끼……!"

"앞으로는 뻘짓 하지 말고 적삼혈마에게 일을 다 맡긴 뒤, 조용히 굴에 틀어박혀 훈련이나 더 해라. 그 실력으로 마교서열 3위인 게 알려진다면 너도나도 되겠다며 달려들 테니."

투파창귀가 몸을 돌려 흑도마황에게서 멀어진다. 그 위에서 짓누르고 있던 악기들이 그 뒤를 따른다.

억제가 풀려 비틀거리는 흑도마황은 투파창귀의 뒷모습을 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 치욕. 오늘의 수모.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내 언젠가 내 제자의 피 값까지 톡톡히 받아낼 것이야……!'

 

***

 

"투파창귀는 성품이 잔혹하다. 소요악사와 같은 형제인지 의문이 들 정도지.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요악사보다도 실력이 더 뛰어나단 것이다."

"뛰어나다 하시면?"

"박자, 가락, 선율 등등 음악에 대한 이해도와 응용이 소름이 돋을 정도지.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싸움이 일단락되고 태공이 소모된 내기를 보충하는 동안, 천강의 앞에서 노인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투파창귀의 진짜 무서운 점은 총 아홉 개의 신기들을 들고 있고, 그것들을 다루는 데 매우 능숙하다는 것이다."

노인이 시선이 천강의 머리 뒤를 향한다.

그 시선을 받은 천강의 신병이기들이 몸을 공중 위로 띄웠다. 마치 노인에게 지금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두라는 듯 자랑하는 행세였다. 그러나…….

"너희들 뭐하냐?"

천강의 말 한마디에 바로 꼬리를 내리고 내려앉는 녀석들.

그 모습에 노인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신병이기 각각의 능력은 현경 수준. 즉 아홉 개의 신기들을 들고 있다는 건, 현경의 경지를 이룬 아홉 동료를 곁에 두고 함께 싸운다는 것과 같다."

"아홉 동료라……. 결국 녀석의 주특기는 몰매라 이 말이군요? 무기발에다가."

꼭 그런 놈들 있다. 본인 실력만으로는 자신 없어서 무리를 이루고 다니는 놈들.

노인이 껄껄 웃는다.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지. 하지만 마냥 무시할 순 없을 게다. 현경이 됐으니, 이제 현경 하나의 존재가 얼마나 강한지 느끼고 있지 않느냐? 특히 방금 신병이기들의 힘을 직접 체험해봤으니 더 잘 알 터."

"그건 그렇지요."

직접 겪어보니 알겠다. 내 실력에 이것들까지 들고 설친다면, 다른 현경 여러 명이 한꺼번에 덤벼 와도 싸워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현경급 무기를 아홉이나 동료로 두고 있는 녀석이라…….

진짜 내가 어마어마한 녀석을 적으로 두었구나.

"아무튼 무공 자체는 네가 더 좋을지 몰라도, 전체적인 전력 부분에서는 밀리는 상태라 보면 될 것이다."

"그러네요. 현경 둘에 해당하는 전력 차라."

"차이가 더 날 것이다. 신병이기들의 능력은 사용자의 이해도에 영향을 받는다. 조예가 깊으면 능히 현경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엔 화경만도 못할 것이니라."

하아. 듣고 보니 그러네.

안 그래도 검에 대한 조예가 낮아, 천강은 이것들로부터 현경 도움도 직접적으로 못 받았었다.

그러니 온전히 그 능력을 발휘하기 힘든 상태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즉, 검에 대한 깨달음이 적어 큰 효율을 이끌어낼 수 없는 너로서는 녀석을 이기려면 더 많은 신기를 얻거나 그 위 경지에 도달하는 수밖에 없다."

"혹은 검 수련을 하던지요."

"끌끌. 그렇지. 그래야 승부수를 띄울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네가 상대하려는 적은 그 정도의 존재니라."

그때 휴식을 마친 태공이 다가왔다.

"내게 신검만 있었어도 재미있는 싸움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참으로 아쉽군."

신검이라니.

"혹시 교주셨습니까?"

"그래. 난 신교의 22대 교주 천태공이다."

22대 교주. 지금 교주가 27대니, 그는 아주 머나먼 선배라 할 수 있는 존재였다.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천강은 뒷말을 생략했지만, 눈치가 빠른지 그가 되물었다.

"약하냐 이 말이지?"

"아, 예."

"그…… 운 좋게 선계에 갔다 올 수 있었거든. 근데 거기 가서 좀 놀다 왔더니, 세월이 이리 훌쩍 지나갔지 뭔가?"

그의 말에 따르면 선계 가서 겨우 바둑 몇 판 두고 왔을 뿐인데, 교주 지위도 잃어버리고 그의 빈자리는 다른 이가 차지하고 있었다고 했다.

"쯧쯧. 그때 신검을 들고튀었어야 했는데."

"신검을 못 들고 다니는 겁니까?"

"신검은 천산 내에서만 들고 다닐 수 있다. 능력이 좋은 만큼 꽤 까다로운 조건을 달고 있는 셈이지."

그러면서 태공이 천강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의 시선은 천강의 뒤쪽에 닿아 있었다.

"그런데 그건 왜 사용 안 하냐? 아까 보니까 혼자만 가만히 있던데?"

"아…… 이거요?"

천강은 태공이 궁금해하는 물건을 잡아들었다. 그것은 건방 떨던 선계 토끼에게서 빼앗아 온 흑색 절굿공이였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노인을 흘끗 보더니, 천강에게 전음을 날렸다.

- 너 그거 선계에서 가져왔지?

-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 나 그거 거기서 본 적 있거든. 진짜 겁나게 싸가지 없는 토끼 녀석이 들고 다녔었지.

그 말에 천강이 웃으며 대답했다.

- 안 그래도 너무 화를 돋우기에 냉큼 뺏어왔습니다.

그러자 그가 속 시원하다는 듯 크게 웃어젖혔다. 토끼 녀석, 눈앞에 사내에게도 꽤나 얄미운 짓을 골라 했던 모양이다.

실컷 웃고 난 태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무형원에 들어가며 천강에게 말했다.

"소년. 한 판 더 하자. 이번엔 그거 들고 덤벼봐라."

"이거 말입니까?"

"어. 그거 은근 개사기 무기거든. 어쩌면 네가 들고 있는 신병이기들보다 더 좋을지도 몰라."

이게?

천강은 의아함을 품고는 절굿공이를 들고 나섰다. 그 말을 들은 신병이기들은 너도나도 분개하고 나섰다.

- 하. 이깟 곡식이나 빻는 잡스런 것과 우리를 비교하다니!

- 그러게 말일세! 이참에 아예 단단히 혼을 내주는 게 어떠한가?!

- 저도 공감합니다. 비교할 대상이 다 있죠!

"그럼 바로 들어간다! 한 번 내기를 싣지 말고 때려봐라."

순간적으로 자세를 낮춘 태공이 훅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천강은 절굿공이를 수직으로 세워 태공의 횡 베기를 막아낸 뒤, 강기를 싣지 않은 채 힘껏 위로 쳐올렸다.

파앙!

"응?"

엄청난 파공음과 함께 하늘 위로 솟구치는 사내.

그는 멀리멀리 끝없이 날아오르더니, 이내 무형원 밖 절벽 너머까지 날아가 사라졌다.

"……."

천강은 몽둥이를 머리 위로 쳐들었다. 그리곤 바닥을 한 번 내리쳐 보았다.

쿠콰콰콰콰-

대지가 산산조각이 나 분쇄된다.

아까 공포(公布)가 날린 비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위력이다.

- …….

- …….

- …….

곧바로 조용해지는 신병이기들.

천강은 다른 의미로 조용해졌다.

'토끼 이 새끼, 무기발이었네?'

 

***

 

쾅.

"오셨습니까? 그런데 어찌 행색이……."

옷이 온통 흙투성이인 걸 본 수행원의 의문에, 흑도마황은 그를 손짓했다.

"무견, 애들을 전부 모아라. 너희들이 해줘야 할 일이 있다."

"무슨 일이십니까? 역시 도패천황의 일은 투파창귀 그 자의 짓이었습니까?"

흑도마황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 기간 그를 뒤따르던 무견은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명하십시오. 저희가 어떤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

"이제부터 난 폐관 수련에 들어갈 것이다. 그 사이 너희들은 마교에 있는 모든 서고를 돌아다니며 신물(神物)에 대한 기록을 찾아라."

"신물이라 하심은?"

"투파창귀 녀석…… 신병이기를 무려 아홉 개나 들고 있더군."

"아, 아홉 개 말입니까?"

신병이기는 그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능력과 신위를 발휘한다.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능히 마두에 들 수 있을 정도인데, 그걸 아홉 개나 들고 다닌다니?

"솔직히 아직 신병이기가 하나도 없는 나로서는 내 제자의 복수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신검과 비견되는 신물(神物)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너희들이 은밀히 움직여 찾아주어야겠다."

"명을 받듭니다. 마교 전체를 뒤져서라도 단서가 될 만한 것을 꼭 찾아내겠습니다!"

"그래. 개인 시간이 크게 줄겠지만 꼭 좀 부탁한다고 전해라."

"걱정 마십시오. 도패천황은 저희에겐 가족과 같았습니다. 모두가 기꺼운 마음으로 이 일에 동참할 것입니다."

무견은 곧바로 흑도마황의 거처를 벗어나, 밑에 이들을 끌어 모았다. 그렇게 모인 오십여 명의 복면인들.

이들은 모두 흑도마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인물들로, 기르고 엄선된 흑도마황의 정예들이었다.

무견은 자신이 받은 지시를 그들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모든 서고를 돌아다니며 신물(神物)에 대한 단서를 수집한다. 최대한 빠르고 은밀하게 진행되었으면 하는 게 주군의 뜻이다. 서고에 대한 구역 분담은 내일 아침 바로 전달해주겠다. 그러니 오늘 미리 시간 조율을 해놓도록."

"명."

"그럼 이만 해산한다."

빠르게 사방으로 흩어지는 자들.

무견 또한 조용히 흑도마황의 처소로 돌아가고. 그렇게 그들이 모인 자리엔 적막감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풀벌레 소리가 나직이 들리기 시작할 무렵. 그늘 속에서 누군가 슥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최근 새 신분을 만들기 위해 여울나무 쪽을 살펴보고 다니던 무영삼귀의 첫째 일귀였다.

"……신물(神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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