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88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88화
88화. 신병이기의 힘
"투파창귀님. 만천옥주의 일, 정말로 투파창귀님께서 하신 일입니까?"
적삼혈마의 질문에, 뭘 새삼스레 그런 걸 묻느냐는 듯 중년 사내가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래."
"혹여나 다치신 곳은?"
"내가 그깟 잡것에게 당할 성싶으냐?"
당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처 하나 없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적삼혈마."
"예."
"내가 놈을 잡았다는 걸 마교 곳곳에 뿌리도록."
"……죄송합니다, 어르신. 기회를 놓칠 순 없어 이미 소문냈습니다."
"크큭. 그래. 잘했다. 내 너의 그런 점이 참 마음에 든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즉각 최대 이득을 뽑아내는 그런 부분이 말이야. 조심성이 많은 게 좀 흠이지만."
"칭찬 감사합니다."
"내가 무슨 의도로 그런 건진 알지?"
적삼혈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뛰어난 소교주의 등장으로 인해 중립 세력이 교주 쪽으로 몰려가던 참이었다. 당장은 몰라도 미래에 가치가 있다 판단한 것이다.
한 번 흐름이 결정되면 그걸 뒤바꾸긴 매우 힘든 법. 그에 골머리를 앓던 그때, 기회가 찾아왔다. 소교주 교육이 발표된 것이다.
너도 나도 암운곡으로 몰려가는 사람들.
그러나 투파창귀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전력에 공백이 생겨버린 다른 현경을 노렸다.
"아마 근시일 내에, 교주 쪽으로 붙으려던 중립 세력이 투파창귀님 밑으로 몰려들 것입니다."
"그럴 테지. 이로써 확실해졌으니 말이다."
현 마교에서 제일 큰 세력은 교주와 투파창귀.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해야 하고, 이후에 진 쪽이나 선택을 하지 않은 쪽은 모조리 모가지가 날아가게 된다.
문제는 누가 더 세력이 강성한지, 어느 우두머리가 더 강한지를 알 수 없다는 게 중립 세력들의 선택을 주저하게 만들었는데, 이번에 그걸 엿볼 수 있을 만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현경끼리 싸움이 일어났으나 투파창귀님께서 상처 하나 입지 않으셨으니, 아마 다들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마교서열 1위 투파창귀가 현경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교주조차도 능가했을지 모른다라고."
그리고 실제로 교주 쪽은 그 곤혹을 제대로 치르고 있었다.
"교주가 제대로 머리를 싸매고 있겠구만. 크크큭."
역전된 상황에 그리 즐거이 웃고 있는 그때였다.
쾅. 적삼혈마의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부술 듯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이는 마교서열 4위 흑도마황이었다.
"흑도마황님, 평안하셨습니까."
예를 올리는 적삼혈마. 그러나 짙은 눈썹을 가진 사내는 그를 무시하고 곧바로 투파창귀 앞에 가 섰다.
그리고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왈.
"똑바로 말해라, 투파창귀. 내 제자, 네 놈 짓이냐?"
"흠. 자네 제자 일을 왜 내게 따지러 오는 것이지? 굳이 범인이 될 만한 이를 짚자면 오룡대 아닌가?"
"내 제자는 내가 잘 안다. 녀석은 그깟 오룡대 다섯이 한꺼번에 덤벼도 죽지 않을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호오. 자네 제자가 그 정도의 실력을 갖췄었나? 그것 참 놀랍구만. 그런데 왜 서열은 고작 19위에서 놀고 있었나. 오룡대를 한꺼번에 상대하려면 능히 11위 안에는 들었을 것인데?"
투파창귀의 혀 놀림에 흑도마황의 이마에 힘줄이 솟아났다.
"곧 현경에 도달할 것이었고! 그 이후에 서열 경쟁에 참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시신을 살펴본 백발괴의가 그러더군! 만천옥주 새끼를 죽인 녀석과 동일범 소행이라고!!"
"쯧쯧. 그놈의 늙은이가 쓸데없는 말을 했군."
의심을 확신으로 심어줄 대사에, 흑도마황의 눈에 힘이 실렸다. 투파창귀는 팔짱을 끼며 그 말에 긍정을 표했다.
"그래. 내가 녀석을 죽였다. 처음에는 죽일 생각이 아니었네만, 가만 생각해보니 모양새가 안 살겠더군."
"뭐?"
"암운곡에 쳐들어가 다 죽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게 자네 제자라 치지.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만천옥주 놈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마치 우리가 그 일을 벌이기 위해 다 짠 것 같지 않은가?"
이곳 마교가 협의와 명분을 따지지 않는다 해도 엄연히 일정 선(線)이란 게 있는 곳이다. 그걸 자칫 잘못 넘으면, 중립세력이 모조리 교주 쪽으로 들러붙을 지도 몰랐다.
"그냥 대의를 위해 자네 제자가 희생했다 생각하게. 덕분에 우리 세력이 크게 강성할 기반을 마련하지 않았나? 그치, 적삼혈마?"
그러나 질문을 받은 적삼혈마는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잘못 대답했다가는 폭발 직전의 흑도마황의 도(刀)에 목이 날아갈까 해서였다.
그리고 그 선택은 탁월했다.
적삼혈마가 침묵함으로써 그 칼날은 전혀 다른 이를 향하게 됐다.
"네, 네 놈이 감히……! 그럼 난 우리 세력의 발전을 위해 네 제자의 목을 가져가겠다!"
"하. 뭐라?"
투파창귀가 목을 좌우로 푼다. 그의 몸짓에 악기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작은 비명을 지른다.
"그깟 발 한쪽 없는 계집 하나에 여울나무 예산 대부분을 쏟아붓다니, 그게 말이 된다 생각하나!"
"개소리를 지껄이면 바로 모가지를 따버리려고 했더니, 그래도 나름 일리 있는 이유로군."
두 현경으로부터 거센 광풍이 휘몰아친다.
사태가 쉬이 끝나지 않을 거라 직감한 적삼혈마는 재빨리 사무실 밖으로 피신했다.
흑도마황이 도를 뽑아든다. 투파창귀 또한 피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투파창귀. 지금이라도 예산을 원래대로 되돌려라. 그럼 제자 일은 내가 대의적으로 참아보겠다."
"흥.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긴. 싸울 명분이 안서나 본데, 내가 한마디 거들어주지."
비릿한 미소가 투파창귀의 얼굴에 올라왔다.
"마교는 힘의 논리다. 내가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면 날 밟고 올라서라. 근데 가능할진 모르겠군? 제자 녀석은 영 허깨비던데. 겨우 손짓 한 번에 픽 죽어버렸지, 아마? 쯧쯧."
"어디서 그 건방진 입을 놀리느냐! 닥쳐라아아!!"
일갈과 함께 참다 참다 폭발한 흑도마황의 팔이 움직였다. 그 단 일격에 건물이 완파되고 주위는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
"천마신공 파검결 제 4식……."
잠깐. 천마신공?
공중에 떠오른 태공의 검이 천강에게 향한다. 천강은 해일과 같은 거대한 기운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걸 느꼈다.
"파천일검!"
미친?! 진짜 천마 기술이야?
무림에서 그 사람의 강함을 나타내는 제 1척도는 바로 경지다.
제아무리 기술이나 요령이 뛰어난다 한들, 일반적으로 경지 차이가 나면 그 상대를 이기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종종 뛰어난 재능과 기연이 겹쳐, 그 경지란 벽을 넘나드는 말도 안 되는 무공이 탄생하기도 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천마신공이었다.
우레와 같이 떨어져 내리는 내기폭탄 아래서 천강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냐?'
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든다. 까딱 잘못했다간 진짜 뭔 일 날 듯싶어.
천마신공은 수많은 무공 중 파괴력에서만큼은 일품인 무공. 이런 걸 온전히 받아내는 건 도저히 무리였다.
그때 천강의 머리 위로 7개의 검들이 비호하듯 둘러쌌다.
- 자, 그럼 간만에 실력 발휘 해보실까!
- 누가 나설래?
- 누가 나서긴요. 다들 정신 차리고 집중하세요! 운용방식이 교묘합니다. 방어가 쉽지 않을 거예요.
검 7개가 원을 그리며 뱅글뱅글 회전한다. 푸른 기운이 넘실대며, 전격이 번쩍인다.
그 신묘한 행태에, 천강은 곧바로 전음으로 쏘아붙였다.
'야야. 다들 비켜!'
- 걱정마라, 소년!
- 이 정도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그딴 건 모르겠고 비키라고!'
그러나 이미 지척에 다다른 적의 공세.
"젠장."
쿠구구구구.
강한 폭발이 일었다. 땅에 큰 진동이 일고, 흙먼지가 하늘 위까지 비산했다.
한 차례 해일이 지나간 것처럼 초토화된 대지.
그 속에서 천강은 고개를 들어 눈을 가늘게 떴다.
'킁. 이것들 안 부서졌나?'
비키라고 할 때 비킬 것이지.
전생에 몇 번 천마신공의 위력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전생의 교주는 진짜배기 현경이었고, 대부분 그의 무공을 받아내는 상대는 무기가 산산조각이 나며 그 명을 달리했었다.
그에 비켜서라 한 것이었다. 기껏 힘들게 꼬드겨 구한 무기들이 천마신공의 일격에 부서지지 않을까 걱정된 천강이었다.
솔직히 천강은 조금 전 공격을 받아내도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야. 너희들 다들 살아있냐?'
먼지가 걷힌다. 멀쩡하니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7개의 무기가 보인다.
- 오. 소년, 지금 우리를 걱정한 겐가?
- 쓸데없는 짓을 했군! 우리를 부수려면 적어도 생사경 고수는 되어야 할 것이다!
- 허풍은. 소년의 내기를 가져다 써 막아냈으면서 뭔 그리 자신감이 넘치세요.
내 말이. 정말이지 막야 외엔 다들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다.
그때 자신의 일격이 아무런 타격도 입히지 못한 걸 확인한 태공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오오. 역시 신병이기인 건가? 아주 멀쩡하군.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힘을 써봐야겠지?"
"예?"
멋대로 기세를 피워 올리는 태공의 몸 주위로 자연의 기운이 응집된다. 넘실대는 양이 한눈에 봐도 꽤 위험해 보인다.
"아니, 잠깐. 이 정도면 충분……."
파앙.
그러나 채 말이 끝나기 전 남자의 신형이 쇄도해왔다. 천강은 본능적으로 몸을 낮추고는 상대의 공격을 받아낼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튀어나가는 이들이 있었으니.
- 막아막아!
- 공포, 자넨 그쪽을 담당하게!
- 무슨 소린가! 난 늘 무리의 중심에 서왔다고!
티격태격 말싸움을 하면서도 태공의 공격을 다 막아내는 신병이기들.
잔상이 일 정도로 매서운 공격이 들어오고 있음에도, 무려 일곱의 검이 막아내니 천강에겐 태공의 공격이 조금도 닿지 않았다.
심지어 조금씩이지만 태공이 도리어 밀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신병이기의 힘.'
그리고 이것이 투파창귀의 싸우는 방식이자 저력.
왜 노인이 이것을 직접 체험해보라 한지 알 것 같았다. 정말이지 너무도 치사하지만, 동일 경지 내에서는 확실히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싸움 방식이었다.
그런 그때 천강의 내기가 쭈욱 빠져나갔다.
'응? 갑자기 무슨 내기 소모가…….'
- 자, 그럼 이제 큰 거 한방 날려볼까!
고개를 든다. 다른 신병이기들이 싸우는 동안, 공포가 허공 위에서 강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그것에 위기를 느끼고는 몸을 뒤로 쭉 내빼는 태공.
그런 그에게 공포(公布)의 날 끝이 향했다.
- 천지대격결.
쿠구구구구.
단 일격에 초토화된 무형원.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 마냥 거대하게 파인 땅이 서서히 복구되어 간다.
그 위에서 공포가 신나게 떠들어댔다.
- 크하하핫. 어떠냐. 나의 일격이!
- 이봐요, 공포! 당신은 효율이란 걸 모르나요? 그냥 다 함께 밟으면 내기 소모도 없이 금세 끝날 일을. 당신 등신이에요?
- 무, 뭣? 막야. 네가 뭘 모르나 본데, 본래 마지막 한방은 비기를 날려야 하는 거라고. 그게 멋이야! 안 그런가 승사?
- ……난 빼주게.
티격태격 싸워대는 검들. 그러나 그것들을 바라보는 천강의 눈은 사뭇 진지했다.
대강 투파창귀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감이 잡힌 것이다.
'이런 녀석들을 두 개나 더 들고 있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