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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85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3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85화

85화. 신병이기 길들이기

 

 

신병이기 길들이기 4일째.

오늘도 바깥 구경을 시켜준 뒤, 천산의 보고 2층으로 되돌아온 천강은 그것들을 본인들 이부자리 위에 올려다 주었다.

요 근래 천강의 손에 길들여진 녀석들은 한 번씩 손으로 지들 몸을 잡아도 불평 한마디 안 했다.

- 슬슬 앵화(櫻花)가 완연해질 시기로구만.

- 그러게요. 앞으로 보름이면 완전히 피겠네요.

- 그때가 참으로 절경이지.

처음에는 날 선 목소리들이, 이젠 술이라도 두세 잔 걸친 것처럼 자애롭기 그지없다. 그에 때가 되었다 판단한 천강은 흠흠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미안하지만 앞으로 한동안은 바깥 구경을 못 갈 거야."

- 그게 무슨 소리냐?!

- 설명을 해 보아라, 소년!

-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죠?

"말 그대로야. 나도 언제까지 이곳에 눌러앉을 순 없고, 현경의 깨달음도 찾으러 가야 하거든."

천강의 말을 들은 신병이기들이 난리가 났다. 그들은 곧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 어떡하지, 용연?

- 크흠. 글쎄다. 그냥 남자답게 보내주는 것도.

- 안 되네. 앵화를 봐야 한단 말일세!

- 지금 그깟 꽃이 중요한가?

- 싸우지 말고 진정들 해요, 승사(勝邪), 공포(公布). 차라리 그러지 말고 그냥 우리들이 현경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게 어때요? 그럼 이곳에 더 오래 있을 것 아녜요?

- 있는 정도가 아니지. 녀석과 함께 다닐 수 있으니, 앞으로 바깥 구경은 질리게 할 수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그 한마디에 일순 대화가 뚝 끊겼다. 다들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듯했다.

그러나 아직 자존심은 남아 있는 모양.

- 지금 겨우 바깥나들이 때문에 우리 힘을 빌려주잔 말인가?

- 흠흠. 암! 우리가 누구인가? 역사에 기록된 전설의 무구들 아닌가? 우린 그 정도로 쉬운 이들이 아닐세!

- 자격도 없는 고작 어린 소년에게 힘을 빌려주다니. 흠!

아직 며칠 더 굴렸어야 했나?

그런 생각이 들 때쯤 누군가 그들을 꼬드기고 나섰다. 막야(莫耶)였다.

-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지금 저 소년은 화경이고, 우리가 도와주면 현경이 됩니다. 현경이면 우리를 들고 다닐 자격은 충분한 거 아닌가요?

- 확실히…….

- 그건 그렇지.

- 흠흠. 저 소년이 넙죽 절하며 간절히 부탁이라도 한다면…… 뭐. 힘 좀 써볼 수도.

그러고는 결론이 났는지, 천강을 부르는 신병이기들.

- 이보게.

"듣고 있다."

- 만약 우리가 제시한 조건들을 들어준다면 너에게 힘을 실어주겠다.

"조건?"

- 그래.

그러면서 녀석들이 하나둘 자신들이 원하는 걸 말하기 시작했다.

근데 낯이 익다. 분명 3일 전 들었던 내용들이다. 그 중엔 다시 들어도 충격적인 요구 또한 섞여 있었다.

- 매일 제가 지은 시를 한 시진씩 들어준다면 당신에게 제 힘을 빌려주겠어요.

마치 마지못해 인심을 쓴다는 듯 제안을 하는 녀석들의 행태에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거절하겠다."

- 아, 아니 왜?

- 어째서?

"보면 알겠지만 내가 무기를 쓰는 사람은 아니거든."

- 무슨…….

- 아니, 그럼 처음엔 왜 우리에게 접근한 것이냐?

- 맞아요. 분명 당신이 먼저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았나요?

"부정하진 않겠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신병이기들이라 엄청 대단해 보이고 그래서 솔직히 탐이 나긴 했다. 그런데 조금 흥분이 가라앉고 나니 흥미가 팍 식었어."

그러자 눈치 빠른 막야가 예리하게 한마디 짚었다.

- 전에 말하길, 현경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 맞아. 분명 그랬어.

- 흠흠. 그렇다면 더더욱 우리의 조건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쉬이 현경에 도달할 수 있도록 우리가 힘 써줄 것이다!

그러나 시큰둥한 소년.

"아니 됐어. 굳이 귀찮게 들고 다니기도 싫고, 뭣보다 무슨 요구사항을 주렁주렁……. 아, 귀찮아! 안 해. 그냥 갈래."

- 당신은 현경에 빨리 도달하고 싶지 않나요?

- 현경이란 지고한 경지. 스승 없이 혼자 깨달음을 추구한들 몇 십 년이 걸릴지 모르는 게 바로 현경이다. 생떼 부리지 말고 우리 제안을 받아들여라!

그러자 소년이 우뚝 멈춰 섰다.

- 오. 통한 것인가?

그리 기대감을 드러내는 그들에게 천강은 품속에서 물건 하나를 빼 들어 보여주었다.

"이게 뭔지 알아?"

- 그게 무엇이냐?

- 잠깐. 저 기운은 설마…….

"생각하는 그게 맞아. 이것 또한 신병이기. 이미 현경에 대한 스승은 있단 말씀."

그걸 본 신병이기들은 황당함을 드러냈다.

- 아니, 그게 있는데 왜 우리를……?

"아아. 혹시나 다른 쉬운 길은 없나 확인 좀 해 보려 했지. 겸사겸사 세상을 같이 돌아다닐 벗도 구할 겸. 그런데 이리 까다로울 줄이야. 쯧쯧."

소년이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그 행태에, 아까부터 앵화 타령을 하던 승사(勝邪)가 다급히 외쳤다.

- 잠깐! 신병이기라도 다 같은 신병이기는 아닌 법!

- 그렇지. 말 잘했네!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하나하나가 세상을 놀라게 할 지혜와 힘을 갖추고 있다. 그깟 종이 쪼가리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자 천해지경이 팔랑팔랑 화를 낸다. 천강은 녀석을 잡아 품속에 도로 집어넣으며 그 변호를 해주었다.

"이 녀석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명색이 자연경(自然境)에 도달해 우화등선한 무제(武帝)의 사념이다. 현경 수준인 그쪽들과는 확실히 차원이 다르긴 하지."

신병이기들이 말이 없어졌다. 더는 자신들의 말과 권위가 먹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천강은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는 그들을 살살 구슬렸다.

"그냥 솔직하게 말해. 다들 밖에 구경나가고 싶지?"

- 흠흠!

"아무런 조건 없이 내게 힘을 보태준다 약조하면,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 줄게."

- 이노옴!

- 감히 우리를 뭐로 보고 그런 제안을 하는 것이냐!

꼴에 자존심들은 아직 남아가지고.

그러나 이미 바깥 공기의 맛을 본 그들은 저항할 수 없다. 천강은 일단 제일 만만한 승사(勝邪)부터 노리기로 했다.

양팔을 크게 펼쳐, 입가에 그윽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한다.

"시기가 시기인데 참 아쉽네. 며칠 안 있으면, 앵화의 분홍 꽃잎이 천지를 가득 메우는 걸 볼 수 있을 텐데."

- …….

"분홍 꽃잎이 봄바람을 따라 흩날리는 천산의 모습……. 정말 끝내준다고. 절경이란 단어만으로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 ……좋다. 아무런 조건 없이 네게 힘을 보태주도록 하지.

- 승사!

- 자네 지금 뭐하는 겐가?! 정신 차리게!

그러나 욕심에 눈 돌아간 녀석의 귀엔 동료들의 말 따윈 전혀 들리지 않았다.

- 난 이런 골방에 있는 거 이젠 지긋지긋하네. 대체 몇 백 년인가? 난 나갈 것이네!

"잘 생각했어. 자, 가자고."

고급스런 천 위에 놓여있던 명검이 스르륵 날아와 소년의 손에 안착한다. 천강은 알 수 없는 기운이 흘러들어와 공명을 이루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잘 부탁한다. 난 승사다.

"잘 부탁해. 난 천강."

자기소개를 마친 소년이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그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불과 네 발자국 움직였을 뿐인데, 어느덧 소년의 몸은 계단 바로 코앞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 순간, 뒤에 남겨진 이들이 천강을 불러 세웠다.

- 조, 좋다. 우리도 하겠다!

- 당신에게 힘을 빌려줄 테니 우리도 데려가 줘요.

- 크흠. 마음에 안 내키지만, 다들 그러니 나도…….

음? 과연 좋은 검 아니랄까봐 마지막까지 존심을 세우는구만.

"그럼 공포(公布), 넌 안 와도 돼. 나머진 다들 이리와."

- 아, 아니다! 나도 가겠다!

바로 태세 전환하는 녀석.

그렇게 천강은 천산의 보고 2층에 자리한 모든 신병이기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그에 기뻐하기를 잠시, 이내 한 가지 문제점에 봉착했다.

아니, 아주 큰 문제다. 그것은 바로…….

"너희들 대체 뭐냐?"

- 크흠.

- 흠흠. 희한하다.

- 왜 이렇게 날씨가 더운 것 같죠? 역시 봄인가요?

"아니, 말을 해봐. 아까까지만 해도 마치 너희들을 받아들이면 곧장 현경에 도달하게끔 해줄 듯 굴더니…… 어떻게 과정이 얘랑 똑같냐?"

천강은 어이가 없단 표정으로 천해지경을 머리 위로 높이 쳐들었다.

- 그, 그게 정석이니라.

- 그렇다. 응당 깨달음은 너의 것. 우리는 어디까지나 그것에 대한 보조를 해줄 뿐.

"내게는 잔소리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로 들리는데? 응?"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신병이기들이 서로 눈치를 본다. 틀린 말이 아니라 할 말이 없다.

"아, 그냥 이것들 버리고 갈까."

- 자, 잠깐! 설마 진짜로 그러는 건 아니겠지?

- 소년. 그것은 사람으로서 할 짓이 못 된다.

- 자네는 우리와 약조를 했으니 응당 앵화 구경을 시켜줘야 할 의무가 있다!

"현경 다는데 도움이 되긴 했고?"

곧바로 궁색해지는 신병이기들.

그나마 조금은 눈치가 빠르고 똑똑한 막야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 그래도 이건 우리 탓만은 아닙니다, 소년. 그대가 검을 다룰 줄 모르니 일어난 사달 아닙니까.

- 맞아. 이건 네 탓이니라. 네가 검만 좀 수련했어도 우리가…….

- 공포(公布), 당신은 좀 가만히 있으세요.

막야에게 한 소리 들은 공포가 조용히 찌그러졌다.

그녀는 천강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조심조심 말을 이었다.

- 공자(孔子)란 이가 그랬습니다. 충성과 신의를 첫 번째 원칙으로 지키라고. 비록 당신이 검에 조예가 없어 저희 도움이 의미 없게 됐다 하더라도, 분명 저희는 진심으로 당신을 돕기 위해 나섰습니다. 그런데 버리는 건 옳지 않다 생각합니다.

"공자님 말씀이라……. 막야라 했지? 그 말 인용한 게 너희들 다 살렸다."

늘 공자님 왈을 달고 다니는 천강으로서는 꽤나 흡족한 대답. 신병이기들이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신 천강은 다른 의미의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어떡하지? 진짜 천해지경 말마따나 10가지 다른 생물을 이해해야 하나?'

무제(武帝)처럼 토끼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그나마 최근 들어 조금 깨달은 게 있다면, 천해지경의 말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들은 그대로 쉽게 행하면 된다. 그러니 동물 뒤를 따라다니며 이해하다보면 반드시 현경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하아. 그래도 너무 막연한데…….'

- 소년. 우리 오늘도 나갈 수 있는 거지?

- 흠흠. 빨리 바깥 구경을 하고 싶네만.

- 저도요.

'이것들이?'

아주 상전을 모시게 됐구만.

그래도 당장 이런 골방에 앉아 생각해본들 깨달음이 올 리도 없을 터. 바깥에 나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 때였다.

부르르-

"응?"

갑자기 천해지경이 떨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북명신공 비급서가 순백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에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자, 녀석이 팔랑팔랑 날아 1층과 이어진 계단 정반대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평평한 벽뿐이 없었는데, 천해지경이 다가가는 순간 갑자기 중심부에서부터 확 윤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스슷-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는 무언가.

사각의 형태를 갖춘 그것은 거대한 문이었다.

"이것은 대체……."

가까이 다가가 본다. 그리고는 손으로 그 위를 매만져본다.

벽의 질감이 느껴진다. 천산의 보고 그 어디를 만져도 느낄 수 있는 돌벽의 질감.

그런데 눈으로 보이는 건 분명 문이다. 천강은 고개를 들어 문 위 상단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구산팔해(九山八海)』

 

"구산팔해?"

- 마, 말도 안 돼.

- 구산팔해라니……!

아홉 산과 여덟 개의 바다. 다른 말로 하면 수미세계.

'여기가 선계로 향하는 길이었어?'

신병이기들도 하나같이 놀라는 게, 이 벽에 이런 게 숨어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한 듯했다.

천강은 고개를 내려 왼편과 오른편에 자리한 문설주를 바라보았다. 각각의 자리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매달 보름달이 차오르는 자정(子時)』

『선계의 주민 앞에 그 모습을 보일 지어다』

 

천강은 한 번 문의 손잡이 부분을 잡아 보았다.

덜컹. 잡히긴 하나, 잠겨 열리진 않는다.

'뭔가 다른 조건이 필요한 건가?'

그런 그 때, 천강의 목에 있던 목걸이가 옷 밖으로 빠져나왔다.

스르륵-

잠겼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문틈에서부터 새어나온 환한 빛이 소년을 에워싼다.

'이, 이것은……?!'

번쩍. 천강은 일순 몸의 감각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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