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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81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2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81화

81화. 무저갱

 

 

쿠콰콰콰콰-

거센 물줄기가 지하수로를 덮친다. 도패천황의 일격일격에 오룡대는 곤란함을 겪고 있었다.

"젠자앙! 이곳이 탁 트인 평지만 됐어도!"

"큭. 이대론 공격은커녕 아예 접근도 못하겠는데?"

그나마 방어와 흘리기에 일가견이 있는 지룡이 있었기에 망정이었지, 다른 이들 같았으면 일각(一刻)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후미로 쓸려 나갔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슬슬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젤 선두에서 도패천황의 수룡포를 막아내던 지룡이 약간은 다급한 음성으로 물었다.

"천룡. 어떡할 생각인가?"

"……나도 방법이 보이질 않는군."

"씨발. 그냥 한 번 돌격해 보는 게 어때?"

음룡의 거친 발언에 광룡이 그녀를 진정시켰다.

"상대는 상위 서열 고수다. 저쪽에서 뒤로 도망가며 이리 계속 날려대면 우리로서는 답이 없다."

"그래서 뭐? 어차피 이판사판이야. 이대로 버티다가 힘 빠져 이무기 밥이 되느니 뭐라도 해보는 게 낫다고! 그리고 저 새끼도 우리와 같은 화경 아냐? 해볼 만해!"

물론, 화경이라고 다 같은 화경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화경의 끝자락에 있는 고수는 입문자 열도 능수능란하게 상대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먼 과거의 이야기.

신선환이 파다하게 번지면서 너도나도 화경이 된 뒤로는 화경 고수 하나가 입문자 오십도 거뜬히 상대할 정도의 괴리가 생겨난 시대다.

현경에 근접해 있는 도패천황을 상대로 오룡대가 고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물론, 지리적인 이유로 숫자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는 상황도 있었지만.

"음룡 말이 맞다. 공격을 시도한다."

"천룡!"

"신호를 주면 지룡을 제외한 모두가 순차적으로 튀어나간다. 선두는 나다. 공격을 옆으로 어떻게든 흘려볼 테니 뒤로 바짝 따라붙도록."

천룡의 지시에 뛰쳐나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

쿠콰콰콰콰-

다시금 강력한 수룡포가 쏘아져 온다. 지룡이 그것을 오른 방향으로 쳐내는 순간, 천룡을 선두로 모두가 왼쪽으로 뛰쳐나갔다.

 

***

 

한 소년이 동아줄을 타고 쭉 내려가고 있다. 그런 그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기분 한 번 더럽구만. 이런 진득한 사기(死氣)라니.'

사기(死氣)는 죽은 자들에게서 나오는 불결한 기운이다.

대체로 무덤가나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음습한 곳에 많이 자리하며, 살아있는 생명체들에게는 일종의 독과도 같다.

정신적으로 그리고 신체적으로 은밀히 파고들어 서서히 파괴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 오래 있어본들 결코 좋지 못하단 의미다.

'이왕 하는 거 빨리 끝내는 게 좋겠지.'

털을 곤두세우는 꺼림칙한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며 천강은 조금 더 속도를 붙였다. 조그마한 아이의 몸은 순식간에 동아줄의 끝까지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렇게 도착한 무저갱의 절반 구간.

고오오-

후끈한 열이 밑에서부터 올라온다. 뿌연 연기와 유황냄새. 마치 지옥으로 향하는 입구에 들어선 것만 같다.

천강은 줄 끝에 매달려 슥 밑을 쳐다봤다.

저 멀리 검은 암석과 붉은 암석이 층을 이루고 있는 게 보였다. 눈에 힘을 더하자, 붉은 암석 곳곳에 자라고 있는 붉은 식물들까지도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수가 많군. 찾기 힘든 건 아니었어.'

목표도 찾았겠다, 천강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행동을 개시했다.

등 뒤로 메고 있던 보따리를 옆으로 돌려 메고, 그것에서 낙엽을 꺼낸 뒤 쏘아 보내며 제일 가까이 있는 천령초에게 다가간다.

"이것이 천령초……."

뿌리에서부터 하나의 기둥으로 올라와, 이후엔 각기 서너 갈래로 자라는 특이한 풀.

이파리 모양새는 잔대와 엇비슷하나,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전체적으로 선홍빛을 띠고 있다는 점이었다.

천강은 그것에 손을 뻗었다.

"자, 그럼 빨리 채취하고 나가자고."

그러나 곧바로 찾아온 고민.

"잠깐. 이거 왠지 손으로 잡아 뜯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잡아 뽑는다고 손을 댔다가 내기 운용이 어려워지면? 그것 참 난감한 것 아닌가?

그에 소년은 조금 더 밑으로 내려갔다. 내기를 날카롭게 쏘아 보내, 밑을 잘라갈 셈이었다.

그런 그 때, 누군가 천강을 불러 세웠다.

"이봐."

"응?"

"여기야, 여기."

고개를 내린다. 50보 정도 거리에 누군가 매달려 있다.

그는 얼핏 보면 사람이 맞나 의문이 들 법한 외모를 가진 인물로, 굳이 표현하자면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늙은 노인이었다.

허리는 크게 굽고, 손은 큼지막하다. 그리고 눈에는 흰자위만이 그득했는데, 희한하게도 나이에 비해 이빨은 빠진 것 하나 없이 매우 단단했다.

그는 천강에게 손짓하며 말을 이었다.

"큿큿. 천령초를 가지러 왔나 보지?"

"그렇다만?"

"무슨 용도로 쓰려고 그러는지 모르지만, 천령초는 뿌리에 가장 짙은 기운이 모여 있다. 그런 식으로 잘라가본들 의미 없어. 날 도와주면 내가 캐서 건네주마."

"도와달라고?"

"그래. 내가 여기서 나가게 도와준다면 이것을 캐서 네게 건네주겠다."

자신의 바로 머리 위에 있는 천령초를 가리키며 제안하는 노인.

그러나 천강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굳이? 널 꺼내주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은데?"

"방금도 말했지만 천령초는 뿌리가 가장 중요하다. 줄기의 열 곱절에 해당하는 기운이 내재되어 있지. 날 도와준다면 네게 온전한 한 뿌리를 캐서 주도록 하마."

"흠……."

고민에 잠긴 천강. 그러나 그 결과는 좀 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아냐, 됐어. 온전히 하나를 캐 가느니, 그냥 풀을 스무 개를 캐서 갈래."

"자, 잠깐! 잠깐만!"

"그럼 잘 있어라."

"내 말 좀 들어봐라! 천령초는 뿌리까지 온전히 캐야 오랜 기간 마르지 않고 제 형상을 유지한다! 약초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알 텐데?!"

소년의 몸이 우뚝 멈춰 섰다. 그것에 희망을 가진 노인은 필사적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다른 식물들과는 달리 천령초는 이곳의 사기(死氣)를 먹고 사는 식물! 잘라서 이곳을 나가본들 금세 기운을 잃어버릴 것이다!"

천강은 손을 움직여 머리 위에 자리한 천령초를 잘라내 보았다. 손 위에 톡 떨어지는 그것.

과연…… 잘린 단면으로부터 꺼림칙한 기운이 빠르게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게 느껴졌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건가?'

딱히 다른 방도가 떠오르지도 않고, 놈의 말에도 틀린 부분은 없다. 다만 한 가지 신경이 쓰이는 건.

'빼줘도 문제가 없으려나.'

이곳 무저갱은 신교에서 씻을 수 없는 중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을 가두는 곳이다.

녀석이 이곳에 있다는 건, 과거에 어떤 죄를 저질러 갇히게 됐단 의미였다.

'문제는 신교에서 큼지막하게 터질 수 있는 사안이라고는 정치 혹은 연쇄살인밖에 없는데….'

그 점을 감안한다면, 어쩌면 감당 못할 일을 만드는 것인지도 몰랐다.

저주받은 암석들로 인해 내기 파악이 어려운 것에 아쉬움을 느끼며 천강이 녀석에게 물었다.

"근데 넌 이곳에 무슨 이유로 갇혔지?"

"나? 나 말인가? 글쎄……. 워낙 오래 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해. 아닌가? 오래 되진 않았나?"

"무슨 말이야? 좀 알아듣게 말해."

"이곳은 사기(死氣)가 그득해서 실력 있는 고수도 잠을 자지 못한다. 그렇게 몇날 며칠을 지새우다 보면…… 시간 감각이 둔해지지. 난 왜 이곳에 갇혔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다.

실제로 사기(死氣)가 그득한 곳에서 오래 생활을 하면 굉장히 피폐해진다.

시간감각도 둔해지고. 무언가에 집중을 못하는 건 물론, 때론 미치광이가 되기도 한다.

하물며 이 정도의 짙은 사기(死氣)속에서 생활을 해왔다면,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건 지극히 당연한 현상.

'뭐…… 이 녀석을 도와준다고 해도 어차피 손해 보는 것도 없고.'

천강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좋다. 널 이곳에서 꺼내는데 협조해주지."

"정말로? 크하핫! 드디어 이곳을 나갈 수 있어! 나갈 수 있다고!"

"떠들지 말고 어서 그거 캐기나 해라."

"그래그래. 잠깐만!"

수상쩍은 외모이긴 해도 매우 성실하게 제 맡은 임무를 수행하는 녀석. 뿌리 하나하나 호호 불어가며 세심히 캐낸다.

"자, 난 약속을 지켰다. 이제 나가는데 도와줘!"

"일단 그거 넘겨. 그럼 꺼내줄게."

"싫다. 이것은 나가는 순간 내어주겠다."

쳇. 넘겨주면 그냥 들고 튀려고 했더니…… 제법이다.

"알겠다. 그럼 내 등에 업혀라."

천강이 등을 내어주자, 녀석이 폴짝 뛰어 천강에게 업혔다. 생긴 거와는 다르게 꽤나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마치 성인 남성 네다섯은 들쳐 멘 듯한.

"그럼 이제 올라갈 테니까 꽉 붙들어 매라고."

암운행보.

천강은 낙엽을 밟고 위로 쭉쭉 올라갔다. 짙은 안개와 같은 사기(死氣)가 옅어지고, 몸을 뜨겁게 달구던 열 또한 미약하게나마 줄어들었다.

아직 유황냄새는 그대로 잔재해 코를 쿡쿡 찔러댔지만, 그조차도 곧 희미해 사라질 것이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밧줄. 천강이 녀석에게 말했다.

"이봐. 그러지 말고 저기서 내려줄게, 저기서부터는 혼자 올라가라. 응? 내가 좀 바빠서 말이야."

"……."

"어이. 듣고 있냐?"

그러나 아무런 답변이 없는 녀석.

'아, 이 새끼가? 설마 위에까지 데려다 달라고 침묵으로 시위하는 건가?'

소년의 고개가 홱 뒤로 돌아갔다. 대답 정도는 하라며 매섭게 한 번 째려봐줄 의향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천강은 볼 수 있었다.

쩌억-

번들거리는 검붉은 잇몸과 그 위로 솟아오른 날카로운 이빨들.

마치 한입에 집어삼키겠다는 듯 크게 벌린 아가리는 뱀처럼 그 크기를 한없이 늘려나가고, 이내 그 머리 크기의 족히 열 곱절은 더 되도록 부풀리는데 성공했다.

그워어어어-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더니, 그 상태로 덥석 천강의 머리를 집어삼킨 녀석.

흰자밖에 없는 녀석의 눈이 초승달을 그린다. 마치 굉장히 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그혹?"

녀석의 입이 좌우로 움직인다. 마치 질겨 씹히지 않는다는 듯 이가는 소리도 덩달아 들렸다.

날카로운 이빨들이 소년의 목을 가르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나 천강의 몸에는 흠집조차 나질 않았다.

그리고 그때 소년의 팔이 움직였다.

"어이. 입 냄새 나거든?!"

지천뇌공.

쾅. 닫혔던 아가리가 활짝 벌어졌다. 배에 지천뇌공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녀석은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며 그대로 심연 안쪽으로 떨어졌다.

"아, 젠장. 더럽게 시리."

천강은 머리를 흔들어,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녀석의 체액을 털어냈다.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들더라니…….'

설마 인간이 아닐 줄이야.

고개를 들어 저 위를 바라본다. 저 멀리 허공에 매달린 동아줄이 내다보인다.

천강은 혀를 차며 자신의 주위를 살폈다. 지금 천강은 절벽에 매달려 있었다.

놈의 입속에서 갇혔을 때, 순간적으로 시야와 균형 감각을 잃어버리면서 낙엽에서 떨어졌고. 이후엔 지천뇌공의 반발력이 더해져 절벽에 부딪치고만 것이었다.

절벽에 매달린 천강의 미간이 크게 구겨졌다.

"아, 좆 됐네. 이거 올라갈 수 있을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얼마 안 떨어졌는지 요 바로 위가 검은 암석 구간이라는 것.

다만 천령초가 놈과 함께 떨어지는 바람에 새로 구해야만 했다.

'……천령초는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 생존이 우선이다.

'문제는 올라갈 만큼의 힘과 체력이 되냐는 것인데.'

천강의 손이 움직였다. 확실히 내기를 운용하지 못하는 아이의 몸엔 근력이란 게 없는지, 겨우 다섯 번 올라섰을 뿐인데도 팔이 미약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생에 절벽 타기는 질리도록 해본 천강의 행동엔 거침이 없었다. 쭉쭉 벽을 타고 위로 올라간다.

'일단 올라가다가, 적당히 툭 튀어나온 턱에서 휴식을 취하자.'

절벽타기에서 체력배분과 휴식은 기본.

그리 생각하고 올라가는 그때였다.

그워어어어-

갑자기 기괴한 비명소리가 날아와 천강의 정신을 일깨웠다.

시선을 밑으로 내린다. 아까 천강의 머리를 탐하던 괴물이 밑바닥에서부터 허겁지겁 올라오고 있다.

그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용케도 죽지 않은 모양이다.

딱 그런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그워어어-

그어어-

뿌연 연기 사이사이로 보이는 수백의 개체.

천강의 입에서 나직이 욕설이 튀어나왔다.

"젠장. 한 마리가 아니었어?"

설마 날 잡으러 오는 건가?

혹시나 하여 눈에 힘을 줘본다. 놈들의 탐욕이 느껴진다. 눈과 입에 그려진 초승달 모양의 호선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줬다.

'어떻게 하지.'

천강은 쭉쭉 위로 올라가며 생각했다. 속도를 내다보니 체력이 빠르게 떨어지고, 근육은 금세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대로 잡히면 말 그대로 놈들의 한 끼 간식거리.

내기를 운용하지 못하는 천강의 몸은 말 그대로 어린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방도를 찾아야 해.'

그러나 말똥말똥한 정신과는 반대로 몸뚱어리는 빠르게 지쳐가기만 했다.

그래도 아직 천수가 다하진 않은 걸까? 체력이 떨어질 즈음 딱 맞춰 평탄한 지형이 등장했다.

검은 암석과 붉은 암석의 경계선에 자리한 굴. 천강은 그 위로 올라가 부들거리는 팔근육을 진정시켰다.

'생각해보자.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일단 제자리에서 힘껏 위로 뛰어본다. 혹시나 발이 떨어지면 내기운용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채 원상복구 전 도로 땅에 닿는 발바닥.

'차라리 무저갱 한 가운데로 뛰어내리는 게 나을 수도.'

운이 좋다면 머리가 지면에 닿기 전에 내기운용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극단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안착할 때쯤이었다.

우우웅-

품속에 넣어둔 천해지경이 몸을 잘게 떨기 시작했다. 마치 이 순간의 해결책을 자신이 제시해줄 수 있다는 듯.

천강은 품에서 그것을 빼내 활짝 펼쳐보였다.

그러자 누렇게 변색된 백지 위로 검은 글자가 빠르게 새겨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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