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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79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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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흑살마신 79화

79화. 천산의 보고 관리자의 의뢰

 

 

"후우. 일단 당장은 안 되겠네요. 다른 일을 하면서 천천히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소년이 한숨을 푹 내쉬자, 노인이 껄껄 웃으며 그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그래. 잘 생각했다. 너무 조급해 할 필요 없다. 이제 고작 열한 살 아니더냐?"

"그렇죠. 너무 마음이 성급했던 것 같습니다. 조금 기다리고 하다보면 알아서 깨달음도 기회도 올 건데 말입니다."

소년을 기특하게 바라보는 노인. 그 시선을 쑥스럽다는 듯 받던 천강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어르신께서 부탁하실 게 있으시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 그것 말이냐? 당장 필요한 건 아니니라. 천천히 해도 된다."

"아닙니다. 그냥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쯤이면 어르신도 깨달으셨겠지만, 제가 워낙 몰아붙이는 성격이어서 말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현경의 깨달음에 조급해질 테니, 몸을 움직이면서 마음을 다스릴까 생각중입니다."

"허허.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 알겠다. 이리 오거라."

노인이 천강을 이끌고 한 쪽 구석으로 인도했다. 그곳에는 다양한 상자들이 있었는데, 그는 그중 상대적으로 조그마한 한 상자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붉은 빛깔의 식물이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천령초라는 식물이니라."

천령초? 처음 들어보는 풀이름이다.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없다.

과거 스승과 함께 이곳 천산의 보고 의뢰는 몇 번 수행한 적 있었는데, 매번 기이한 일만 시키더니…… 이번에도 결코 평범한 일은 아니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이것은 지하 깊은 구덩이에 자라는 식물인데, 구덩이라고 다 자라는 게 아니고 사기(死氣)가 그득한 곳에서만 자라는 굉장히 독특한 풀이란다."

"어디에 쓰는 건가요?"

"산 자는 이걸 먹으면 고통에 시달리다 죽게 되지."

"독도 만드십니까, 어르신?"

"끌끌. 그러나 독도 잘 쓰면 보약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그러면서 노인이 말했다.

"천산의 보고 서쪽 절벽으로 쭉 내려가면, 무저갱이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 들어가서 이걸 가져오면 된단다."

무저갱……. 거기를 들어가야 한다 이 말이지?

"어떻게 하겠느냐? 힘들 것 같으면 거절해도 되느니라. 열한 살짜리에게 시킬 만한 일은 아니니."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겨우 풀 하나 채취해 오는 것인데요."

"그래. 그럼 언제 출발할 생각이냐?"

"이왕 시작하는 거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출발 준비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노인이 다가와 천강에게 보따리 하나를 내어 줬다.

"자, 받거라. 고기와 술 좀 넣었느니라. 아껴서 먹는다면 열흘은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사학 어르신."

천강이 노인으로부터 식량을 받아 등에 메었다. 노인은 서쪽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다.

"정확히 저쪽 방향이다. 절벽을 타고 쭉 내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바위 색이 시커멓게 변하기 시작할게다."

"그 근처입니까?"

"아니다. 다만 그곳부터가 무저갱의 영역은 맞다. 거기서 좀 더 내려가야 한다. 쭉 내려가다 보면 붉은 암석들이 나올 것이다. 그 근처에서 찾으면 된다."

"알겠습니다. 붉은 빛깔의 풀이었지요?"

"그래. 딱 보면 한눈에 알 것이다."

"내려가는데 얼마나 걸리려나요?"

"음……. 하루는 꼬박 내려가도 도착할지 모르겠구나."

상당히 깊은가 보군.

왜 무저갱이라 불리는지 알 것 같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현경의 깨달음에 빠져 미끄러지지 말고 조심히 다녀오거라."

"하핫. 알겠습니다."

천강은 두 다리에 내기를 실어 절벽을 쭉 미끄러져 내려갔다.

일각(一刻) 내려가고 일각 쉬고.

일각 내려가고 또 일각 쉬고.

그 와중에 천강의 생각은 온통 한 가지에 빠져 있었다.

'2층에 신병이기가 있어야 할 텐데.'

신병이기(神兵利器).

일반적인 무기나 갑주들과는 달리 신비한 힘을 품고 있는 물건들.

그것들의 능력은 각기 제각각이며, 몇몇은 너무도 뛰어난 나머지 신화나 전설 혹은 역사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존재했다.

간장, 막야나 용연, 태아, 공포가 그러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의 무구들.

'그리고 지금 이것도 그러한 신병이기 중 하나이고 말이지.'

고개를 내린다. 천강의 품 안에서 변색된 책이 팔랑팔랑 날갯짓을 하고 있다. 천강은 혀를 끌끌 찼다.

'청청이 가진 칠현금 구소환패(九霄環佩) 정도만 됐어도 좀 아쉬움이 덜할 텐데 말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신병이기는 그 능력이 제각각이다.

어떤 것은 대화가 가능하지만, 또 어떤 건 대화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대화 못하는 게 안 좋은 것이냐? 그건 또 아니었다.

그저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만 모든 신병이기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 주인의 성장을 돕는다는 것이지.'

일반적으로 신병이기들의 수준은 현경. 즉, 현경까진 오를 수 있도록 필히 도와준단 의미다.

다만 아까도 이야기했듯, 성능이 제각각이라 그 깨달음을 주는 방식도 다양하다.

이놈처럼 주저리주저리 말로만 푸는 놈이 있는가 하면, 직접 머릿속에 자신의 깨달음을 직접 주입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천강은 바로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꼼수라 해도 할 말이 없지만, 쉬운 길이 있다면 응당 그 방향으로 가봐야 하는 거 아니겠어?'

무저갱으로 쭉 내려가며, 제발 천산의 보고 2층에 뛰어난 신병이기가 있기를 바라는 천강이었다.

 

***

 

'끝이군.'

암운곡 주변. 계곡 한쪽에 한 사내가 몸을 숨기고 있다. 조금 있으니, 그곳으로 누군가 다가와 합류했다.

"왔습니다, 형님."

"그래. 다 처리했느냐, 삼귀야?"

"예. 하나도 남겨두지 않고 다 처리했습니다."

"수고했다."

"아닙니다. 그 미친놈들이 이미 한 번 훑고 간 덕에 몇 번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랬다. 약 반 시진 전. 돌연 다섯 마인이 나타나더니,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들을 무참히 도륙했다.

그 덕에 천강으로부터 지시를 받고는 이곳에서 대기 중이던 이귀, 삼귀가 할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몇몇 말로는 그들이 오룡대라고 하더군요."

"기운들이 보통이 아니더라니……. 안 건들길 잘했군."

마교 내에 오룡대의 명성은 자자하다. 아마 자신들과도 큰 실력 차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 이만 제자리로 돌아가거라."

"예, 형님."

그렇게 삼귀가 자신의 자리로 복귀하려는 그 때였다.

"잠깐."

한 사내가 계곡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굉장한 미안(美顔)을 가진 남자. 한눈에 봐도 수많은 여인들의 심금을 울렸을 듯한 외모다.

그러나 등에 메고 있는 무기는 무식하기 그지없었다. 저것이 도인지 방패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그는 주변을 슥 한 번 훑어보더니, 이귀와 삼귀가 있는 곳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은신에 집중해라, 삼귀야.'

'예, 형님.'

물이 흐르는 소리와 산새들의 지저귐이 나직이 울려 퍼진다.

찰나에 불과했지만, 이귀는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과 같은 기분을 느꼈다.

"……."

남자는 그렇게 잠시 그들이 있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암운곡 아래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계속 숨을 죽이고 제자리에 자리한 두 사람.

그런 그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 건, 그로부터 약 일각(一刻)이 지나서였다.

이마에 손을 대본다. 식은땀이 그득하다 못해 턱 끝에까지 매달려, 바닥으로 똑똑 떨어지고 있다.

"형님. 혹시 누군지 아십니까? 거의 일귀 형님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주군 말씀으로는 이번에 반드시 현경들도 움직일 거라 하셨다. 그중 도(刀)를 쓰는 이라면 한 명밖에 없겠지."

현경이 직접 왔을 리는 없고, 아마 그 제자를 보냈으리라.

"흑도마황의 제자이자, 마교 서열 19위의 고수. 도패천황."

소교주의 신분을 쓴 천강을 잡기 위해 마두들까지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그 시각. 암운곡과 지하수로는 매우 바쁜 움직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거물이 오긴 올 거라 예상하긴 했다만, 저런 괴물들이 올 줄이야.'

흑철마괴는 그늘에 가만히 몸을 숨긴 채, 지하수로 입구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한 명 한 명의 실력이 능히 마두에 든다는 오룡대가 들어서더니, 이번에는 마인들 중 19번째로 강하다는 인물이 그 안으로 사라졌다.

천강이란 꼬마의 장난질이 얼마나 제대로 먹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긴. 소교주 교육에 들어간다는 건, 말 그대로 후계자 교육. 더는 의심할 여지조차 없긴 하지만.'

흑철마괴가 있는 곳으로 이십 여명의 존재가 다가온다. 그들은 교주의 지시를 받아, 이곳을 지원하기 위해 나온 이들이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오, 흑철마괴? 방금 그 놈은 우리도 잡지 못하는 괴물인데. 물론, 당신이 나선다면 결과야 달라지긴 하겠다만."

"……여기서 대기하도록 하지."

 

***

 

가파른 절벽을 내려가고 또 내려간다.

한참을 그리 내려가자, 어느덧 뿌연 연기가 올라오는 시커먼 구덩이가 천강의 눈에 들어왔다.

암운곡보다 족히 다섯 곱절은 더 커 보이는 곳.

벽을 이루는 암석의 색깔이 검은빛으로 변모하고, 공기 중으로는 참기 힘든 사기(死氣)가 그득하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천강의 귓속을 강타했다.

"거 누구냐?"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웬 거구가 지상에 서서 천강을 노려보고 있다.

그는 검지를 까딱까딱 거리고 있었는데, 그건 명백히 경고의 행동이었다. 천강은 고민을 하다 절벽을 타고 그에게 다가갔다.

"움직이는 행동을 보아하니 보통 꼬맹이는 아니로구나."

11척은 족히 더 되어 보이는 장신. 그럼에도 통통해 보이는 몸. 얼굴이 마치 야차와 같이 생긴 게, 도저히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천강을 이리저리 살펴본 그는 절벽 위를 한 차례 쳐다보더니 말했다.

"이곳은 신교에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이들을 감금하는 무저갱. 그리고 난 이곳을 지키는 금나한이다. 무슨 용무로 왔는지 말하라."

"전 천산의 보고에 계신 사학 어르신의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사학 어르신? 무슨 부탁을 하셨는지 들을 수 있겠느냐?"

"천령초를 구해 달라 하셨습니다."

크흠. 남자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의 반응을 통해,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란 것을 천강은 직감할 수 있었다.

혹시나 막아서면 어쩌나 걱정하던 소년의 얼굴이 밝아졌다.

"통과를 허락해주십시오."

그러나 나오는 결과는 그 반대였다.

"거절한다."

"어째서죠?"

"이곳은 너 같이 나약한 애가 들어설 곳이 못된다. 어르신께선 왜 이런 꼬맹이에게 그런 일을 시키신지 모르겠군."

하. 나약하다고?

천강은 보란 듯이 숨기고 있던 기운을 뿜어냈다. 그것은 도저히 인간이 가지고 있을 수 없는 내기의 양으로, 그 단순한 행위 하나에 주변은 온통 광풍이 휘몰아쳤다.

그러나 그걸 보고도 시큰둥한 거구의 사내.

"너 지금 뭐하냐?"

"이 정도면 저 밑에는 충분히 다녀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아니, 안 된다. 네가 아직 뭘 모르는 모양이구나."

"왜 안 된다는 것입니까?"

"저기 저 줄이 보이느냐?"

금나한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다. 동아줄 하나가 바위에 단단히 매여 굴 아래로 쭉 뻗어 있다.

"저건 무저갱 깊이의 중간 지점까지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네가 채취하고자 하는 풀은 저 끈이 닿지 않는 곳에 있지. 그곳에서 반 시진은 더 내려가야 한다."

"그다지 멀진 않군요. 근데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지금의 너로서는 내려가는 건 가능하나, 올라오진 못하기 때문이다. 필히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영영 갇힐 것이다."

단순히 겁을 주는 것 같진 않다.

외모나 덩치가 괴물처럼 생겼어도, 거짓과는 꽤 멀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천강은 무저갱의 구멍 근처로 다가가, 그곳의 검은 암석을 가만 살펴보았다. 그리고 손을 대는 순간 찾아온 깨달음.

"아……?"

"이제야 내 말의 의미를 깨달았느냐? 거기에 들어가고 싶다면, 앞으로 열 살은 더 먹고 와야 할 것이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이유는 몰라도 검은 암석에 손을 대는 순간, 체내의 내기 운용이 방해를 받아 전혀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이 안에서 빠져나오려면, 순수하게 근력으로 올라와야 한단 의미였다.

"그러니 포기하고 돌아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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