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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12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7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12화

112화. 맹익의 활약

 

 

"무형지독이라고?"

"예, 주군."

암운곡 지하수로는 무영삼귀의 앞마당이다. 오목골 거처는 외부에서 꾸준히 감시받는 중이었고 무영삼귀와 암룡은 밖으로 나가거나 들어올 일이 있을 경우, 암운곡을 이용했다.

그러다 보니 우연히 간자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일귀가 설명을 보충했다.

"분명 목표가 주군이었습니다. 간자는 흑학대신입니다."

"총책임자가 배신자라."

어쩐지 걱정이 지나치더라니, 흑철마괴 녀석이 내게 이걸 숨기고 있었구만.

그동안의 흑철마괴의 행보가 전부 이해가 된다. 그저 꼼꼼하고 걱정이 많은 부류인가 했더니, 그것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천진악이 들어오자마자 내게 달려왔던 거였어.'

신인교관들은 핑계에 불과하다. 이제 막 이곳에 온 녀석들이 훈련생들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긴 하겠는가? 본인도 병아리에 불과한데.

당시 흑철마괴가 걱정했던 건, 흑학대신의 눈에 띌까 염려되던 것이었다.

'이왕 움직이는 거 아예 주변은 싹 다 뽑아버리는 게 좋겠지.'

적들의 속셈도 알았겠다, 천강은 곧바로 천산의 보고로 올라갔다.

"어르신. 제가 무형지독을 마시고도 버틸 수 있겠습니까?"

"누가 널 음독시키려 하는 게냐?"

천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으로 이동했다. 그곳엔 크고 작은 도자기들이 일렬로 쭉 나열되어 있었다.

노인은 그중 하나를 열어보며 이야기했다.

"지금 넌 천년 묵은 흑사와 백사의 내단을 흡수해 만독불침의 경지에 이른 상태다. 하지만 무형지독은 그것을 아득히 넘어서는 독."

"그 말은 제아무리 저라도 그걸 먹으면 죽는단 말씀입니까?"

"음……. 죽진 않겠으나 한 달 정도는 꼼짝 못 할 것이다. 문제는 그 한 달간 적이 가만 있진 않을 거라는 게 중요한 거겠지."

노인의 손이 펼쳐진다. 그러자 어디선가 침 하나가 휘리릭- 날아와 그의 손에 안착했다.

노인은 그것을 도자기 안에 한 차례 넣었다가 뺐다. 도자기 안에는 투명한 액체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무형지독이다."

"예? 이게 무형지독……."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고, 투명한 액체.

물과 별반 차이가 없는 이 액체가 한 방울만 마셔도 현경조차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극독이라니.

"물론, 지금 이것은 독과 물을 1:99로 희석한 것이니라."

그러며 노인이 침을 들어 올렸다. 그 끝에는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이 침을 맞고 난 다음이라면, 무형지독을 먹더라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미리 독에 대한 내성을 길러 놓으라는 뜻이군요."

"그러하다. 대신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희석을 했는데도 말입니까?"

"그래. 그러나 이걸 맞은 뒤, 무형지독의 원액을 열 방울 정도만 섭취할 수 있다면…… 완전무결한 독에 대한 내성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니라."

완전한 독에 대한 내성……!

천강의 눈이 일순 탐욕에 번들거렸다.

그러나 아주 찰나에 불과했다.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안 하겠습니다."

"흐음?"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지킬 것이 좀 생겼거든요."

소년이 눈을 감았다. 그러자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눈앞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맹익, 무진, 연화, 초아…….

"함부로 도박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귀찮더라도 앞으로 제가 좀 조심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껄껄껄."

노인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단순히 죽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지킬 것이 있어서라……!

'갈수록 마음에 드는 아이로고.'

그는 한참을 웃은 뒤에야, 천강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이야. 걱정 말거라. 내 너를 죽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맞아도 된다."

잠시 고민하던 천강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그가 했던 말이 전부 맞아떨어진 까닭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왼팔 부분을 완전히 차단하거라. 내가 돕더라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는 법. 위험하다는 판단이 든다면 네 왼팔을 자를 것이다. 괜찮겠느냐?"

"믿겠습니다."

천강의 오른손이 빠르게 왼팔을 점혈했다. 내기까지 차단하자, 노인이 손을 움직였다.

손등에 침이 꽂히고, 끝에 맺혀있던 액체가 스스슷-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오른손을 왼팔에 올리고는, 내기를 주입해 운용해 보거라."

내기를 움직인다. 오른손 끝을 타고 흘러 들어간 내기가 왼팔에 머물러있는 독 기운과 만나 하나로 뒤엉킨다. 그리곤 곧바로 튀어나오는 반응.

사아아-

침을 맞은 부위가 서서히 감각이 사라졌다. 굳어 멈춘 뒤에는 점점 흑빛으로 변모했다.

'이게 무형지독……!'

전생에 교주의 모습이 떠오른다. 온몸의 피부색이 시커멓게 변하며 죽어가던 그의 모습이.

노인은 그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는 방긋 미소 지었다.

"육체가 매우 튼튼하구나. 흡수해도 문제없겠다."

"예."

차단해 두었던 점혈과 흐름을 풀었다. 그러자 왼손에 있던 독기가 빠르게 기의 바다로 모여들었다.

천강은 그것을 중단전 주위로 뱅글뱅글 이동시켰다. 다른 독기들을 흡수할 때처럼,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근데 이거 괜찮은 거 맞나?'

그도 그럴 게, 궤적을 그리는 그 자리가 점점 굳어갔기 때문인데.

불안감에 등허리가 땀으로 촉촉해지는 그때, 노인의 목소리가 와 닿았다.

"계속하거라. 겁먹지 말고. 문제가 생기기 전에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니라."

그리고 과연……. 조금 시간이 지나자, 독기가 서서히 옅어지고 무형지독이 몸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기분이 어떠하냐?"

"뭔가…… 뜨겁습니다."

"그럴 것이다. 하루 정도는 몸이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수시로 열을 식혀주는 게 좋다. 네가 훈련하는 근처에 물이 많으니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것도 좋겠지."

"이거면 끝인가요?"

"앞으로 삼 일간 계속 맞아야 한다. 해독 속도도 회복 속도도 점점 빨라질 것이다. 대신, 원액을 마신 순간엔 제아무리 너라도 움직일 수는 없을 테니 그걸 명심하거라."

 

***

 

"네놈이 제아무리 흡공을 익혀 강하다 한들, 버티지 못할 것이다!"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보자꾸나!"

그러고는 사방에서 몰아치는 적들의 공세. 천강의 시선이 흑학대신을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점혈을 해 제압하고 싶으나, 검날을 움켜쥔 뒤로는 몸을 움직이는 게 여의치 않은 천강이었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독을 중단전 주위로 뱅글뱅글 돌린다. 해독을 위한 목적으로 내기를 운용하니, 덩달아 북명신공도 발동됐다. 적들의 당황 섞인 목소리가 곧바로 들려왔다.

"어? 어어?"

"이, 이 상태로 흡공을?!"

발악하는 녀석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자, 놈들은 지레 겁을 먹고는 우르르 도망가 버렸다.

신입 교관들이 다 도주하고 단둘이 남은 공간에서, 천강의 시선이 흑학대신을 향했다. 그는 눈이 크게 뜨여 동공이 좌우로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그것은 과거 교주조차도 음독시킨 극독이거늘!"

음. 서서히 몸이 풀려가는군. 혓바닥과 턱, 성대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지는 걸 느끼며 천강이 말했다.

"확실히 강하긴 하네. 지금까지의 그 어떤 독보다도 더."

"대체 네놈은 정체가 뭐냐. 대체 어떻게 된 몸뚱어리냐!"

"궁금해?"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소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내놔. 그럼 대답해줄게."

"무, 뭐를……?"

"무형지독 원액 말이야. 남겨뒀을 거 아냐? 느낌상으로는 한두 방울밖에 안 탄 거 같은데. 남은 거 어딨어?"

북명신공으로 내기가 쪽 빨려 몸이 무너진 노인이 힘겹게 대답했다.

"내, 내 품속에 있다."

흑학대신의 품에 손을 집어넣는다. 작은 병 하나가 손아귀에 잡혔다. 슬쩍 확인해본즉 네다섯 방울은 족히 되어 보였다.

"뭘…… 하려고?"

"글쎄."

"설마 나, 나를?!"

소년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굴 바깥에서부터 폭음이 들려왔다. 맹익이 자신이 맡은 바를 잘 수행하고 있단 뜻이리라.

"제발 살려주시게! 시,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하겠네!"

"정말이야?"

노인의 머리가 위아래로 수차례 움직였다. 눈은 간절함으로 반들거렸다.

"좋아. 그리 간절히 원하니 기회를 한 번 줘야겠지."

소년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올라왔다.

 

***

 

"비켜라!"

"죽고 싶지 않으면 길을 내라!"

눈을 부라리며 주먹에 강기를 실은 신입교관들이 맹익에게 짓쳐 들었다. 그러나 맹익은 어디 해보라면 해보라는 듯 턱을 치켜들었다.

- 땡추야. 우리 물고기 잡던 때 기억나냐? 그때 하던 거랑 똑같은 거야. 도망 못 가게 막기만 해.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네놈이 기어이 화를 보겠다고 버티는구나!"

"죽어랏!"

그러나 달려들던 선두의 인원들이 돌연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뒤따라오던 여섯도 급히 멈춰 섰다.

"기, 기관진식?"

"젠장. 언제 설치해둔 거지? 전혀 못 느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어떻게든 부숴야 해!"

쾅. 쾅쾅.

굴 안쪽에서부터 번쩍번쩍 불꽃이 튀며 폭음이 일었다. 결계에 갇힌 신입 교관들은 필사적으로 벽에 강기를 휘두르며 진식을 파훼하고자 용을 썼다.

그런데 아무리 휘둘러도 진전이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거야?"

"분명 진식이라면 이 근처를 손보면 풀릴 건데? 대체 뭐가 다른 거지?"

그거야 평범한 인물이 만들었을 때의 이야기. 무려 만 하루를 심혈을 기울여 만든 진식이다. 어중이떠중이들이 쉬이 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러다간 잡히겠어!"

뒤를 한 번 쳐다본 교관들이 더욱 발악해 날뛰었다.

그런 그들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은 걸까? 닥치는 대로 주먹을 휘두르다 운 좋게 결계의 일부를 건든 그들은 진식을 파괴하는 게 성공했다.

"일각(一刻)이라. 흥. 애송이들치곤 제법 선전했구먼."

"이 늙은이 새끼가! 네놈은 죽었다 복창해라!"

맹익이 팔짱을 풀었다. 그의 손에 들린 망치와 끌을 본 교관들이 코웃음을 쳤다.

"우리가 무기가 없기로서니, 고작 연장으로 우리 모두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피식. 노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확실히 애송이라도 화경 여덟을 나 혼자 상대하는 건 무리긴 하지.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다르다."

노인이 목을 풀고 자세를 잡았다.

좁은 통로, 그리고…… 날 도울 도구들.

노인의 등 뒤에서 검 세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그 명검들은 천강의 신병이기들이었다.

- 카하핫! 그럼 간만에 몸 좀 풀어볼까?

- 녀석 신났구먼.

- 정신 차리세요, 공포. 저번하고는 상황이 다르니 내기를 최소한으로 아껴 써야 합니다.

적들이 달려들었다. 통로가 좁아 한꺼번에 달려들 수 있는 적은 고작 둘 뿐이었다.

노인의 신형이 움직였다. 맹익은 단숨에 놈들에게 파고들어 두 녀석의 주먹을 흘리고는 턱과 복부를 후려쳤다.

"컥."

"크흑……."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교관 둘.

- 어……. 이거 우리가 없어도 되는 거 아냐? 노인네치곤 생각보다 잘 싸우는데?

- 그럼 일단 우리는 대기하죠. 괜히 움직였다간 역으로 내기 소모가 심할 수 있으니.

"그 늙은이 하나 못 처리하고. 이리 나와 봐!"

"우리가 시도해 본다!"

뒤에 있는 두 놈이 앞으로 튀어나온다. 그러나 그들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퍽. 퍽.

단번에 두들겨 맞고 뒤로 나뒹굴었다.

"이익!"

"이번엔 우리 차례다!"

하나, 둘, 셋……. 수십 번을 시도하고도 결국 맹익을 뚫는 데 실패한 적들.

내기가 바닥을 드러낸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미, 미친. 원래 기관진식이 이리 싸움을 잘하는 곳이었어?"

"이건…… 같은 화경이라도 급이 다르잖아?"

비록 맹익이 싸움과 관련이 없는 부서에 있다 해도, 어릴 적부터 노는 물이 달랐다.

현 마교서열 5위인 암운사신.

마교의 영웅 중 하나인 흑살마신.

그런 두 선배와 암운곡에서 4년간 어울렸다. 이후 경험도 적지 않았다. 나이가 희수(喜壽)를 넘어 어느덧 팔순(八旬)에 도달하고 있었으니까.

즉, 같은 화경이라 해도 갓 화경 단 햇병아리들을 상대로 질 리가 없는 것이다.

"더 안 덤비나? 엉? 호랑말코 간자 새끼들!"

야차와 같은 얼굴로 출구 앞을 지켜 선 노인 앞에서 신입 교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바들바들 떠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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