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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10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8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10화

110화. 무형지독 (1)

 

 

네 번의 경기를 치른 기경만회의 경기장은 뜨거운 열기로 그득했다.

사람들은 사회자를 향해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어서 마지막 경기를 시작해라!"

"나 이번 경기를 보기 위해 왔다고!"

그러며 그들의 입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연화! 연화!"

"청청! 청청!"

그 열기에 화답하듯 경기장 한가운데로 등장하는 사회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작년 기경만회의 시합으로, 아마 이번 경기를 모두 기대하고 계실 것입니다!"

연화와 청청의 치열한 대결은 신교 주민들 사이에선 한 해 동안 뜨거운 감자였다. 고작 열 살 어린애들이 일반 마인들을 넘어선 무위를 보여주니 어찌 아니 그럴까.

평소 강한 마인들의 전투를 가까이서 본 적이 없는 이유도 아마 한몫했으리라.

그걸 진즉에 눈치챈 기경만회 관련자들은 일부러 2년차의 경기를 제일 후미로 배치했다.

그러나 관중들의 격한 반응과 달리 사회자의 등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이, 이거 문제가 없는 거겠지.'

사람들은 응당 두 소녀가 다시 맞붙을 걸 기대했다. 청청의 복수전을 기대한 것이다. 덩달아 작년보다 더 화려한 전투를 볼 수 있기를 원했고.

꿀꺽. 마른침을 삼킨 사회자의 입이 열렸다.

"자, 그럼 여울나무 진영 선수 나와 주십시오!"

뚜벅뚜벅. 좌측에서 절뚝이며 나타나는 한 소녀.

어깨에 자신의 몸통보다 거대한 칠현금을 메고 그녀가 나타나는 순간, 관중석에서 크나큰 외침이 하늘 위를 쩌렁쩌렁 울렸다.

"청청! 청청!"

사회자가 손을 들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닫았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들뜬 감정으로 가득했다.

심호흡을 한번 한 사회자는 이내 오른쪽을 향해 팔을 펼쳐 보였다.

"자, 이번에는 암운곡 진영 선수 나와 주십시오!"

와아아-

사람들의 환호가 다시금 경기장 내에 가득 울려 퍼졌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소녀가 아닌 소년이 나타나자, 좌중은 삽시에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뚜벅뚜벅.

소년의 발걸음 소리가 거대한 경기장에 고요히 울려 퍼진다. 그가 경기장 위로 올라서자, 그제야 사람들은 황당하단 얼굴로 따지기 시작했다.

"장난하냐! 연화 어딨어!"

"연화 데려와!"

"엄청난 싸움이 될 거라는 말에 웃돈까지 얹어주고 들어왔다고!"

관중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사회자는 양손을 들어 올리며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이내 뒤를 슬쩍 바라보았다.

정말 이대로 진행하느냔 의미였다. 그런 그때였다.

"무진아, 준비됐어?"

"어, 잠시만."

소년이 목을 좌우로 푼다. 그리고 온몸에 힘을 주는 순간.

쿠구구구구.

땅이 흔들렸다. 엄청난 내력이 발산되었다.

소년이 서 있던 바닥이 일순 내려앉았고, 그 주위로는 강한 기류가 휘몰아쳐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사람들의 짜증 섞인 외침이 파묻히고 환호성으로 뒤바뀌는 건 순간이었다.

"어, 어, 엄청납니다. 이 정도의 내기 발산이라니……!"

"사회자님, 시작해도 될까요?"

넋을 잃고 무진을 바라보던 사회자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럼 양 진영의 최종 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작!"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청청이 곧바로 칠현금을 무릎 위에 놓으며 자리를 잡았다. 작년처럼 구석 모퉁이에 자리를 잡은 그녀의 주위로는 빛무리가 넘실대었다.

악기 위에 올라간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끝부터 저 끝까지, 마치 춤을 추듯 움직이며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낸다.

투둥-

그러나 그로 인해 파생되는 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바닥에 기다란 상처를 만들어내며 바람 한 줄기가 쏘아져 나갔다. 작년에 보았던 것과는 그 위력부터가 곱절은 더 되어 보이는 그 모습에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위, 위험한 거 아냐?"

"잘못하면 죽을지도 몰라!"

그러나 그걸 마주하는 소년의 얼굴엔 여유가 가득했다.

오른손을 활짝 펼쳐 앞으로 쭉 내민다. 그리고는 칼날과 같은 바람이 코앞까지 당도했을 때, 주먹.

'지천뇌공.'

팡!

파공음이 일었다. 경기장 한가운데로부터 한차례 강풍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저 주먹을 움켜쥐었을 뿐인데 저 정도라고?"

어안이 벙벙하던 사람들의 얼굴에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목청껏 소리 질러 외쳤다.

우오오오-

"아니, 대체 뭐 하는 녀석이지? 저게 말이 돼?"

"기를 응축한 공격을 그저 손짓으로 다 막아내다니?!"

작년에 연화라는 소녀는 청청의 공격을 다 피했었다. 그게 안 되면 쳐냈고.

그런데 저 소년은 제자리에 서서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상대의 공격을 모두 파훼하고 있었다.

그 엄청난 광경은 양 진영 핵심 인사들조차 놀라게 했다. 특히 여울나무 쪽을.

"아니, 어찌 저런!"

"흑철마괴의 제자라더니…… 어마어마한 괴물이군요."

"그래도 몇 번 쓰면 지치지 않겠습니까?"

호접일검의 의견에 적삼혈마 또한 동의를 표했다. 저런 무지막지한 공격은 공력을 심히 소비하기에.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일각(一刻) 가까이 이어지는 행태에 그들의 눈은 커질 대로 크게 커졌다.

"혹시 화경 아닐까요?"

"아뇨. 화경이라도 저리 무식하고 여유롭게는 쓰지 못합니다. 대의를 앞당긴 게 참으로 다행이군요."

저런 괴물이 5년 이상 성장한다면……. 적삼혈마의 목울대가 한 차례 크게 움직였다.

그렇게 수많은 관객들과 양 진영 인사들을 놀라게 하는 그 순간, 청청과 무진은 서로 전음을 주고받고 있었다.

- 뭐? 그러니까 우리 암운곡 총책임자인 흑학대신이 배신자라고?

- 어. 오늘 정오 안에 이곳을 빠져나가 암운곡으로 돌아가기로 했어. 엄청난 독을 들고 있는 모양이야. 듣기로는 전대 교주도 음독시킨 독이래.

- 그런……!

무진의 시선이 암운곡 진영으로 향했다. 과연…… 흑학대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시합이 중요한 게 아냐. 어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해.'

내기를 가다듬는다. 무진이 양팔을 크게 들어 올렸다. 그 모습에 공격을 쉬지 않고 쏘아 보내던 청청이 행동을 멈추었다.

의아함을 드러내는 관중들 속에서 무진의 목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졌다.

"기권하겠습니다. 더 받아내다가는 몸이 버티질 못할 것 같습니다."

잠깐 멍한 표정을 유지하던 사회자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경기장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는 관중석을 향해 소리쳤다.

"암운곡 측의 기권입니다! 어떻게든 상대의 내기가 떨어질 때까지 공격을 받아내는 전략을 썼는데, 생각보다 여울나무 측의 내기 양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사회자의 적절한 해석에 수긍하는 사람들.

"그런 거라면 이해하지."

"암. 화경들도 저리 화려하게 싸우진 못할 게야."

그리하여 이번 기경만회의 최종 승자는 여울나무가 되었다.

청청에게 고개로 가볍게 인사를 한 무진은 반파된 경기장에서 내려와 후다닥 흑철마괴에게 달려갔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지고 말았습니다."

"아니다. 수고했다. 너무 많이 보여주는 건 아닌가 했는데 적절한 선에서 잘 끊었구나. 예산은 좀 아쉽지만, 적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는 것보단 낫겠지."

아마 청청을 쓰러뜨렸다면, 그의 제자는 드높은 암살 위협에 휘말려야만 했으리라.

"그런데 스승님. 급히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보고?"

"예. 청청 말로는 암운곡 총책임자인 흑학대신이 배신자랍니다. 오늘 오전, 저희 형님을 암살하기 위해 이곳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흑학대신이?"

흑철마괴와 비격창마의 시선이 마주쳤다.

"혹 어떤 방법인지는 못 들었느냐?"

"독이라 했습니다. 전대 교주를 음독시킨 것과 같은 독이라고."

독이란 말에 안심을 하려던 흑철마괴의 눈이 부릅 뜨였다. 전대 교주를 음독시킨 독?

"선배님?"

"스승님……?"

흑철마괴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무진의 혈을 짚어준 그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주님께 보고를 올리러 갈 것이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일단 대기해라."

 

***

 

암운곡 총책임자 사무실 앞.

천강은 고개를 들어 나무로 된 문을 바라보았다.

'이번 생엔 처음 와보는군.'

문 위에 새겨진 각종 수식들. 그것들을 보자, 과거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렇다고 전생에 자주 드나들어 보았던 건 아니다.

두 번 정도. 그것도 초대받아 온 것은 아니고, 쓸 만한 게 뭐 없나 털어가기 위해 들어가 봤던 것이었다.

- 야, 땡추. 빨리 좀 열어 봐!

- 누구 오기 전에 빨리……!

- 하,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전생에 총책임자를 직접 만나본 것도 그 두 번이 다였다. 암운곡 총책임자가 훈련생들과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저벅저벅.

고개를 돌리자, 교관이 멀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회상을 마친 천강은 문을 열어젖혔다. 코끝으로 싱그러운 향기와 은은한 풀냄새가 느껴졌다.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간다.

천강의 숙소에 족히 열 곱절은 되어 보이는 공간. 한쪽 벽은 각종 문서들로, 반대편 벽은 크고 작은 도자기로 가득했다.

'암운곡 총책임자가 차를 좋아한다더니.'

아무래도 저 도자기들 대다수가 찻잎을 보관하기 위한 것이겠지.

천강의 시선이 한참을 그곳에 꽂혀있자, 전방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날아와 귓가에 안착했다.

"차에 관심이 많은가 보구먼?"

"아, 예. 인사드리겠습니다. 천강입니다."

"그래. 난 암운곡 총책임자 흑학대신이다."

천강은 고개를 들어 총책임자를 한 번 슥 훑어보았다.

백발의 머리칼에 긴 수염. 학자풍이 느껴지는 외모.

행색만으로 봐서는 이순(耳順)은 되어 보이는 늙은이나, 그 안에 느껴지는 강렬한 기운은 분명히 화경이었다.

"혹시 자식이 있으십니까?"

누구나가 젊어 보이는 육체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가끔은 이런 이들도 더러 있었다.

천강의 질문에 노인이 껄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다. 그냥 내 나이에 맞게 외견을 유지하는 것이지."

맹익처럼 자식이 있어서 그런 줄 알았더니.

노인이 천강을 한쪽 자리로 이끌었다. 문밖을 잠깐 돌아본 천강은 그의 인도를 받아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절 찾으신 겁니까?"

"내 너를 부른 건,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노인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암운곡 최강자인데 차 한 잔 정도는 대접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말이다."

그러며 묻는다.

"혹시 좋아하는 차가 있느냐?"

"용정차 좋아합니다."

"호오. 먹어본 적은 있고?"

"예. 한 2년 전쯤, 이곳에 오기 전 운 좋게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넌 정말 운이 좋구나. 내게 딱 마침 마지막 우려낼 양이 남았다."

그러며 흑학대신이 차를 우려내 소년에게 건넸다.

소년은 찻잔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고는 그 향과 맛을 음미해 보았다.

일반 녹차보다 부드럽고 그윽한 향. 입안으로 감미로운 맛이 퍼지는 듯하더니,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확 시원해진다.

"……좋군요."

"좋아해 주니 그것참 다행이로군. 차를 내준 보람이 있어."

소년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렸다. 이후 그 목울대가 몇 차례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걸 바라보는 흑학대신의 눈이 작게 호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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