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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05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7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05화

105화. 심문

 

 

소년이 사신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엉덩이에서 털썩 나는 소리에 녀석이 잠시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이내 손에 들고 있는 걸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배고픔은 누구나가 이겨내기 힘든 법이지.'

원래 계획대로라면, 일단 죽도록 패고 치료해주고 죽도록 패고 치료해주면서 녀석에게 어느 정도 공포를 각인시켜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미 녀석은 천강에게 크나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원인은 아마도 불사신이라 여긴 51명의 동료가 처참하게 죽는 걸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겠고.'

시각적인 공포는 효과가 굉장하다. 이 상황에서 패본들 도리어 버틸 만하다는 생각과 함께 지금의 공포를 사그라들게 할 뿐, 천강은 앞부분을 생략했다.

그리고는 느긋하게 녀석의 포만감이 차오르길 기다렸다.

녀석의 얼굴에 독기가 서서히 풀려간다. 굳건했던 의지가 느슨해지고, 이생의 삶에 대한 애착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충분히 열매가 무르익었다 생각이 드는 순간, 천강의 입이 움직였다.

"이제 이야기 좀 해봐. 네가 만들어진 곳 어디냐?"

"마, 마, 말할 수 없다. 말하면 난……."

"걱정 마. 비밀 엄수는 해줄게. 어서 말해 봐."

그러나 고개를 젓는 사신.

천강은 머리 위로 손을 올려 흑색 절굿공이를 꺼내 들었다. 그걸 보는 순간, 녀석이 비명을 지르더니 바닥을 기어 도망가기 시작했다.

"히이익!"

"자, 다시 물을게. 너희들 만들어진 곳 어디야. 천산 내야?"

"모, 몰라. 모른다고!"

역시 쉬이 대답을 안 하는군.

그러나 지금부터 대답하게 만들면 되리라. 천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놈에게 다가서며 몽둥이를 뱅글뱅글 돌렸다.

훙훙. 위협적인 소리에 사신의 몸이 더욱 움츠러든다.

'자, 어서 불어라. 입이 근질근질 거리지 않니?'

그렇게 심리적으로 놈을 압박해 나가는 순간이었다.

'음?'

천강의 눈이 한 차례 커졌다가 작아졌다.

사신에게 바짝 다가가 녀석의 고개를 들어 올린다. 천강은 놈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너 이제부터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해."

녀석의 눈이 천강을 응시한다. 겁을 집어먹은 동물처럼, 동공이 좌우로 거칠게 흔들거리고 있다. 그런 녀석의 눈을 직시하며 천강이 질문을 쏟아냈다.

"그곳이 어디야?"

"모, 모른다……."

거짓.

"천산 내에 있지? 그렇지?"

"우, 우으…… 난 모른다……."

거짓.

"예, 아니오로만 대답해라. 응?"

"아, 아, 아니오오."

씨익.

분명 녀석은 아니오라고 말했으나 천강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터득한 심안(心眼)이 천강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녀석이 한 말은 거짓이라고.

"그래. 천산 내에 있단 말이지?"

"어, 어어?"

"자, 그럼 다음 질문이야. 사백동굴 지역에 있나?"

"모……른다."

후우웅. 흑색 절굿공이가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그대로 녀석의 오른 다리로 향했다.

"끄아아아악!"

"어이어이. 겁먹지 마. 아직 안 내려쳤으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예, 아니오로만 대답해라. 알겠냐?"

끄덕끄덕.

"그럼 다시 물어보도록 하지. 사백동굴 지역에 있나?"

"아, 아니다."

"잘했어. 그럼 암운곡 지역은?"

심안(心眼)은 마주한 상대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심지어 계속 쳐다보면 점점 더 많은 걸 알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천강은 천산의 지역 하나하나를 일일이 짚어가며 놈들의 근거지를 추려 나갔다.

결국 그 위치를 알아내는 데 성공한 천강.

사신의 뒤통수를 내리쳐 기절시킨 소년은 놈을 어깨에 짊어지고는 교주 앞으로 나아갔다.

"교주님. 놈들은 화백고개 근처에 자리한 어느 동굴에 위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한 것이냐?"

"예. 사백고개에서 정확히 서쪽 방향입니다. 지금 바로 같이 가시지요."

"잠깐. 조금 더 검증하고 철저히 준비한 이후에……."

"그럴 시간 없습니다. 눈치채고 내빼면 모든 일이 허사가 됩니다."

미안하지만 난 당장에 신목의 과실이 필요해서 말이야.

그 자신만만한 태도에, 교주는 천수마검과 친위대 일부를 이끌고 곧바로 화백고개로 향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정보를 빼낸 것이냐?"

"그냥 남들 심문하듯 똑같이 했습니다. 공포를 심어주면서 음식을 권했지요. 그랬더니 감동을 했는지 알아서 불더군요."

- ……무서운 소년이로고.

-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던데.

- 우릴 꼬드긴 것도 그저 운이 아니었던 이야기겠지.

한 차례 신병이기들의 논평이 이어지고, 교주의 얼굴에도 감탄이 올라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즉에 네게 이 일을 맡길 것을 그랬구나."

미안. 맡겼어도 내 쪽에서 거절했어.

사실 그날 일부러 교주에게 떠넘긴 거였다.

붙잡은 그 날 그 자리서 심문할 수도 있었지만 그리하지 않은 건, 천강 자신의 가치를 더더욱 높이기 위해서였다.

수십 년을 심문에 종사한 이들조차 얻어내지 못한 자백. 그러나 내가 얻어냈다.

몸값을 부풀렸으니, 다음에는 더 큰 건을 통해 더 좋은 걸 요구할 수 있으리라.

"저와 약조하신 거 오늘 중으로 됩니까?"

"걱정 마라. 이미 그림자에게 일러두었다. 성과가 있다면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없다면……."

"무려 신교의 하늘을 움직이게 한 죄, 달게 받겠나이다."

교주를 헛걸음하게 만든 죄는 크다. 만약 여기서 허탕을 친다면, 그동안 교주를 통해 얻은 걸 도로 뱉어내야 할 것이다.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 큰 빚을 지게 된다.

'과연 심안(心眼)이 맞았을까?'

순간 아주 잠깐 흔들렸으나, 천강은 자신의 능력을 믿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나타났다.

화백고개에서 서쪽으로 수색하며 나아가던 이들 중 하나가 빠르게 되돌아왔다.

"교주님, 발견했습니다."

"인도하라."

따라간 그곳에는 과연…… 사신의 자백대로 굴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굴 앞에 선 천마가 손을 들어 올렸다. 흩어졌던 이들 중 반수가 빠르게 모여들었다.

"들어가 탐색을 한 뒤 결과를 보고하라."

"존명."

순차적으로 안으로 들어가는 마인들. 그러나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달랐던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천수마검이 나와 고개를 흔들었다.

"잘못 짚은 건가?"

"아닙니다. 분명 흔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간발의 차로 놓쳤습니다. 뜬지 반 시진이 채 안 됩니다. 그런데……."

"그런데?"

천수마검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보고했다.

"인체를 개조하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근데 그게 굉장히 낯이 익습니다."

마교에 인체 개조를 할 수 있는 이는 단 세 명뿐이다.

"백발괴의와 그 제자들을 당장 불러들여라."

 

***

 

여울나무 숲 회의실.

기다란 상 좌우로 약 이십여 명의 마인들이 앉아 있다.

여울나무를 좌지우지하는 핵심 인력인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이번 회의의 주제가 무엇일지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그런 그때, 뒤늦게 한 사람이 들어와 모인 이들에게 고개 숙여 보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소집해놓고 늦고 말았습니다. 투파창귀 님, 평안하셨습니까?"

"그래, 적삼혈마. 네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급히 일을 수습하고 오는 길이라고?"

"예.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기다리게들 하여 송구합니다."

"아니다. 수고했다. 어서 앉아라."

적삼혈마가 상석 가까이에 가 앉았다.

원래대로라면 흑도마황과 뇌명신창, 혹은 도패천황이 자리했어야 할 자리였지만, 공석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적삼혈마에게까지 오게 된 자리였다.

착석한 뒤 고개를 들자, 적삼혈마의 건너편에서 한 소녀가 인사해왔다. 투파창귀의 후계자였다.

"평안하셨습니까."

작년까지만 해도 훈련용 목각인형마냥 훈련생들에게 두들겨 맞던 그녀는 어느덧 성장해 적삼혈마의 바로 밑까지 치고 올라와 있었다.

여울나무의 재정 대부분을 쏟아 부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그녀의 재능 또한 보통이 아니라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었다.

적삼혈마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헛기침을 해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제가 여러분들을 이리 급히 모신 것은, 한 가지 중대한 결정을 함에 있어 그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기에 그렇소?"

"여러분도 알다시피, 최근 저희 여울나무 쪽 피해가 막심한 상황입니다. 기경만회의 패배, 가을걷이 성적의 부진……."

"그런 것들은 훈련생 교육에 더욱 박차를 가하면 되는 일 아니오?"

"그렇지요.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닙니다. 도패천황의 사망과 비밀리에 준비하던 사신들의 손실까지. 이 모든 게 한 사람을 통해 일어났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웅성웅성. 너도나도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정말 그 모든 게 단 한 사람에서 비롯된 것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게 누구요?"

"지금 암운곡에서 마교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소교주입니다."

적삼혈마의 대답을 듣기 전만 해도 혼란스러울 정도의 긴장감이 감돌던 회의실 분위기가 단번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적삼혈마. 거 회의실에서 장난하는 거 아니오. 농담을 싫어하는 투파창귀 님도 계신데, 자중하셔야지."

"그러게 말일세. 난 또 무슨 이야기라고."

"혹시 이 뒤에 진짜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 겐가? 그것 때문에 전초전 겸 농을 던진 거라면 내 이해하네. 하하핫."

사람들의 웃음 속에 실눈 사내의 눈과 입이 호선을 그렸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투파창귀가 팔을 들어 올리고서야 사람들은 웃음을 멈추었다.

"적삼혈마. 넌 겉으로 웃고 있어도 속으론 계산하고, 설령 입이 농을 던지는 경우에라도 뼈가 있곤 했지. 그리 생각하는 연유가 무엇인지 말해 봐라."

"예. 처음에는 저도 긴가민가했습니다. 고작 그 어린 것이 잘나도 얼마나 잘날까 하여."

즐거이 웃으며 말을 하던 적삼혈마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그런데 감쪽같이 저흴 속인 거였더군요. 괴기나한을 잡기 위해 보낸 사신 52개체가 그 소년의 개입으로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 무슨……?"

"아니, 그거 하나하나가 능히 화경과도 싸워 이길 수 있다 하지 않았소? 그런 걸 쉰둘이나?"

"아무래도 이번엔 적삼혈마가 넘겨짚은 것 같소이다."

대부분이 말도 안 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적삼혈마는 꿋꿋이 자신의 말을 이어나가며 그 이유를 밝혔다.

"저도 그리 믿고 싶었습니다만, 반 시진 전 첩자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소교주가 사신들을 처리하고 그중 하나를 생포해 심문을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제야 회의실 내로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각자 생각에 잠긴 사람들.

그러나 하는 생각들은 모두 동일했다. 투파창귀가 대표로 물었다.

"그래. 그럼 네가 볼 때 녀석의 경지는 어떤 것 같으냐."

"못해도 화경은 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말도 안 되네! 그 어린 나이에 화경이라니?!"

"왜 말이 안 됩니까. 저희도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고작 1년 만에."

사람들의 이목 집중을 받은 청청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소교주는 더 빠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겐 흡공이 있으니까요."

"킁.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군."

"골치 아픈 능력이야. 이로써 교주 진영에만 흡공을 사용하는 이가 셋이나 되는 것 아닌가."

고개를 주억이던 투파창귀가 물었다.

"그래서 네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냐."

"쳐내야 할 것 같습니다."

"소교주를?"

"예. 이대로 놔둔다면 현 교주를 넘어서는 괴물이 될 것입니다. 그 전에 처리해야 합니다."

"확실히…… 요새 소교주가 너무 설치고 돌아다니긴 하더군."

사람들은 그제야 적삼혈마가 자신들을 부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소교주를 죽이는 건, 곧 전면전으로 불거질 수 있는 상황. 그 사안의 중대성으로 인해 동의를 구하기 위한 것이리라.

"재미있군. 한 번 해봐라."

투파창귀의 허락을 필두로 주변에서도 모두 동의하고 나서자, 적삼혈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에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계획에 착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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