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01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01화
101화. 재회
'저 녀석…… 대체 뭐지?'
189번 구역 지하수로.
52명의 사신들을 거느리고 괴기나한을 치기 위해 들이닥쳤던 뇌명신창은 느닷없이 끼어든 한 소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사신들의 외침으로 봐서는 저게 요즘 마교에서 명성을 구가하는 그 소교주라는 것 같은데, 그 신위가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화경조차도 일대일로 능히 이길 수 있는 괴물들을 단신으로 처리하다니. 그것도 무려 52명이나!
'정보가 잘못됐다. 우리가 그동안 알아 온 정보와 너무 차이가 커.'
그에 바로 몸을 내빼려 했으나, 자존심이 그의 발목을 붙들었다.
흑귀에게서 차출 받은 사신 52명을 송두리째 날려먹었다. 그러면서 괴기나한을 잡지도 못했다.
마교서열 5위 뇌명신창.
이대로 돌아갔다간, 그 위명에 먹칠을 해도 단단히 하게 생긴 상황이었다. 이후엔 자연스레 입지 또한 하락하겠지.
'젠장.'
이대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적어도 목표는 완수해야만 했다.
그에 뇌명신창은 신전에 들어간 소교주와 괴기나한을 가만히 기다렸다. 먼저 밖으로 나오는 소교주.
'저 괴물은 내가 잡지 못한다. 보내주자.'
새하얀 눈밭에 몸을 숨긴 채, 그는 자신의 사냥감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밖으로 나온 그의 목표물.
노인이 비척비척 걸음을 옮겨 어딘가로 향한다. 뇌명신창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오목골로 가는 모양이군.'
괴기나한은 흑살마신과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과거를 아는 이들은 없었지만,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 보면 그러했다.
흑살마신이 갑작스레 종적을 감추고. 혹시나 죽은 것 아닐까 하여 의혹이 극에 다다랐을 때, 끝까지 그의 생존을 주장하며 오목골과 그 거처를 지켜온 것만 봐도 그러하지 아니한가?
그로 인해 자신의 아들이 죽임을 당하고, 손녀딸이 목숨 위협을 받아도 그는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그의 행동은 여울나무 측과의 잦은 대립을 만들어내었고, 결국 오늘의 이 상황을 자초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여기가 좋겠군.'
적절한 자리를 확인한 뇌명신창은 나무 꼭대기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는 등에 메고 있던 창을 풀어 자세를 잡았다.
일반적인 창에 비해 길이가 다소 짧은 창.
이것은 들고 싸우는 용도가 아니다. 던져 저격하기 위해 최적화된 무기이다.
신병이기 뇌명창.
뇌명신창이 그것을 들고 팔을 크게 뒤로 젖혔다.
'잘 가라, 괴기나한.'
그리고는 힘껏 던져 보냈다.
그러자 손에 들려 있던 창은 날아가지 않고, 푸른 전격이 저 멀리 한 노인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쿠르릉-
우레 소리가 고요한 하늘을 찢어놓는다.
"맞췄다……!"
***
'흠. 역시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 비슷해. 우연이라기엔 공통점이 너무 많다.'
터덜터덜. 발을 놀리는 노인.
산을 내려가는 맹익의 머릿속은 온통 그 소년 생각으로 그득했다.
'혹시 선배가 낳은 아이 아닐까?'
가만 생각해보니 일리 있지 않은가?
갑작스레 종적을 감춘 것도 그렇고, 그 아이가 흑살마신과 말투나 행동거지, 모습이 똑 닮은 것도 그렇고.
마인이 중원 사람과 혼례를 올리는 경우는 꽤 자주 있는 일이다. 그럴 경우, 보통은 마교를 떠나 조용히 사는 게 전형적인 수순이었다.
'한 번 물어보자. 애비 성함이 어떻게 되느냐고. 어떻게 생겼느냐고.'
딱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들고 있던 검이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음?"
그것은 지하수로에서 소년으로부터 날아온 검으로, 유려한 검날과 아름다운 자태, 독특한 문양을 가진 명검이었다.
지하수로에서 나오고 나서 소년에게 돌려준다는 게, 깜빡하고 돌려주지 못해 들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돌연 그 검이 부르르 떨며 검강을 두르더니, 손에서 빠져나와 허공 위로 떠올랐다.
콰아아앙-
폭음이 인 건 바로 그 직후였다.
강한 회오리바람이 주변 나무와 풀을 휩쓸고, 이내 하늘로 쏘아져 올라가며 달을 가린 구름을 모조리 치워버린다.
뇌명창의 일격을 맞고도 맹익이 멀쩡한 걸 본 뇌명신창의 얼굴에 당혹감이 올라왔다.
"말도 안 돼! 그 공격을 막아냈다고?!"
그러나 실패한 건 실패한 것이고, 곧바로 2차 공격을 준비하는 남자.
그러나 그런 그의 뒤로 검은 그림자, 아니 검은 구름이 드리웠다.
"여어. 너 좋은 무기 들고 있구나?"
"누, 누구냐?!"
훙. 위협적으로 휘두른 공격에 상대는 가볍게 몸을 낮춰 피하고는 그를 직시했다.
"소……교주?"
"정답."
"네가 여길 어떻게……?"
"그 질문이 아닐 텐데. 진짜 묻고 싶은 건, 내가 괴기나한을 암살할 걸 어떻게 알았느냐 아냐?"
뇌명신창의 고개가 움직였다. 천강은 별거 아니라는 얼굴로 대답해주었다.
"너 지하수로 때에도 있었지?"
"설마……!"
"그 설마가 맞아. 네가 맹익 뒤를 쫓길래, 네가 어떻게 나오나 보려고 나도 네 뒤를 몰래 뒤쫓았어."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런 걸 전혀 못 느꼈거늘……!"
당황할 만하다. 모든 신병이기들은 광범위한 탐색 능력을 장착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아까 교주를 통해, 마교 내에 있는 신병이기의 종류에 대해 모두 전해 들었다. 그것들을 누가 들고 있는지도.
그중엔 단창 형태의 무기도 있었다는 걸 떠올린 천강은 신전을 떠나는 척하며 암운신공으로 몸을 두르고 녀석의 뒤를 따른 것이었다.
"뭐 그럴 만하지. 내 은신기술이 좀 빼어나서 말이야."
"잠깐. 너 그 기술은…… 암운신공?"
"오?"
"너 이 자식, 암운사신과 무슨 관계냐! 설마 암운사신이 교주 쪽 편이었던 거냐!"
"흠.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중요해? 응?"
천강의 진한 미소에 뇌명신창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소교주가 여기 있는 것도, 소교주가 암운신공을 사용하는 것도 당혹스러운데, 그 소년이 지금 하늘 위에 떠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발판도 없이. 홀로.
"너, 너, 너 설마 현경……."
씨익.
"네놈 진짜 소교주가 맞냐! 어찌 그 어린 나이에 현경을!"
"글쎄. 어떻게 하다 보니 되더라?"
이길 수 없다. 절대 이길 수 없다.
이곳에서 여울나무까지의 거리는 전력으로 뛰면 일각(一刻)!
필사적으로 도주를 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판단이 서자마자, 뇌명신창의 신형이 사라졌다.
"하아. 전생에는 통했을 테지만 말이야."
천강의 신형 또한 사라졌다. 그 신형이 다시 나타난 건,
쿠구구구구.
거대한 폭발과 함께 땅덩어리들이 비산하는 그 중심부였다.
"컥……."
"지금은 안 통해. 나도 이젠 좀 달릴 줄 알거든."
울컥. 입에서 피를 토한 뇌명신창의 팔이 움직였다. 그의 손에 붙들려 있던 창이 잔상을 남기며 천강을 향해 빠르게 찌르기를 날려 왔다.
검을 든 채 그 공격을 이리저리 막아내는 소년.
"죽어엇!"
죽기를 각오한 최후의 발악이 통한 걸까?
이렇다 할 반격을 하지 못한 채 간신히 방어해대는 천강을 보며 뇌명신창이 더더욱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리곤 크게 소리쳤다.
"하! 사신들을 무식하게 때려잡기에 쫄았더니, 별거 없었잖아!"
쿠콰콰콰콰.
강기와 강기가 부딪치며 번쩍번쩍 불똥이 튄다. 땅이 갈라지고 나무가 잘리며, 숲이 초토화된다.
그렇게 일각(一刻) 정도 지났을까. 뇌명신창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 뭐야. 분명 공격을 수 차례 성공했는데 왜 몸에 상처가 없어?'
열 번의 공격 중 한두 번이 분명 소년의 몸을 스쳤는데도 불구하고, 소년의 몸은 아주 멀쩡하기만 했다.
피 한 방울은커녕, 긁힌 상처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응? 왜 멈춰? 더 안 덤비냐?"
"너 대체 뭐야. 어, 어떻게 강기에 맞고도 멀쩡할 수가 있어."
"거참 궁금한 게 많은 놈일세."
소년이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다. 뇌명신창이 뒤로 두 발짝 물러난다.
소년이 다시금 한 발짝 나아가자, 뇌명신창이 두 발짝 물러나다 뒤로 자빠졌다.
"이제 다 보여준 거냐? 더 이상 보여줄 재주 없냐?"
"너…… 날 가지고 논 것이냐?"
"그건 아니고. 네가 들고 있는 거 신병이기지? 그 쓰임새 좀 보려고 그랬지. 대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좀 궁금했거든. 그런데……."
천강이 방긋 미소 지었다.
"별거 없네? 마교 서열 5위라고 해서 괜히 쫄았잖아?"
천강이 검을 머리 위 검은 안개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그 안에서 몽둥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네 마지막은, 아까 네가 말한 이 무식한 무기로 장식해줄게."
"자, 잠깐! 잠깐만 기다려!"
"잘 가라."
"잠깐만! 호, 혹시 궁금한 거 없어? 내가 아는 건 모조리 말해줄 테니까……."
"내가 너 같은 놈들은 잘 알지. 말해줄 생각도 없으면서 입은 좆나게 터는 거."
"그, 그, 그건 오해……. 제발 한 번 들어봐. 혹시 알아? 네가 궁금한 걸 내가 알고 있을지?"
음. 그것도 일리는 있는 말이다.
그에 천강은 흑색 몽둥이를 도로 집어넣고는 녀석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곤 물었다.
"너 혹시 신물(神物)에 대해 아는 거 있냐?"
"신물?"
"그래, 신물. 몰라? 아는 거 없어?"
"그, 그게……."
"하아. 이거 진짜 쓸모없는 놈일세?"
천강의 팔이 다시 머리 위로 올라갔다. 그걸 본 뇌명신창의 안광이 번뜩였다. 그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날카로운 창끝이 천강의 목을 향했다.
"하하핫. 죽어랏!"
툭.
"어?"
분명 목에 닿았다. 피부의 푹신한 감촉도 느껴졌다. 그러나 딱 그뿐이었다.
몽둥이를 꺼내려던 소년의 손이 도로 내려온다. 이내 그 창대를 붙잡은 천강의 입가엔 진한 미소가 올라왔다.
"이렇다니까. 말해줄 생각도 없으면서 입은 좆나게 털지. 꼭 마지막엔 매를 벌고."
쿠콰콰콰콰.
"어, 어어?"
당황한 음색이 뇌명신창의 입에서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온몸에 내기가 쭉쭉 빠져나가고 있으니까.
"사, 살려……."
"이봐. 공자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아나?"
뇌명신창의 눈이 소년과 마주친다. 천강은 생긋 웃으며 말해주었다.
"앞날을 결정짓고자 한다면 옛것을 공부하라. 이런 상황에서 적을 살려주는 경우가 있을까? 없을까? 응?"
"이런 씨바아아아!"
천강은 녀석의 내기를 쪽 빨아들였다. 그리고는 창을 휘둘렀다.
툭. 바닥에 떨어지는 머리. 힘없이 쓰러지는 신형.
"하. 이게 마교서열 5위라."
그 명성에 비해 허무하기 그지없는 말로로구만.
아무튼 이로써 천강은 뇌명창을 얻게 되었다.
우웅. 손 안에서 이는 작은 진동.
- 동료들이 꽤 많이 있군요. 인사드리겠습니다, 뇌명입니다.
'그래.'
이번에는 꽤 예의 바른 녀석이 들어온 것 같네. 천강은 애들이랑 인사나 하라며 머리 위 검은 구름 속으로 그것 집어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놀란 눈으로 지켜보는 한 노인을 볼 수 있었다.
"다친 덴 없습니까?"
끄덕. 노인은 말없이 자신의 손을 들어보였다. 거기엔 아까 지하수로에서 천강이 보내주었던 막야가 쥐어져 있었다.
천강의 의지를 받아, 스르륵 검은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막야.
'수고했어.'
- 별말씀을요, 소년.
"그럼 이만 내려갈까요?"
싸움을 일단락한 천강이 발걸음을 옮겼다.
- 시체는 처리 안하냐?
'어.'
어차피 가만 놔두면 어련히 알아서들 흑살마신의 짓으로 판단할 것이다. 그에 쭉 내려가는데, 괴기나한이 따라오지 않는 게 느껴졌다.
"뭐하십니까? 안 내려오고?"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는 노인.
천강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괴기나한은 말없이 천강을 응시하고 있었다.
"……."
"……."
불던 바람이 돌연 멈추었다.
신나게 울어대던 풀벌레들의 음악소리도 우뚝 멈춰 섰다.
마치 시간의 흐름이 멈추어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 그 멈추어 버린 세상 속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
"……."
멈추었던 바람이 다시 피부 위를 스쳐 지나간다.
풀벌레들의 즐거운 노랫소리가 다시 수풀 위를 성대히 장식하기 시작한다.
그 속에서 노인의 입이 작게 달싹였다.
"흑살마신…… 선배님?"
씨익.
"땡추, 오랜만이네?"
처음 서로를 마주했을 때부터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오랜 기간을 함께했기에.
그러나 아는 체를 하지 않았던 것은, 혹여나 그가 아닐까 하는 일말의 불안 때문이었으리라.
"역시……. 역시 선배시군요!"
"야, 야! 너 뭐하냐?!"
"선배!"
"어, 어어?"
이게 나이를 거꾸로 먹었나?
그러나 맹익의 얼굴을 본 천강은 그냥 볼을 긁적였다.
천강에게는 고작 1년 남짓에 불과했지만, 그에게는 너무도 오랜 기간이었던 것이다.
무려 50년. 50년 만의 재회에, 노인은 소년의 품 안에서 울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