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00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00화
100화. 맹익
맹익은 가난한 집안에 첫째로 태어났다.
마음이 여리고 어려서부터 허약한 그를 볼 때면, 그의 부모는 늘 한마디씩 하곤 하였다.
"쯧쯧. 어따 가져다 쓸꼬. 힘이라도 좀 쓰면 어디 팔아먹기라도 할 것을."
맹익은 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어린 아기가 보면 울고, 동네에 쏘다니는 아이들이 보면 겁을 집어먹을 정도로.
대기근으로 가난하기 그지없는 시절은 제법 지났으나 입에 풀칠하기 힘든 그의 부모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자식들을 팔아넘겼고, 기어이 맹익 또한 팔아먹는 데 성공하였다.
'동생들도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집안에 홀로 남아있는 것도 뭐했는데……. 잘됐지.'
맹익은 쥐 장수에 팔려 마교로 넘어왔다. 당시 그의 몸값은 감자 다섯 개였다.
그래도 부모에게 불만은 없었다.
자식을 잡아먹지 않은 게 어디인가?
그렇게 마교로 넘어왔으나…… 가난하기 그지없고 마음도 여린 그가 살아남기에 마교는 혹독했다.
운 좋게 쥐 굴의 졸업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지만, 암운곡에서의 끝없는 수련은 나약한 정신력을 가진 그에게는 너무도 힘든 것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게 바로 천강이었다.
"야, 넌 뭔데 밥도 안 먹고 거기서 그러고 있냐?"
"오오. 이번에 들어온 신입이라고?"
"교관 없는 이들끼리 어때? 너도 함께 할래?"
맹익에게 천강은 특별한 존재였다.
부모조차 꺼려하던 외모를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부모조차 버린 그에게 그는 손을 내밀어 주었다.
어릴 적에는 정신적으로 버틸 힘이 되어주었고, 나이가 든 뒤로는 죽을 위기에서 수 차례 구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힘든 일이 닥쳤을 때는 '선배, 선배라면 어떻게 했을까요.'하며 물었고, 무언가를 이루었을 땐 '선배, 제가 해냈습니다!'하며 그리 자축하였다.
맹익에게 천강은 부모이자 보호자요, 곧 희망 그 자체였다.
***
'닮았다. 흑살마신 선배와 너무 닮았다.'
행동이며 말투며.
물론 조금은 어린 느낌이 나긴 했지만, 건들건들 운을 떼며 '여어.' 거리는 것이나 다른 이의 시선 따위는 조금도 신경 안 쓰는 안하무인과 같은 행동은 흑살마신과 완전히 똑같았다.
특히 마교에서 오직 그만이 가졌던 전형적인 습관.
"야, 너 공자님이 뭐라 하셨는지 알아?"
"아. 또 나왔네. 그놈의 공자님 타령."
손녀딸이 표정을 구기며 후다닥 맹익의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이동한다. 그녀는 소년을 검지로 가리키며 투덜댔다.
"할아버지, 봐봐. 천강 진짜 이상하지?"
천강…….
"허헛. 매화야. 공자님 말씀에 얼마나 주옥같은 말들이 많은지 아느냐."
"윽. 할아버지도 그러기야?"
노인이 껄껄 웃는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계곡 옆을 쳐다보았다. 어느덧 도착했는지, 암운곡의 거대한 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천강은 애들에게 고갯짓했다.
"어서들 내려가."
"천강, 넌 어디 가려고?"
"난 너네 할아버지랑 잠깐 교주님 만나러 갔다 올 생각이다. 이거 넘겨야지."
천강의 어깨에 매달린 채 거의 질질 끌고 다니다시피 한 사신을 보며,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전에 무진아, 잠시 이쪽으로."
"예, 형님."
무진이의 혈을 빠르게 짚어준다. 서서히 약해지던 봉인의 벽이 다시금 굳건해진다.
"먼저 가서 자고 있어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니다. 먼저 자라."
"예."
응급조치를 마친 천강은 이제 그만 내려가라며 채근했다. 아이들은 맹익에게 꾸벅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암운곡 밑으로 내려갔다.
무사히 밑바닥까지 도착한 걸 확인한 천강.
"자, 그럼 우리는 교주님 뵈러 가봅시다."
두 사람은 곧바로 천산의 꼭대기에 자리한 신교의 신전으로 올라갔다.
달이 중천에 뜬 늦은 밤인데도 교주는 업무가 과중한지 아직 자지 않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앞에 생포해온 사신을 떡 하니 내려놓자, 교주의 눈에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이것은 무엇이냐?"
"들었습니다. 최근 지하수로에서 기계‧진식 부문 인력이 자꾸만 사라진다고요. 이것들이 그 용의자입니다."
"이것들?"
아무래도 천강은 설명을 좀 할 필요가 있어 보여,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했다.
"예. 지금 잡아 온 건 하나지만, 이들은 혼자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전에도 절 암살하기 위해서 몇 번 찾아왔었지요."
천강은 예전에 이것들과 몇 번 맞붙었던 걸 이야기했다. 대신 풍미관 근처에서의 일과 시기는 대충 속여 넘겼다.
"그러니까 이것들은 강기에 타격을 안 받는단 말이냐?"
"예. 그나마 외공의 타격은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몸이 강철 같아 쉽지 않습니다."
놀란 교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검강을 만들어 손등 위를 베나, 옅은 흠집만 나는 걸 본 그의 눈은 작게 흔들렸다.
"이것들을…… 어디선가 대량생산하고 있단 말이지?"
혈강시보다도 단단하면서도 이지(理智)는 살아 있다.
현경 고수라도 쉬이 잡지 못하는 내구도에, 조직적으로 단체로 행동한다.
문제는 녀석들에게서 그 어떤 내기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귀찮은 존재들이 소교주로 알려져 있는 천강을 암살하기 위해 몇 번이고 찾아왔다면, 응당 그 뒷배는 여울나무 세력인 상황.
"수고 많았다. 이것을 생포해 오다니.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구나."
"뭐 생포해 오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소년을 보며, 천마가 작게 웃어 보였다. 이제는 천강이란 요 소년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된 천마였다.
"그래. 네가 원하는 게 뭐냐. 어떤 보상을 원하느냐?"
"큰 걸 바라진 않습니다. 정보를 좀 원합니다."
"정보라? 물어보거라.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대답해 줄 터이니."
"그렇다면……."
천강은 얼마 전 일귀에게서 받은 정보를 꺼내들었다.
"신물(神物)에 대한 정보를 원합니다."
"신물?"
"예. 그게 무엇인지와 어디 가면 얻을 수 있는지 등등이요."
"네가 말하는 신물이라면, 마교의 역사에 몇 번 언급된 그것을 말하는 것이냐?"
아마 맞을 것이다. 천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교주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마교의 신물은 신검과 함께 신교의 시작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적인 물건이다. 매우 상징적인 물건이라고도 할 수 있지. 그러면서도 신검과는 굉장히 다르다."
"어떤 점이 말입니까?"
"신검을 모든 인간이 다룰 수 없듯, 신물 또한 그러한 조건이 걸려 있는데……."
조건?
"기록에 의하면 인간은 사용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을 자유자재로만 다룰 수만 있다면, 수백 명의 현경 고수를 상대로도 거뜬히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고 적혀있다."
하. 그릇이 남다르긴 하구만. 현경 수백이라.
- 그런 대단한 무기가 있었나?
- 난 들어본 적 없네만. 승사 그대는 어떤가?
- 나 또한 없네.
"그건 어디 가면 볼 수 있답니까?"
천강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그러나 교주는 고개를 저을 뿐이다.
"그것의 상세한 위치는 나도 모른다. 내가 교주라도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건 아니라서 말이다. 마교 서고 어딘가엔 그 단서가 기록되어 있을 수도 있겠지."
"그렇……군요."
"도움이 좀 되었나?"
천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자 교주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에 따라 어둠 속에서 나타나 빠르게 다가오는 그림자들. 천강은 재빨리 사신을 붙들고는 그 그림자들을 노려보았다.
'어이쿠. 진짜…… 전대 교주 아들 아니랄까 봐 속이 시커멓네.'
까딱 잘못했다간 눈 뜨고 코 베일 뻔했다.
"뭔가 아직 할 말이 남아있느냐?"
"아직 보상이 영 시원찮아서……. 신물에 대해 들은 거라고는 그저 그 능력이 어떻다는 것과 교주님이 아는 게 없다는 게 다인데, 그걸로 퉁치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그림자들이 살기를 피워 올렸다. 아무래도 천강이 건방지다 여기는 듯했다.
그러나 뻔뻔함으로 치면, 전생에 마교에서도 손꼽히는 천강이 그깟 살기에 눈 하나 깜짝할 이유가 없었다.
천마는 졌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그림자들을 돌려보냈다.
"그래. 그럼 이번에는 무엇을 원하느냐?"
"신물에 대한 정보는 그렇고, 마교 내에 있는 신병이기들에 대한 정보를 원합니다."
"마교 내면…… 이미 주인이 있는 것들까지 포함해서 말이더냐?"
"예, 주인이 있든 없든 상관없습니다. 여울나무 쪽도 상관없고요."
투파창귀를 상대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신병이기를 왕창 보유하는 것. 신병이기들만 없다면, 천강은 투파창귀를 일대일로 이길 자신이 있었다.
'날파리 같은 것들은 지들끼리 붙게 만들고, 그 사이 목을 슥삭 해버리면 되겠지.'
아무튼 그러려면 신병이기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것들을 다 뺏어 와야 하니까.
"흠. 그다지 어려운 부탁은 아니군. 좋다."
교주의 설명이 이어졌다. 천강은 마교 내에 있는 신병이기들에 대한 것들을 머리 한 쪽에 잘 보관했다.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네. 얻을 수 있는 건 끽해야 네다섯 개가 다인가?'
그조차도 교주 쪽 세력을 제외하면 두 개 정도.
"이제 만족하느냐?"
천강은 그렇다며 붙들고 있던 사신을 내어주었다. 그러자 그림자가 다가와 녀석을 들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그러고 보니, 내 아들은 어떻게 잘 지내느냐?"
"예. 최근 깨달은 게 많은지 쉬지 않고 열심히 수련하더군요. 밥 먹을 때도 무리와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그것참 다행이군."
아버지는 아버지란 것인가. 교주의 얼굴에 안도감이 맴돌았다.
천강은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생각났다는 듯 몸을 돌려 이야기했다.
"아, 맞다. 그리고 아까 사신 녀석 말입니다만."
"음?"
"녀석에게서 나온 정보는 제게도 공유해 주십시오. 그래야 저 또한 알맞게 대응하지 않겠습니까?"
"허."
"그럼 교주님을 믿고, 소자 이만 가보겠습니다!"
소년의 기척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곳을 한참을 쳐다보던 천마는 못 말린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도 관련된 일이면서 아닌 척 심문의 일을 떠넘기더니, 그에 대한 보상은 또 따로 챙겨갔기 때문이다.
"괴기나한, 봤나? 교주인 날 상대로 해먹고 가는 거?"
맹익의 얼굴에도 황당함이 올라왔다. 전생에 흑살마신보다도 더 막무가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 소년 덕에, 적이 준비하는 비밀병기를 알아낼 수 있었으니 천만다행이로군."
"교주님. 그럼 저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 그리하게나."
꾸벅 허리 숙여 인사를 마친 맹익은 신전 밖으로 나섰다.
신전 밖으로는 싸라기눈이 내리고 있었다.
새하얀 눈발을 날리는 천산의 어스름한 경관을 보니, 과거 흑살마신의 시체를 들고 이 길을 따라 내려갔던 일이 떠올랐다.
'그 소년은 흑살마신 선배인가, 아니면 그저 외모가 닮은 다른 소년인가.'
잡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맹익의 발걸음은 정처 없이 떠돌다 이내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곳은 오목골이었다.
오늘은 왠지 흑살마신의 거처에서 술이나 한잔 하고픈 마음이었다.
노인이 비척비척 새하얀 대지를 위를 걸어간다. 그런 그를 멀찍이서 뒤따르는 한 그림자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