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99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99화
99화. 사람 맞나
파밧. 파바밧-
어둠 속을 한 소년이 쏜살같이 가로지른다. 마치 뭍 위를 뛰어다니는 한 마리의 짐승처럼, 천강은 지하수로 수면 위를 내달렸다.
'무진이에게 별 일 없어야 할 텐데.'
무진이는 강하다. 능히 화경과 대등히 싸울 수 있을 만큼.
그에 평범한 적이라면 천강이 이리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흑사는 다르다. 녀석의 독무는 화경급의 고수도 일개 고깃덩이로 만들 능력이 있었다.
'너무 늦지 않기를.'
천강의 신형이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곧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공동이 그를 맞이했다. 천강은 기운을 펼쳐 흑사 녀석의 기운을 찾았다.
- 뭐 하는 게냐?
- 여기에 뭐 숨겨놓았나요, 소년?
'조용히 해봐. 집중 좀 하게.'
눈을 감고는 기운을 저 멀리까지 펼친다. 구석구석 사방으로 내보낸다.
그러자 곧 발견할 수 있었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는 이쪽 눈치를 보고 있는 한 영물을.
음? 내 생각이 틀렸던 건가? 응당 이놈이 공격해서 늦은 줄 알았더니.
'설마 이미 먹어치운 건……?'
애써 불안함을 내리누르며, 천강은 녀석이 숨어 있는 바로 위 수면에 다가갔다. 그리곤 왈.
"야. 오랜만이다?"
불러도 물속에 숨어서 꿈쩍을 안 하는 녀석. 그러나 천강이 발을 들어 올리자, 재빨리 물 밖으로 고개를 슥 내밀었다.
천강은 눈을 반만 뜨며 물었다.
"혹시 요 주변에서 나 정도 크기의 인간들 못 봤어? 총 네 명인데."
흑사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녀석은 지금 이 상황 굉장히 불편했다. 작년에 빼앗긴 내기를 아직도 복구 못했는데, 왜 또 나타나서…….
다행히 분위기로 봐서는 뺏으러 온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최대한 소년의 심기를 건들지 말고 성실히 협조하기로 마음먹은 흑사였다.
"그래?"
그럼 얘네들이 대체 어디서 뭘 하느라 늦는 거지?
"혹시 최근에 요 상류에서 수상한 사람들 드나드는 것 못 봤냐?"
흑사가 고개가 스윽 천정을 향한다.
흠. 있긴 있었다. 한 칠일 전쯤일 것이다.
유유자적 상류에 뭐 먹을 게 없나 기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이건가?"
"그래. 맞다."
"진식만 부수라 했었지?"
"……됐군."
어둠 속. 벽면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하는 세 사람.
분명 외견은 사람인데,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흑사는 한참을 눈을 끔벅거려야만 했다.
'내가 영체를 보는 건가?'
그런 오해를 할 정도로.
그에 생각을 한다고 하루 정도 멍하니 있는데, 저 멀리서 먹잇감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복면인들이 봤던 그곳을 보며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닌가?
"대체 누가 그런 거지?"
"이건 고의적으로 훼손한 게 확실한데."
길조였네.
전날의 보였던 그걸 하늘에서 보여준 길조로 생각한 흑사였다. 그에 흑사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들을 집어삼켰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러고는 그들이 보던 게 뭔가 하여 가만히 살펴보았다.
무슨 이상한 나무뿌리가 벽에서 삐져나와 수로에 연결되어 있다. 미약한 내기가 흐르는 그것은 물속에서 물을 퍼다가 땅속 어딘가로 열심히 나르고 있었다.
'흐음. 이게 뭐지?'
흑사의 고개가 좌우로 움직인다. 눈이 데굴데굴 굴러간다.
그렇게 잠깐동안 고민을 한 녀석은 입을 슥 벌렸다. 그리고는 혓바닥을 내밀어 톡 기관진식을 건드렸다.
'먹는 건가?'
파지직.
서서히 내기를 잃어가는 진식. 그리고 우뚝 멈춰서는 수도관.
'어. 멈췄다.'
물을 끌어올리던 게 멈춰버렸다. 흑사는 다시 물속에 들어가 고민에 잠겼다.
대체 저건 무엇일까. 어떻게 물을 끌어올리는 것일까.
그렇게 이틀을 고민했을 것이다. 저 멀리서 새로운 먹잇감의 냄새가 느껴졌다.
"대체 이것들 일하다 말고 어디를 간 거야?"
"볼 것도 없이 술 먹고는 어딘가에 쓰러져 자고 있겠지 뭐."
깨달음이 흑사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마치 잃어버린 100년을 회복할 길이 보이는 듯했다.
냉큼 그 둘을 먹어치우고는 다시금 혀로 톡 진식을 건드는 녀석.
'이번에는 며칠 만에 오려나.'
빨리 왔으면 좋겠다!
……분명 그랬었지. 천강의 질문에 대답하듯 흑사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어디서 봤는데?"
흑사가 고개를 슥 움직였다. 그런 그때였다.
파앙.
미약한 폭음이 동굴을 타고 들려왔다. 순간 환청인가도 싶었으나, 흑사 녀석의 고개가 그 방향으로 홱 돌아가는 걸 보니 잘못 들은 건 아닌 것 같았다.
"후우우. 제가 볼 땐 강기의 폭음입니다, 주군. 어디선가 싸움이 일어난 듯합니다."
뒤늦게 달려온 일귀의 보고에 천강 또한 동의를 표했다.
요 녀석 때문에 늦은 줄 알았더니 다른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저번 300명 중의 생존자와 맞닥뜨렸다든지.
"근데 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거지?"
"천산의 영기가 그득해서, 들려오는 소리만으로는 추적하긴 힘듭니다."
"하아. 나도 지하수로 길은 가물가물한데."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상의 비밀통로로 들어왔어야 했나?
그때 흑사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마치 자신이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다.
"너 어디로 가면 되는지 아냐?"
끄덕끄덕.
"오. 이 녀석 여러모로 쓸모가 다 있네? 살려두길 잘했구만."
……덜덜덜.
"그럼 거기로 인도해. 만약 애들을 찾게 되면 보상을 주마."
보상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모실 생각이다.
빨리 이 인간이 자신의 영역에서 떠나길 바라는 흑사는 고개를 크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움직이려는데 소년 왈.
"야, 잠깐. 입 좀 벌려봐."
응?
입을 벌리자, 쏙 입안으로 들어가는 소년.
"주, 주군?"
끼잉?
"상류로 가면 공간이 협소해 질 텐데, 이 돼지 녀석 뒤따라가다 막히면 못 지나가잖아. 그러니 그냥 편히 타고 가는 게 낫지. 어때? 너도 탈래?"
"……괜찮습니다. 전 천천히 뒤따라가겠습니다."
"그래. 그럼 나 먼저 갈 테니까 넌 천천히 따라와. 자, 가자!"
흑사는 얼떨결에 소년을 입에 넣은 채 몸을 움직였다. 이미 몇 번이나 녀석의 몸속에 들어와 본 적 있던 천강은 느긋하게 등을 대고 누워 목적지에 도착하길 기다렸다.
그렇게 천강은 맹익과 아이들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천강의 등장에, 오십여 명의 적이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누구지?"
"천강. 나이가 어린 걸로 볼 때, 암운곡 소교주가 틀림없다."
"암운곡 소교주 또한 처리해야 할 대상."
"219호의 복수를 할 시간이다."
"천강을…… 최우선적으로 죽여라!"
사신들이 진형을 갖춘다. 그리고는 맹익과 아이들을 무시한 채 천강을 향해 달려들었다.
- 그럼 간만에 몸을 풀어볼까?
- 적당히 일곱 여덟씩 맡으면 되겠구먼!
- 그럼 가운데는 내가 서지!
전투를 앞에 두고 신병이기들을 몸을 떨어댔다. 간만에 싸울 생각에 신이 난 것이다. 그러나…….
'아냐. 너희들이 나설 필요 없어.'
소년의 팔이 머리위로 향한다. 그러자 검은 안개에서 거무튀튀한 무언가가 빠져나왔다.
그것은 흑색 절굿공이였다.
- 아닛. 그깟 몽둥이보다 더 잘 싸울 수 있느니라!
- 맞아요, 소년! 그 무식하고 요란하기만 한 물건을 빼어들다니요!
'진정해. 너희들이 잘 모르나본데, 요놈들 강기가 안 통하거든.'
- 무슨…… 강기가 안 통한다?
이해 못하겠지. 나 또한 처음 싸웠을 땐 어이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놈이라면 다르다. 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뿜어내는 이것이라면!
"죽어랏!"
지척에 다다른 사신 다섯이 검을 찔러 들어왔다.
소년은 들고 있던 몽둥이를 가볍게 훅 휘둘렀다.
퍼버벅- 들어올 땐 각기 따로 들어왔으나, 날아갈 땐 한 몸이 되어 날아가는 녀석들. 사신 다섯이 혼연일체가 되어 지하수로 벽면에 처박혔다.
쿠구구구구.
지하수로에 거센 진동이 인다. 천강의 얼굴엔 만족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이야. 딱 좋네. 천산의 지하수로답게 벽 무너질 일도 없고, 무기는 효과만점이고."
"이게 대체……."
"단 일격에 우리 동료가?"
그래도 사신은 사신이라는 걸까? 맞고 날아간 녀석들이 입에서 피를 토하긴 하지만, 멀쩡히 두 다리로 일어선다.
그러나 한 번 더 내려치면.
쿵. 쿠웅. 쿠구구구구.
"대략 네 번이면 부상이로군. 그럼 어디 한 번 더!"
쿠구구구구.
중상(重傷). 딱 다섯 방이면 대략 초주검.
그저 무식하게 내려쳤을 뿐인데 피떡이 되어버린 동료들을 보는 사신들의 눈엔 공포가 어렸다.
분명 흑귀로부터 교육을 받을 때만 해도 죽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들었는데…….
천강은 그것들 다섯을 절굿공이로 쳐 하류로 날려 보냈다. 입을 벌리고 있던 흑사의 입이 닫히고, 이내 만족스런 표정이 올라온다.
겁을 집어먹고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녀석들.
"어딜 가려고?"
천강의 신형이 움직였다. 어느덧 상류로 이동한 천강의 주위로는 7개의 검이 두둥실 떠 있었다.
좌우로 목을 풀며 지시를 내리는 천강.
'막야, 청강, 의천, 용연, 승사. 너희들은 각기 저 다섯에게 가서 신변을 보호하고, 간장이랑 공포는 나랑 여기서 쟤들 막는다.'
- 통과 못하게 막으면 되는 건가?
- 하하핫! 자, 덤벼들 보거라!
"위험하다."
"소교주의 실력이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한 명이라도 살아남아 보고를 해야 한다."
사신들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돌파를 시도했다.
물속, 옆 벽면부터 시작해 천정까지. 거대한 수로의 이점을 이용해 돌파를 시도하는 녀석들.
그러나 천강의 입가엔 여유만만한 미소가 올라왔다.
암운행보.
흐릿한 신형이 곳곳에 생성된다. 사신들 코앞에서 그것이 나타났다 사라질 때엔, 그들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무, 무슨 속도가……?"
놀랍지? 놀라울 거야. 암운행보와 백호의 가호가 결합된 움직임이다.
속도만 따지고 보면, 작년 풍미관에서 도망 다니던 백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사, 사람의 것이 아니다."
"최소 화경…… 혹은 현경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맞나?"
전투의욕을 상실한 놈들이 다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일제히 아이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러나 아이들의 손에 쥐어져 있는 건 단순한 검이 아닌 신병이기. 그중에서도 역사에 기록이 될 만큼 매우 뛰어난 명검.
"이 꼬마들 무슨 내기가?"
"검……강?"
"큿."
싸우지도, 도망가지도, 그렇다고 인질을 잡지도 못하는 그들에게 찬찬히 저승사자가 다가온다.
상류는 적이, 하류는 거대한 이무기가 자리한 상황.
사신이라 불리던 그들의 눈엔 절망만이 그득했다. 천강은 그런 그들에게 활짝 웃어보였다.
"너무 울상을 짓지 말라고. 먼저 간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뿐이니까 말이야."
***
사건은 천강의 합류로 간단히 일단락되었다.
천강은 오늘의 일등 공신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늘 수고 많았다. 이제 그만 가라!"
정말 감사하다며 고개를 몇 차례나 숙이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흑사 녀석. 아이들이 천강에게 다가와 묻는다.
"저건 대체 뭐야?"
"어. 암운곡 밑에 사는 녀석인데, 어쩌다 만나서 친구가 됐어."
저런 괴물이랑 친구를……? 순간 그런 의문이 올라왔던 아이는 고개를 홱홱 저었다. 아까 천강의 신위를 직접 봤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생각을 곧바로 입으로 표현하는 아이도 있었다.
"천강, 너 사람 맞긴 하냐?"
"매화? 그냥 고맙다고 해. 뭘 빙빙 돌려서 표현하냐."
"하. 재수 없어."
"응. 고마워."
매화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녀는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토로하듯 이야기했다.
"봤지, 할아버지? 천강 쟤 성격 완전 특이하다니까."
그러며 말한다.
"오늘은 그 잘난 공자님 소리는 안하네?"
"왜? 듣고 싶어?"
"됐거든?"
아이들이 작게 웃음을 터뜨린다.
몇 차례 농담이 오고감으로써 목숨이 경각이 달렸던 일에서 비로소 살아남았음을 느낀 것이다.
천강은 남겨둔 사신 하나를 들쳐 멨다.
"그 영감님. 이름이……."
"괴기나한이다."
"예, 괴기나한님. 진식 수리는 하셨습니까?"
"아니다. 일각(一刻)에서 이각이면 충분하니, 손 보고 나가도록 하지."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의 시선이 상류로 향한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두 사람의 표정은 미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