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36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36화
136화. 천잠사
이상한 소리가 공동에 울려 퍼졌다. 마치 거대한 개구리의 울음소리 같았다.
그 소리의 진원지는 자칭 아귀들의 왕이라 불린 녀석이었다.
'형(形)만 비슷한 줄 알았더니 실제 합마공이었군.'
이 무저갱에서 어떻게 내기를 운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또 무림의 무공을 어찌 사용하고 있는지 등등이 의문으로 남았으나 천강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뭐…… 무슨 기술이면 어떠하랴. 대충 쥐어패고 천령초나 얼른 캐 먹자.'
천강이 왼손을 거두어들여 도로 뒷짐을 지자 녀석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놈의 눈이 강하게 번뜩였다.
파앙. 천강을 향해 매섭게 쏘아져 나오는 녀석.
천강이 바로 흑색 절굿공이를 빼 들더니 힘껏 내려쳤다.
쿠구구구구.
"꾸에에에엑."
개구리 바닥에 패대기쳐지듯 아귀들의 왕이 그대로 바닥에 넙죽 뻗었다. 단 한 방에 피떡이 된 녀석은 대자로 뻗은 그 상태로 간절히 외쳤다.
"사, 살려주십시오."
"내가 왜?"
천강은 이런 놈을 중원에서 자주 봐왔다. 살려두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 뒤통수를 칠 것이다.
마교에도 이런 놈이 없는 건 아니나, 대체로 마인들은 자신이 갈고 닦아온 무(武)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등 뒤에서 기습하는 건 물론, 마교에 독을 쓰는 이가 거의 없는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살려만 주신다면 귀한 정보를 드리겠나이다!"
"귀한 정보?"
"예!"
정보를 준다는데 위험을 감수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는 법이지.
녀석이 천강의 눈치를 살살 보며 물었다.
"혹시 제가 내기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확실히 그 부분은 궁금하긴 했다.
"그건 이것 때문입니다."
녀석이 두 손을 들어 보였다. 녀석의 두 손엔 시커멓게 때가 낀 장갑이 끼워져 있었는데, 더럽긴 해도 천강은 보는 순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천잠사(天蠶絲)로군.'
지금 천강이 신고 있는 신발도 천잠사로 만든 것.
슥 밑을 내려다보니 녀석의 발에도 천잠사로 만든 신이 있었다. 놈이 내기를 운용해 합마공을 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저것에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특수한 영기를 지닌 누에로부터 뽑아내 만든 비단입니다. 지옥의 높으신 분들에게도 주기적으로 바칠 만큼 매우 귀한 물건이지요."
"그렇겠지. 무려 천잠사니까."
"그 누에가 있는 곳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잠깐 고민을 한 천강이 고갯짓했다.
"인도해라. 직접 눈으로 보고 결정하겠다."
"예, 예."
"대신 허튼수작 부리면 알지?"
놈이 땀을 뻘뻘 흘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뒤뚱뒤뚱. 다른 아귀보다 몇 곱절이나 덩치가 큰 녀석이 가장 좌측 통로로 발을 들였다.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귀들은 후다닥 무저갱 위쪽으로 모두 사라졌다.
화끈한 열기. 그 기운에 피부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이런 곳에 누에가 살다니. 별일이군.'
먹을 것도 없을 텐데 어찌 사는 건지.
그런 의문은 곧 싹 사라졌다. 용암이 흐르던 바닥이 사라지고 고운 흙바닥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게 무슨……."
끝 모를 거대한 공간에 푸른빛의 이파리들을 가득 매단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위 천장에서는 작은 구멍 여러 개로부터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다.
눈에 힘을 주자, 나무 곳곳에서 열심히 풀을 뜯는 누에의 모습 또한 보였다.
"어떻습니까?"
"좋네.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다."
천강이 그것들로부터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지?"
용암과 거기서 나오는 유독물질로 숨쉬기조차 힘든 땅에 푸른 초목이라니? 정상적으로 자란다는 게 불가능할 텐데.
"이승과 달리 본디 이쪽 세계는 기이한 현상이 자주 일어나곤 합니다."
"그게 끝?"
"예, 예에……."
천강의 눈이 녀석을 가만 응시했다. 녀석이 그 시선을 회피했다.
"……그렇군. 알겠다. 좋은 정보를 주었으니 약속대로 목숨은 살려 주지."
"가, 감사합니다."
넙죽 절하는 녀석을 놔두고 천강은 발을 움직였다. 녀석이 고개를 들고는 되물었다.
"저어…… 근데 어디를 가시는지?"
"천령초 먹으러."
"그, 그런!"
녀석이 후다닥 옆으로 다가와 천강에게 웃으며 말했다.
"저 누에의 천부터 얻는 게 낫지 않습니까요? 이곳에서 안전을 확보하려면 저것은 필수입니다요."
"어. 근데 그전에 천령초부터 먹고. 그것들 네 거라며? 그 이야긴 그 근방에서는 네가 제일 강하단 건데, 난 그런 너를 이겼으니 당장 위험한 요소도 없잖아?"
녀석이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 모습에 천강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내가 너 같은 놈들을 한두 번 상대해 보는 줄 아나.'
정확한 속내는 몰라도 녀석이 저곳으로 날 인도한 데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란 아마 함정이겠지.
맛난 미끼가 든 덫으로 스스로 들어가게 만들고, 그렇게 내가 죽으면 천령초는 다시 본인 거니까.
'미안하지만 그 계획대로 놀아줄 순 없지.'
공동으로 돌아온 천강이 위를 쳐다보았다. 천령초…… 무지하게 많다. 크기도 밖에서 본 것보다 한참 크다.
"그럼 실례 좀 한다."
천강은 천장에 오르락내리락하며 천령초를 뽑아 먹기 시작했다. 아귀들의 왕이라 자칭한 녀석은 눈물을 머금고는 그걸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
어둠이 세상에 내려앉고, 은은한 달빛마저 그 자취를 거의 감춘 밤.
한 사내가 한 인영 앞에 넙죽 엎드렸다. 그 옆으로는 수십의 시체들이 즐비해 있었고, 하나같이 관복을 입은 채 입엔 게거품을 문 상태였다.
남자는 머리를 땅에 수차례 부딪치며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제,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절대 잠적하려고 그런 게 아닙니다."
인영이 한 걸음 다가왔다. 그러면서 덩달아 그늘에 가리었던 모습 또한 자연스레 드러났다.
중원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외모.
머리칼은 황금을 길게 실로 뽑아 내린 것 같고, 눈은 호숫가를 담아낸 것 같이 푸른빛이 감도는 벽안(碧眼)이다.
그녀는 서쪽 땅에서나 볼 수 있다는 색목인의 특색을 하고 있었다. 여인의 도톰한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
"후훗. 걱정하지 마라. 내가 우리 하오문주를 모를까. 어릴 적부터 업어 키우다시피 한 나에게 정보 배달을 늦게 한 건 다 이유가 있는 거겠지."
"아, 알아봐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래. 그럼 알아 온 정보를 보고해야지?"
하오문주가 바들바들 떨며 보고를 올렸다.
"그, 그게…… 마교와 황실 사이로 오고 가는 정보를 우연찮게 얻게 되었는데, 거기에 흑살마신에 대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50년간 자취를 감추었던 흑살마신이 최근 마교에서 여러 차례 행적을 드러냈다는 게 그 문서의 핵심내용이었습니다."
"……확실해?"
여인이 미간을 좁혔다. 그도 그럴 게, 그동안 흑살마신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한두 번 허탕을 쳤던가?
너무 짜증이 나 한 번은 하오문을 박살 낸 적이 있었다. 전대 하오문주 또한 그때 사망했다.
지금 하오문주는 그 일이 있었던 후 그녀가 새로 세운 것으로, 전대의 역사를 아는 하오문주는 바로 바닥에 이마를 붙이며 설명을 더했다.
"그…… 2년 전쯤 모용의 제일검이 사망한 일 있었잖습니까?"
"2년 전쯤이라. 아, 그 모용세가의 애송이? 이름이 뭐더라……."
"모용진입니다."
"그래. 모용진."
고개를 주억이던 여인이 픽 코웃음을 쳤다.
"기억나네. 현경 하나 배출해냈다고 모용세가 놈들이 어찌나 자랑해대던지…… 한번 실력이나 보자 하고 벼르던 참이었는데, 갑작스레 비명횡사해 그러지 못했었지. 근데 그게 왜?"
"그것도 흑살마신의 짓이랍니다."
여인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그 정보…… 확실한 거겠지?"
"예, 예. 그렇습니다. 제가 누구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흑살마신 그 개자식이 드디어 나타났다 이 말이지?
여인의 눈 끝이 날카롭게 섰다. 그녀는 잠시 흉흉한 살기를 뿌려대다가, 자신의 앞에서 떨고 있는 남자를 보고는 기운을 갈무리했다.
그리고는 생긋 웃으며 왈.
"하오문주. 아니, 연사."
"예, 예!"
하오문주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숲으로 나직이 울려 퍼졌다.
그녀가 이름으로 상대를 부를 때는 대단히 중요한 순간이다.
여기서 대답을 잘하면 큰 보상을 받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그 자리서 목을 내어놓아야 할 것이다.
하오문주의 눈이 여인의 눈을 마주했다.
"내가 그 마교에 들어가고 싶은데 말이야.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남자의 머리가 고속으로 회전했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 그는 넙죽 엎드리며 대답했다.
"제 말을 기분 나쁘게 생각지 마시옵소서. 음존께서는 역용술과 축골공의 대가 아니십니까?"
"그런데?"
"마교는 매해 중원의 아이들을 모아 정식으로 마인으로 만듭니다."
"네 이야기는 그것을 통해 자연스레 마교로 스며들라 이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마인 신분 하나쯤은 만들어 두는 게 여러모로 편하지 않겠습니까?"
일리가 있었다. 흑살마신은 어찌 됐든 마교 출신. 놈을 찾으려면 그게 좋겠지.
툭-
여인이 하오문주 앞으로 주머니 하나를 던졌다. 그것을 끌러 보자, 그 안에는 풀뿌리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만년하수오야. 우리 연사, 고생 많이 했으니 슬슬 몸보신할 때도 됐지."
"가,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 봐. 멍청하게 관에 또 잡히지 말고."
"예. 그럼 전 이만……."
하오문주가 예를 갖추고는 후다닥 사라졌다. 시체들 사이로 홀로 남은 여인의 몸이 작게 흔들렸다.
"흑살마신."
몸이 우득 우드득 기괴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몸이 기형적으로 흔들거렸다.
그 섬뜩한 소리가 뚝 끊겼을 땐, 그곳엔 한 소녀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전처럼 놓치는 일은 없을 거다. 반드시 이번엔 그 목숨을……."
어둠 속으로 여인의 눈이 번뜩였다.
***
훌쩍훌쩍.
덩치가 산만한 녀석이 큰 소리로 훌쩍거렸다. 천강은 마지막 한 뿌리까지 입에 털어 넣고는 한마디 했다.
"야, 꼴사나워. 울지 좀 마."
그래도 계속 우는 녀석. 천강은 녀석의 뒤통수를…… 아니, 손이 닿지를 않아 장딴지를 후려치고는 고갯짓했다.
"따라와."
"예? 어, 어디를 가시려고?"
"어디긴. 천잠사 쪽 다시 보러 가자."
"어디에 있는지 이젠 아시잖습니까? 근데 왜 저를……."
"왜긴. 네놈이 하도 울어대니 내 거 채취하는 김에 네 것도 같이 캐오려는 거지. 너도 슬슬 장갑이랑 신 바꿔야 할 때 되지 않았어?"
놈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제, 제 것도 챙겨주신다고요?"
"그래."
원래라면 이놈을 끌고 가 아까 그 뽕나무밭으로 밀어 넣으려고 했었다. 무슨 함정이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굳이 그래야 하나 싶었다.
이놈에게도 챙겨준다 약속하면, 천령초가 전부 사라진 지금 시점에 녀석도 다른 이득이라도 챙기고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겠는가?
"캐면 너도 나눠줄게. 그러니까 아까 그것들을 어떻게 채취하면 좋을지 방법을 이야기해 봐."
녀석의 눈이 데굴데굴 굴러간다. 뽕밭으로 내려가면서 천강을 수차례 위아래로 훑은 녀석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경지가 어떻게 되십니까?"
"생사경 문지방 밟은 수준? 아직 완전히 넘어가진 못했다."
그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던 걸까. 녀석이 밑으로 내려가면서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실은 그것들을 키우는 관리자가 있습니다."
그럼 그렇지. 천강이 흥미가 인 얼굴로 되물었다.
"관리자? 뭐하는 놈인데?"
"저도 왜 여기에 사는지는 그 이유를 모릅니다. 정확히는 관리자라 말하기도 애매하지요. 그 누에들과 상부상조하는 그런 느낌이니까요."
"대체 정체가 뭔데 설명이 그래?"
어느덧 뽕밭이 내다보이는 평지로 들어섰다. 놈은 굴이 끝나는 지점에 몸을 숨긴 채 말했다.
"직접 보시죠. 곧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천강은 아귀들의 왕 머리 위에 앉아 가만히 뽕밭을 주시했다.
자세히 보니 뽕나무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다양한 나무들이 자리했다. 누에들은 여러 나무에서 다양한 이파리들을 먹이 삼아 풀을 뜯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관찰하는데 놈이 말한 관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갑주를 입은 것 같은 붉은 비늘.
머리에 자란 한 쌍의 조그마한 뿔과 길게 갈라진 입. 그리고 수염.
나무들 위로 머리를 쳐들고는 세로로 갈라진 눈을 이리저리 살피는 녀석의 모습은 뱀이라고 하기엔 기괴했고, 용이라 하기엔 눈이 너무 섬뜩했다.
천강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무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