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35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3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35화
135화. 아귀들의 왕
"아, 그리고 말이야."
천강이 일귀에게 성화를 건네주며 말했다.
"조만간 이걸 회수하러 오는 이들이 있을 거다."
"이건……."
"성화다."
일귀가 화들짝 놀라며 천강에게 도로 내밀었다.
"들고 가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금나한님께 들었습니다. 이게 있으면 지옥의 악귀들이 덤비지 못한답니다."
고개를 돌려 금나한을 바라보자 그가 사실이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흥미가 일었지만, 천강은 고개를 저었다.
"가져가면 편하겠지. 쓸모가 있을 거야, 분명."
"근데 왜……."
"탐이 나지만 괜히 이거 찾는다고 교주 쪽 세력이 찾으러 오면 남은 이들이 위험해질 것 아냐."
성화는 신검만큼이나 신교에서 중요한 물건이다. 그걸 잃어버린다는 건 적들에게 좋은 명분을 줄 수 있었다.
"잘 부탁한다. 교주 쪽에서 사람을 보내오면 전달하거라."
"예, 주군."
"맞다. 그리고 신녀는 죽었다."
"예?"
음. 뭐라 말할까 고민하다 천강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갑자기 무저갱의 절벽이 무너지는 바람에 집행관하고 신녀, 그리고 그 수행원 다 머리에 돌을 맞고 죽었다."
"운이 없었군요. 이 성화는 금나한님과 제가 무저갱 바닥에서 회수해 온 것으로 하겠습니다. 시체는 지옥에 사는 악귀들이 다 먹어 치운 걸로 하겠습니다."
역시 척하면 딱이군.
"그래. 부탁한다."
주기적으로 먹을 것을 들고 오라 일러둔 천강은 무저갱 안쪽으로 뛰어내렸다. 빠르게 낙하하는 천강의 뒤를 따르며 신병이기들이 물었다.
- 소년, 그래서 이제부터 무엇을 하려느뇨?
- 그냥 밖에 나가 있어도 되는 것 아니냐?
'나갈 땐 나가더라도, 신물(神物)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
무저갱 바닥에 착지했다. 신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 주위를 돌아다니는 아귀들은 있었다.
"그륵?!"
천강을 보자마자 도망을 가는 녀석들.
몇 번 손봐주지도 않았는데 바로 뒤꽁무니를 빼는 게 꽤나 지능이 높은 것 같다.
천강은 도망치는 녀석들의 뒤를 따라갔다. 놈들은 무저갱 안쪽으로 도망쳤다.
무저갱의 한쪽 벽에는 커다란 굴이 자리했고, 그 안쪽은 비스듬히 경사를 이뤄 밑으로 향하고 있었다.
굴 바닥 사이사이로는 홈이 파여 용암이 밑으로 흘러내렸는데…… 그래서일까? 내려갈수록 냄새도 열기도 더욱 짙어졌다.
- 소년, 대체 이런 위험한 데는 여기는 왜 온 겁니까?
신병이기들은 혹여나 용암에 몸이 녹을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천강은 진정시키고는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 위쪽을 살피는 천강의 눈에 순간 이채가 띠었다.
'역시 있구만.'
뿌리에서부터 하나의 기둥으로 올라와 서너 갈래로 나뉘는 선홍빛 풀. 천령초가 곳곳에 뿌리를 내린 채 천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천해지경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전 날의 추억이 떠오른 것이다.
"무제(武帝)의 사념님. 이번엔 걱정하지 마십시오."
팔락?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천해지경이 몸을 떨었다. 그와 함께 있던 다른 신병이기들이 의문을 표했다.
- 저걸 캐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는 겐가?
- 내가 볼 때는 독초 같네만.
"어려움은 무슨. 그런 거 없어."
천강이 폴짝 뛰어 천장에 거꾸로 올라갔다. 발에 내기를 실을 수 있는 천강에겐 박쥐처럼 천장에 매달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자, 그래도 천해지경님이 경험자로서 시범을 보이셔야겠지요?"
천강이 파닥거리는 천해지경을 잡고는 천령초를 뽑았다. 천해지경의 몸이 미약하지만 쭈글쭈글해졌다.
그 기세를 몰아 순식간에 돌아다니며 아홉 개의 천령초를 추가로 채취한 천강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바닥에 내려섰다.
천령초를 섭취한다. 온몸에 힘이 넘친다.
대신 강력한 사기(死氣)와 독 또한 느껴졌는데, 독은 금세 중화돼 사라졌고 사기는 몸 밖으로 배출돼 바람에 날려 무저갱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역시 몇 번을 먹어봐도 좋다니깐.'
- 천해지경, 자네 괜찮은가?
- 뭔가…… 안 좋은 직감이 드는군요.
- 내 생각도 그러하네.
눈치들이 빠르기는.
"걱정하지 마. 그런 거 아냐. 그저 좀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들 뿐이야."
천강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순서의 신병이기를 집어 들었다.
***
"교주님. 교주님."
"그래. 어떻게 되었다든가?"
천수마검이 들어와 손을 들어 올렸다. 따스한 기운이 신전에 화악 퍼져 나갔다.
"찾았군."
"예. 근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렇겠지."
성화를 신녀가 아닌 천수마검이 들고 온 시점에서부터 어느 정도 직감한 천마였다.
"신녀는 어떻게 되었다던가?"
"무저갱 안으로 형벌 집행을 위해 내려간 이들은 모두 죽은 것 같답니다."
"시신은?"
"그곳에 사는 악귀들에게 다 먹힌 것 같다는 게 그곳 문지기의 말이었습니다."
천마가 이마를 짚었다.
이런 급박한 시기에 갑작스러운 신녀의 죽음이라니.
"천강이란 소년은 어떻게 됐지? 그도 죽었다던가?"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입으로는 그리 보고를 올리면서 천수마검은 교주에게 전음을 보냈다.
-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
이번 일은 작영이란 그림자의 배신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천마와 핵심 측근들은 뼈아픈 실수를 통감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자 했다.
이 바쁜 시기에 천수마검이 혼자 그곳에 갔다 온 것도 다 그런 이유였다.
"일단 신녀의 후보부터 뽑아야겠군."
"때마침 쥐 굴이 열리는 시기라 다행입니다."
대대로 신녀는 신교 사람이 아닌 외부인을 모아 그중에서 선출했다. 초대 신교가 시행한 규칙을 그대로 이어온 것이었다.
"쥐 굴 감독관들에게 미리 지시해, 졸업 관문 전에 적합자들을 파악하라고 일러두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천마는 서류를 슥 내려다보았다. 서류에는 여울나무 숲의 새로 받는 인원들에 대해 적혀 있었다.
올해 적들의 신규 인원은 전년도에 비해 3할밖에 안 되는 수준. 듣기로는 예산의 대부분이 한 명에게 쏟아지고 있다고 들었다.
'투파창귀의 제자라고 했지.'
악가는 무서운 가문이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던 관심은 없고 늘 풍류나 즐기고 있지만, 그 어떤 가문이나 문파보다도 가장 많은 현경을 배출한 곳이었다.
청청이란 소녀는 그곳 출신이다. 투파창귀가 깨달음을 이끌어 준다면, 여울나무는 순식간에 현경 하나를 더 배출하게 될 것이다.
오래 끌면 끌수록 불리한 싸움.
'그렇다고 싸움을 당장에 시작할 수도 없으니…….'
천수마검이 물러가고, 천마는 자신의 몸을 손으로 꾹꾹 짓눌렀다. 그의 몸속에 자리한 이종진기는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
"오. 지금까지 몇 개나 먹었지?"
천강의 질문에 신병이기들이 대답이 없다. 왜 그런가 하여 보니, 다들 축 처져 있었다.
- 주, 죽겠노라.
- 이 무슨 개 고통.
- 기 빨려…….
"뭐 겨우 그 정도로 다들 죽을상이야? 요전번엔 무제(武帝)의 사념님 혼자서 다했는데. 아, 저기 또 있다!"
천강이 폴짝 뛰어 다시 천장에 두 다리를 붙이고 섰다. 그리고는 검 하나를 집었다.
- 으어억. 소년, 제발 살려주게!
"응. 조금만 참아."
푹. 능숙하게 천장을 파 천령초를 캐는 천강. 외마디 비명이 뇌리에 울렸다.
처음에는 검날로 풀을 캔다는 게 뭔가 불편했는데, 사람이란 게 대단하지. 하다 보니 요령이 생기더니 이후엔 금세 능숙해지게 되었다.
천강은 순식간에 여덟 개의 천령초를 캐 땅바닥에 내려섰다. 그리고는 흙을 잘 털어 목구멍 뒤로 넘겼다.
'확실히 이전보다 몸이 좋아졌다.'
근력은 늘었고 몸은 단단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건 그렇고, 천장에만 남아있는 게…… 녀석들은 매달리는 덴 재주가 없나 보구만.'
몇 차례 절굿공이로 날려본 소감에 따르면, 놈들의 단단함은 제각각이었다. 아마 많은 섭취한 녀석일수록 힘도 좋고 몸도 더 튼튼한 것 같았다.
"근데 이것들은 대체 어디까지 내려간 거야?"
무저갱의 굴은 끝없이 한길로 이어졌다. 중간에 다른 샛길이 없었기에, 녀석들은 천강을 피해 밑으로 계속 내려가는 중이라 봐도 좋았다.
'이러다 진짜 저승길까지 내려가는 건 아니겠지?'
그 왜 일전에 금나한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 천산은 선계와 지옥이 미약하게 연결된 곳이라고.
그때 갑자기 비스듬하던 굴이 확 넓어지며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아까 지나온 무저갱 바닥과 비슷한 모습.
차이점이 있다면 방금 내려온 길을 포함해 다섯 군데로 길이 나 있었고, 바닥에 보다 많은 용암이 흐르고 있다는 것 정도.
"크륵. 네놈이냐?"
문득 들려오는 칼칼한 목소리에 천강의 시선이 그 중심부로 향했다. 그곳엔 거대한 아귀 하나가 자리했다.
신장만 해도 다른 아귀들의 다섯 곱절은 되는 녀석의 주위로는 수백은 족히 되는 아귀들이 포진하고 있었고, 생긴 것과는 다르게 모두 겁을 집어먹은 상태였다.
왜 그런지는 파악하는 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덥석.
"그워어어어-"
갑자기 한 녀석을 낚아채더니 그대로 집어삼킨 것.
"넌 뭐냐?"
"꿀꺽. 꺼어억. 난 이것들의 왕이다. 한낱 버러지에게 알려줄 이름은 없다."
천강은 슥 위를 올려보았다. 넓은 공동의 천장에는 수백 개의 천령초가 자생하고 있었다.
"그래. 그럼 넌 그놈들 왕 노릇 잘하고."
천강은 벽으로 내달려 단번에 곡선을 이루는 둥근 천장에 올라섰다. 그리고는 천령초를 뽑아내자, 놈이 갑자기 성을 냈다.
"이노오오옴! 감히 누구의 물건을 건드리느냐!"
무시하고 계속 캐는 천강.
"그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내 것을 건들다니!"
흠칫. 무언가를 느낀 천강이 재빨리 몸을 옆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무언가 날아와 천장에 붉은 먼지를 흩뿌리며 틀어박혔다.
쿠구구구구.
땅이 크게 흔들린다. 천강의 미간이 구겨졌다.
"뭐냐? 너 때문에 내 풀들이 뭉개졌잖아?"
"하……. 내 풀? 감히 짐의 물건을 탐한 죄, 그 목숨으로 갚거라!"
놈이 다시 천강을 향해 다시 날아들었다. 가볍게 그걸 피해낸 탓에 녀석은 그대로 옆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부스스스.
'위력이 보통이 아닌데.'
몸을 웅크렸다가 튀어 나가는 자세가 영 꼴사납지만, 천산의 땅을 산산조각 내는 걸로 봐선 우습게 볼 수 없었다.
'형(形)만 따진다면 합마공과 비슷하군.'
청개구리처럼 단숨에 상대에게 튀어 나가며 입으로 낚아채는 모습이 천산의 보고에서 한 번 보았던 합마공 비급서 내의 묘사와 정확히 일치했다.
천강이 땅으로 내려섰다. 싸움을 멍하니 구경하던 아귀들은 자신들 옆으로 내려선 천강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사방으로 달아났다.
"이노오오옴!"
쿠구구구구.
한발 늦게 반응한 녀석들은 금세 거대 아귀의 일격에 휩싸여 그대로 사망했다.
10보 떨어진 거리에서 천강이 뒷짐을 지고 섰다.
"크흐흐흐. 이제 살기를 포기한 게냐? 좋은 생각이다. 내 고통 따윈 못 느끼게 단번에 집어삼켜 주마."
천강은 말을 아꼈다. 대신 왼손을 쭉 내밀어 바깥에서 안쪽으로 흔들었다.
까딱까딱.
"덤벼."
"이, 이런 건방진 자식이!"
분노를 머금은 아귀들의 왕이 몸을 한껏 웅크렸다. 놈의 입에서 기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