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31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31화
131화. 그들이 원하는 것
뿌연 연기가 하늘을 메우고, 유황 냄새가 진동하는 무저갱 입구.
멀찍이 떨어진 곳에 몸을 숨긴 금나한과 일귀는 무저갱 위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금나한이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음? 저 녀석 아까 굴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더냐?"
손끝을 따라가 본다. 과연…… 허공에 누군가 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일귀가 알기론 분명 투파창귀였다.
'아까 들어가지 않았었나?'
금나한과 같은 의문을 품는 일귀.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그는 나직이 대답했다.
"무언가를 느끼고 도로 밖으로 나온 모양입니다."
"허. 심계가 보통이 아니라더니 조심성이 많은 놈이로구나."
그들이 주시하던 투파창귀는 이내 무저갱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는 먼젓번에 보여줬던 행동을 똑같이 반복하고는 안으로 사라졌다. 땅에 내려선 뒤 무저갱의 저주를 확인하는 행동을 말이다.
'돌다리도 두 번 두드리는 성격인가?'
금나한과 일귀는 의아함을 품었다.
***
쿠구구구구.
여진이 한동안 이어졌다. 이후엔 갖가지 비명이 굴 안으로 울려 퍼졌다.
- 아이고 나 죽네!
- 소년 우리 좀 살려주게!
- 자, 자네들 어디 있는가?
천장의 돌무더기가 쏟아지면서 신병이기들이 그걸 피하지 못하고 모두 깔려버린 것. 그나마 입구에서 멀리 있던 막야와 천해지경, 뇌명은 그 사달을 피할 수 있었다.
- 소년, 괜찮은가요?
'어. 나야 뭐.'
진짜 위험했다. 백호의 가호가 없었더라면, 천강 또한 그의 신병이기들처럼 흙에 깔려 내기도 못 쓰고 그대로 압사 당했을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녀석이 숨긴 한 수가 이거였다니.'
분명 똑같은 얼굴이었다. 분위기만 미약하게 다를 뿐.
천강은 흙무더기에 잠긴 왼발을 잡아 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옆으로는 흑도마황의 몸이 반쯤 파묻힌 채 상체만 나와 있었다.
"투, 투파창귀는……?"
"죽었습니다. 방금 천장이 무너지면서 돌에 깔려 압사 당했습니다."
사실 밖에서 똑같은 놈을 보았기에 죽었다고 보는 게 과연 맞나 싶었지만, 천강은 분명 똑똑히 들었다.
지금 흙무더기에 깔려 사망한 투파창귀는 천강보고 여기서 같이 죽자고 외쳤었다.
그러니 흑도마황과 천강, 둘이서 잡고자 한 녀석은 잡은 거라 볼 수 있었다. 뭐…… 굳이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렇……군."
흑도마황의 얼굴이 평온해졌다. 그를 이승에 붙잡아두던 이유가 사라짐으로써 그 생의 촛불이 서서히 꺼져가기 시작했다.
"고맙다. 이제 제자 놈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겠어."
"별말씀을."
무림인에게 은원을 쌓고 갚는 건 숙명. 그것은 진정 무림인들을 움직이는 힘이자 원동력이었다.
그런 면에서 흑도마황은 꽤 만족스럽게 삶을 마감했다고 볼 수 있었다. 어찌 됐든 은원관계를 풀 수 있었으니까.
천강은 그 앞에 예를 갖추며 물었다.
"뭐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적이지만, 남은 이들을 위해 하실 말씀이 있다면 전해 드리겠습니다."
"투파창귀도 죽었으니 싸움은 우리 여울나무의 패배……. 혹여나 가능하다면…… 선처를 바라는 바이다."
"시도해보겠습니다. 제 입김이 먹힐진 모르겠지만."
흑도마황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자네는 내게 거짓을 말한 적이 없지. 내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으니, 나 또한 도와주는 게 올바른 도리……. 쿨럭.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보라, 소년이여."
그렇다면.
"여울나무가 황실과 무슨 거래를 했는지 궁금합니다."
그동안 여울나무가 황실과 연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천강과 무영삼귀, 암룡, 그리고 주태의 부하들까지 모두가 그 관련 정보를 알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아랫것들은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흑도마황이라면 알 수도 있었다. 어찌 됐든 그는 여울나무의 이인자니까.
천강의 질문을 받은 그가 천장을 흐리멍덩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에 대해선 다른 그 누구도 모른다. 안다면 단 한 명…… 적삼혈마뿐. 다만 내가 개인적으로 조사하다가…… 확실히 알게 된 게 하나 있지."
흑도마황의 눈이 색을 잃어갔다. 강대하던 그의 기운도 어느덧 자연으로 흩어져 사라져갔다.
아주 조금 남은 생기. 그걸 쥐어짜 내며 흑도마황의 마른 입가가 작게 달싹였다.
"투파창귀도…… 황실도…… 무림인들을 다 멸하길 원한다는 것……. 그것이 진실의 전부……다……."
툭. 그것을 끝으로 사내의 고개가 옆으로 누웠다. 천강은 그에게 예를 한 번 차려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림인들을 다 없애길 원한다라.'
흑도마황의 대답은 짧았지만 많은 걸 깨닫게 해주었다.
우선 그것이 진실의 전부란 뜻은 그들이 하는 모든 행위가 무림인들을 멸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것이리라.
그리고 진실을 아는 이가 투파창귀와 적삼혈마 단둘이라는 것은 그것이 여울나무 전체의 의사를 반영한 게 아니라는 것이고.
'어쩌면 중원 쪽도 사정이 비슷할지도 모르겠군.'
문득 천강의 머릿속에 사신들이 떠올랐다.
- 너 정체가 뭐냐?
- 난 괴물. 사신. 어둠을 삼키는 더 큰 어둠. 무림인들을 이 세상에서 없앨 유일한 존재.
'결국 그것들도 그 행보의 일환이었다는 거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천강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그것들을 훌훌 털어냈다.
내기를 펼쳐 밖의 상황을 느껴보았다. 땅속에 갇힌 터라 그게 쉽지 않았으나 약 반 시진(時辰)이라는 공을 들이자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일단 투파창귀와 똑 닮은 녀석은 사라진 모양이군.'
그럼 이제부터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인데.
'……가능할까?'
어쩌면 굴 안쪽으로 들어가 딴 길을 찾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괜히 길을 뚫다가 긁어 부스럼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 하이고. 나 죽네!
- 소년, 우리를 어서 꺼내다오!
저리 애걸복걸하는 신병이기들을 가만 놔둘 수는 없는 상황.
천강은 흑색 절굿공이를 빼 들었다.
"막야, 뇌명, 그리고 무제(武帝)의 사념님. 뒤로 저만치 떨어져 있으십시오. 굴이 더 무너질지도 모르니까."
- 어떻게 하려고요, 소년?
어떻게 하긴. 막힌 굴, 힘으로 뚫어봐야지.
천강이 몽둥이를 쥔 손을 뒤로 쭉 뺐다. 심호흡을 한 번.
그리곤 내기를 강하게 응축한 뒤, 일격.
쿠구구구구.
흑색 몽둥이의 찌르기에 벽이 움푹 파이며 굴이 크게 흔들렸다. 천장에서 우수수 흙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그럼에도 굴은 뚫리지 않았다. 천강은 땅에 반 이상 박힌 절굿공이를 빼고는 다시 자리를 잡았다.
- 소년. 위험합니다! 자칫 굴 전체가 매몰될지도 모릅니다! 그냥 여기서 그만두는 게…….
막야의 말이 맞았다. 천산은 영기가 흐르는 땅. 내기가 쉽게 침투하지 못한다. 반감되는 파괴력으로는 뚫기 힘들지 몰랐다.
막말로 아까 그 투파창귀 놈조차 신병이기들을 사용해 일거에 공격하지 않았던가?
'잠깐. 그러고 보니, 녀석…… 신병이기가 더 있어?'
분명 여기 시체가 되어 있는 녀석의 신병이기들은 막 이곳을 벗어나느라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밖에서는 다수의 신병이기들의 힘이 느껴졌다.
'모아둔 신병이기가 꽤 된다는 건가?'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상당했다. 그만큼 교주가 가진 신검이 대단하다는 것. 그리고 이곳에 묻혀 있을 신물(神物)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
'일단 이것부터 뚫고 생각하자.'
천강은 찌르기 자세를 유지한 채 생각에 잠겼다.
강한 파괴력이 필요하다. 20보 이상의 막힌 거리를 단번에 뚫을 한 방이.
어중간한 기술로는 안 된다. 순간 천마신공의 파검결이 떠올랐으나 천강은 그 방법을 털어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더 강한 게 필요해.'
태산을 박살을 낼 만큼의 일격이!
그때 한 가지 가능성이 천강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간단한 몸짓으로도 일격필살에 해당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무공.
튼튼한 몸을 가진 사신들을 상대로도 능히 피해를 줄 수 있었던 막강한 파괴력을 지닌 그 기술이라면.
천강이 다리를 벌리고 자세를 다잡았다.
'그냥 내지르면 안 돼.'
양손으로 절굿공이를 움켜쥔다. 양손으로 찌르는 자세는 상당히 불편하지만, 어차피 상관없었다.
근력과 속도는 보조에 불과했고 진짜 힘은 이 무기와 무공이 발휘해 줄 거니까.
어깻죽지에서부터 손끝까지 모든 혈도를 개방한다. 온몸에 흘러넘치는 내기를 양팔을 통해 배출해낸다.
그리고는 절굿공이를 힘껏 내지르며 강하게 폭발.
지천뇌공.
쿠콰콰콰콰-
어마어마한 강풍이 일었다. 마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소용돌이가 휘몰아쳐 몽둥이 끝으로 집약되기 시작했다.
- 꺄아악!
- 읏.
팔락팔락?!
공격을 내지른 천강이 자세가 무너져 앞으로 수그러졌다. 흑도마황의 시체는 갈가리 갈려 가루로 화했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정적.
삐이이이-
마치 고장이라도 난 듯 멈추어버린 세계 속에서 천강의 시선이 흑색 절굿공이로 향했다. 그것의 끝에선 새하얀 빛이 일렁이며 점점 그 크기를 축소하고 있었다.
서서히 줄어드는 빛.
점점 더 작아지는 입자.
그 움직임이 멈추었을 때, 귓가를 강렬한 폭음이 강타했다.
콰콰콰콰쾅-
천강과 신병이기들이 정반대로 튕겨져 날아갔다. 천강은 몽둥이를 꽉 붙들고는 필사적으로 일직선을 유지했다.
둔탁한 소음이 들려온다. 일자로 세운 팔이 접히며 등과 복부 앞뒤로 격한 통증이 번져 나간다.
내기 운용이 어려워지면서 울컥 쏟아져 올라오는 비릿한 피 내음.
"큿."
그때 천강의 볼에 한차례 미풍이 불어와 닿았다. 코끝으로 지독한 유황 냄새 또한 느껴졌다.
고개를 든다. 뻥 뚫린 굴이 눈에 들어온다.
앞으로 허리를 숙이면서 벽에 닿았던 등을 떨어뜨리자, 내기가 한 차례 쭉 빠져나갔다. 바깥으로 튕겨져 나갔던 신병이기들이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 소년, 난 네가 우릴 버리지 않을 줄 알았다!
- 크흐흑. 보고 싶었다!
천강은 눈을 감고는 몸을 가만히 치유했다. 천령초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외상은 긁힌 정도밖에 없었고, 골절은 물론 내상 또한 미약한 정도에 불과했다.
아마 평범한 무림인이라면 아까의 강한 반발력에 휘말려 그대로 척추가 부러져 죽었을 것이리라.
아니면 배에 몽둥이가 박혀 그대로 꼬챙이 신세가 되었든지.
천강은 똑바로 서서 내상 회복에 집중했다. 회복은 금세 이루어졌다.
-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한 것이냐? 그런 위력적인 기술은 내 지금껏 살아오면서 본 적이 없었는데.
- 나 또한 그러하네. 천산이 아닌 평범한 산에 사용했다면, 능히 이 세상에서 없앨 위력이었지.
천강은 흑색 절굿공이를 내려 보았다. 내기 없이 단순히 휘둘러도 남다른 파괴력을 보여주었던 이 무기는 지천뇌공과 의외로 상성이 잘 맞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기술을 몇 곱절로 증폭시켜주는 효과가 있는 게 분명했다.
왠지 지금이라면 능히 백호 녀석과 자웅을 겨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천강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절굿공이를 검은 구름 속에 집어넣었다. 신병이기들도 그 안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 그래서 소년! 이제부터 무얼 할 것이냐!
'보물을 찾으러 산에 들어왔으니 그 보물을 찾아봐야겠지.'
투파창귀의 싸움 방식은 이미 독목신공으로 거의 다 파악했다. 다시 일대일로 싸운다면 가볍게 이겨줄 자신이 있었다.
다만 문제는 녀석이 가진 다수의 신병이기들.
악기가 아닌 무구들이 보였었다. 아마 중원의 이름난 무기들은 저놈과 내가 다 나눠서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천강의 시선이 굴 안쪽으로 닿았다. 굴은 짙은 어둠에 싸여 그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펼쳐져 있었다.
"신물(神物)을 찾으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