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30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30화
130화. 소요악사의 형제
'과연 소요악사의 형제…….'
투파창귀와 공방을 주고받는 흑도마황의 이마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소요악사 하면 음공이 떠오르지만, 그 외에도 함께 부각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경공.
경공에 워낙 능통하다 보니, 그 가문을 상대할 때 제일 까다로운 점이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부분으로 꼽히곤 했다.
계속 도망 다니며 날카로운 음공을 사정없이 쏟아내는 그들의 수법은 한 번 당해본 이들이라면 치를 떨 정도였다.
그리고 설령 거리를 좁혀도 물 흐르듯 모든 공격을 회피하는 신법과 보법은 상대로 하여금 화를 부추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좋지 않다.'
흑도마황의 눈이 도신에 닿았다. 한 번 한 번 휘두르는데 큰 궤적과 시간을 잡아먹는 비효율적인 무기.
거기다 장소도 좋지 않았다. 무기는 큰 데 반해 공간은 양옆은 물론 위아래로도 협소하기 그지없었다.
흑도마황의 머릿속에 투파창귀에게 철저하게 패배한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
싸움을 오래 끌면 불리하다. 저 소년이 현경에 도달한 건 놀라운 사실이지만, 투파창귀에 비하면 내기 양이 상당이 적을 게 분명했다.
예부터 신선가문으로 불린 소요악사 가문. 실제로 각 세가보다 더 많은 현경을 배출해온 신비로운 혈족.
그곳 출신을 상대로 전략도 없이 시간을 끈다는 건 좋지 않았다.
'기회를 만들어 본다.'
흑도마황의 안광이 강하게 번뜩였다.
***
두 절대 고수가 붙었다가 떨어지길 반복한다.
천강은 흑도마황을 찬찬히 따라가며 그들의 싸움을 여유롭게 구경했다. 그 모습이 의아했던 걸까? 막야가 물었다.
- 소년, 왜 가만 지켜보는 겁니까?
'가만히 지켜보는 거 아냐. 독목신공 중이야.'
독목신공.
상대의 내기 흐름을 보고 그 행동을 유추하는 기술.
그러나 독목신공을 쓸 수 있다고 해서 상대의 움직임을 바로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관찰하면 관찰할수록 점차 나아지는 방식이었다.
- 그래도 처음부터 그냥 함께 싸우는 게 더 낫지 않나요?
다른 신병이기들은 몰라도 막야는 생각 외로 여유가 넘치나 보다. 천강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퉁소를 상대하며 말했다.
'어르신의 말씀이 생각나서 말이야.'
흑도마황이나 투파창귀 정도의 고수라면 분명 수 하나씩 숨겨놓았을 것이다. 천강 자신 또한 전력을 다하지 않고 숨기는 게 있듯.
그걸 모른 채 패를 드러냈다간 역으로 당할 수 있었다. 천강은 그걸 파악하기 위해 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 조금만 더.'
그러나 장소가 너무 좋지 않았던 걸까. 흑도마황이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더는 가만 지켜보면 안 될 상황.
천강이 둘 싸움에 끼어들었다.
"죄송합니다, 흑도마황님. 흑도마황님 무기가 이곳 지형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 깜빡했습니다. 좀 끼어들겠습니다."
"좋다. 대신 마지막은 내 몫이다."
아무렴 당연하지. 무려 제자의 복수인데. 그 정돈 내가 양보해준다.
혼자 싸우겠다며 고집을 부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현경을 멋으로 단 건 아닌 듯 흑도마황이 싸움의 난입을 허락했다.
천강이 검은 구름에서 천해지경을 빼 들었다.
'무제(武帝)의 사념님! 잠깐 싸움 좀 부탁드립니다!'
팔락팔락?!
천강은 천해지경에게 하늘을 나는 퉁소를 맡기고는 싸움에 가담했다. 흑도마황이 들고 있던 두 개의 도를 땅바닥에 버린 것도 그때였다.
"큿?!"
흑도마황의 신형이 투파창귀를 뒤쫓는다. 그의 두 손이 빠르게 투파창귀를 압박해 나간다.
잠시나마 두 존재의 싸움을 지켜봤던 천강은 독목신공을 사용해 투파창귀가 피할 곳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후웅.
아까 한 번 흑색 절굿공이의 위력을 맛본 투파창귀의 행동반경이 확 위축되고, 기어이 찾아온 절호의 기회.
뒤로 길게 이어지던 굴이 갑자기 오른쪽 방향으로 확 틀어지면서, 뒤로 쭉쭉 몸을 내빼던 투파창귀가 도망갈 곳을 잃고 졸지에 갇히게 된 것이었다.
- 내가 기회를 만들겠다.
흑도마황의 전음이 들려왔다.
투파창귀가 피하지 못하게 두 주먹을 내뻗는 흑도마황.
투파창귀가 재빨리 몸을 옆으로 빼냈다. 그러나 그걸 미리 예측한 천강은 몽둥이를 힘껏 내리쳤다.
'자, 어떻게 할 것이냐!'
몽둥이에 맞을래, 아니면 흑도마황의 주먹에 맞을래?
몽둥이보다는 주먹을 선택한 투파창귀가 손을 내기로 감싸고, 그 위를 흑도마황의 검은 주먹이 강타했다.
그런데 거기서 이변이 일어났다.
"네, 네놈?!"
"지금이다! 쳐라!"
주먹을 내지르는 줄 알았으나, 흑도마황이 돌연 그 주먹을 펴더니 투파창귀의 손을 마주 잡고는 내력 싸움을 건 것!
내력싸움은 굉장히 위험한 싸움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일대일의 생사투에서나 쓰는 방식인데, 그 이유는 내력 싸움 도중 제삼자가 끼어들 경우 양측 다 내상을 입을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흑도마황은 그걸 시도했다. 얼마나 복수에 핏발을 세운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노옴!"
투파창귀의 팔뚝과 이마에 혈관이 튀어 올랐다.
상대가 내력 싸움을 걸 때 응하기 싫으면 쳐내면 되나, 수준이 비슷할 때는 그게 쉽지 않은 법.
천강이 몽둥이를 머리 위로 쭉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힘껏 휘둘렀다.
'끝이다!'
그런데 그 순간, 옆에서 날아드는 투파창귀의 신병이기들.
주인을 닮아 몸놀림이 날랜 그것들은 급히 날아와 흑도마황의 등을 공격했고, 앞으로 고꾸라지는 흑도마황 아래로 몸을 숨기며 투파창귀가 그를 방패막이로 이용했다.
투파창귀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떠올랐다.
'어디 공격해볼 테면 해봐라!'
내려치면 흑도마황은 최소 전투불능이다.
그러면 저 신병이기들은 움직임을 멈출 테니, 겨우내 화경에 불과한 소교주 하나 정도라면 어찌어찌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혹여나 내려치지 않는다면 더 좋다. 이대로 굴 밖으로 몸을 빼내면 되니까.
'자, 어떻게 할 것이냐!'
아까 받은 선택지를 되갚아 주겠다는 듯, 이번에는 반대로 투파창귀가 선택지를 주었다. 비릿한 미소는 덤.
그런 그때였다.
싸아아-
스산한 기운이 목덜미를 스쳐 지나갔다.
이유를 몰라 고개를 들어 가짜 소교주의 얼굴을 보았다.
소년이 웃고 있다. 눈은 초승달을 그리고 이는 환히 드러낸 채.
흠칫.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직감한 투파창귀가 몸을 움직였다. 왠지 지금 몸을 빼내지 않으면 아주 좆 될 것 같은 직감이 들었기에.
그러나 그런 그를 단단히 붙드는 억센 두 손.
"이익! 놔, 놔라!"
"놈! 넌 오늘 나와 같이 죽는 것이다!"
"이런 미친놈이……!"
천강의 팔이 움직였다.
투파창귀의 급박한 얼굴을 본 흑도마황은 팔에 힘을 더하며 눈을 감았다.
'제자야. 이 스승이 드디어 널 보러 가는구나.'
서서히 궤적을 그리며 떨어져 내리는 흑색 절굿공이.
"놔라! 놔아아아아!"
천강은 있는 힘껏 몽둥이를 내려쳤다. 그것도 내기까지 실어서.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굴이 크게 흔들렸다.
쿠구구구구구.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힌 두 사람.
피떡이 된 흑도마황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숨은 붙어있는 것이 실신한 듯했다.
그 밑 투파창귀는 흑도마황으로 인해 멀쩡했으나 내기는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 증거로 싸움을 벌이던 녀석의 신병이기들이 모두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몽둥이로 흑도마황을 옆으로 치운다. 그리고는 언제든지 내려칠 수 있게 오른쪽 어깨에 흑색 몽둥이를 올린다.
"자, 그럼 두 번째 싸움을 시작해볼까?"
투파창귀의 얼굴에 패색이 그득해졌다.
퍽. 퍽. 퍼억.
소년의 주먹이 투파창귀의 몸 곳곳을 강타한다. 그때마다 투파창귀는 맞은 부위를 부여잡으며 비틀거렸다.
'제 아무리 현경이라도 내기를 전혀 운용하지 못한다면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지.'
그래서 현재 천강은 내기를 전혀 안 쓰고 오로지 근력으로만 두들겨 패고 있었다. 그것도 힘을 최대한 뺀 채.
그럼에도 투파창귀의 한 팔과 한 다리는 부러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퍽.
"큭……."
"어이. 이제 슬슬 말해 보시지? 황실과 대체 무슨 관계냐?"
"이런 애송이가……. 내가 그깟 주먹질 몇 번에 입을 열듯 싶으냐!"
투파창귀가 멀쩡한 오른팔로 천강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독목신공을 사용 중인 천강에게 그걸 피하는 건 몸을 뒤집는 것보다도 쉬운 일이었다.
몸을 슥 돌리고 가볍게 오른팔을 후려친다.
뚜둑.
"크허억."
"이런. 힘을 좀 과하게 줬네. 그러게 평소 운동 좀 하지 그랬어? 이렇게 허약해서야."
투파창귀의 두 무릎이 땅에 닿았다.
그의 사지 중 멀쩡한 곳은 오로지 왼쪽 다리 하나뿐이었다. 천강은 치명상이 될 만한 부위를 일부러 피해서 때리고 있었다.
"자, 말해. 황실과 여울나무, 대체 뭘 주고받기로 한 거냐?"
천강의 심안(心眼)이 빛을 발했다. 투파창귀의 눈을 본 천강은 직감적으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건가?'
대체 뭘 믿고 버티는 거지? 설마 뭔가 한 수가 남아 있는 것인가?
찜찜한 건 끌고 가는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투파창귀를 당장 죽여야 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럴 순 없었다. 눈앞의 남자는 말 그대로 여울나무 전체를 움직이는 뿌리.
이 녀석에게서 나오는 하나하나의 정보는 그저 그런 놈들 천 명을 고문해 받아내는 것보다도 더 가치 있었다.
천강이 투파창귀의 어깨를 잡았다.
뿌드득.
"크흐으윽……!"
어깨가 부서져 가루가 되는 고통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는 버티는 녀석.
'대체 뭐냐. 뭘 숨기고 있는 거냐.'
그런 그때였다. 밖에서부터 동굴 안쪽으로 가벼운 미풍이 불어왔다. 투파창귀가 부러진 팔로 천강의 멱살을 움켜쥔 것도 바로 이때였다.
"좋다. 네놈이 그리 원하니 말해주지! 현 황제는 말이다……!"
황제라는 말에 천강의 이목이 투파창귀에게 집중되었다. 그러나 그건 찰나에 불과했다.
흠칫.
'적?'
- 굴 밖에 적입니다!
고개를 돌린다. 굴 밖으로 다량의 기운이 응집되는 것이 느껴진다.
- 우리가 막아보겠다!
천강의 신병이기들이 천강을 비호하듯 둘러쌓았다.
그러나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투파창귀의 신병이기들이 부르르 떨더니 굴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설마.'
홱 고개를 돌려 투파창귀를 바라보는 천강.
투파창귀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떠올라 있다. 그걸 본 천강은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바깥을 향해 내달렸다. 그러나 이미 적의 공격은 지척에 이른 상태였다.
쿠콰콰콰콰-
강렬한 내기의 소용돌이. 그것은 날아와 천강이 있는 굴 위쪽을 강타했다.
쿠구구구구.
굴 입구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함부로 돌파할 수도 없었다. 자칫 저주의 효과로 내기를 사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경우, 돌무더기에 그대로 압사당할 테니까.
"소년이여! 넌 이곳에서 나와 함께 죽는 거다! 크하하핫!"
투파창귀의 광소가 뒤편에서 날아오고, 지축을 뒤흔드는 진동과 돌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그 파편의 세례 속에서 천강은 볼 수 있었다.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는 천강을 내려다보는 또 다른 투파창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