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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29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6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29화

129화. 사냥감이 미끼를 물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은은한 달빛이 내려앉은 밤.

무덤가에 한 사내가 섰다.

사내는 무덤을 말없이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와 무덤 사이로는 거대한 도(刀) 하나가 꽂혀 있었는데, 두께가 능히 몸을 숨길 수 있을 만큼 두꺼운 도였다.

"못난 놈……. 끝끝내 스승에게 마지막 짐마저 남기고 가다니."

남자가 성큼 다가가 바닥에 꽂힌 거대한 도를 뽑아 들었다.

후두둑. 검 끝에 흙무더기가 딸려 나오다 떨어졌다.

"그래도 걱정 말거라. 오늘 이 스승이 네 복수를 대신 이루어주마."

도패천황의 도를 챙긴 흑도마황이 몸을 날렸다. 그는 단숨에 무저갱이 자리한 절벽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

 

- 근데 소년.

"음?"

두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굴에 몸을 기댄 채 누워있는 천강에게 막야가 물었다.

- 흑도마황이 순순히 나타나 협조할까요?

- 그러게 말이네.

- 정파인들이라면 모를까 마교는 흠…….

막야 뿐만 아니라 다른 신병이기들도 그가 과연 약속을 지킬지 걱정이 되는지 한마디씩 말을 내뱉었다.

천강이 없는 틈을 타 교주 쪽을 공격하면 말 그대로 위기 상황 아닌가?

그러나 천강은 걱정들 말라며 그들을 달랬다.

"분명히 나타날 거다. 물론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투파창귀를 잡는 순간까지는 아무 문제 없을 거야."

평범한 무림인들이라면 그리 생각 안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인들은 다르다. 그 대부분이 일인전승의 성격을 띠는 만큼, 마인들의 사제 관계는 어찌 보면 혈육보다도 돈독했다.

'자신의 모든 걸 이을 후계였으니까.'

뭐 요즘은 문파 비슷한 형태가 형성되면서 전생의 천강이 봐오던 그런 모습이 퇴색되긴 했지만, 흑도마황의 경우엔 제자가 도패천황 하나였다.

그러니 그 분노와 감정이 심히 남다를 것이었다.

'아마 투파창귀의 목을 벨 수만 있다면 자신이 죽는 것도 전혀 신경 안 쓰겠지.'

그랬기에 흑도마황을 찾아간 것이었다. 천강에겐 그 정도의 원념과 힘을 가진 인물이 필요했다.

- 그래도 고작 복수에 그리 목을 맨다니. 저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그때 굴 밖으로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천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기를 방출했다. 그 기운을 느끼고는 다가오는 인영.

등 뒤로는 거대한 도(刀) 두 개가 뒤따르고, 풀어헤친 상체는 수도 없이 단련해 탄탄한 근육이 자리하고 있다.

여울나무에서 두 번째 강한 인물. 마교 내에서는 서열 3위에 해당하는 고수.

흑도마황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업자님께선 간밤에 평안하셨습니까."

"잠이 오지 않더군. 오늘 일어날 일 때문에 말이네."

"아무튼 잘 오셨습니다."

천강은 흑도마황을 굴 안으로 인도했다. 흑도마황의 시선이 동굴 벽에 닿았다.

"불의 기운과 죽음의 기운이 서로 영역을 다투고, 하늘을 메운 뿌연 연기에 세월의 흐름이 덧없다……. 과연 그 말대로군."

흑도마황의 얼굴에 천강에 대한 신뢰가 떠올랐다. 솔직히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했었기 때문이다.

"근데 내기를 운용할 수 있었나?"

"천잠사로 만든 신발입니다. 저주를 막아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투파창귀를 상대하는데 허투루 준비할 순 없지요."

"다행이군. 전력으로 임해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굴 안으로 들어서며 흑도마황이 물었다.

"근데 놈이 오겠느냐?"

천강이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반드시 올 겁니다. 제가 투파창귀에게 엿 먹이려고 그동안 꾸준히 작업 쳤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일귀의 간자 신분 중 하나를 이용해 꾸준히 신용을 올려 왔다. 그러니 필시 믿고 움직일 것이다.

"그 정도로 확신하니 내 믿어보지. 그래서 네 계획은 무엇이냐?"

"이쪽으로 따라오시지요."

천강은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굴 바깥을 바라보았다.

따라 몸을 돌리는 흑도마황.

울퉁불퉁한 굴과 그 사이로 비치는 뿌연 증기. 무저갱의 기괴한 절벽의 모습이 눈에 훤히 들어온다.

흑도마황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천강을 돌아보았다. 천강이 말문을 열었다.

"보이십니까?"

"뭐가 말이냐."

"굴 한쪽으로 파인 구덩이 말입니다."

천강의 말을 듣고 다시 보자, 과연 굴 오른편에 사람 서넛이 거뜬히 몸을 숨길 만큼의 공간이 파여 있었다.

그것은 바깥에서 들어올 때는 볼 수 없도록 안에서 바깥 사선으로 파낸 작은 굴이었다.

"저곳에 흑도마황님과 제가 몸을 숨기고 있을 겁니다."

"의도는 알겠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기척과 내기를 숨겨본들 투파창귀가 그걸 못 느낄 리 없다."

"그렇죠. 설령 투파창귀의 기감을 피한다 한들 신병이기들의 감지를 피할 순 없을 겁니다."

"근데 무슨 수로?"

천강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발밑으로부터 검은 도포 자락이 생성돼 소년의 몸을 휘어 감았다.

흑도마황의 눈이 번쩍 뜨였다.

 

***

 

시커먼 대지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구멍.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그곳은 마치 심연이 입을 벌리는 모양새와 같았다. 그 위에서 투파창귀는 말없이 밑을 내려다보았다.

'이곳이 무저갱.'

과연 그 이름대로다. 공기 중으로 가득 찬 사기(死氣)는 이 세상의 것이라 하기엔 너무도 지독했다.

투파창귀는 땅에 내려섰다. 그리고는 구덩이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파직.

"음?"

몸을 옭아매는 알 수 없는 기운.

'내기 운용을 할 수가 없다?'

도로 뒤로 물러나자 몸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버티던 기운이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투파창귀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올라왔다.

'재미있군.'

내기를 운용할 수 없는 곳이라. 역대 수감자들이 왜 살아 돌아올 수 없었는지 바로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투파창귀의 몸이 다시 허공에 떠올랐다. 그는 그대로 구덩이 안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불의 기운과 죽음의 기운이 서로 영역을 다투는 곳.'

쭉 내려가자 검은 암석이 붉은 암석으로 바뀌는 구간이 나오고, 투파창귀는 천천히 옆으로 이동하며 입구를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발견한 조그마한 동굴.

안으로 들어선다. 바닥에 미약하게 발자국이 남아 있다. 발 크기로 보아하니 어린아이의 것이었다.

'과연……. 너무 절묘하다 했더니 둘이서 짠 것인가?'

팔짱을 끼고는 생각에 잠기는 투파창귀.

발자국은 눈으로 좇을 수 없는 굴 깊은 안쪽까지 이어져 있었다. 내기를 방출해 보아도 딱히 느껴지는 건 없었다.

'너희들은 뭐 느껴지는 것이 없느냐?'

- 없습니다.

하나 같이 느껴지는 게 없다고 대답하는 신병이기들.

- 무저갱 바닥에서 생명의 기운이 느껴집니다만.

무저갱 바닥으로 내려가 보았다.

그워어어어-

투파창귀를 보고 아귀들이 떼를 지어 달려들었다. 그러나 손을 한 번 휘젓자, 순식간에 일곱의 아귀가 토막 나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끄륵?!

후다닥 도망을 가는 녀석들. 신녀의 시선이 투파창귀에 닿았다.

"아니, 본교의 신녀님 아니십니까? 고귀한 분께서 여기서 뭘 하시는지?"

"투, 투파창귀? 나, 나, 나 좀 도와주세요."

"수행원들이나 강철신마는 어디 가고 혼자 계신 겁니까?"

"다 죽었어요. 아까 그것들한테……."

"어쩌다가?"

투파창귀가 집요하게 캐묻자, 신녀의 입에서 쓸 만한 정보가 튀어나왔다.

"소, 소교주가 절 기습하는 바람에."

"소교주?"

"예. 그 녀석, 이곳에 떨어지고도 내기를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었어요. 그, 그래서 꼼짝없이 이곳에 갇히게 됐습니다. 제발 저 좀 밖으로 데려가 주세요……!"

과연……. 교주 쪽에서 뭔가를 준비해줬다 이 말이로군?

아니. 어쩌면 흑도마황이 도와준 것일지도 몰랐다. 이곳 무저갱 형벌 제안을 한 게 공교롭게도 흑도마황 아닌가?

이유는 몰라도 둘이서 힘을 합쳐 신물(神物)을 찾으러 간 건 분명해 보였다.

"저어…… 투파창귀?"

"그럼. 우리 신녀님을 살려 드려야지. 근데 아랫것들에게 듣기론 평소 비부쌍마에게 제 욕을 많이 하셨더군요."

"예, 예?"

투파창귀가 말없이 미소를 짓자 신녀가 벌벌 떨며 땅에 고개를 박았다.

"그, 그, 그것은 그저…… 비부쌍마의 기분을 띄워 주려고……."

"그래서 여울나무로 돌아와야 할 뇌명창도 그에게 은밀히 빼돌려 주기로 약조하셨습니까?"

신녀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사, 살려 주십시오!"

"암. 살려 드려야지. 그래도 명색이 우리 신교의 신녀님인데."

몇 번이고 땅에 고개를 숙이던 신녀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마치 이 고통이 다 끝났다는 듯 눈물을 닦는 그녀에게 투파창귀가 나직이 말했다.

"그런데 이 늙은이도 사람이라 기분이 영 안 좋아서 말입니다. 일단 다른 일 보고 기분 풀리면 그때 꺼내어 드리리다."

"예? 저, 저어 투파창귀?"

투파창귀는 무저갱 위로 올라갔다.

"투, 투파창귀! 제발 그냥 가지 마세요! 투파창귀……!"

쓸모없는 년. 투파창귀가 혀를 찼다.

그동안 정보 물어오는 재주가 좋아 가만 놔뒀는데, 무저갱의 뜨거운 바닥에 피부 곳곳이 망가졌다. 이젠 그 쓸모도 다한 것이다.

- 거처로 돌아가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신물(神物)을 찾는다.'

신검과 비견되는 물건. 그것만 찾는다면 당장에라도 교주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그런 매력적인 물건을 그냥 두고 갈 투파창귀가 아니었다.

'흑도마황과 그 가짜 소교주도 계속 신경이 쓰이고 말이야.'

투파창귀가 굴 안으로 들어섰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바로 보고하거라.'

- 예.

투파창귀의 옷에 매달려 있던 악기 아홉 개가 허공에 떠오른다. 그 주인을 비호하듯 사방에서 경계를 선다. 그렇게 굴 안으로 들어서는 그때였다.

- 조심하십시오! 뒤! 적입니다!

'뒤? 어느 틈에?'

내기가 한 차례 쭉 빠져나갔다.

신병이기 여섯 개가 하나로 뭉쳐 무형의 막을 생성해냈다. 그리고 그 위를 후려치는 거대한 무기.

"흑도마황."

"투파창귀……!"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투파창귀가 여유 가득한 얼굴로 그를 훑으며 물었다.

"그건 분명 암운사신의 능력일 텐데?"

검은 도포가 사라지며 모습을 드러낸 흑도마황이 입가에 씨익 미소 지었다.

"그게 뭐가 중요할까. 오늘 네놈의 목이 바닥에 떨어질 것인데."

"흥. 수련하라 했더니 입만 단련해서 나온 모양이구만."

팡. 두 사람이 튕겨 나가듯 거리를 벌렸다. 굴 안에 갇힌 투파창귀의 시선이 흑도마황 뒤를 훑었다.

"그런데 소교주는 어딨나?"

"소교주를 왜 여기서 찾지?"

"빼도 소용없다. 밑에 신녀에게 다 들었다."

"그래?"

그 순간, 천장에서 훅 튀어나오는 검은 몽둥이.

신병이기 여섯이 그것을 막아섰다. 그런데…….

콰앙-

"큭?!"

맞는 순간 투파창귀의 신형이 굴 안쪽으로 쭉 날아갔다.

'이 무슨……?'

가까스로 몸을 멈춘 투파창귀의 등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예상을 웃도는 일격에 하마터면 바닥에 떨어질 뻔했기 때문이다.

"아, 아쉽다. 한 방에 끝낼 수 있었는데."

"흑도마황 네 이놈! 기어이 날 잡겠다고 소교주와……!"

흑도마황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양손에 각각 거대한 도를 하나씩 움켜쥐고는 말했다.

"넌 내 제자를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오늘 네놈은 죽는다. 바로 여기서. 내 제자의 검으로 말이다."

픽. 투파창귀가 비웃음을 날렸다.

"그래 본들 화경 하나에 현경 하나. 백날 덤벼본들 날 이길 수 없을 것이다."

투파창귀의 신병이기들이 모두 앞으로 나섰다. 다양한 빛깔을 띠며 내기를 응집하는 악기들.

그러나 그걸 마주하는 흑도마황과 천강의 얼굴엔 여유가 그득했다.

- 드디어 우리가 나설 차례인가.

- 간만에 제대로 회포를 풀어보자고.

- 궁극기 쓴다고 아군을 공격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마세요, 공포.

천강 쪽에서도 여덟 개의 무기가 앞으로 나왔다. 투파창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천산의 보고에 있어야 할 무기들이 어찌 여기에?'

분명 낮에 그곳에 있는 걸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보기까지 하였거늘.

"흑도마황님. 힘껏 날뛰십시오. 제가 제대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고맙군."

그렇게 시작된 싸움. 신병이기들이 공중에서 서로 맞붙었다. 그 사이 흑도마황은 투파창귀를 향해 날아들었다.

"투파창귀! 오늘 네 피를 내 제자의 무덤 위에 뿌릴 것이다!"

"하. 꿈도 크구나, 흑도마황!"

사방에서 불꽃이 번쩍번쩍 튀었다. 폭음이 연달아 일며 굴 안을 크게 흔들어 재꼈다.

신병이기들끼리 서로 일대일로 붙고, 남은 하나의 신병이기를 직접 상대하며 천강은 두 사람의 싸움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두 절대 고수는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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