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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28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6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28화

128화. 동업자와 손님을 기다리다

 

 

"좀 알아보셨습니까?"

여울나무 총책임자 집무실.

적삼혈마의 질문에, 호접일검이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예. 그런데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작영이란 이를 통해 천강이란 소년이 가짜 소교주란 걸 알게 됐다. 그에 적삼혈마는 호접일검을 시켜 진짜 소교주를 찾게 했다.

그런데 뭔가 문제가 있는 모양이었다.

"암운곡에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간자로 끌어들일 인물이라고는 비격창마 딸랑 하나밖에 없고, 교관 또한 추가하지 않을 생각인가 봅니다."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아이들을 뇌물로 유혹하는 것 말입니까?"

"예."

호접일검의 표정은 회의적이었다.

"모두 가짜 소교주를 중심으로 완전히 똘똘 뭉친 상황이더군요. 오히려 이쯤 되면 작영이란 자의 말이 도리어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현재로선 누가 봐도 그 소년이 소교주입니다."

"아쉽군요. 그자가 살아있다면 좀 더 자세히 캐물어 볼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는 교주에 의해 그 명을 달리했다. 소교주를 문제 삼고 일어나자마자 채 반 시진도 안 돼 벌어진 일이었다.

"별수 없군요. 철수하십시오. 진짜 소교주를 찾는 건 당분간 포기하겠습니다."

 

***

 

밑으로는 붉은 암석이, 위로는 검은 암석이 층을 이루고 있는 기묘한 동굴.

천강은 그 동굴 벽을 가만 살펴보다가 맹익에게서 받아온 끌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벽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파지직-

손을 타고 이질적인 기운이 흘러들어온다. 그것은 이내 천강의 온몸에 퍼져 내기 운용을 방해했다.

- 근데 소년. 왜 성화를 안 챙긴 겁니까? 그게 있으면 저주가 차단되는 것 같던데요.

'아, 그거? 내가 들고 있으면 아마 신교의 날고 긴다 하는 교주 세력들이 그거 찾겠다며 다 찾아올걸. 그러면 교주 쪽 전황만 불리해지잖아?'

교주가 못 나가는 건 상관없어도 여울나무 쪽이 잘나가는 건 막아야 한다. 내 벗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아마 저리 질질 짜다가 내기가 회복되면 알아서 돌아갈 거다.'

한계까지 빨아들였으니 회복하는 데엔 못해도 만 하루는 족히 걸릴 것이다. 어쩌면 이틀이 걸릴 수도 있고.

묵현이 준 신발이 없다면 모를까, 지금은 천강에겐 별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무엇보다 투파창귀와 싸울 때 변수가 될 수도 있으니, 요 주변에선 치워놓는 게 맞겠지.'

천강이 벽에서 떨어졌다. 어느새 동굴의 바닥부터 천정까지 고리 모양으로 수식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내기가 다시 원활히 움직이는 걸 느낀 천강은 기관진식을 발동시켰다. 그러나…….

파직.

발동하지 않는다.

'역시 쉽게는 안 되는 건가?'

맹익과 이야기를 하며 구상한 갖가지 방법을 시도해 본다. 그러나 평범한 저주가 아닌지 잠깐 반짝일 뿐 금세 고장이 나 버리기 일쑤였다.

'결국 몸으로 직접 때우는 수밖에 없나 보군.'

토끼의 절굿공이에 북명신공까지 쓸 수 있으니 뭐 별걱정은 없지만, 준비해온 기관진식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게 다소 아쉬움이 들었다.

그에 혀를 차는 그때, 바깥으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익숙한 목소리들도.

- 소년, 우리가 왔노라!

- 크하하핫.

굴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무기 여섯 개가 하늘에 두둥실 떠 있었다.

"태공님이 왜 여기에?"

"아, 선배님께서 이것들 배달을 부탁하셔서 말이다."

천강은 태공으로부터 신병이기들을 넘겨받았다. 그리곤 물었다.

"이거…… 괜찮은 겁니까?"

천산의 보고에서 멋대로 가져다 썼다고 이곳 무저갱에 5년간 있으라는 형벌을 받았다. 그런데 그걸 도로 돌려받다니?

태공이 어깨를 으쓱한다.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네. 난 그저 선배님께서 그것들을 치우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시는데…… 왠지 당장 안 움직이면 무슨 사달이 날까 싶어 후다닥 가져왔다."

어르신께서?

'너희들 무슨 짓을 한 거냐, 대체?'

- 흠흠.

- 우리는 아무 짓 안 했느니라.

'정말로?'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꼭 다무는 녀석들.

뭔가 찜찜하지만, 적절한 시점에 나타나 준 것에 의의를 둔 천강은 그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맞다. 그리고 이거 받아라."

태공이 보따리 하나를 내어놓았다. 유황 냄새에 절여진 코끝으로 미약하게 고소한 냄새가 느껴졌다.

"이것은…… 음식이로군요."

"선배님께서 네가 이것이 꼭 필요할 것이라고 가져가라 하시더라."

"어르신께선 신녀가 매수된 걸 알고 계셨군요."

"그래. 분명 교주 쪽에서는 네게 전달할 음식을 준비하고 건네줬는데, 이쪽으로 오는 길에 그것들이 모두 버려져 있었다더라."

- 그런……! 소년, 가만히 있을 건가요? 당장에 내려가서 혼을 내주도록 해요!

- 왜 그리 열을 내는가, 막야?

천강은 슬쩍 고개를 내려 무저갱 바닥을 보았다.

백 마리가 넘는 아귀들이 한 여인을 둘러싸고는 침을 뚝뚝 흘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 집중하자, 그룩그룩 거리는 괴성 사이로 옅은 울음소리도 들렸다.

"음? 저건 누구야?"

"이번 대 신녀입니다."

"아하. 쟤가 그 문제의 년이구만."

"누군지 압니까?"

"암. 아주 잘 알지. 신녀 발탁되고 한 2년쯤 지났을까? 진짜 말 많았어. 여인이 무슨 색을 그리 밝히는지."

태공의 말에 의하면 요부가 따로 없었다고 했다.

"아마 교주 쪽에서 저 여인을 통해 넘어간 정보가 상당할 거야. 현 교주는 설마하니 그 범인이 신녀라고는 전혀 생각 못하는 듯하지만 말이야."

"저로서도 잘 이해가 안 갑니다."

그도 그럴 게, 한낱 신녀가 중요한 정보를 알면 뭘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애초에 그녀의 수행원들은 그저 시중을 들어주는 수준에 불과했다.

태공이 천강을 보며 작게 웃었다.

"내가 방금 답을 말해줬잖아. 색을 많이 밝혔다고."

"아……."

"아마 마두의 절반가량은 저 요부와 뒹굴어봤을걸? 너도 크면 알겠지만, 남자란 족속은 여자 앞에서 입단속을 잘 못한다. 정보를 넘긴 건 교주 측 마두들이다."

그러면서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저년만 처리해도 교주 측은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정보 부분에선 상당히 앞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천강은 태공에게 예를 갖추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음식도 신병이기들도, 그리고 신녀에 대한 이야기들도."

"별말씀을. 대신 선배님껜 비밀이다. 우린 중립을 유지해야 하거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껏 신녀의 만행을 가만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이겠지.

"그럼 나중에 또 보자고!"

"예."

태공이 손을 흔들고는 무저갱 저 너머로 빠르게 사라졌다. 천강은 자세를 풀고는 다시 무저갱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 소년,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그냥 놔둔다.'

- 예? 방금 저 사내 말로는 죽여야 이득이 된다고…….

그거야 그렇지. 그러나 꼭 죽일 필요는 없었다.

'암운사신에게 말해서 은밀히 사람을 붙여놓으면 돼.'

그러면 어떤 정보들이 오고 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적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알 수만 있다면, 그 계획들은 위기가 아닌 기회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 후우. 그럼 저 신녀를 살려서 내보내야 하는군요.

그것이 마음에 안 드는지 막야의 목소리에 불만이 그득했다. 그러나 천강은 굴 안으로 들어가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 엥? 소년? 신녀 구하러 안 가나요?

'내가 왜?'

- 아니, 방금 살려서 정보 빼내는 게 좋다고.

'그렇다고 굳이 내가 살려줄 필요는 없잖아? 여기서 죽는 거면 제 명이 여기까지인 거고, 살아나가면 그땐 이용하면 그뿐.'

- 무서운 놈이로고.

- 역시 그날의 앵화 언급은 계획된 것이었던 게 분명하이.

- 그래서 이젠 무얼 할 생각이냐?

공포의 질문에 천강이 목을 좌우로 풀며 음식 보따리를 풀었다. 그리고는 고기를 한입 뜯으며 말했다.

'기다려야지.'

- 누구를 말인가?

'동업자와 손님을.'

 

***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청청이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리고는 방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구소환패를 타고 조용히 건물을 빠져나왔다.

"후우."

- 왜? 뭐가 고민인데?

"아무것도 아냐."

- 아무것도 아니긴. 또 그 소년 생각하는구나?

"그, 그런 거 아니거든!"

청청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치다가 아직 투파창귀의 거처를 벗어나지 않았음을 깨닫고는 다시 목소리를 줄였다.

"……그냥 최근 들어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 이상한 기분?

"어. 스승님이 좀 변하신 것 같다고 할까."

이유는 모르겠다. 화경의 깨달음이 진전되던 중 문득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훈련에 본격적으로 임한 뒤로는 따뜻함까진 아니어도 정이란 게 조금은 느껴졌었는데, 요샌 그런 것 없이 그녀의 스승은 굉장히 난폭하고 흉흉했다.

마치 처음 그를 마주했던 때처럼.

청청은 오른쪽 허벅지를 꾸욱꾸욱 매만졌다.

- ……큰 싸움이 임박하면서 날이 선 거겠지. 너무 신경 쓰지 마.

구소환패가 청청을 태우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여울나무 숲과 투파창귀의 거처를 잇는 계단은 약 4천 개가량 되었고, 아직 화경이 되지 않았을 시절 그녀는 이 길을 매번 목발을 짚고 기어서 오르락내리락 해야만 했다.

그러나 어느덧 여울나무에서 다섯 번째로 강해진 그녀는 낮에는 천산의 전경을, 밤에는 달빛을 구경하며 여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일찍 수련할 걸 그랬어.'

그렇다면 작년에 무진이와 만났을 때 같이 돌아다닐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여운에 잠겨 계단을 내려가는 그때였다. 저 멀리서 누군가 허겁지겁 뛰어 올라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청청님을 뵙습니다."

"예. 이 시간엔 무슨 일인가요?"

"투파창귀님께 보고 드려야 할 일이 있어 올라가는 중이었습니다."

"스승님께선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내일 다시 오시지요."

그러나 뒤에서 들려오는 투박한 목소리.

"그럴 것 없다."

"투파창귀님을 뵙습니다."

청청이 고개를 돌렸다. 온몸에 악기를 주렁주렁 매단 중년의 사내가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청청은 서둘러 구소환패에서 내려 예를 갖추었다.

"스승님. 대체 언제……."

분명 편한 복식으로 갖춰 입은 뒤 자리에 누우신 걸 확인했는데?

"청청, 넌 그만 돌아가라."

"예."

청청은 허리를 한 차례 숙이고는 계단 밑 어둠 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투파창귀는 보고자에게 고갯짓하며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어르신. 흑도마황이 신물(神物)을 찾아냈습니다."

"그래?"

투파창귀는 흑도마황이 복수심을 드러내는 모습을 눈여겨보았다. 그에 사람을 붙여 은밀히 관찰했고 곧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호. 신검에 비견되는 물건이라?'

그것만 가진다면 능히 신검을 상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에 흑도마황이 단서를 찾을 때까지 일부러 가만 놔둔 투파창귀였다. 그리고 기어이 그걸 찾아낸 모양이었다.

'복수심은 끈기와 열정을 불태우고 결과를 만들어내지.'

아무튼 이로써 일이 편해지게 생겼다.

"그래. 그건 어디 있다더냐?"

"신물은 현재 무저갱에 있답니다."

"무저갱? 거기면 현재 소교주가 갇힌 곳이 아니더냐?"

투파창귀의 미간이 좁혀졌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절묘한데.

"출처가 믿을 만한 곳인가?"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중요한 정보들을 여러 번 가져왔었고, 딱 한 번. 잘못된 정보가 있었습니다만…… 혹시 작년 즈음 쥐 굴에 진짜 소교주가 있다는 보고 기억하십니까?"

"그래. 거짓 정보인 줄 알고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버렸던 정보 말하는 거지?"

"예. 그걸 가져온 간자이기도 합니다."

- 현재 암운곡에 있는 소교주는 가짜다. 진짜는 2개월 뒤 쥐 굴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다.

얼마 전 그것이 진실로 판명 났으니, 말 그대로 그 간자는 지금껏 진짜 사실만을 가져왔다는 이야기였다.

"누군지는 파악됐느냐?"

"그림자 출신이라는 것밖에 모릅니다."

흠. 그렇다면 믿어도 되겠지.

이미 작영이란 자를 통해 그림자들이 신교에서 정보를 얼마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지 파악이 끝난 투파창귀였다.

"흑도마황은?"

"이미 출발했다 합니다."

"그래. 알겠다. 그만 들어가 봐라."

투파창귀의 신형이 한 줄기 바람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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