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25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25화
125화. 호의
"들었는가?"
천산의 어느 객점.
신교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은 얼마 전 발표된 사건에 대해 소리 높여 불만을 토해냈다.
"아니, 글쎄 소교주님을 천산의 무저갱에 가둔다고 하지 뭔가?"
"그 무슨……!"
쾅. 남자가 탁자를 크게 내리쳤다.
"이유가 뭐라고 하던가?"
"교주님께서 소교주님에게 천산의 보고를 자유로이 이용하라고 하셨는데, 마두들이 그게 말이 되느냐며 따지고 올라갔다고 하더군. 참나."
"이런 미친 것들이……. 묵범귀영을 넘어서는 재능이 태어났다면 더 챙겨주지는 못할망정……!"
오래전부터 신교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주민들과 외지에서 들어온 마인들의 사상은 다소 차이가 있었다.
마인들은 개개인의 성향이 강하기에 호시탐탐 위로 올라서며 교주의 자리까지 넘보곤 하지만, 신교 주민들은 교주의 말이라면 목숨도 불태우는 맹목적인 성향이 강했다.
그랬기에 대부분의 신교 주민들은 이번 마두들의 행태에 분노를 표출했다.
"썩을 놈들. 마두라는 새끼들이 하는 짓거리들이 아주 양아치야."
"이거 우리가 한번 단체로 일어나야 하는 거 아닌가?"
신교 주민 하나하나는 힘이 없다. 그러나 신교를 지탱하는 건 그들이다.
마두들이 제아무리 힘이 있다한들, 성금을 내는 신교의 주민들이 없다면 돈을 벌기 위해 나가야 한다.
마두들이 제아무리 신교가 강성하다고 주장한들, 그들을 따르는 신도들이 없다면 산 위에서 홀로 외치는 메아리에 불과했다.
"이번 일의 주동자가 여울나무라는 말이 있더군."
"그것들…… 하는 짓거리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 퉤."
그렇게 신교 내로 여울나무의 반감이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한편 그 시각. 천강은 무저갱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아래 사람들을 만나 앞으로의 할 일을 짚어주고, 친분이 있는 이들에겐 잘 갔다 오겠다고 인사를 나누고.
"천강, 나도 같이 갈래!"
"나도나도!"
제일 중요한 두 골칫덩이 소녀들은 진정을 좀 시키고.
천강이 달려드는 두 아이의 이마를 검지로 꾹꾹 밀어내며 말했다.
"나 놀러 가는 거 아니다. 그러니 열심히 훈련들 하고 있어. 갔다 와서 검사할 테니까. 연화 넌 화경 만들어 놓고, 초아 넌……."
"응. 난 뭐하면 될까?"
"……그냥 열심히 훈련하고 있어라."
"아, 왜! 나도 목표를 달라고!"
자신이 흑살마신이건 천강이건 변함없는 초아의 행태에 역시 마인은 마인이란 생각을 하며 천강은 둘을 돌려보냈다.
"형님, 전 뭘 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저도 화경을 찍어 놓으면 되겠습니까?"
"무진이 넌 네가 스스로 계획을 잡고 움직여라."
"예?"
"연화야 워낙 사고치고 다닐 상이니까 딴 짓 하지 말고 열심히 훈련하라는 의미로 말해준 거고, 넌 너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정진하거라. 그 누구도 네 그늘이 되어줄 수 없는 이때야말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는 듯 무진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렇게 다 돌아가고 천강의 주위엔 딱 한 명만 남게 되었다.
"내겐 뭐 해줄 말 없습니까, 선배?"
신교의 진짜 소교주이자 천강이 대역을 서며 보호해준 천진악. 천강은 소년에게 다가가 그 어깨를 단단히 붙들었다.
"난 내가 할 만큼 했다. 그건 너도 인정하지?"
끄덕.
무형지독에 무저갱 형벌까지. 목숨을 두 번 구해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무진이도 너도…… 이제 날개 품에서 벗어나 혼자 설 줄 알아야 한다. 그래도 기우에 한마디 하자면, 졸업할 때까진 네가 소교주라는 생각을 버리고 행동해라. 무슨 뜻인지 알겠냐?"
"예, 선배. 이전처럼 까불면서 티 내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잘할 거라 믿는다."
천강이 어깨를 두드리며 소년을 돌려보냈다. 진악은 물끄러미 천강을 바라보다 말했다.
"죽으면 용서 안 할 겁니다. 저승 끝까지라도 쫓아갈 겁니다."
"참네. 지금 내 걱정해주는 거?"
"거 무슨 해괴한 소립니까. 아직 물건을 못 돌려받았으니 하는 말입니다."
아, 그랬지. 천강이 걱정하지 말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 손엔 교주의 증표가 들려 있었다.
'자, 그러면 이제 마지막 한 명 남았나?'
무저갱에 들어가면 얼마나 오래 있게 될지 모른다.
일단 단기 목표는 1년이지만, 세상일이란 게 계획대로 되진 않는 법.
그보다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는 만큼, 천강은 꼭 처리해야 할 일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묵현의 숙소였다.
"잠깐 단둘이 이야기 가능할까?"
"천강. 안 그래도 나도 널 막 찾아갈 참이었다."
그러며 묵현이 품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천으로 만든 신발이었다.
천강은 묵현이 건네는 걸 받아들며 물었다.
"어이. 이런 걸 주려면 옥살이 중에 찾아와서 건네줘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러기엔 내가 요새 바빠서 안 된다."
"무엇 때문에 바쁜데?"
"있다, 그런 게."
천강은 신발을 슥슥 매만졌다. 천의 느낌이 참으로 오묘하다.
"그런데 갑자기 웬 선물?"
"그동안 빚진 것들…… 갚는 것뿐이다."
"그래 고맙다. 잘 쓰마."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천강이 이리저리 둘러보자, 묵현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급하게 만드느라 문양 같은 건 새기지 못했다."
"음? 그게 무슨 소리야?"
내게 주려고 맞춤으로 만들었단 소린가, 지금?
"천강, 무저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그냥 마교에서 제일의 감옥이라는 것 정도? 왜?"
"잘 들어라. 그곳에 들어가면 내기를 운용할 수 없다."
천강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마두들조차도 모르는 정보를 일개 훈련생이 알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흑선마희가 생각보다 그런 쪽에 조예가 깊은 건가?
"그러나 그걸 신고 들어간다면 그 문제를 피할 수 있을 거다."
천강의 눈이 크게 뜨였다. 신을 바라보는 천강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게 대체 뭐길래?"
"그건 천잠사로 만든 거다."
천잠사.
특수한 환경에서 특수한 내기를 가진 누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귀한 비단실이다.
내구도도 매우 뛰어나고 기운을 어느 정도 차단하는 능력이 있어 부르는 게 값인 매우 귀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만든 신발이라니.
제아무리 마두라도 그 정도 재력을 갖추진 못한다. 이 정도 값을 치르려면 만년설삼 하나 이상의 값을 치러야 하리라.
"무저갱 들어갈 때 꼭 신고 들어가라."
천강의 놀라는 모습을 보고는 묵현이 옅게 미소를 지었다. 천강은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묵현."
"뭐지?"
"왜 나한테 이리 잘해주는 거지?"
"아까도 말했듯이 네가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이다. 다른 의미는 없다."
"정말 그뿐?"
묵현이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한 가지 이유를 더하자면…… 동기 중에는, 아니 이곳 마교에선 네가 가장 인상 깊게 남았을 뿐이다."
즉, 말 그대로 호의.
그 솔직한 표현에 기대를 걸고 천강 또한 직설적으로 물어보기로 했다.
흑선마희와 둘이서 여울나무와 협업을 하는 이유가 무언지. 그들의 이름이 왜 외부 협업 인사로 분리되어 있는지.
묵현 모자(母子)의 정체가 무엇인지.
"묵현 너……."
그러나 그 순간, 굴 바깥으로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두 중 하나. 이름은 모른다. 이번 형벌의 집행관 중 하나라는 것과 여울나무 측에 거의 전향된 중립세력이라는 것만 알 뿐.
"이제 이동하겠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는 거로 압니다만."
"천산의 보고에 들러, 받은 무기들을 반납해야 한다."
천강은 고개를 돌려 묵현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그 이야기는 다음에 마저 해야 할 듯싶다.
"아무튼 잘 지내라. 나와서 보자."
"그래."
천강은 마두를 뒤따라 암운곡 구멍을 거슬러 올라갔다.
***
"저곳이 바로 천산의 보고……."
집행관 강철신마가 나직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천산의 보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큰 공적을 세워야 한다. 혹은 그에 버금가는 물건을 가져오거나.
심지어 천산 꼭대기 부근 절벽 가까이에 위치했기에, 대다수의 마인들은 일평생 이 근처에도 얼씬거릴 수 없었다.
마교 서열 83위인 강철신마는 가만 서서 천산의 보고 전경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는 앞으로 한 발 나아가자, 바람을 타고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그에게 날아들었다.
- 누구냐?
"흠흠. 죄인이 취한 물건을 돌려주기 위해 들렀다."
- 지나가라.
천강과 집행관은 천산의 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온 걸 알고 있었는지,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사학 어르신. 이 천강, 인사드리옵니다."
"그래. 어서 오거라. 이야기는 들었다. 물건들을 돌려주러 왔다고?"
"예. 그리 되었습니다."
천산의 보고 관리자인 노인이 한 차례 집행관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넌 교주의 허락을 받고 그 물건들을 취한 게 아니라, 내가 준 개인 임무를 완수해 그것들을 취한 것이다. 그러니 그러지 않아도 된다. 원하면 내가 네 무죄를 증명해 주겠다."
"아닙니다. 조용히 여생을 즐기시는 어르신을 귀찮게 만들 순 없지요."
- 형벌을 치르고 나올 때까지 잘 보관해 주십시오.
천강의 전음을 들은 노인이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끌끌."
천강은 머리 위 검은 구름에서 신병이기들을 꺼내 노인에게 하나하나 건넸다. 신병이기들의 성화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 뭘 이리 귀찮게 하는 것이냐? 그때 그 마두인지 뭔지 하는 것들 지금 당장 가서 모두 작살을 내면 되는 것 아니냐!
- 그러하다. 우리와 함께 하는 넌 무적! 그깟 마두들의 목을 베는 건 일도 아니다!
- 소년, 다시 한번 재고해 주세요. 굳이 이리 헤어지지 않아도 적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천강의 생각은 변함없었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힘들게 갈 이유는 없지.'
솔직히 이전 같으면 조금은 고민이 됐겠지만, 묵현이 준 선물로 인해 그 고민이 말끔히 사라진 천강이었다.
무기를 모두 건넨 천강이 뒤로 물러섰다. 천강이 건넨 일곱 자루의 검이 바닥에 가지런히 놓였다.
"정말 괜찮겠느냐?"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천강이 몸을 돌려 집행관을 바라보았다. 그는 천강의 신병이기들을 탐욕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 욕심이 생길만 하지.'
역사에 그 이름이 기록된 명검들.
들고 싸우면 자신보다 한 경지 위의 고수들과 호각을 이룰 수 있으며, 소유하고 있기만 해도 현경이 될 때까지 무한히 깨달음을 준다.
그런데 그게 한 자루도 아니고 일곱 자루.
"안 갑니까?"
"흠흠. 가야지. 근데 어르신의 말씀이 무엇이냐?
"말 그대로입니다. 저것들은 제가 어르신의 임무를 완수하여 받은 보상. 밖에서 주장하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군. 결국 여울나무 놈들에게 우리 모두가 속은 것이었단 말인가."
한차례 분개하는 남자. 그는 흘끗 천강의 무기들을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그럼 어르신 말도 일리가 있으니 한 자루 정도는 챙겨가라."
"괜찮겠습니까? 잘못하면……."
"걱정 마라. 어르신과 나, 그리고 너까지 셋이서 입만 다문다면 아무 문제 없다. 그 정돈 내가 눈감아 주겠다."
그렇다면야. 천강이 신병이기들에 다가갔다. 신병이기들이 너도나도 소리쳤다.
- 나, 나를 데려가라!
- 나니라! 나이니라!!
- 이 중 내가 제일 쓸모 있을 것이다! 소년이여, 날 들고 가라!
고민에 잠긴 소년.
손이 슥 움직였다. 천강이 검 하나를 집었다.
- 아, 아닛?!
- 난 이 결과에 승복할 수 없네!
좌절하는 다른 검들. 막야가 웃음소리를 흘렸다.
- 전략을 잘 짜셔야죠. 걸걸한 목소리로 그리 소리치면 애들이 좋아할 줄 아나요? 가만히 있어도 중간은 가는 법이랍니다!
그렇게 천강과 함께하는 신병이기는 막야로 선택되었다.
"그럼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르신."
"가보겠습니다."
"끌끌. 그래. 조심히들 가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