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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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23화
123화. 동창(東廠)
"주군, 찾았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천산의 어느 동굴. 한 남자의 목소리가 입구에서부터 메아리쳐 울려 퍼졌다.
그것은 굴 안 깊숙이 날아가 사라졌고, 이내 한 인기척을 굴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터벅. 터벅.
거대한 도를 한 손에 들고 있는 남자. 그는 마교 서열 3위 흑도마황이었다.
"주군, 신물의 단서를 찾았습니다! 그것의 위치가 기록된 구결을 고서적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읊어 보아라."
"예!"
흠흠. 한 차례 목을 푼 무견이 고서의 구결을 낭독했다.
불의 기운과 죽음의 기운이 서로 영역을 다투고.
하늘을 메운 뿌연 연기에 세월의 흐름이 덧없다.
땅이 노쇠하고 생기를 잃으니 일궈도 나는 게 없고.
탐욕은 나날이 왕성해져 땅 위의 생기를 탐하는구나.
혹여나 세상이 멸망할까 하늘이 단잠을 재우니.
다시 눈을 뜨는 그날엔 천지가 침묵하리라.
"흠……."
생각에 잠긴 흑도마황.
"혹여나 예측이 가는 장소가 있으십니까, 주군?"
"전혀 짐작이 안 되는군."
너무 난해해 어디인지를 유추할 수가 없다.
불의 기운과 죽음의 기운이라. 천산에 그런 곳이 있었나?
"애들을 불러 모을까요?"
"그래. 그 구결들을 가르쳐주고 찾게 하라."
"예. 명을 받들겠나이다."
***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하였느냐?"
여울나무 숲 회의실. 투파창귀의 물음에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을 해결하기 위해 각자 한 번씩 나섰으나 번번이 실패를 맛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중원과의 교류를 꾸준히 이어왔다.
서로의 진영에 상대를 초대함으로써 자신의 세력이 안정됨을 보여주고 그 성과를 과시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2년 전, 외부 담당 인사가 죽고 그 이후로는 강제로 교류가 중단된 상황이었다.
정파 쪽으로 가서 만나는 건 문제가 없었으나 유독 이곳 마교 쪽에서 만남을 가지려고만 하면 사달이 난 것이다.
"범인은 누구라 생각하지?"
"아무래도 묵범귀영 같습니다, 어르신."
묵범귀영. 옛 마교의 망령.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명확히 확인이 안 된 신교의 영웅.
그의 흔적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최근에도 꾸준히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그가 몇백 년 넘게 계속 신교에서 흑사대로 활동하지 않나 의심하고 있었다.
"확실히 그 정도 거물이라면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긴 하지."
투파창귀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러나 난 그럴 것이다와 같은 막연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죄, 죄송합니다."
사람들이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들 앞에서 두두둑- 두두둑- 책상을 손가락으로 내려치며 생각에 잠긴 투파창귀가 좌중을 슥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어찌하실 계획이십니까?"
"본격적인 전투에 돌입할 준비를 한다. 적삼혈마, 넌 사신들을 준비시키는데 박차를 가하고. 나머지는 언제든 전투를 취할 수 있도록 태세를 갖추고."
"예."
모두가 회의실 밖으로 사라지고 단둘이 남은 상황에서 적삼혈마가 조용히 물었다.
"언제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구소환패의 주인이 준비되는 순간, 바로 움직인다. 얼마 안 남았다."
벌써 그 정도로 성장을……?
자신이 살아온 세월의 반도 안 산 핏덩이다. 그런데 곧 현경에 도달할 것이라니.
'그야말로 천부적인 재능.'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진 스승과 그에 못지않은 제자.
어르신의 계획대로 청청이 현경만 되어준다면, 이 싸움은 끝이 났다고 보아도 좋으리라.
그때 외부로부터 강한 바람이 회의실로 한 차례 불어 닥쳤다. 투파창귀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일단 그전에 소교주부터 처리해야겠군."
***
"형님. 인사드립니다."
"그래, 삼귀야. 정말 수고 많았다."
일귀는 삼귀와 가볍게 인사하고는 사백 동굴로 향했다. 삼귀는 약 반년간 중원을 돌아다니며 주군이 내린 임무를 수행해왔다.
그것은 바로 조사.
"그래. 성과는 좀 있었느냐?"
일귀의 질문에, 삼귀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예. 다행히도 주군께서 자금을 넉넉히 주신 덕분에 알아보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것들은 돈이면 뭐든 다 말해줄 놈들이지. 아무튼 성과가 있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어서 서둘러 주군께 보고하도록 하자. 네가 오길 기다리고 계신다."
두 사람은 사백 동굴 앞에 자리한 폭포로 나아갔다. 그들의 주군은 폭포 옆 풀밭 위에서 수련 중이었다.
삵 한 마리가 다소곳이 앉아, 지금 뭐하냐는 듯 소년을 바라본다. 그 앞에서 한 소년이 똑같은 표정과 얼굴로 삵을 마주 본다.
기분이 나쁜지 천강의 얼굴을 할퀴는 녀석.
천강은 손을 들어 올렸다가 도로 내렸다. 자신이 똑같이 했다간, 힘들게 데려온 요 녀석이 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요, 요, 요 녀석. 생긴 것과는 다르게 성격이 포악하네요.
'그러게 말이야.'
천강이 목을 좌우로 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폭포 그늘 아래, 그의 두 수족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군, 일을 마치고 복귀하였습니다. 삼귀, 인사드립니다."
"그래. 수고 많았다. 식사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 마을에서 하고 왔습니다."
"잘했다. 돈이 부족하진 않았고? 맛난 것 좀 많이 먹고 들어오지. 모처럼의 강호행인데."
"넉넉히 챙겨주셔서 그리하고 왔습니다."
천강이 삼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 무영삼귀는 재물을 쥐여 줘도 사욕을 챙기는 이들이 아니었다.
돈을 넉넉히 주었더라도 기름지고 맛난 음식을 사 먹진 않았으리라.
'다음엔 같이 나가서 좀 먹여야겠군.'
그리 생각하며 천강은 두 사람을 폭포 안쪽으로 인도했다. 그리고는 신병이기들을 풀어 사방을 경계하도록 했다.
"그럼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래."
"동창(東廠)은 현 황실에서 만든 비밀조직입니다."
작년 주태, 맹익과 함께 여울나무 총책임자 사무실을 털었던 천강은 그곳에서 여러 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중엔 외부 세력에 대한 것들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는데, 동창 또한 그것들 중 하나였다.
'동창 말입니까?'
'그거 환관들로 이루어진 황실 조직 아닙니까?'
'환관들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전생에 흑살마신 땐 들어본 적 없던 조직.
그에 천강은 삼귀를 중원으로 보내 자세히 알아보라 시켰다. 무영삼귀도 황실조직이라는 것만 알 뿐, 자세히 아는 건 없었기 때문이다.
삼귀가 설명을 이었다.
"황제 직속기관으로 황제에게 신임을 받는 환관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만들어진 지는 꽤 오래되었으나 공식적으로 발표된 건 채 5년이 안 됩니다."
"그래서 내가 몰랐던 거로군."
삼귀 말로는 천강이 칩거에 들어가기 전까진 황실 내부에만 존재했던 비공식 기관이었다고 했다.
"근데 그건 뭐 하는 기관이지?"
"겉으로는 이런저런 정보들을 수집하는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실상은 황제의 자리를 굳건히 하기 위한 조직으로…… 군인, 관료, 그리고 황족까지 감시하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 게 지금 여울나무와 협력하고 있다?"
이건 거의 황실과 동맹을 맺은 꼴 아닌가.
천강은 품에서 물건 하나를 빼 들었다. 그것은 재작년 풍미관 인근에서 싸움에 휘말리며 얻은 명패였다.
훼손되어 있으나 선명히 남아 있는 글자 동(東).
"이것도 그놈들 것이냐?"
삼귀가 자세히 살펴본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몇 번 신분을 댈 때 훔쳐본 적이 있는데, 이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그놈 무공은 별것 없던데?"
"황실의 진짜 무서운 점은 그 군세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못해도 수십만은 될 것이다. 끌어 모은다면 백만이 넘을지도 모른다.
이런 천산 같은 동네는 화살만 쏴도 고슴도치가 되어 버릴 것이다.
"어쩌면 투파창귀가 문제가 아니겠군."
"예?"
"아무것도 아니다."
천강은 삼귀의 팔을 두드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말 수고 많았다. 고된 여정으로 힘들었을 텐데 며칠 쉬어라."
"예. 감사합니다, 주군!"
삼귀가 예를 갖추고는 물러났다. 천강은 말없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일귀에게 물었다.
"흑선마희와 묵현 쪽은?"
"여울나무 쪽으로 뭔가 바쁜 움직임이 있긴 합니다만, 특별한 건 없습니다."
"……그렇군."
그 질문을 끝으로 천강이 침묵을 유지하자 일귀가 조심스레 물었다.
"주군, 아직 고민하시는 겁니까?"
"그래."
천강은 눈을 감고는 묵현이란 아이를 떠올렸다.
겉으로는 냉랭하게, 무관심한 척하면서도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이들을 늘 챙기던 모습을.
'원래대로라면 바로 처리해 버렸어야 하지만…….'
자신이 소교주인 것을 알고도 꾸준히 호의를 보였던 게 마음에 걸린 천강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눈이 마주칠 때마다 까딱 고개를 숙이며 천강에게 보이는 표정은 분명히 호의였다.
'그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 묵현은 표정 관리나 연기에 소질이 없었지.'
그저 일관되게 무뚝뚝할 뿐.
'아직은 위험하지 않으니…… 조금 더 생각해보도록 하자.'
간자들의 신원 파악을 끝내고, 암운사신의 병력들이 밀착하면서 적들의 동태는 코앞에 대고 보듯 훤해졌다.
그리고 반년 사이, 실제로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여울나무 본인들도 모르게 말이다.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왜 당한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흑선마희와 묵현 또한 마찬가지. 암운사신의 병력이 붙어 있는 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눈치였다.
그들이 보이는 동태가 그러했다.
"꾸준히 감시하도록. 뭔가 특이한 게 있으면 바로 보고하라고 전하고."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이만 가 봐."
일귀가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찰나였다.
"음?"
저 멀리서 엄청난 속도로 누군가 뛰어오는 게 느껴졌다. 암룡이었다.
[ 주군!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
현재 암룡은 잠정적으로 사망 처리된 상태다. 그런데 이렇게 허겁지겁 뛰어 나타나는 걸 보면 보통 일은 아니었다.
천강과 일귀의 시선이 모이자, 이마의 땀을 닦아낸 그녀가 종이와 붓을 꺼내 서둘러 보고를 올렸다.
[ 적들이 주군께서 천산의 보고를 자유로이 이용한 걸 알아챘습니다. 지금 그걸 문제 삼고 나올 계획입니다. ]
"뭐?"
분명 여울나무 쪽으로 가는 대부분의 정보를 다 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디서 그런 중대한 정보가 넘어간 것이지?
"여울나무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일 계획이라더냐?"
[ 주군을…… 처형으로 몰고 갈 계획이랍니다. ]
천산의 보고를 자유로이 이용했다고 소교주를 처형으로 몰고 간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그런데 그냥 간과할 수 없는 게, 이귀 말로는 투파창귀 입에서 직접 나온 말이라 합니다. ]
투파창귀……. 지금껏 상대해온 바로는 투파창귀 그 인간이라면 조심해야 한다.
마치 수풀 아래에 숨어 있는 뱀같이 웅크리고 있지만, 한번 기회를 잡으면 매섭게 몰아치는 부분이 있었다.
특히 무서운 건, 적당히라는 게 없다는 점이었다.
'녀석이 그렇게 말하고 움직일 정도라면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것인데.'
"주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일귀의 질문에 천강이 말없이 허공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흑도마황과의 자리를 만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