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22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22화
122화. 정보
"어서 오세요, 스승님!"
"천강! 어서 와!"
무사히 주태의 거처에 도착하자, 두 여인이 나와 맞아주었다.
특히 초아는 단숨에 천강에게 달려와 매달렸다.
천강의 정체를 밝혔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초아의 행태에, 맹익을 제외한 두 남자는 이마에 손을 짚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두들 안으로 드세요. 식사 준비했습니다."
자리에 앉아, 80년 인생 처음으로 크게 한탕 한 걸 축하하는 사람들.
술을 먹던 주태가 천강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이곳으로 돌아오면서 총책임자 사무실에서 본 것들을 공유했다. 어떤 걸 보았었는지.
"글쎄. 잘만 하면 교주에게 뭔가를 좀 뜯어낼 수 있지 않을까?"
"엥? 너 교주 편 아니었어? 너 소교주라매?"
"나 소교주 아냐."
맹익을 제외한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천강은 비밀을 엄수해 달라 경고하고는 말했다.
"내가 흡공을 쓰니까 사람들이 날 소교주로 오해하더라고. 그래서 교주랑 거래를 좀 했어. 잠깐 소교주 화살받이가 되어주기로."
"그랬던 거로군."
"근데 난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천마신공에 흡공이 있었던가?"
주태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맹익, 넌 뭐 아는 거 없냐? 그나마 네가 우리 중 교주와 제일 가깝잖아."
맹익이 수염을 쓸며 답했다.
"제가 알기로는…… 현 교주가 흡성대법을 흉내 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왜 그리 생각하는데?"
"몇 번 흡공을 연습하는 걸 보았는데, 그 방식이나 희생자들의 행태가 선배님과 갈수록 닮아갔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증상도 비슷해지더군요."
"증상이 비슷해진다면…… 현 교주도 이종진기에 시달린다는 거야?"
맹익이 대답 대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굉장히 위험한 정보였기 때문이다.
이종진기.
그놈의 이종진기 때문에 역대 흡성대법의 선진들이 제 명을 채우지 못한 채 이승을 떠야 했다.
천강의 스승도 그러했고, 심지어 천강 본인까지.
흡공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갖는 순간 따라오게 되는 양날의 검. 이종진기는 일종의 시한폭탄이었다.
"그래서 몇 차례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원으로 나갔던 걸로 압니다."
"그럴 테지. 이종진기 그거 굉장히 골치 아프거든."
"선배는 해결한 겁니까?"
"어. 난 해결했어."
걱정이 그득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화악 밝아졌다.
천강 옆으로 은근슬쩍 자리를 옮기는 초아를 차단하며 주태가 물었다.
"그럼 교주에게 뭐 받고 팔아먹으려고?"
"글쎄. 아직은 고민 중이다."
총책임자의 사무실에서 얻은 여울나무의 정보는 그 가치가 상상을 초월한다. 잘만 이용한다면 지금의 전세를 확 뒤집을 수 있을 정도로.
천강은 찻잔을 기울이며 역으로 물었다.
"근데 넌 교주를 이용해 먹는 것에 뭔가 거부감이 없다?"
대부분의 마인들은 미약하게나마 교주에게 충성도를 보인다. 그것은 한 무리의 수장, 가장 강한 자에 대한 일종의 예우. 존경심.
맹익이야 전생에도 날 졸졸 따라다녔으니까 그렇다 쳐도 주태는 뭐 때문에 그러지? 아, 가족 때문인가?
천강의 질문에 주태가 말을 아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서아가 대신 입을 열었다.
"호호호. 그건 말이지요."
"서아야. 자, 잠깐."
"교주님이 제가 이이의 아내인 줄도 모르고 청혼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엥? 사람들의 눈이 크게 뜨이고, 서아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아마 그것 때문일 거예요. 이이가 좀 감정 상한 게 오래가거든요. 호호호호호."
아니, 얼마나 철저히 숨겼으면 그런 일까지 벌어져?
새삼 놀라워, 말이 다 안 나오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다 같이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는 그때였다.
"스승님. 밖에 손님이 왔답니다."
"누군데?"
누군가 하여 확인해보니, 일귀였다.
"주태야. 내 그림자다."
"그림자?"
"어. 여울나무에서 정보를 물어와 주는 내 수족."
주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서아가 그를 안으로 데리고 왔다.
들어오자마자, 암운사신 일가와 묘한 시선을 주고받는 일귀.
무영삼귀 중 일귀는 화경 끝자락에 해당하는 고수다. 중원 제1살수 암혼의 수제자이고.
본능적으로 같은 암살자임을 직감한 그들은 고요히 서로를 탐색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오랜만이로군!"
맹익의 인사에 안면이 있는 일귀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천강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주군. 큰일이 있어 급히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큰일?"
"예. 약 한 시진 전, 여울나무에 갔다 오시지 않았습니까?"
천강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일귀가 잠시 주변을 슥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간자 신분으로 그 안에서 활동 중이던 이귀과 삼귀가 방금 전해온 급보인데, 여울나무 총책임자 건물이 전소되었답니다."
"뭐?"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암운사신과 연관을 짓는 걸로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 자초지종을 상세히 전달받은 천강과 사람들.
주태가 술을 벌컥 들이켰다.
"어휴. 그럼 그렇지. 우리가 사고 안 치고 넘어갈 리가 없지. 야, 땡추!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흠흠. 그러게 말입니다."
맹익은 찔리는 게 있어 말을 줄였다. 적들은 기관진식이 왜 사고를 일으킨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별다른 행동은 없고?"
"우휘전마가 현장에서 즉결 처분 당했고, 새 총책임자로 다시 적삼혈마가 되돌아왔습니다. 그 외엔 아직까지 별다른 행동은 없는 상태입니다."
그동안 천강이 지켜본 투파창귀는 행동력이 강한 인물이었다. 아직 움직이지 않은 건, 확신이 없거나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리라.
어쨌든 이로 인해 주태와 그 일가가 위험해진 건 분명한 사실.
"주태야, 미안하다. 할 말이 없다."
천강의 진심 어린 사과에 그가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러 번 당하고도 네 계획에 또 동참한 내가 등신이지, 뭐.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 거냐? 교주 쪽에 바로 정보를 주는 게 낫지 않겠어? 그래야 싸움 양상이 우리 쪽에 유리하게 변할 텐데."
"아니. 아직은 아냐. 일단은 숨겨야 해."
"숨겨?"
"지금 정보를 넘기면, 저번 무형지독 사건으로 열받아 있는 교주는 불 보듯 간자들을 싹 다 정리할 거다. 그럼 어떻게 될까?"
"……대대적인 숙청이 이루어지겠지."
주태의 말을 들은 맹익이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그로 인해 점입가경. 양쪽은 긴장감을 높이겠지요."
"그래. 그러면 안 돼. 주태 너도 잘 알겠지만, 간자 숙청이 일어나면 우리도 정보 얻기가 매우 힘들어져. 신원을 깐깐히 확인할 테니까. 지금 너나 나나 운신이 자유로운 건, 그 누구보다 앞서는 정보력 때문이거든."
정보를 장악하고, 그리하여 상대가 어떤 패를 들고 나올지 유추만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계책이라고 겁나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가 어떤 술수를 부리는지 모르는 건 위험한 것이다.
다음에도 이번 무형지독 사건처럼 요행이 따라주길 바라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그러니 교주 쪽에 넘기는 대신, 우리의 강점을 적극 이용해야겠지."
"어떻게?"
"여울나무 간자들에게 네 병력들을 은밀히 붙이는 거다."
주태가 손바닥을 마주쳤다.
"적들에게 어떤 정보가 넘어가는지를 파악하고, 우린 그에 대한 대비를 하면서 이득을 챙기자는 말이지?"
"그래."
천강이 고개를 돌려 서아와 초아를 바라보았다. 초아는 어느새 천강의 등에 매달려, 자신의 볼을 부비부비 거리고 있었다.
그 한쪽 볼을 꼬집어 잡아당긴다. 초아의 볼이 찹쌀떡처럼 길게 늘어진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교주 쪽에 정보를 넘기면, 필시 이번 화재의 용의자로 네가 지목받는다. 어쩌면 교주 쪽에 붙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그렇게 되면 투파창귀 성격상 직접 움직일지도 몰라."
"……그것도 그러네."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면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 호칭까지 바꾼 녀석이다.
그 부인이 교주에게 청혼받은 건 좀 놀라웠지만… 아무튼 이번 일이 천강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것인 만큼 확실히 책임질 생각이었다.
"그러니 싸움 끝날 때까지 일단 내 거처에서 지내도록 해."
오목골엔 맹익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기관진식이 자리했고, 그 밑으로는 흑사 녀석이 있으니 어떤 면에선 천산에서 가장 안전한 요새라 할 수 있었다.
어느 쪽으로 넘어오든 순식간에 밀고 들어올 수는 없으니까.
"고맙다."
그렇게 주태는 다른 이들과 함께 이곳에 남고, 서아와 초아만 오목골로 잠시 피신하기로 결정했다.
분위기가 잘 풀어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겨 즐거이 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그때 초아가 천강의 팔을 잡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스승님!"
"왜 그러니, 초아야?"
"저랑 천강, 언제 허락해 주실 거예요?"
응? 그게 뭔 개소리야?
천강과 주태의 눈이 마주친다. 주태가 검지를 치켜들며 호통을 쳤다.
"떽! 초아야, 정신 차려라! 얜 네 짝 아니다!"
단호히 선을 긋고 나서는 주태. 그는 초아에게 몇 번이고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일단 나이 차부터가 심히 나지 않느냐!"
고개를 돌려 동의를 구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고 나서는 사람들. 그런데 뜻밖의 사람이 초아를 옹호하고 나섰다.
"천강 님이라면 전 합격이에요."
"뭐?"
"흑살마신이면 명색이 신교의 영웅. 지아비로는 최고 아닌가요?"
"서아야. 그건 아니 될 말……."
"그리고. 응당 한 명의 마인이라면 제 짝은 자기가 정해야지, 그 무슨 주책인가요?"
"주, 주책?!"
확 째려보는 부인의 눈빛에 주태가 몸을 움찔 떨었다. 그래도 딸을 아끼는 마음이 큰지 자세를 바로 하고는 제 주장을 펼친다.
"서아야. 잘 생각해봐. 이 녀석 나이로 치면 80살이야. 초아랑 60살 넘게 차이 난다고!"
"그래서요? 나이 차가 뭔 문제인가요? 저도 스승님과 30년 나잖아요?"
그 한마디에 좌중으로 적막이 내려앉았다.
천강이 주태를 노려봤다.
"야, 저 말 사실이야?"
"……."
이런 미친.
"네가 사람이냐! 엉? 30살 연하랑 혼례를 올리고 싶냐!"
천하의 개잡놈으로 낙인찍힌 주태를 놔두고는 천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어디가!"
"일하러 간다, 일!"
주태가 모녀에게 구박받는 동안 천강과 맹익은 주태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오늘 총책임자 사무실에서 보았던 정보들을 빼곡히 기록했다.
여울나무 숲의 조직도, 전력, 현황.
간자들에 대한 정보.
앞으로의 계획 등등.
'그건 그렇고, 청청이 여울나무 내에서 10대 강자에 속하다니……. 놀랍군.'
처음 볼 때부터 보통이 아닌 건 예상했지만, 실로 경이로운 성취였다. 이 속도로 간다면 빠른 시일 안에 현경에도 도달할지도 몰랐다.
"전 다 기록했습니다, 선배.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로군요."
"그러게 말이야."
주위를 가득 메운 종이들. 그때 천강의 귓가로 뇌명의 질문이 이어졌다.
- 외부 세력과의 협업에 대한 건, 자세히 안 적으시나요?
'그래. 생각 좀 해보려고.'
천강의 시선이 손 위의 종이로 향한다. 그곳엔 여울나무와 협업하는 외부 인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 ……풍월대주, 동창, 흑선마희, 묵현……. 』
천강은 그것을 가루로 만들어 바람에 날려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