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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19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1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19화

119화. 주태

 

 

- 소년! 왜 뚫려있는 길로 안 내려가고 힘들게 굴을 파 내려가는 겁니까?

천산의 땅속은 매우 단단하다. 또한 영기가 많이 흐르기에 내기를 집약해 후려쳐도 크게 손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신교의 사람들은 천산에 구멍을 뚫어 공간을 만드는 방식을 많이 이용해 왔다.

벽이 얇아도 천장이 안 무너지기에, 조금만 공을 들이면 좋은 공간을 오래도록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천강은 지하 2층에 내려서며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어떤 기관진식이 펼쳐져 있을지 모르잖아? 이 정도 거리면 그냥 파고 내려가는 게 나아. 그래야 나올 때도 편하고.'

영기가 넘치는 땅덩어리 덕택에 천산에 설치된 기관진식들은 하나같이 까다롭고 위협적이다.

당장 천강의 거처인 오목골에 설치된 사막과 절벽 환상만 해도 그러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유지 자체가 불가능한 기관진식이었으나, 맹익 말로는 벌써 20년 넘게 가동 중이라 했다. 그것도 하루도 안 쉬고.

'그러니 여기도 볼 것도 없이 설치돼 있겠지.'

슥 시선을 돌려 2층의 입구 쪽을 바라본다. 과연…… 어떤 종류인지는 몰라도 분명히 설치되어 있음이 느껴진다.

'감옥이라 그런지 안팎으로 작용하는 종류로군.'

순간 어떤 식으로 만들었을까 호기심이 생겼으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천강은 고개를 내려 바닥을 응시했다.

아까보다도 미약한 기운이 더 선명히 느껴졌다.

그 기운의 주인은 분명 초아였다. 다만 온몸이 꽁꽁 묶인 상태인 것 같았다. 호흡이 조금 전보다 더 가빠 보였다.

'바로 내려가자고.'

천강이 발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내려치려는 순간, 머리 위에서 섬뜩한 기운이 쏘아져 내려왔다.

츠팟- 발을 튕겨 뒤로 쭉 물러난다.

고개를 들자, 구멍 뚫린 천장 사이로 미약한 빛이 내려오고. 그 아래 사람 형태를 한 검은 안개가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어. 당신이 암운사신?"

"……소교주. 네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집 바닥에 구멍 낸 것 때문에 그런 거면 너무 화내지 말라고. 나중에 수리비는 낼 테니까."

"아니."

검은 안개의 양손이 쫙 펼쳐졌다. 그의 손에 들린 두 단도에 검은 기운이 날카로이 맺혔다.

"널 이기는 데엔 신검 100개까진 필요 없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그런 소리를 했었지.

아까 초아의 사저로부터 주태의 분노가 두렵지 않으냐는 경고를 들을 때, 나도 모르게 본심을 말하고 말았는데. 그걸 또 들은 모양이다.

- 그러게 말조심, 또 말조심하지 그랬느냐!

- 흠흠. 말을 할 때는 늘 주위에 누군가 있다…… 생각하고.

'잔소리 그만들 하셔. 늘 겸손하기만 하면 무슨 재미로 사나? 그리고 막말로……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난 주태 녀석이 신검 99개를 들고 와도 이길 자신 있었다.

- 허허. 겸양도 군자의 미덕이거늘.

- 포기하게, 의천. 이미 우리의 손에서 벗어났네.

천강이 자세를 잡았다. 암운사신이 몸을 웅크렸다.

"네 그 오만함의 대가……."

팡. 천강을 향해 암운사신의 신형이 움직였다. 그가 폭발적으로 쏘아져 날아오며 크게 소리쳤다.

"네 목숨으로 받아 가겠다!"

전방에서 쇄도해오길 잠시,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녀석.

'하. 암운신공을 상대하는 놈들이 이런 기분이었겠구만.'

그 어떤 기척도 내기도 느껴지지 않는 적.

고수면 고수일수록 더 당황할 수밖에 없으리라. 고수들은 기감이 극도로 발달해, 눈보단 기로 늘 적의 위치를 추적하기 때문이다.

즉, 고수들의 싸움은 누가 더 강한지, 누가 더 빠른지. 그리고 누구의 수와 패가 더 교묘한지에 따라 갈린다.

그러나 암운사신의 무공은 그 판 자체를 뒤흔든다. 눈앞에 두고 싸우는데도, 마치 암살자의 기습을 받듯 그 수를 조금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말 그대로 유추 자체가 불가능.

- 소년, 아무것도 느껴지는 게 없다!

- 이거…… 위험합니다!

그러나 신병이기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천강의 얼굴엔 여유가 그득했다.

천강에겐 그게 놀라움은 될지언정 당혹스러움은 될 순 없었다. 전생에 암살자들 기습을 늘 달고 살았기에.

'두 개의 단도. 초아가 보여주었던 신법. 한 박자 늦게 형성되는 미약한 인위의 바람과 살짝살짝 비치는 검은 안개.'

천강의 몸이 90도 회전했다. 옷자락이 잘려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엔 연격.'

천강이 몸이 좌우로 이리저리 움직였다. 날카로운 공격이 아슬아슬하게 천강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공세.

그런 녀석의 맹공은 빛이 새어 들어오는 천장 밑에 도달한 이후에야 멈추었다.

"……어떻게 피한 거지?"

"제아무리 빠른 공격이라도, 제아무리 화려한 공격이라도, 설령…… 보이지 않는 공격이라도, 그 도착지점이 내 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전생에 주태와 오랜 기간 함께했다.

맹익까지 포함해 셋 모두 스승이 없었기에, 허구한 날 암운곡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서로 대련을 하며 머리를 모으는 게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싸울 수 있을까? 어떤 식으로 해야 상대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있을까? 뭐 그런 거.

이후 암운곡을 떠난 뒤로는 교류가 뜸해졌지만, 초아를 만나 녀석의 신법과 공격 방식이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 유추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녀석에 대해 아는 만큼, 경우의 수를 추려 최종 목적지만 파악해 피하면 그만이었다.

"내가 아까 한 말, 빈말이 아니다. 네가 날 이기려면 진짜 신검 100개는 들고 와야 할 거다."

"건방지구나. 기어이 내 전력을 쏟아붓게 만들다니."

"어서 덤벼라. 시간 없다. 빨리 끝내자."

초아의 상태가 슬슬 걱정된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 내려가고 싶지만, 어차피 올라올 때 또 마주칠 거라면 이쪽부터 볼일을 마쳐두는 게 나으리라.

암운사신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들어오던 빛이 갑자기 차단됐다. 지독한 어둠이 사위에 내려앉았다.

그 속에서 암운사신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뭐지?"

"왜 암운신공을 안 쓰지?"

"아, 그거?"

귀를 후비적후비적 파며 왈.

"안 쓰고도 이길 자신 있어서?"

"이런 씹어 먹을……. 어디 죽어서도 그리 건방 떨 수 있는지 보겠다!"

암운사신이 흥분해 달려들었다. 천강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주태 성격상, 흥분해 달려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반 호흡. 그 첫 공격만 피하고 나면 그 뒤는 뻔할 뻔 자다. 땅 짚고 헤엄치는 수준이다.

천강은 몸을 돌려 회피했다. 등 쪽에서 옷이 잘려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공.'

 

***

 

어둠은 내 친구였다.

언제부터 그리 느꼈는지 모르겠다. 어릴 적, 술 취한 아버지의 횡포를 밤마다 피하다 보니 어느샌가부터 어둠 속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이 안에 있으면 평안함도 행복도 누릴 수 있었다.

그렇다고 환한 곳을 아예 안 다닐 수는 없는 법. 언젠가는 암운곡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현실을 깨달았을 때, 난 한 가지 가능성에 목을 매었다.

'어둠을 옷처럼 두르는 거야.'

그렇게 탄생한 것이 암운신공이었다.

암운신공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다. 내 모든 걸 숨겨주는, 움직이는 안식처.

다른 이들에게서 날 꼭꼭 숨길수록 난 더욱 강해져 갔다.

어느 순간엔 마교 제일의 살수로 불렸고, 몇십 년이 지나자 마두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사실 그래서인지 싸움 실력 자체는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암운곡에서 놀던 때보다 경험이 조금 많아진 정도.

'그래도 그렇지, 내 공격을 다 피해낸다고?!'

단도 두 개를 쉴 새 없이 휘두른다. 사각으로 움직여도 보고. 피하기 힘든 방향으로 공격도 해보고.

그러나 모조리 피해내는 녀석.

문득 초아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 스승님! 제가 엄청난 애를 발견했어요!

- 걔 진짜 장난 아니라니까요? 꼭 우리 사문에 들여야 해요!

- 무공을 가르쳐준 건 분명 제 잘못이지만, 들어보세요. 걔 암운행보랑 암운신공을 단 한 번에 성공했다니까요!

누구는 수십 년에 걸쳐서 완성한 걸 한 번에 성공하고, 심지어 그것마저도 완벽하게 파훼하다니.

'이것이 천마의 핏줄.'

듣긴 들었다. 그 재능이 진정 미친 수준이라고.

'아니, 그래도 그렇지 불과 열한 살의 나이에 이런 신위라니?!'

공격을 더욱 매섭게 퍼붓는다. 그러나 가볍게 모조리 피해낸다. 슥 녀석을 살펴보니 얼굴에 여유가 그득했다.

으득.

그렇다면……! 어둠 속으로 암운사신의 짙은 살기가 자욱해졌다.

 

***

 

'놀랍군. 놀라워.'

암운사신의 공격을 피하는 천강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니, 어떻게 암운곡 시절과 칼 휘두르는 실력이 똑같을 수가 있지? 50년간 잠만 잤나?'

한껏 여유로워진 천강이 이젠 뒷짐까지 진다. 그리고는 움직임을 조금 더 빨리하면…….

사사삭-

'역시. 이쯤에선 화가 나 더욱 맹공을 쏟아내는 게 맞지.'

어떻게 생각대로 이리 척척 움직이는지. 이건 얘가 싸움을 못하는 거야, 아니면 내가 재능이 있는 거야?

신병이기들에게 그걸 묻자, 녀석들 왈.

- 흠흠. 늘 느끼는 거지만 참으로 오만하구먼.

- 이젠 뭐 적응할 때도 되지 않았나, 용연?

그때 늙은이들과는 다르게 늘 진지하게 생각하고 말해주는 막야가 대답했다.

- 저번에 얻은 심안(心眼) 때문에 그럴 겁니다, 소년.

'심안?'

- 예. 원래라면 생사경의 경지에 얻어야 하는 깨달음. 현경이 되었을 때도 느끼지 않았습니까? 머릿속이 확 넓어지는 그런 감각.

확실히 그런 느낌이 있긴 했지. 마치 우주가 머릿속에 들어찬 느낌 같았다.

막야는 깨달음이 지고해질수록 본능적으로 경우의 수를 잘 추리게 된다고 했다. 다른 말로 하면 운 혹은 직감이 좋아진다는 뜻.

암운사신의 공격이 점점 더 비껴간다. 처음에 스쳤던 옷자락도 지금은 허공만을 벨 뿐이다.

그러다 이대로는 더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아무런 기척이 없는 공간이 짙은 살기로 가득 찼다.

'강력한 한 방을 준비하는 모양이군.'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사방에서 쏘아져 들어오는 살격들.

- 사면초가! 사방이 적이로군!

- 드디어 우리가 나설 때인가!

'가만히들 있어.'

천강은 팔짱을 끼고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 주위로 수백 개의 날카로운 기운들이 휘몰아쳐 들어왔다.

천강은 그 공격을 모조리 맞아주었다.

바닥에 암기들이 떨어지며 쇳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화경치고는 나름 선전했네.'

당가의 만천화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일격. 물론 현경이 아니다 보니, 그 위력이 좀 조잡했지만 나쁘지 않은 기술이었다.

천강은 고개를 돌려 오른편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암운사신이 단도를 들고 자신의 심장 부근을 정조준해 찌르고 있었다.

"흐, 흡공?"

"더 싸워주곤 싶지만 시간이 없어서 말이다."

"너, 너 대체 정체가……."

"글쎄?"

북명신공에 내기를 쪽 빨린 암운사신이 쓰러졌다. 천강이 손을 한 번 휘젓자, 어맛! 여자 비명 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다시 빛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천강은 빛 아래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입을 가린 복면을 내렸다.

"이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냐?"

"어, 어?"

어딘가 익숙한 얼굴. 암운사신의 미간이 좁혀졌다.

천강의 모습은 흥미롭게도 전생과 이번 생이 똑같았다. 그래서 맹익도 처음 보는 순간, 어느 정도 확신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근데 얜 왜 이렇게 파악이 늦어? 흡공에, 회피에, 내 얼굴까지 보여줬으면 됐지.'

나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일부러 공격도 안 하고 계속 피해 다녔다.

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는 녀석의 공격을 완벽하게 피한다는 건, 5년간 함께 대련하고 연구한 자신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뭐 이 얼굴을 본 지 70년이나 지났으니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귀를 후비적거린 뒤, 후- 바람을 분다.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고는 이를 드러낸다. 그리고는 씨익.

그 사악한 웃음을 보는 순간, 주태 녀석의 눈이 크게 뜨였다.

"너, 너어……!"

"이제야 내가 누군지 알겠냐?"

"야, 이 사기꾼 새끼야! 네가 왜 소교주야?!"

음? 그러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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