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53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53화
153화. 적의 수뇌부들을 제거하다
기감을 넓게 펼쳐 앵화고목 뜰을 뒤덮었다.
보통 이런 식으로 하면 고수들은 인위적인 기를 느끼고 역으로 추적해온다. 그러나 현재 이곳엔 그 정도의 고수는 없었다.
현경의 실력자인 천강과 대적할 만한 고수는 말이다.
천강은 적들이 어떻게 나오나 가만 지켜봤다.
무리에서 강대한 기운이 하나 똑 떨어져 나오더니, 이내 어둠 속에 몸을 숨겨 은밀히 자신을 관찰하는 게 느껴졌다.
천강은 그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 달을 가만 바라보았다.
싸아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머리칼과 옷자락을 펄럭펄럭 흔들고 지나간다. 눈을 감고는 그걸 느끼는데 문득 펼쳐진 기감 안으로 무언가 훅 파고들어 왔다.
홱 고개를 돌리자마자 눈앞으로 보이는 손도끼 하나.
팡!
손으로 쳐내기가 무섭게 곧바로 뒤에서 하나가 더 날아들었다. 그것은 이내 천강의 미간을 때렸고, 천강은 그대로 쭉 날아가 나무 밑 어두운 그늘 속에 처박혔다.
그걸 가만 지켜보던 존재가 슥 모습을 드러냈다.
"크하핫! 성공이구나!"
성큼성큼 걸어와 신병이기들을 보며 침을 삼키는 비부쌍마.
그는 그것들을 집으려다 아차 싶은 얼굴로 도로 몸을 일으켰다. 일단 확실히 상대를 잡았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근데 이내 픽 웃음을 흘렸다.
"뭐야. 완전 애송이였잖아?"
그늘에 가려 명확히는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도끼가 소년의 안면에 꽂혀 있었던 것.
다들 흑살마신이 아니라고 의심하더니, 정말 교주 측에서 고용한 외부인이었던 모양이다.
"어휴. 이런 놈을 상대로 진짜…… 괜히 긴장했네."
비부쌍마가 천강에게 다가왔다. 그는 천강의 머리에 박힌 손도끼를 회수하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그런데 그 순간, 한 가지 의문이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잠깐. 근데 왜 피가 한 방울도…….'
소년의 얼굴을 보았다. 도끼날 아래 두 개의 눈동자가 그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기분 나쁘게 시선을 밑으로 하고 죽었네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움직이지 말아야 할 입 근육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입 끝을 귀에 걸며 천강 왈.
"안녕?"
"으, 으아악!"
깜짝 놀란 비부쌍마가 도끼를 집어 있는 힘껏 천강을 내려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려치려 했다.
그러나 미간에 붙어 꼼짝도 하지 않는 손도끼.
"어, 어어?"
"그럼 잘 가라고."
북명신공.
쿠콰콰콰콰-
비부쌍마의 내기가 도끼를 타고 순식간에 천강에게로 이동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는 그 흐름에 저항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건 찰나에 불과했다.
내기가 다 빨려 앞으로 쓰러지는 털북숭이 사내.
천강이 귀찮다는 듯 툭 치자, 녀석은 옆으로 날아가 그대로 나무에 처박혔다. 숨을 쉬지 않는 게 목이 부러져 즉사한 듯했다.
- 차라리 비명을 지르지. 그럼 가능성이라도 있었을 텐데요.
'그럴 여유가 없었을걸.'
순간적으로 당황하면 사고가 마비된다. 특히나 생명과 직결되는 위기를 만나면 더더욱.
- 그걸 노리고 일부러 당한 척 연기한 거였군요.
'굳이 이 아름다운 달밤에 멧돼지 사냥한다고 힘을 들일 이유는 없잖아?'
때가 되면 나타날 것이고. 알아서 제 무덤까지 제가 파 죽을 텐데 말이다.
- 그럼 이제부터 무얼 할 텐가?
- 달밤에 회포나 함 풀어보는 건 어떠한가?
살짝은 기대하는 눈치다. 아마 요 주변 여울나무 적들을 잡을 거냐고 묻는 거겠지.
'오늘 밤 여울나무의 정예들을 처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지.'
- 오오. 그럼?
천강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파고들었다.
***
"들었는가? 이번에 새 소교주가 책정됐는데 그게 흑살마신이라더군."
"참말로? 아니 혈육을 놔두고 왜?"
"왜긴. 우리한테 지게 생겼으니 일단 임시방편으로 그런 것 아니겠는가?"
여울나무 숲.
외곽과 내곽 곳곳으로 마인들이 2인 1조로 경계를 서며 수다를 떨고 있다. 그들이 나누는 대부분의 내용은 흑살마신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거 그럼 우리 위험한 거 아닌가? 본교의 영웅과 대적하는 상황이라니."
"나도 처음엔 그리 생각했는데 저 윗분들은 생각이 다른 모양이더라고. 듣기로는 진짜 흑살마신이 아니라던데."
"응? 그게 무슨 말인가?"
"무슨 말이긴. 지금의 전황을 뒤집어보고자 그 이름을 팔아먹은 거란 거지."
"하. 그런 얄팍한!"
교주 측의 행태에 두 마인이 열을 냈다. 그들은 마인이라면 응당 마인답게 시원하게 한판 붙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때 한차례 강풍이 그들에게 몰아쳤다.
"으윽. 방금 뭐지? 뭔가 지나간 것 같은데."
"바람이네, 바람. 신경 쓰지 말게."
다시 이야기꽃을 피우는 근무자들.
어둠 속 검은 안개에 몸을 숨긴 천강은 기감을 펼쳐 주변을 훑어보았다.
- 여긴 왜 온 것이냐?
- 우리 앵화고목에 있는 놈들 잡을 생각 아니었더냐?
'걔네도 잡을 거긴 한데, 순서상 지금은 아니야.'
그들보다 먼저 잡아야 할 이들이 있다. 바로 여울나무 핵심 인력들.
그들만 잡는다면 이들의 조직은 운영이 엉망이 될 것이다.
- 비부쌍마를 잡았으니, 이제 일곱 남았나요?
'아니. 그 바로 아랫놈들까지 처리해야 더 확실하지. 그래야 복구 자체가 불가능할 테니까. 아마 대략 오십이 조금 못 될 거야.'
천강의 신형이 스르륵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그곳에 있는 핵심 인력들의 숨통을 빠르게 끊어놓았다.
- 이제부터는 속도전이네요, 소년.
'그래.'
죽인 이들의 시체가 다른 이에 의해 드러나기 전에 최대한 많이 처리하는 게 관건. 천강의 신형이 여울나무 숲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비부쌍마가 천강을 잡겠다고 고급 인력 대부분을 밖으로 빼낸 덕택에 천강은 거침없이 적진을 활보할 수 있었다.
'혹시 너희들 투파창귀의 기운 느껴져?'
- 안 보이네만.
- 요 근방엔 없는 모양이다.
잘됐군.
어두운 밤. 밤하늘이 아름답게 비치는 여울나무 숲.
마치 개울 위로는 평온하기 그지없으나 그 밑으로는 갖가지 생물들의 치열한 생사투가 벌어지듯, 여울나무의 밤은 소리 없는 비명과 죽음이 난무했다.
검은 사신이 손길이 여울나무의 수뇌부들을 뒤덮었다.
그렇게 모든 곳을 다 돌고 이제 남은 건, 마두급 책임자들뿐.
천강이 한 마두의 거처에 들어섰다. 그는 여마인들을 끼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자, 더 따르거라! 밤새 마셔 보자꾸나!"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세요? 아직 전시 중이잖아요. 후훗."
"걱정할 것 없다. 교주 쪽은 끝났어. 제아무리 흑살마신이 나타났다 한들 지금의 형세는 바꾸지 못해. 자자. 어서 더 따르거라!"
술에 취해 흔들거리는 녀석.
취기를 느껴보겠다고 일부러 술기운을 체내에 남겨둔 게 느껴졌다.
'스스로 생을 단축하는군.'
자고로 무림인이란 칼과 같이 날 선 마음으로 주변을 늘 경계해야 하거늘.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천강이 발바닥의 내기를 풀었다.
처마 끝에 매달리다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검은 안개가 스르륵 그들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다 천강이 손을 쭉 뻗어 놈의 머리를 움켜쥐는 순간, 그 뒤를 따르던 신병이기들 또한 빠르게 쏘아져 나가 여마인들의 목을 관통했다.
북명신공.
쿠콰콰콰콰-
머리를 붙들린 탓에 비명조차도 내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한 마두. 천강은 놈의 목을 가볍게 돌려주고는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 간단하군요.
'그러게.'
예상외로 마두들을 처리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놈들은 자신들이 여울나무의 핵심임을 자각하고 있었고, 교주 측과 중립 세력이 들어오면서 이 싸움은 이미 끝난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긴장감을 늦추게 했으니, 내기를 완벽히 차단하는 암운신공과 한 번 붙들리면 절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북명신공을 가진 천강에겐 그저 밥이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소년? 이번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 마두가 가만히 앉아 칼을 손질하고 있었다. 기세도 날이 서 있는 게, 공격하는 순간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 경험상 저런 놈은 기습해도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 죽더라도 주변에 신호를 보내겠지.
신병이기들 또한 같은 생각인지 우려를 표해왔다. 그러나 천강의 얼굴엔 걱정은커녕 자신감이 표출되어 있었다.
'걱정 마. 간단하니까.'
천장에서 가만히 떨어져 내린다. 그와 동시에 천강의 주변을 뒤덮고 있던 검은 옷자락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 상대와 천강을 동시에 뒤덮었다.
"누구냐?!"
손질하던 검을 잡고는 머리 위로 뽑아 올리는 적.
과연 예상한 대로 일말의 망설임도 흔들림도 없는 멋진 일격이었다.
다만 경험과 직감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 좋지 못했다. 분명 일격은 훌륭했지만, 적의 위치를 전혀 읽을 수 없는 상태에선 그저 운에 의존한 공격일 뿐이었다.
적의 검과 손, 시선이 정확히 위쪽을 향했다.
그 일격을 한참 벗어난 자리에 웬 검은 구름이 자리하고, 그곳에서 손 하나가 빠져나와 그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흑살마신?"
"이름이 어떻게 되지?"
"호접일검…… 태목이다."
"혹시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
승리가 확실시되는 와중에도 묵묵히 검을 손질하고 있는 모습. 그것이 인상 깊게 다가와 건네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눈을 감고는 고개를 저었다.
"없다. 죽여라."
그래. 진정 무림인이란 이래야지.
늘 최선을 다해 자신을 관리하면서도 마지막 결과에 겸허히 승복할 줄 아는 자세.
"그대는 진정 무림인이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호접일검의 입가에 작게 미소가 지어졌다.
또 하나의 마두를 처리하고 밖으로 나오자, 막야의 보고가 이어졌다.
- 이제 남은 건 한 명뿐입니다, 소년.
투파창귀를 제외한 단 한 명.
여울나무 숲 훈련소의 총책임자이자, 천산의 반을 집어삼킨 배신자 무리의 총괄자.
녀석만 잡는다면 여울나무는 이제 허울에 불과하다.
다른 실력 있는 마두들이 아직 건재하긴 했지만, 그들은 여울나무라는 조직을 다스릴 줄 몰랐기 때문이다.
어두운 골목 사이로 천강의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이전에 벗들과 함께 와 전소시킨 그곳엔 새 건물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후딱 처리하고 끝을 보자고.'
그러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때였다. 갑자기 저 멀리서 광대한 기운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 놈이다.
- 투파창귀다.
마치 태풍이 몰아치는 밤바다같이 흉흉한 기운.
골목 사이를 이동하던 천강이 가만 벽에 붙어 숨을 죽였다. 투파창귀가 천강을 지나쳐 총책임자 사무실로 향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음?"
투파창귀가 갑자기 걸음을 우뚝 멈춰서더니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깃들어 있었다.
'걸렸나?'
사박사박. 투파창귀가 발길을 되돌려 한 골목 앞에 섰다. 그곳은 천강이 숨어있는 곳이었다.
매달려 있던 악기들이 떠오르고, 투파창귀가 골목 안으로 성큼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