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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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48화
148화. 신검의 주인이 되다
"이봐. 자네 이름이 천강 맞나?"
산속을 거니는데 누군가 천강을 불러 세웠다. 지학(志學)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이었다.
왠지 말투가 겉늙었다고 생각하며 천강이 되물었다.
"내가 천강이란 건 누구한테 들었지?"
"백의마제에게 들었다. 사제지간이라고 말이야."
그 늙은이……. 자신의 제자가 됐다는 걸 입도 뻥긋하고 다니지 말라고 하더니, 지가 말하고 다니면 어떡해?
무림인들은 은원관계를 많이 만든다. 그중 마인들이 그게 가장 심하다.
천강의 스승 또한 그러했다. 작게 투덜댄 천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천강이다. 그래서 넌 뭔데?"
"나?"
소년이 노인네처럼 점잖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본교의 소교주 천태현이라 한다."
***
갑자기 손에서 떨어져 나간 신검으로 인해 어이없어하는 것도 잠시, 이내 검이 궤적을 그리더니 문 하나가 생성되는 걸 본 천강은 직감했다.
천해지경이 말한 세 번째 시련을 말이다.
그리고 그 시련의 대상으로 한 남자가 등장했다. 바로 현 신교의 교주 천마였다.
"너는……?"
"오랜만이군요, 교주님."
천마가 주위를 둘러본다. 그의 시선이 주위를 빙 둘러 천강에게 다시 돌아올 즈음에는 의아함이 아닌 적개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해주겠나?"
솔직히 이런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다.
신물(神物)의 경우 그 주인이 없기에 이 단계를 건너뛰었지만, 신검은 엄연히 주인이 있는 검 아닌가?
천강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강해질 방법을 찾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마인의 숙명인 것이지요."
초대 천마인 검마(檢魔)는 혼자서도 천산을 지킬 만큼 강했지만, 그 후대들은 뛰어난 재능을 받고도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맹약은 지켜야 하는 상황.
그렇기에 그들은 한 단체를 만들었다. 강한 이들이 모든 걸 갖는 강자지존의 세계를.
어떤 이는 새로운 무공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다른 이의 것을 탐하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의 몸을 개조하기도 했다.
강한 자가 모든 걸 가질 수 있는 이곳 마교에서 어떤 식으로든 강함을 추구하는 건 마인의 숙명이었다.
천마의 적개심이 미약하게나마 수그러들었다.
"그래도 이곳은 들어오고 싶다고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어찌 들어온 것이냐?"
"간단합니다."
천강은 교주의 앞에 물건 하나를 꺼내 보였다.
"그것은……!"
"예. 교주의 증표이자 천마신공의 구결, 신검의 위치가 안팎으로 적힌 반지지요."
"네놈이 어떻게 그걸 갖고 있는 것이냐!"
천마가 허공에 떠 있는 신검을 낚아채고는 천강에게 달려들었다. 천강 또한 흑색 몽둥이를 꺼내 그 공격을 받아냈다.
쿠구구구구.
한바탕 이는 큰 폭음.
'과연 신검인가?'
아무리 내기를 소량밖에 사용하지 않았다지만 온몸을 뒤흔드는 반동이라니.
공격은 그 한방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방에서 거센 검풍과 검강이 날아들었다.
"어서 말하라! 어찌 네가 그걸 들고 있는 것이냐?!"
"음……."
천마의 맹공을 받아내던 천강이 생긋 웃었다.
"뺏었습니다. 소교주한테서."
"무, 뭣이라!"
"몇 대 쥐어패더니 내놓더군요."
쿠구구구구.
땅이 크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현경의 고수답게 내력을 뽑아내는 것만으로도 주변이 크게 요동을 친 탓이다.
모용세가의 애송이와는 차원이 다른 기운.
'이제야 좀 5존 5왕과 대비된다는 천마 같네.'
천마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직후 그의 손에 잡힌 신검이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움직였다.
익숙한 형(形)을 느낀 천강은 그것을 받아낼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천마에게서 어마어마한 내기가 쏟아져 나왔다.
천마신공 파검결 제4식, 파천일검!
해일과 같은 거대한 기운이 범람했다. 그 아들 천진악이나 한때 교주였던 천태공이 펼친 기술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신검이 천마신공의 기술을 몇 단계 부풀려준다 하더니, 능히 서너 곱절은 뻥튀기됐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천강이 막야를 집어 들었다. 천강의 의도를 알아챈 막야가 장자의 구결을 읊었다.
- 큰 새는 바람을 거스르고, 활어는 물을 거스르니라.
천강과 막야가 신검합일이 되어 몸을 일자로 세웠다. 그리고는 거센 기의 파도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천마신공 쾌검결 제7식, 활어역수.
짧고 빠른 찌르기가 연달아 일었다. 그것은 단숨에 파도를 가르고 나아가, 바닥으로 착지하는 교주를 향해 쇄도했다.
"흡?!"
천강과 교주 사이로 두 번째 폭음이 일었다. 첫 번에는 천강이 한 발짝 밀려났으나 이번에는 교주가 밀려났다.
천강의 초식을 받아낸 그는 뒤로 열 걸음 정도 뒷걸음질 친 뒤에야 움직임을 멈출 수 있었다.
"제아무리 거센 물줄기라도 상류로 오르려는 물고기를 이기지는 못하는 법이지."
자연의 법칙이다. 천강의 한마디에 교주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네가…… 어떻게 천마신공을 알고 있지?"
"글쎄. 이것도 두들겨 패서 훔쳐낸 거라고 해야 하나?"
"이놈이!"
천마가 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그 흐름에 거스르지 않으면서 천강이 뒤로 훌쩍 물러났다.
천강의 도발에 말려든 천마가 다시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의 팔에 들린 검에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한 방에 끝내겠다는 거군.'
누가 그 애비에 그 아들 아니랄까 봐, 안 되니까 큰 기술을 쓰다니.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했다. 천마의 입에서 벼락같은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도 막을 수 있나 보겠다!"
천마신공 파검결 제7식, 파멸지회.
수백의 검격이 땅에 내려앉는다. 대지는 움푹 가라앉고, 미처 피하지 못한 땅 위의 모든 생명체는 먼지로 화하여 자신이 태어난 그곳으로 되돌아가리라.
강한 압력이 하늘에서부터 훅 내려앉았다. 그 중심부에 있던 천강이 검을 치켜들었다.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들어 올린 천강은 한껏 몸을 움츠려 때를 기다렸다.
어느 때냐.
'양의 기운이 극성하면 음으로 화하는 게 세상의 이치.'
강한 기운이 극에 다다르는 순간, 천강의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내리누르던 압력이 사라지고 도리어 미약하게나마 상승 기류가 형성돼 천강의 몸을 가볍게 만들었다. 천강이 그 기운에 편승해 강하게 솟구쳤다.
- 길가의 한 무더기 흙더미 되어, 해마다 봄풀만 자라나누나.
천마신공 쾌검결 제6식, 연춘초생.
쾅. 세 번째 폭음이 울리고. 그것으로 싸움은 끝이 났다.
결과는 천마의 패배였다.
쿨럭.
천마의 입에서 다량의 피가 쏟아져 나왔다. 힘 조절을 해 내상을 입을 만한 일격이 아니었건만, 그는 한동안 피를 왈칵왈칵 쏟아내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될 즈음에는 그의 얼굴은 파리한 상태가 되었다.
"대체…… 어떻게 한 것이냐? 무려 두 번이나 쿨럭. 내 기술을 파훼하다니."
의아할 만했다. 천마신공에 정통하지 않고서야 그 약점을 발견할 수도 공략할 수도 없으니까.
"천산의 주인이여.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나?"
"귀하는 누구이기에…… 우리 앞에 나타나 나와 내 자식을 욕을 보이시오."
"진정 내가 누군지 모르겠는가?"
종잇장 같은 창백한 얼굴로 천마가 대답했다.
"단 한 사람 생각나는 이가 있소. 그러나 그는 죽었기에……."
그랬다. 흡공을 쓰는 한 사람.
자신에게 흡공과 함께 교주의 자리를 무사히 이을 수 있도록 안배해준 한 남자.
죽는 걸 직접 두 눈으로 보았고, 싸늘하게 식은 육체 또한 두 손으로 만져보았기에…… 처음에는 그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운 좋게 흡공의 깨달음을 얻은 아이라 생각했다.
이후로 그라는 증거가 여럿 등장했으나 믿지 않은 것은 괴기나한의 증언 때문이었다.
- 흑살마신이 복귀했습니다. 거처에 그가 남긴 필체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50년 전 배신자의 무리를 일거에 처단한 본교의 영웅이 암운곡 훈련소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도 의심을 거두는데 한몫하였다.
그렇게 모든 의심을 피한 소년. 그러나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한 가지 의문은 여전히 잔재해 있었다.
"귀하께서는 어찌 흡공을 익히셨소이까?"
그에 대해 천강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천태현."
"!!"
천마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의 시선이 천강을 수차례 훑어보았다.
지금 교주의 본명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천강이 그 앞에 털썩 주저앉으며 본래의 말투로 되돌아와 말을 이었다.
"만약 네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 지금 네 앞에서 이리 묻는 거라면 어찌 생각하지?"
결정을 못 내리고 흔들리는 천마 앞에서 천강이 턱을 매만지며 결정타를 날렸다.
"혹시 공자님 말씀 좋아하나? 난 좋아하는데."
"너, 너는……!"
이를 환히 드러내며 소년이 웃었다.
"오랜만이야, 우리 소교주님."
***
천강과 교주 사이로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래도 현경의 실력자라 그런지 천마는 꽤 잘 버티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아직 죽어선 안 된다는 이유 하나로 악착같이 버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전생의 천강이야 북명신공의 비급까지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그대로 눈을 감았던 것이고, 지금의 교주는 지킬 것이 너무도 많으니까.
그러나 분명 천마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저 그 흐름을 현경의 힘으로 늦추고 있을 뿐.
살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히 서 있는 걸 확인한 천강은 때가 무르익었음을 깨달았다.
"맹익에게 들었다. 이종진기로 고생하고 있다고?"
"그래. 그렇게 되었네."
"그래서 이제부턴 어떻게 하려고?"
신교의 교주. 천산의 주인인 그가 천강 앞에 엎드렸다.
"내 아들을 부탁한다. 이렇게 부탁하니 도와다오."
……부성애인가.
죽기 직전까지도 자리에 연연하며 추해지는 지도자가 많건만……. 도와주는 보람이 좀 있겠어.
천강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어이. 아들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지."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의 난……."
말하는 것도 간신히 해내는 천마의 말을 자르며 천강이 말했다.
"내게 이종진기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참말인가?"
"그래. 대신 조건이 있다."
소년이 검지와 중지를 치켜들었다.
"첫째, 내게 신검을 양도할 것. 둘째, 이제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일 것."
"그게 다인가?"
"왜? 너무 적나?"
"그래. 생명을 연장해 기회를 얻는 대가치고는 싸군."
지금이야 그렇겠지. 슬슬 정신이 오락가락하며 주마등이 스쳐 지나갈 테니까.
그러나 싸움이 일어나기 전 제안했다면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천강은 천마가 순순히 협조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정체도 숨기고 도발을 한 것이었다.
인간이란 끝끝내 손에 쥐고 있는 걸 놓지 않다가, 죽음이 코앞으로 성큼 다가온 이후에야 생각이 바뀌는 그런 종족이니까.
"자, 여기 있다."
교주가 신검을 건넸다. 그걸 받아드는 순간, 신검이 스르륵 사라져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천강이 교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무 섭섭해하지 마라. 투파창귀를 쓰러뜨리고 나면, 신검과 반지 모두 진악이에게 넘겨줄 테니까."
"……일평생 갚아도 모자랄 빚이군."
"알면 다 끝난 뒤 내가 자립하는데 협조 좀 하라고."
"그러지."
천마가 미소 지었다. 이번 생에서 천강이 본 그의 미소 중 가장 편안한 미소였다.
"그럼 시작한다."
북명신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