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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46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1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46화

146화. 두 번째 시련

 

 

잔해가 가득한 공간으로부터 한참을 멀어졌다.

동굴 안은 마치 통풍이라도 되듯 맑은 공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 소년, 방금 그것으로 하늘의 길은 끝난 건가요?

"글쎄. 아마 그럴걸? 무제(武帝)의 사념님, 끝난 겁니까?"

천해지경이 천강의 눈앞에 날아올라 글자들을 나타냈다.

『 신검 또한 신물(神物)처럼 총 세 개의 시련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의 후학이여. 그대는 방금 그 하나를 통과하였느니라. 』

"그게 하늘의 길이고 말이죠?"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누런 책.

근데 이해가 안 가네. 지옥검 때 시련이 세 개였던가?

그런 의문을 가지는 그때, 굴이 끝나고 다시 거대한 공동이 나타났다. 해골 잔해가 널린 곳만큼이나 큰 공간이었다.

새하얀 돌로 지반이 잘 닦여있는 곳. 그 중심부엔 검 하나가 떡하니 허공에 떠, 천장에서부터 내려오는 환한 빛을 받고 있었다.

'신검이로군.'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본 경험이 있으니까.

음울한 보랏빛을 띠는 신물(神物)과는 다르게 새하얗게 빛나는 은백색의 검신. 그 위로 자리한 갖가지 섬세하고 화려한 문양들.

꽃과 용, 그리고 봉황이 새겨진 검이라니. 과연 싸움을 위해 만든 것인지 의문이 들 만큼 아름다운 검이었다.

- 어머멋. 어쩜 저리 자태가 아름다울 수가 있죠?

막야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다른 신병이기들 또한 마찬가지.

"그래봤자 검일 뿐이지."

- 소년, 운치가 없군요.

- 그러게 말일세.

-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것도 복이거늘.

"겉만 아름다우면 뭐 해. 아까 저것이 우리에게 한 짓 기억 안 나?"

환상을 심어서 아사시키려 하지 않나, 앵화 숲인 줄 알았더니 도전자들의 잔해를 이용한 가짜지 않나.

"굶겨 죽일 거면 신물처럼 미로를 만들어 시련답게 하던가. 환상도 그래. 진짜답게 만든다고 망자들의 유골을 농락하는 건 뭐 하는 짓거리냐?"

- 하긴…… 듣고 보니 그렇구먼.

"저것이 시련이랍시고 한 짓거리를 보면 너희들이 훨씬 낫다."

- 흠흠.

- 우리를 그렇게 생각해줄 줄은 몰랐네만.

- 그 마음…… 소중히 간직할게요, 소년.

속으로 심호흡을 한 천강이 과감히 발걸음을 옮겼다. 마음에 안 든다 해도 어찌 됐든 필요하긴 하니까.

그렇게 10보 정도 남았을까? 지반과 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어떤 놈이 나오려나.'

허공에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그것은 이내 활짝 열려, 문 너머의 존재를 지금 이 자리에 소환했다.

공간을 가득 메우는 순백의 빛과 그 가운데로 이는 검은 그림자.

천강의 눈이 번쩍 뜨였다.

"에헴. 그래. 이번 후보자는 누구인지 자기소개를 해 보거라!"

보송보송한 털. 붉은 눈과 기다란 귀. 팔짱을 끼고는 거만하게 턱을 치켜드는 상대를 본 천강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문을 열고 나타난 그것은 다름 아닌 토끼였던 것이다. 그것도 천강에겐 꽤 낯이 익은.

"여어. 선계 토끼."

"응? 어? 어어?!"

토끼 녀석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천강을 알아본 녀석은 입을 떡 벌리고는 천강을 향해 앞발을 치켜들었다. 부들부들 떨어대는 건 덤.

"네놈은……!"

퍽.

"꾸에엑."

"정말 오랜만이야?"

가차 없이 발꿈치로 머리통을 내리찍은 천강이 토끼 녀석을 잘근잘근 짓밟으며 추궁했다.

"말해라. 왜 네가 튀어나오는 거냐?"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왜 네놈이 여기 있는 것이냐!"

"왜긴. 신검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와 있는 것이지."

"뭐?"

순간 벙찐 표정을 짓는 녀석. 이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감히 이번 시련의 시험관을 이리 대하다니! 네놈이 정녕 천벌을 받고 싶은 모양이구나!"

"네가 시험관?"

"그렇다. 역대 천마들도 다 우리에게 예를 올리고 교주직을 받았거늘!"

흥미가 도는 이야기일세.

"천마들이 그랬다고? 왜 그랬는데? 설마 첫 번째 시련에 장난쳐 놓은 거랑 연관이 있는 거냐?"

자신에게 마땅히 예를 갖춰야 하는 이유를 설파하던 토끼 녀석이 아차 싶은 표정을 드러냈다.

녀석이 곧바로 입을 틀어막았다.

"뭐야. 왜 말을 하다 말아?"

천강은 녀석의 머리부터 허리까지 발로 꾹꾹 지압해주며 권고했다.

"빨리 말해봐. 역대 천마들이 왜 그랬는데?"

"내, 내가 말할 성싶으냐!"

"어."

"내가 왜?"

"그래야……."

천강이 픽 웃음을 흘렸다.

"몽둥이를 돌려받을 확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가지 않겠어?"

"어……?"

검은 안개에서 절굿공이를 빼 들은 천강이 보란 듯이 눈앞에서 훙훙 휘둘렀다. 토끼 녀석이 강하게 버둥거렸다.

"내놔! 내 거어어어!"

"우선 사과해라, 저번 일. 그리고 천마와 선계가 무슨 관계인지 말해."

"사과? 무슨 사과?"

"날 죄인, 범죄자 취급한 거 사과하라고."

저번에 우연히 선계에 갔었을 때 요놈은 천강에게 다짜고짜 몽둥이를 휘두르며 시비를 튼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도리어 역으로 탈탈 털렸었는데, 마치 선계 주민을 폭행한 무자비한 죄인으로 몰아갔고. 천강은 선계 땅을 밟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급히 본래의 땅으로 되돌아와야만 했다.

근데 요 뻔뻔한 녀석은 자신의 잘못을 조금도 인정 않고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너 죄인 맞잖아?"

반대로 화를 더욱 돋우기까지 하더니 놈이 천강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보였다.

"선계에 올라오기만 해봐라. 내 너를 영원한 형벌의 고통 속에서 울부짖게 만들어 줄 것이다!"

"……네가 지금 사태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천강의 시선이 신검을 향했다. 녀석의 시선 또한 그 끝을 따라갔다.

"너 지금 신검 자격 증명으로 여기 소환된 거거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천강이 무릎을 굽혀 몸을 낮추고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내가 널 여기서 죽여도 아무 문제가 없단 뜻이야."

"어……어?"

"자, 어디 한번 날 설득해 봐. 지금부터 내가 널 죽이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말이야. 그걸 못하면 넌 여기서 죽어."

"……."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된 토끼 녀석. 그러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놈이 잔꾀를 부렸다.

"흥. 이번 시련의 시험관을 죽이려 들다니, 네가 뭘 모르는구나! 날 선계로 온전히 보내줘야 네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니라!"

"정말? 정말로?"

토끼 녀석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러나 천강의 빤한 시선을 목도하자 움직이던 고개가 차츰 멈추어 섰다.

"이봐, 토끼. 선계 주민이 막 거짓말하고 그래도 돼?"

"내가 언제 거짓말을……."

"지금 거짓말하고 있잖아. 내가 뜻하는 바가 뭔지 알고?"

"다, 당연히 신검을 얻으려는 게 네 목적 아니더냐."

"아. 분명 그랬긴 했지."

소년의 몸이 더욱 수그러졌다. 토끼의 얼굴 위에 짙은 음영이 지고, 천강은 토끼 녀석의 귓가에 대고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네놈을 만나기 직전까진 말이야."

흑살마신의 철칙.

받은 건 돌려주기.

그중 맞은 건 배로 갚아주기.

"이, 이 멍청한 인간이……! 지금 내가 중요해? 신검을 얻으러 왔으면 본 목표에 집중해야 할 것 아니더냐?!"

"네가 무림인들에 대해 잘 모르는 모양인데. 목표고 지랄이고, 원수가 눈앞에 있으면 그게 최우선이야."

천강이 머리 위로 절굿공이를 치켜들었다. 순백의 강기가 집약된 몽둥이가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그래도 이왕이면 자신이 쓰던 무기에 죽는 게 낫겠지?"

"자, 잠깐……."

"그럼 잘 가라고."

휘리릭. 천장을 향하던 몽둥이가 정확히 녀석을 향해 수직으로 세워졌다. 천강은 있는 힘껏 그것을 내리찍었다.

"자, 자, 잘못했습니다아아!"

쿠구구구구구.

땅바닥에 거미줄마냥 금이 쩍쩍 갈라졌다. 분명 내기까지 실어 내려친 일격이었는데 신검이 잠들어 있는 곳이라 그런지 반파되거나 그러진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해봐. 뭐라고?"

토끼가 잘 떨어지지 않는 입을 움직였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뭘 잘못했는데?"

"그 죄인으로 몰아간 거."

"그것뿐?"

"머, 먼저 다짜고짜 선공을 때린 것도."

토끼 녀석을 바라본다. 천강의 발밑에 깔려 있는 녀석은 굉장히 불쌍하고 비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로바로 사과하면 얼마나 좋아. 이렇게 밟힐 일도 없고."

"……그러게 말입니다."

발을 떼자 선계의 주민인 토끼가 일어나 엉망이 된 자신의 털을 정돈했다. 천강은 그런 녀석을 가만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천마와 너희 선계와는 무슨 관계냐?"

"흥. 한낱 인간인 네게 내가 순순히 그걸 말해줄 듯싶으냐?"

……요게? 천강이 몽둥이를 머리 위로 치켜들자, 놈이 파바박 거리를 벌리고는 얄미운 미소를 지었다.

"흥. 만약 반 시진 안에 날 잡는다면, 그 비밀도 말해주고 시험도 통과시켜주지!"

그로부터 일다경(一茶頃) 후.

천강이 몽둥이로 녀석의 머리통을 통통 때리며 말했다.

"어이. 이제 약속대로 말 좀 해봐. 응?"

"훌쩍. 어, 어떻게 인간인 주제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속도를……."

주태 녀석의 경공은 천강이 본 역대 경공 중 가히 세 손가락에 들 만큼 빠른 무공이었다.

선계 주민에게 비하면 다소 부족할진 몰라도 크게 밀리거나 하진 않을 수준이었다.

토끼가 흙투성이로 변한 자신의 머리털을 정돈하며 물었다.

"근데 대체 백호의 기운은 어찌 갖고 있는 것이냐?"

"아, 이거?"

천강이 몸 주변을 슥 한번 느껴보았다. 그의 몸 주변으로 기이한 바람이 보호하듯 감싸 안고 있었다.

"백호 녀석과 시합을 해서 이겼거든."

"뭐? 무슨 시합이었는데?"

"백호가 도망가고 난 그런 녀석을 쫓아가서 잡고. 지금 너랑 한 거랑 똑같네."

토끼 녀석의 얼굴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올라왔다. 설마하니 백호와 속도로 승부를 봐서 이겼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모양이었다.

뭐 속사정은 좀 다르긴 하지만.

"그럼 선계로 넘어온 것도……."

"아, 그건 백호랑 관계없어. 그냥 우연히 그쪽으로 넘어가는 통로를 발견했을 뿐이다. 금나한이 천산 어딘가에 그런 통로가 있다고 말해주긴 했는데, 나도 진짜로 발견할지는 몰랐네."

천강의 입에서 금나한의 이야기까지 나오자 토끼의 얼굴이 미묘해졌다. 잠시 멍청한 얼굴로 천강을 훑어보던 녀석은 흠흠 헛기침을 했다.

"과연…… 그저 그런 인간은 아니었던 건가."

"아무렴.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절대 널 못 이겼겠지. 그것도 세 번이나 말이야. 그러니 자존심 상해하지 않아도 돼."

"……뭔가 묘하게 기분이 나쁜데. 근데 왜 세 번이냐!"

"전에 선계에서 네가 다짜고짜 선공 날려서 싸운 거 한 번. 이곳에 소환되자마자 내게 밟혔으니 두 번. 그리고 방금 추격전까지 세 번. 맞잖아?"

토끼가 앞발 두 개를 위아래로 흔들어대며 따졌다.

"두 번째는 무효이니라! 치사하게 기습을 했으면서!"

"기습?"

"그러하다! 만약 네가 그때 그 망나니란 걸 알았더라면……."

말하던 도중 천강의 매서운 시선을 본 녀석이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

"아,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네가 그때 그 인간이었다는 걸 알았더라면, 나도 제대로 했을 것이니라."

"그래?"

그렇다면야 뭐.

천강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토끼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저기 왜……?"

"네가 뭔가 불만이 많아 보여서 말이야. 지금 기회를 줄 테니까 어디 두 번째 전투 다시 치러보자고."

그러자 바로 꼬리를 마는 녀석.

"그 저기……. 내가 지금 몸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말이야."

"그래서 뭐? 상대가 늘 네 몸 상태를 생각해 덤비는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시선이 마주쳤다. 천강의 눈을 피해 토끼의 동공이 좌측 끝으로 몰렸다.

"그냥…… 내가 진 걸로 할게."

"그래. 근데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천강의 기세에 눌려 결국 아무 말도 못 하는 선계의 주민 토끼였다.

"그래서 뭐냐? 선계와 천마가 맺은 맹약이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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