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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45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4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45화

145화. 하늘의 길

 

 

시원한 감촉이 느껴졌다. 코끝으로 악취가 느껴졌다.

'음?'

그러나 그건 찰나에 불과했고, 천강이 눈을 뜨는 순간 화악 밝은 빛과 함께 따스한 기운이 물씬 다가왔다.

천강은 주위를 슥 한번 둘러보았다.

사아아-

곳곳에 분홍 꽃이 만개하고 있었다.

대충 살펴보아도 앵화고목 뜰보다 더욱 화려하고 많았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어디선가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에 온 세상이 꽃잎으로 가득 차 보일 정도였다.

천강이 위로 손바닥을 펴보았다.

'……진짜 같군.'

손과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려앉는 꽃잎의 감촉들도. 옷을 관통해 살을 간질이며 지나가는 바람도. 모두 진짜처럼 느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앵화의 절경. 하지만 천강은 이것이 환상임을 직감했다.

땅속에 이런 숲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됐고, 제일 이상한 점은 자꾸만 마음속에 기이한 충동이 인 점이었다.

'백호에게 받은 혼 덕분에 이성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뭔가 위험하군.'

마치 신목의 과실을 먹고 난 직후의 느낌.

'이곳에서 시간 끌 이유가 없다. 빨리 탈출구를 찾아보자.'

천강이 폴짝 뛰어 나무 위로 올라갔다. 눈으로는 이 숲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한곳으로 쭉 내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끝이 나타나는 법.

"공포. 간만에 힘 좀 발휘해 보는 게 어때?"

- 다른 이를 시키거라. 난 잠시 이 장관을 구경 좀…….

"음? 그래. 그럼 승사."

- 흠흠. 나도 지금은 그다지 움직이고 싶지 않느니라.

얘네들 왜 이래?

그나마 늘 쓸모가 있는 막야를 불렀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더 가관이었다.

- 어찌하여 푸른 산중에 사느냐 묻기에, 빙그레 웃는 마음 답은 않고 한가롭네. 복사꽃 흐른 물 아득히 떠내려가니, 별천지라. 인간 세상이 아니로세.

'……이백의 산중문답인가.'

아무튼 신병이기들의 상태가 이상했다. 한숨을 탁 내쉰 천강은 무기 하나를 빼 들었다.

'빨리 나가야겠어. 얘들 더 이상해지기 전에.'

흑색 절굿공이가 손에 안착하고 천강은 그걸 있는 힘껏 휘둘렀다. 온몸에서 방출된 내기가 오른손에 잡힌 몽둥이에 빨려 들어가며 강한 폭발을 일으켰다.

지천뇌공.

쿠콰콰콰콰콰-

분홍 꽃잎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벚나무가 산산조각이 나며 일직선으로 길이 뚫리고, 머릿속으로 신병이기들의 고함이 들이닥쳤다.

- 뭐 하는 것이냐!

- 이 아름다운 전경을 산산조각을 내다니!

"정신들 차리고 바닥을 좀 봐봐."

- 바닥이 뭐 어쨌…… 응?

바닥을 본다. 분명 땅바닥이었어야 할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응당 땅이 파헤쳐졌으면 짙은 갈색빛의 흙무더기가 드러났어야 했으나 눈에 보이는 건 그저 흰 바탕이었다.

- 이게 대체.

- 이 모든 게 환상?

그제야 자신들이 환상 속에 빠져있단 걸 깨달은 신병이기들.

"이제 좀 정신이 드냐?"

헛기침을 해대며 부끄러움을 감추는 신병이기들을 이끌고 천강은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일직선으로 길게 흔적이 남았기도 했고, 중간중간 계속 몽둥이를 휘둘러 주어 방향이 틀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두 시진가량 내달렸는데도 천강은 그 끝을 볼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구조지?'

고개를 돌려 지나온 길을 바라본다.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너희들 오면서 뭐 이상한 점 못 느꼈어?"

- 잠시 조용히 하거라. 모처럼 심신 안정 중이니라.

- 거참.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구먼.

아까와 같은 증상을 보이는 녀석들. 천강은 하나하나 호명하며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똑같았다. 평소 말수가 적은 뇌명조차도 넋을 잃은 채 구경하기에 바빴다.

"무제(武帝)의 사념님. 설마 같은 증상은 아니시죠?"

『 날 저것들과 동급으로 보지 말아라. 』

다행히 천해지경은 멀쩡하군. 천강은 혹시나 이곳에 대한 정보가 있나 싶어 물어보았다.

낡은 종이 위에 빠르게 글자들이 새겨졌다.

『 신검을 얻기 위해서는 하늘의 길을 지나야 한다. 하늘의 길이란, 앵화가 흐드러진 아름다운 환상을 일컫는다. 』

역시 환상이 맞았다. 천해지경의 설명이 이어졌다.

『 시련에 참가한 자들은 이곳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가만 바라만 봐도 불행은 잊고 행복감이 차고 넘친다. 그러다가 배가 고파 정신을 차릴 즈음엔 이미 기력이 바닥이 나 움직일 힘이 없게 되느니라. 』

즉, 아사하기 직전이 되어서야 환상에서 깨어난다는 의미.

"근데 무제의 사념님.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습니다."

천강이 손끝으로 신병이기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것들은 상태가 왜 저 모양인 겁니까?"

그래도 신병이기라면 명색이 현경급 무구들. 겨우 환상에 허우적거린다는 게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이해도 안 됐다.

쟤들은 체력이란 것도 없는데 그럼 평생 환상 속에서 못 빠져나온다는 건가?

『 신검은 급이 다르다. 능히 사용자를 생사경의 수준까지 인도해줄 저력이 있다. 그 수준에 못 미치는 존재들은 이곳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 다만, 천마신공의 내공 심법을 익힌 자는 제외된다. 그들은 직감적으로 이곳을 빠져나갈 길을 안다. 』

쉽게 말해, 천마신공을 정통으로 익힌 자에게는 특별히 시험장 뒷문으로 통과할 기회를 주었다는 셈.

천해지경의 대답 덕택에 천강은 이곳을 빠져나갈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천강이 눈을 감고는 심호흡하기 시작했다.

'일단 간단히 점검부터 해보자.'

- 이곳에 선녀만 몇 있다면 완전한 무릉도원이었을 것을. 아쉽도다!

헛소리해대는 공포를 잡아든 천강이 팔을 움직였다. 천강의 손에서 검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아름다운 궤적을 만들어냈다.

천마신공 환검결 제1식, 춘풍낙화.

순간적으로 사방으로 펼쳐졌다가 이내 하나로 모이는 검의 잔상들. 초식을 마친 천강이 검을 회수하고는 고요히 주변을 응시했다.

'역시 아무런 변화가 없군.'

천마신공의 내공심법이 아니면 안 된다는 소리겠지.

안타깝게도 천강은 천마신공의 심법을 익히지 않았다. 익힐 이유가 전혀 없었기에.

천해지경이 건네주는 반지를 가만 바라보던 천강은 이내 다시 품속에 넣고는 눈을 감았다.

'지금껏 천해지경은 옳은 소리만 하였다.'

처음에는 무슨 개풀 뜯어 먹는 소리인가 했는데, 몇 번 천해지경을 겪어본 천강은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말해주는 걸 믿고 그대로 행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무저갱 때 녀석이 주었던 두 번의 조언이 그걸 가장 잘 드러내고 있었다.

- 신체가 벽에 닿지만 않으면 된다.

- 신체가 땅에 닿지만 않으면 된다.

'그래서 무저갱에 내려갈 땐 하늘을 날았고, 이후엔 녀석을 밟고 올라섰었지.'

그러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다.

직감적으로 나갈 길을 안다는 이야기는 이곳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뒷문이 숨겨져 있다는 뜻.

반지에 있는 천마심공의 심법을 익혀도 되지만, 예부터 심공은 하나!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천강은 그 방법을 기각했다.

대신 눈에 기운을 심어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재미있군.'

독목신공을 넘어 심안(心眼)으로 발전한 천강의 눈이 이곳의 모든 걸 꿰뚫어 보기 시작했다.

허상인 줄 알았던 앵화도 그 나무들도 실체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맨눈으로 보는 것만큼 아름답진 않았다.

그 기이한 광경을 흥미로운 얼굴로 살펴보던 천강의 눈이 돌연 번쩍 뜨였다. 그것들 사이로 웬 작은 점이 보인 것이다.

쫓아가자 도망가는 그것.

따라붙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것의 정체는 작은 소용돌이였다.

'여기로군.'

이 모든 환상을 만들고 유지하는 중심이.

그러나 겨우 팔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작은 크기.

"무제(武帝)의 사념님. 이거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모든 것이 시작된 그곳에 팔을 집어넣고 천마신공의 심법을 운용하라. 그리하면 결계가 부서지고 환상은 사라지리라. 』

킁. 결국 기승전 천마신공이로구만. 까다롭긴.

천강은 팔 대신 흑색 절굿공이를 꽂아 넣었다. 그리고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폭발을 일으켰다.

지천뇌공.

쿠콰콰콰콰-

어마어마한 강풍이 몰아쳤다. 주변 환상이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성공인가?'

그러나 그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갔다.

몽둥이를 뱉어낸 소용돌이가 다시 도망가기 시작했다. 한번 크게 덴 탓인지 이전보다 곱절은 빠른 움직임이었다.

'천산의 꽉 막힌 벽도 뚫는 일격이 안 먹힌다고?'

고민에 잠긴 소년. 천강의 입가에 이전보다 더욱 진한 미소가 올라왔다.

천강의 신형이 소용돌이를 따라붙었다. 이리저리 도망치는 그것의 속도는 웬만한 무림인은 엄두도 내지 못할 수준이었다.

그러나 암운행보에 백호의 가호까지 가지고 있는 천강은 능히 백호와도 속도전을 벌일 수 있는 수준.

천강이 녀석의 바로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그리고는 그것에 손을 불쑥 집어넣었다.

'이건 통할 수밖에 없겠지.'

한 물건을 떠올린다.

음울한 보랏빛 검. 태산보다도 무거운 중량을 가진 무구.

앞으로 손을 내뻗고 달리던 천강의 몸이 확 앞으로 꺾였다. 그리고 그 순간, 변화는 시작되었다.

파직. 파지직.

마치 도자기에 금이 가듯 앵화가 흩날리는 공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내 여러 갈래로 나뉘었고, 하나둘 조각조각이 나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쿠구구구구.

세계가 무너져 내린다. 큰 흔들림과 함께 산산조각이 난 뒤의 세계는 어둠이었다.

천강은 신물(神物)과 함께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입 주변을 털고는 자리에서 일어난 천강이 신물을 돌려보내며 작게 투덜댔다.

"퉤. 기분 더럽군."

흙바닥이었으면 좀 좋았으련만.

횃불을 만들어 어둠을 밝혔다. 새하얀 가루가 손과 몸에 잔뜩 묻어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이, 이게 무슨.

- 아니, 앵화들은 어디 가고 이런 기괴한…….

뭔가 할 말을 잃어버린 신병이기들의 대사에 천강의 시선 또한 주변을 향했다.

땅속에 자리한 거대한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가득 메운 해골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느낀 묘한 악취의 정체가 이거였군.'

오래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신병이기들의 말문이 막힌 건 단순히 잔해들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해골들은 마치 원래 한 몸인 것처럼 끼리끼리 뭉쳐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조금 전 보았던 앵화나무 숲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도전자가 있었던 모양이구만.'

넓은 공간에 가득 찬 해골 잔해. 그 수가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뭐 무저갱에 감춰져 있는 신물(神物)보다야 많은 게 맞겠지만.

"더 구경할래?"

- 아, 아니다.

- 이제 떠날 때가 됐지.

"아깐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듯 굴더니. 더 구경하고 싶다면 기다려줄게. 나 식량 많이 들고 왔거든. 내 눈치 보지 말고 마음 편히 말해."

- 흠. 흠흠.

- 크흠. 충분히 구경했느니라. 어서 가자꾸나.

"그래."

옷에 묻은 뼛가루들을 싹 털어낸 천강이 발걸음을 옮겼다. 널따란 공간에 통로라곤 단 하나뿐이라 길을 찾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천강은 그 안으로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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