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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38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4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38화

138화. 이무기

 

 

추혼살개.

전생에 마교 서열 4위의 고수. 본명 영진.

한때 마교에 이름난 미녀가 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니, 수많은 마두들조차 그녀에게 찾아가 청혼할 정도였다.

그러나 마두의 체면이 있지, 한 번 거절당한 마두들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순서는 돌고 돌아 당시 마교 서열 71위였던 영진에게도 돌아왔다.

그는 그녀에게 청혼했다. 말 그대로 한 떨기의 꽃 그 자체인 그녀는 어디에 있건 빛이 나는 그러한 존재였다.

그냥 청혼하면 안 될 것 같아 그는 자존심을 구기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 그대와 일생을 함께하고 싶소!'

물론, 결과는 실패였다. 그것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그 모습을 한 마인이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퍼진 소문.

문제의 마인은 일이 커지자 사력을 다해 도망쳤다. 그리고는 중원 어딘가에 잠적했다. 영진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 놈을 찾기 위해 중원으로 나섰다.

약 5년에 걸친 추격전.

영진은 결국 놈을 찾아내 죽였다. 녀석은 살기 위해 환관이 되어서 궁에 숨어 있었다.

오랜 은원 관계를 청산하고 돌아온 그에게 마인들은 추혼살개란 별호를 지어 주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이승에서 끝나지 않고 저승에까지 이어졌다.

당시의 집요함을 높이 사 염라대왕이 그에게 저승사자의 일을 맡긴 것이다.

'왜 저 같은 미천한 것에게…….'

'수많은 저승사자들 중, 도망 다니는 망자들을 잘 잡아 오는 녀석 한 놈쯤은 있는 게 좋지 않겠느냐.'

그렇게 흑백무상(黑白無常) 중 흑무상(黑無常)의 직위를 갖게 된 추혼살개였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아직 해결 못 한 치부 하나가 남아있었다.

- 자네, 공자님께서 뭐라 하셨는지 아나?

- 공자님께선 말씀하셨지. 내가 원하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 난 그대가 살기를 바라네. 그러나 공자님 말씀이 그러지 말라 하니 내 어쩌겠나?

전생의 기억이 스치듯 지나간다. 죽기 직전의 일이 떠오른 추혼살개의 얼굴 근육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살고자 무릎을 꿇고는 두 손을 싹싹 빌었던 당시의 기억이.

- 혹시 공자님께서 살생을 자제하란 말씀은 안 하셨는가?

- 음……. 글쎄. 그런 글은 읽은 기억이 없어서 말이야. 그럼 잘 가시게!

흑무상이 된 추혼살개가 전생의 기억을 자각하고는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야, 이 씨발 새……!"

쾅. 쾅쾅.

순식간에 공동 이곳저곳에서 폭발이 일었다. 천강은 추혼살개의 공격을 피하며 미소 지었다.

"저승사자가 됐어도 움직임은 그대로군? 뭐 달라진 것 없나?"

"닥쳐라!"

그러나 아무리 맹공을 퍼부어도 추혼살개의 공격은 천강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이대론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추혼살개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 순간 천강이 손을 수직으로 내보였다.

"잠깐."

"뭐냐?"

낮게 으르렁대는 추혼살개와 그런 그를 멀찍이는 뒷짐 지고 바라보는 백무상(白無常)을 본 천강이 말을 이었다.

"우리 옛일은 잊고, 옛정으로다가 좋게 좋게 가자고."

"누구 맘대로!"

"잘 생각해 봐. 만약 내가 여기서 네 손에 죽는다고 쳐. 나 같이 악랄한 놈을 염라대왕이 기억 못 할까?"

추혼살개의 몸이 움찔 떨렸다.

"네 힘으론 덮지 못할 거다. 그럼 당연히 그 앞으로 끌려가겠지. 그럼 난 거기서 이렇게 이야기할 거다."

천강이 양손을 활짝 펼치며 말했다.

"염라대왕님! 당신이 관리 못 한 저승사자가 미쳐 날뛰어서 제가 죽게 되었습니다. 혹시 선계에 올라갈 인재를 일부러 죽인 것 아니십니까? 그럼 넌 어떻게 될까?"

부들부들.

"이봐. 추혼살개 동료인 당신이 이야기해 봐. 만약 전생의 일을 이유로 저승사자가 권력을 남용해 살아있는 자를 죽이면 어떻게 되지?"

"생사의 법도를 어기는 중죄다. 기절할 수도 없는 지독한 고통 속에서, 끊임없이 벌을 달게 받아야……."

"가아아아알!"

추혼살개의 벼락같은 외침에 백무상이 입을 쏙 다물었다. 추혼살개가 천강을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좋다. 전생의 일은 전생의 일로 끝내도록 하지."

"잘 생각했어. 솔직히 그 당시 내가 널 살려줄 만한 상황이 아니란 건 너도 알고 있지 않냐?"

그랬다. 무릎 꿇고 두 손을 싹싹 빌며 살려 달라했는데도 죽은 건 매우 쪽팔리고 민망한 과거이긴 했지만, 흑살마신 입장에선 그를 살려줬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도 기분이라는 게 영 더러운 흑무상 추혼살개였다.

근데 그걸 놓칠 천강이 아니었다. 소년이 그에게 다가가 살짝 운을 뗐다.

"그때 일로 미안하기도 하고 하니 내가 선물을 줄게."

"선물?"

"어. 당장은 아니고 한 5개월 후 혹시 이곳으로 올 수 있나?"

선물과 함께 건네는 사과에 기분이 다소 풀린 추혼살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있다만 왜? 무슨 선물인데 그러는가?"

"우리 추혼살개님 이제 저승사자도 되셨는데, 위에 뇌물 바쳐서 빨리빨리 승진하셔야지. 응? 안 그래?"

"그건 그렇다만……."

"5개월 뒤에 이곳에서 만납시다. 내가 끝내주는 선물을 준비해줄 테니까."

추혼살개가 약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봤다. 천강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솔직히 지나가다 잠깐 들르면 되잖아? 손해 보는 것도 없고."

"흠흠. 좋다. 그 선물이라는 것 한 번 기대해보마."

그것을 끝으로 허공에서 두 존재가 사라졌다. 저 멀리서 이곳 상황을 지켜보던 억중이 다가와 물었다.

"어르신, 돌아간 것입니까?"

"어. 근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천령초를 사러 온 건 아닌 것 같던데?"

"예. 한 이십 일쯤은 더 있어야 합니다요. 가끔 이런 식으로 저승사자들이 보이곤 하는데, 이곳이 이승과 연결된 통로 중 하나라 그렇습니다요."

그렇구만. 그건 그렇고, 전생의 인물을 이렇게 만날 줄이야. 정말 생각지도 못한 기연이 되었다.

천강이 억중의 위에 올라타 고갯짓했다.

"가자. 다음 장소로."

 

***

 

천산. 여울나무 숲.

그곳의 중심부는 한창 축제 분위기였다.

"하핫. 진짜로 내어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정찰임무 총지휘대장 자리를 얻어오다니요!"

"하핫. 그러게 말이오. 죽섬일마, 정말 축하드리오! 이제 완벽히 우리와 함께하게 되었구먼!"

"하핫.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죽섬일마가 여러 사람과 잔을 맞부딪치며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호접일검이 적삼혈마의 잔에 술을 따랐다.

"정찰 쪽 총지휘자를 저희 쪽이 가져왔으니, 이제 외부와의 협력은 아주 무난해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적삼혈마."

"그렇지요. 순풍을 제대로 탔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근데 이리 몰아붙여도 괜찮겠습니까, 어르신?"

조심스러운 호접일검의 질문에 적삼혈마 또한 동조하고 나섰다.

"제 짧은 소견도 그렇습니다. 솔직히 궁지에 몰린 교주가 직권을 사용해 가짜 소교주를 석방하고 저희와 전쟁이라도 치르면 문제입니다."

투파창귀가 잔을 기울였다. 그리고는 픽 웃음을 흘렸다.

"걱정하지 마라. 저번에 그 그림자를 통해 교주 쪽엔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게 다 파악되었다."

"그래도 그 가짜 소교주가 있잖습니까. 듣기로는 현경이랍니다."

"그랬지."

호접일검으로부터 술을 받아든 투파창귀가 다시 잔을 기울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 소교주는 내가 얼마 전 죽였다."

"예?"

"무저갱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곤, 희망은 고사하고 옷자락 하나도 없을 것이다."

 

***

 

지옥의 악귀들을 때려잡고, 그들의 보약을 뺏어 먹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중간중간 밥을 먹기 위해 바깥을 오갔는데도 억중이 아는 구역을 다 도는 덴 채 3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천강에게 일귀가 다가왔다. 그런 그의 눈이 한 차례 끔벅거렸다.

"그러고 보니, 주군. 키가 상당히 크셨군요."

"그런가?"

슬쩍 몸을 내려 보니 이제는 제법 소년티를 벗고 있는 자신의 몸이 보였다.

"슬슬 몸이 크는 시기인가 봅니다."

전생 기준으로 보면 아직은 좀 이른데…… 천령초의 영향일 지도 모르겠다. 천강이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몸을 풀었다.

"바로 들어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래야지."

"여기 식량과 물입니다."

일귀가 늘 그렇듯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챙겨 건네주었다. 천강은 그것을 받아들고는 하늘을 올려보았다.

맑게 개였으나 자욱하게 낀 습기.

"곧…… 비가 오겠군."

벌써 여름인가.

"예. 신녀 말로는 오늘 저녁부터 올 거랍니다."

"신녀가 새로 뽑혔나?"

"예. 쥐 굴에서 뽑았답니다. 아주 영특한 아이라고 했습니다. 역대 신교의 기록을 뒤져봐도 그 정도 인재는 처음이랍니다."

잘됐네. 솔직히 이전 신녀는 너무 쓰레기였다. 들어보면 기상조차도 잘 맞추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 신녀가 바로 섰으니 이제 교주 측도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올해는 수해를 입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야 할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작년에 중원 쪽은 꽤 피해가 컸다고 들었습니다."

"작년에? 많이들 죽어 나갔겠구만."

자연의 재해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다. 황실의 권력도, 무인의 강한 힘도 그 앞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올해는 적당히 내렸으면 좋겠군."

그리고 저녁이 되자 일귀 말대로 비가 한 방울씩 쏟아지기 시작했다.

무저갱의 굴 입구에 서서 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구경하길 잠시, 천강의 뒤쪽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억중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어르신, 오셨습니까."

"그래."

"오늘은 어디로 가시렵니까?"

녀석이 아는 곳은 진즉에 다 돌았다. 이제는 이곳 출신인 녀석도 모르는 곳을 매일 찾아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녀석의 표정은 꽤 들떠 있었다.

바닥에 파문을 일으키는 빗방울들을 보던 천강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짙게 낀 먹구름이 한창 쏟아낼 느낌이다.

천강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오늘은…… 뽕밭으로 간다."

 

***

 

굴이 끝나는 지점에서 천강과 억중의 눈이 뽕밭으로 향했다. 그곳엔 붉은 갑주를 입은 거대한 영물이 한참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어르신, 저 정도씩 먹고 간에 기별이라도 갈까요?"

"모르지. 건강관리 중 아닐까? 그 왜 소림 땡중이나 무당의 호랑말코 놈들도 종종 풀 때기로 소식하면서 하잖아."

소림이니 무당이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억중이 눈을 끔벅였다. 안 그래도 덩치가 큰 놈이 그 큰 눈을 끔벅거리니 뭔가 징그러웠다.

천강은 가만히 있으라며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자는데 얼마나 걸려?"

"식사를 끝낸 후 이각(二刻) 안에 잡니다."

그리고 과연…… 일각이 막 넘어가는 시점에 큰 호흡을 들이쉬었다 내쉬며 잠에 빠져들었다.

천강이 억중의 위에서 내려섰다.

"넌 여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무슨 일 생기면 벽에 딱 붙어 숨어 있어라. 알겠냐?"

"예, 옙."

천강의 몸이 검은 기류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암운신공으로 몸을 완전히 뒤덮은 천강은 말 그대로 자연 그 자체.

검은 안개가 스르륵 허공을 날아 나무들 밑으로 스며들었다.

사각. 사각.

곳곳에서 누에들의 이파리 갉아먹는 소리가 들려온다. 밥 먹는 소리가 굉장히 시원시원하다.

천강은 슥 주변을 살펴 고치의 개수를 확인했다.

'스무 개로군.'

이무기가 잠자는 방향을 한 차례 살펴본 천강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내기를 확 펼쳐 그것들을 단번에 떼 챙겼다.

번쩍. 이무기의 눈이 뜨인 건 바로 그때였다.

'이 자식, 자는 척 대기하고 있었던 건가!'

캬아아앗-

자신의 물건을 도둑질하기 위해 찾아온 천강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녀석.

덩치는 흑사보다 작았지만, 양손에 여의주까지 들고 수염까지 기른 녀석은 절대 쉽게 볼 수 없는 상대였다.

천강이 놈에게서 거리를 확 벌렸다. 현경과 생사경 사이로 취급되는 영물답게 사방에서 자연재해가 몰아쳤다.

용암이 솟아오르고, 화염 폭풍이 휘몰아치는 그곳에서 천강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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