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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75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3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75화

175화. 진압

 

 

한번은 사학 어르신께 여쭈어본 적이 있다.

"신수의 혼을 얻는다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흠. 신수마다 다르니라. 청룡의 경우엔 권력을 가져다주고, 주작의 경우엔 재물을 풍족하게 해주지. 현무는 자손에게 복을 내려주고 말이다."

"그럼 백호는 어떱니까?"

이미 알고는 있지만 세간의 평가는 어떨까 하여 물어보았다.

"백호는 조금 특이하다. 그걸 가진 자의 마음을 태산과 같이 만들어주지. 풍파에도 태산은 흔들리지 않듯, 그걸 지닌 자는 마음이 굳건해져 그 어떤 외부의 충격에도 타격을 입지 않게 된다."

그 어떤 외부의 충격에도 타격을 입지 않는다라…….

 

***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심검은 의지로 이루어진 검.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천강에겐 그 어떤 타격도 줄 수 없었다.

물론, 아예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목이 날아가는 환각이 보이긴 했다. 정말이지 아주 작은 틈.

그러나 그조차도 백호의 혼으로 빠르게 회복되고, 천강은 아직 사태 파악을 못 한 태감에게 일격을 먹일 수 있었다.

'이것으로 기회는 만들어졌다.'

천강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의 손에 보랏빛 검이 나타나고, 천강은 태감과 함께 그대로 지면을 향해 돌진했다.

신물(神物)이 무거워 차마 태감을 정조준하진 못했다. 어설프게 하다 놓치느니 천강은 신물을 땅바닥에 처박았다.

그 순간 곧바로 묵빛으로 변하는 대지.

천강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기회를 놓칠 만큼 천강은 어수룩하지 않았다.

태감의 몸통을 향해 천강의 주먹이 쇄도했다.

그러나 그 순간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돌연 태감이 천강을 강하게 밀쳐낸 것이다.

'저주받은 대지 위에서 내기를 사용한다고?'

- 아니, 저런!

-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죠?

신병이기들도 이해를 못 해 당황해하고, 천강은 자세를 잡고는 태감을 자세히 살폈다.

분명 신물 특유의 기운이 태감의 발바닥을 타고 올라가 그를 얽매는 게 보였다.

'효과가 없는 게 아냐. 생사경의 고수다 보니, 타 기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조금 더 저항하는 것뿐이야.'

깨달음과 동시에 곧바로 튀어 나가는 천강의 신형.

태감이 곧바로 몸을 빼내기 시작했다.

천강이 허공에 떠 있는 신검을 잡고 도망가는 그에게 일격을 먹였다.

'천마신공 쾌검결 제7식, 활어역수.'

짧고 빠르지만 강렬한 찌르기. 태감이 몸을 돌려 손을 크게 움직였다.

두전성이.

적에게 갔다가 되돌아오는 일격에 천강이 몸을 돌려 피하며 왼손에 신물을 다시 소환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땅에 다시 꽂아 넣었다.

'넌 절대 도망가지 못해!'

그걸 본 태감이 땅을 박차고 하늘로 올랐다. 천강의 신형이 그 위로 나타나 검을 휘둘렀다.

천마신공 쾌검결 제8식, 검우(劍雨).

태감이 양손을 펼쳐 크게 원을 그린다. 한 번 본 적 있는 무당파의 태극 원리에 검의 비가 집중되지 못하고 사방으로 펼쳐졌다.

'귀찮게……!'

내리누르는 기세를 그대로 밀고 가, 적을 땅에 처박을 생각인 천강.

그러나 적의 실력은 천강의 생각보다 더 아득했다.

순간적으로 사방에서 쏟아져 날아오는 수천의 돌조각들. 한 번 겪어본 적 있는 기술에 천강의 눈이 부릅 뜨였다.

'이번엔 만천화우?'

그 상태로 태감이 천강을 향해 손바닥을 펼치니, 천강이 신형이 그대로 하늘로 솟구쳤다.

'하……하핫. 이런 미친. 양의심공에 천수여래장이라고?'

모용세가, 사천당문, 무당파, 소림의 절기와 비전들을 마구 써대는 상대로 인해 천강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건 어이가 없어 나오는 웃음이었다.

'처음 암운행보를 따라 할 때부터 뭔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해 추론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어찌 됐든 이 모든 일의 흑막인 적은 도주 중이며, 이번 기회에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것뿐.

몸이 활처럼 휜 천강의 신형이 엄청난 속도로 태감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암운행보를 사용해 도망치는 중이긴 해도, 백호의 가호가 있는 천강보다는 느릴 수밖에 없는 상황.

스스로도 이대로는 따라 잡힐 것이라 생각했는지, 태감이 몸을 내빼며 천강에게 맹공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쿠콰콰콰콰-

천강과 태감 사이로 땅이 치솟고, 사방의 나무들이 가지를 뻗어 천강을 욱여싼다.

생사경이 되면 자연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게 된다더니, 그것이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천강의 앞길을 막아서는 천산의 몸뚱어리.

'귀찮게…. 비켜라!'

천강이 흑색 절굿공이를 들고 강하게 후려치자 산산조각이 나 일직선으로 구멍이 뚫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천강의 신형이 그 사이를 쇄도해 나갔다.

'잡았다.'

지척에 이른 상대. 반사하거나 흘리지 못하게 놈의 몸뚱어리를 잡은 천강은 다시금 바닥으로 함께 떨어졌다.

그리고는 신물(神物)을 소환하나…….

'아?'

소환되지 않는 지옥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본다. 어느덧 두 사람은 천산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그를 뒤따르던 신검 또한 더는 따라오지 않고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크큭. 그 말이 사실이었군. 신검은 천산의 영역을 빠져나올 수 없다는 말이 말이야."

"신검 따윈 없어도 네놈은 끝낼 수 있거든?"

자신을 짓누르는 천강을 슥 살펴본 태감.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단순히 근력으로 풀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기를 끌어올린다면 흡공이 발동할 터.

그저 단 한 번 당해보았을 뿐인데, 북명신공의 원리까지 모조리 깨우친 태감이었다.

"뭐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런데 나를 잡는다고 집안 관리를 제대로 못 한 모양이다, 흑살마신."

"그게 무슨 개소리냐?"

태감은 시선을 천산 쪽으로 주었다. 무슨 더러운 수를 쓸까 하여 시선을 안 주니, 신병이기들이 대신 대답해주었다.

- 소년, 뭔가 잘못됐다.

- 연기가 타오르고 있습니다.

'뭐?'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과연 천산 위로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세히 본즉 산불이 난 모양이었다.

그때 천강의 밑에 깔려 있던 태감의 몸에서 순간적으로 내력이 발산되고, 그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런 젠장. 잠시 한눈판 사이에.'

시선을 거둔 게 실수였다. 독목신공을 계속 사용 중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작은 실수.

천강의 몸이 살짝 뜬 그 작은 틈새로 태감의 신형이 빠져나가고, 이내 10보 거리를 두고 옷매무시를 정리하며 그가 말했다.

"혹시 몰라 천산 곳곳에 안배해놓았다. 수가 틀리면 언제든 불을 지르기 위해 말이야."

"안배?"

"그래."

태감의 설명에 의하면, 천산의 나무들에 신선환의 독성을 유발하는 풀을 매달아 놓았단다.

"조금 전 네게서 도망칠 때 쭉 오면서 불을 질렀지. 그 화마가 천산에 번지면, 모두는 아니어도 상당수가 그걸 피하지 못해서 죽게 될 거다."

"하. 개소리. 빠져나가려고 입 털지 마. 너희 측 재료량이 부족한 거 이미 다 알고 있거든?"

또한 묵범귀영에게 그런 이야기는 전혀 못 들은 천강이었다.

그러나 심안으로 본 녀석은 분명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태감이 씨익 미소 지었다.

"그럴 수밖에. 신교 주민인 척 행세하며 직접 움직였으니까.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난 그 대부분을 천산 밑자락에 배치했다."

"……뭐? 너 이 새끼가!"

천강의 신형이 태감에게 쏘아져 나갔다. 그러나 태감 또한 뒤로 몸을 내빼며 말을 잇는다.

"막으려면 지금 막아야 할 것이다. 아직 불길은 중턱에 머물러 있으니."

"큭."

천산의 밑자락엔 신교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사실상 신교를 지탱하는 뿌리나 마찬가지인 이들.

신선환 파동이 일어나며 그 상당수가 신선환을 복용한 이 시점에 녀석의 말대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다면…….

- 막아야 합니다, 소년. 무조건 막아야 해요.

- 그러하다. 백성을 잃으면 그 나라는 망한다.

'신교 주민들이 몰살당하는 것만은 막아야 해.'

설령 죽는 수가 많지 않다고 하더라도, 최근 신교 주민들의 행보로 보면 사상자가 발생할 시 필히 들고 일어날 게 분명했다.

믿음을 잃어버리면 교주는 힘을 잃고, 그러면 신교는 자연스레 해체되게 된다.

그건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심안으로 보건대 지금껏 태감 녀석이 말한 건 모두 사실. 이를 바득 문 천강이 몸을 돌려 천산으로 향했다.

"너…… 황궁에서 목 씻고 기다려라. 금세 그 목을 따주러 갈 테니까."

"내 목을 따도 큰 흐름은 변하지 않는다. 물길을 급한 대로 막고 틀어본들, 결국은 제자리를 찾아 바다로 향하는 게 세상의 이치. 이미 중원은 우리의 손아귀에 있다. 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해."

"일단 머리를 치면 죽는다. 그게 사람이 됐건, 짐승이 됐건."

"내가 죽어도 제2의 태감, 제3의 태감이 나와 내 유지를 계속 이어 나갈 것이다."

태감이 발을 움직였다. 그의 신형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나지막한 음성이 바람을 타고 천강의 귓가에 흘러들어왔다.

- 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흑살마신. 신교도 중원도. 무림의 멸망은 천명(天命). 이건…… 필연이다.

들판에 혼자 남겨진 천강의 시선이 불길이 치솟는 천산으로 향했다. 불은 빠르게 번져 어느덧 천산의 위아래로 번지고 있었다.

얼굴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천강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리고는 천산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

 

천산 밑자락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본다.

상황이 꽤 급박했다. 사시사철 바람이 강한 천산의 특성상 불이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문제는 천산의 바람은 한곳으로만 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소년,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일단…… 위쪽은 버리는 수밖에.'

불길이 너무 커졌다. 범위도 너무 광범위하고. 혼자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지금으로서는 불을 저지하고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게 최선.'

천강은 천산에 불이 났음을 알리고는 주민들을 일단 대피시켰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속도보다 불길이 내려오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 이러다간 불길에 휩싸이겠습니다, 소년!

- 설령 불길에 휩싸이지 않아도, 독이 타 연기 퍼지는 속도가 더 빠를 것이다!

슥 고개를 내려 마을 밑을 바라보았다.

나이 든 이들과 아이들의 걸음 속도가 상당히 눈에 밟힌다. 그 와중에 마을이 전소되는 걸 막겠다고 남는 청년들도 상당수 보였다.

'일단 해보는 데까지는 해보는 수밖에.'

천강이 불길 앞에 섰다.

뜨거운 기운이 볼과 피부를 달구고, 뱀의 혀와 같은 그것은 빠른 속도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었다.

그 앞에서 천강은 신검을 소환했다. 머리 위 검은 구름에서 신병이기들이 사방으로 펼쳐진 것도 그때였다.

'힘껏 휘두르라고 다들.'

- 걱정 말게.

- 아주 제대로 힘을 내 볼 터이니.

자세를 잡고는 검을 힘껏 휘두른다. 검 끝이 잘게 떨고, 이내 해일과 같은 거대한 기운이 범람해 나아간다.

'천마신공 파검결 제4식, 파천일검!'

천강의 신호에 맞춰 사방에서 신병이기들이 움직여 검풍을 만들어냈다. 그것들은 다가오는 불길을 역으로 몰아내었다.

그러나 잠시 그 속도를 늦추는 데 성공하였을 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빠르게 하산하는 염화.

천강과 신병이기들이 재차 휘둘렀다. 그러나 화마는 바람을 타고 끝없이 밀려 내려왔다.

- 이대로는 얼마 못 버틴다!

- 방법을 바꿔야겠느니라.

- 일단 급한 대로 독주머니들부터 제거하는 게 어떤가요, 소년?

'태감이 분명 신교의 주민 행세를 하며 나무에 걸어두었다고 했지.'

그러나 묵범귀영은 태감의 특이한 행적을 파악하지 못했다.

천강은 고개를 돌려 한 거대한 나무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마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듯 수많은 주머니들이 매달려 있었다.

신교 주민들은 천산을 오르고 내리며 보이는 큰 나무들에 이런 식으로 주머니를 매달아 두는 관습이 있다.

그걸 걸면서 복을 비는 것이다.

'태감 녀석이 묵범귀영의 의심을 피했다면, 그 독 대부분이 마을 인근에 배치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거야.'

제아무리 묵범귀영의 실력이 좋다한들 그가 모든 걸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으니까.

아마 많은 정보들 중,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고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겠지.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무에 무언가를 걸고 다녔다면 분명 의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는 건 철저히 마을 주변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저것들을 회수하고 마무리 지을까.'

그럼 어찌 됐든 상당수 사람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으리라.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천강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마을이 불타는 걸 막아야 한다.'

약 70년 전, 천강은 가난을 겪어본 세대다.

나라가 망국에 접어들고 난이 일어나는 시기.

마교로 팔려 오고 나서야 배고픔을 잊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한 중원의 시절을 겪은 천강이었다.

그렇기에 마을이 불타는 걸 막지 못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신교는 흔들리게 되어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재지변 앞에서 인간은 너무도 미약한 존재였다.

중원을 다스린다는 열 명의 절대 고수와 같은 경지에 올라 있음에도, 대자연의 흐름 앞에서 천강은 자신이 너무도 작은 존재임을 깨달았다.

그 뼈저림에 탄식하는 그때 천강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 소년, 어디를 가는 겁니까!

- 위험하다!

- 우리도 함께 가자!

그러나 신병이기들이 부르든 말든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천강.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판단한 천강이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그리고는 눈앞에 양손을 모았다.

'되어야 한다.'

될지 안 될지는 미지수. 그러나 몇 번 지켜본 바에 의하면 필히 통하리라.

감겨있던 천강의 눈이 번쩍 뜨였다. 모은 손 위로 검 하나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음울한 보랏빛 검신이 나타나, 타오르는 불길의 모습을 담아내고. 이내 그 칼끝이 천산의 땅속에 깊이 박힌다.

파즈즛-

지반 위를 검은 기운이 뒤덮었다.

그에 따라 풀과 나무가 생기를 잃고 바싹 마르며, 연료를 잃은 불길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 후우. 성공이군요.

- 이 기세를 몰아 다른 불길도 다 잡자구나!

'그래. 그 전에…….'

천강이 마을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절굿공이를 들고 힘껏 천산 위로 휘둘렀다.

잔불과 함께 죽은 나무 파편들이 마을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그렇게 천산의 화재는 진압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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