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68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68화
168화. 작전 성공
계곡 옆, 우거진 숲을 빠르게 움직이는 이천여 명의 무리.
그들은 날랜 몸놀림으로 산을 오르다가, 이내 거대한 구덩이를 앞에 두고 멈추어 섰다.
"자, 지금부터 두 진영으로 나뉜다. 반은 날 따라 이곳 암운곡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반은 사백동굴로 향한다."
지금 암운곡 앞에서 공격을 준비하는 그들은 바로 황실에서 보낸 관군들.
반반으로 나눠 암운곡을 친 뒤, 훈련생들이 사백동굴로 도망가면 지하수로에서 포위해 섬멸할 계획이었다.
"그럼 정확히 일각(一刻) 후 작전을 시작한다."
병력들이 사백동굴로 빠르게 향하고, 남은 관군들이 암운곡의 구덩이를 빙 둘러섰다.
그리고는 밑을 내려다보며 기습할 준비를 갖췄다.
원래라면 사백동굴에서 훈련 중이어야 할 아이들은 전쟁을 앞두고 암운곡에 머물러 있었다.
"사격 준비."
관군들이 활을 꺼내 아이들을 겨냥했다.
지휘를 맡은 이가 지휘봉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하나, 둘, 셋……! 발사!"
사사삭-
마른하늘에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화살 세례들.
떨어지면서 가속도가 붙은 그것들은 바닥에 닿을 때 즈음에는 검기에 버금가는 수준이 되었다.
"적이다!"
"피해!"
아이들이 잽싸게 가까운 굴이나 혹은 벽에 바짝 붙었다.
파바밧.
암운곡 밑바닥은 순식간에 고슴도치 형상이 되어버렸다.
적의 기습에 곳곳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튀어나오고, 그들은 일제히 일사불란하게 지하수로로 내달렸다.
"쏴라. 어서 쏴!"
"도망가기 전에 쏴라!"
빠르게 화살을 재고는 다시 겨누는 병사들.
그러나 아이들이 더 빨랐다. 그들이 잰 화살이 쏘아져 나가 바닥에 닿을 즈음에는 이미 아이들은 모두 지하수로로 뛰어든 이후였다.
"젠장, 뭐가 이리 빨라?"
"미친, 벌써 사라졌어?"
병사들의 시선이 지휘관에게로 향했다.
"대장님, 어떻게 할까요?"
"망을 보는 이를 제외한 전부 날 따르라. 밑으로 내려가 적을 추격한다!"
"내려가, 어서!"
줄을 타고 빠르게 밑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그들이 바닥에 도착했을 땐 더는 할 일이 없었다.
뒤늦게 도착한 지휘관이 호통을 쳤다.
"뭐 하는 것이냐! 어찌 추격을 안 하고!"
"그게…… 적들이 사백동굴이 있는 상류가 아닌 하류로 향했습니다."
"뭐?"
지휘관과 그 부관이 후다닥 뛰어 지하수로를 확인했다. 물이 튄 흔적들을 볼 때 하류로 향한 게 틀림없었다.
아까 뛰는 방향이 조금 이상하긴 했었는데.
"대장님. 어떻게 할까요? 따라붙으려면 지금 따라붙어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격차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의 지휘관은 장고를 거듭했다.
투입되기 전, 지존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 적들이 하류로 향할 경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 반드시 상류로 향할 것입니다. 절대 하류로 갈 일은 없습니다.
- 그래도 혹시나…….
- 절대 그럴 일은 없지만, 만약 하류로 도주하거든 절대 따라가지 마십시오. 그곳엔 성질 포악한 이무기가 살고 있다니까요.
"……퇴각한다."
이무기는 1만 대군을 끌고 와도 잡을까 말까 한 괴수다. 더 쫓아본들 화만 입을 게 분명했다.
지휘관의 퇴각 명령에 내려온 밧줄을 잡고는 올라가는 사람들.
그런데 돌연 오르던 이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무슨 일이냐!"
"바, 밧줄이 끊어졌습니다!"
"멀쩡한 밧줄이 왜 끊어진단 말이냐?"
그때 하늘 위에서 무언가가 마구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암운곡 바닥 곳곳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음을 내는 그것은 위에서 망을 보던 아군들이었다.
***
"만나서 반갑소이다."
"허허. 어서 오시오."
태양의 따스한 빛이 내려오고, 미풍의 시원한 바람이 간질이는 천산의 어느 산자락.
연회를 여는 일필일사의 거처에는 약 이백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자리했다.
어디에 내놓아도 전혀 꿀리지 않는 실력자들. 기묘하게도 둘로 나뉜 그 진영의 비율은 얼추 2대8에 육박했다.
그 숫자 차이에서 오는 승리의 기대감 탓인지, 여울나무와 외부인들의 얼굴엔 여유가 그득했다. 반대로 교주 측 인원들의 얼굴엔 다소 긴장감이 맴돌았고.
현 상황을 지켜본 여울나무 측 사이로 은밀한 움직임이 일었다.
- 지금 치는 건 어떠한가?
- 이건 기회인 듯한데.
지금 친다면 말 그대로 최소 피해로 최대의 이득을 챙길 수 있는 셈!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곧 암초를 만났다.
- 싸울 거면 그대들끼리 하시게.
- 우린 움직이지 않겠소.
태아를 얻길 원하는 광존과 정사파 무리들이 미동도 안 한 것이다.
그들로서는 괜히 지금 이들을 쳤다가 흑살마신이 도망가는 일이 발생하길 원하지 않았다.
여울나무 측 마두들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
"투파창귀님."
"……저들이 원하는 대로 해줘라."
어차피 마교를 삼키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흑살마신을 잡아야 한다. 굳이 미룰 필요는 없으리라.
결국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연회를 즐기기 시작했다. 천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들어 올렸다.
"많이들 드시오. 내 넉넉히 준비하였으니. 특히 중원에서 오신 호걸들께선 두 배 세 배로 즐기시오."
"연회를 베풀어 만찬을 즐기게 해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신교의 하늘이시여."
대표로 광존이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추자, 천마 또한 호응하며 물었다.
"근데 파안광귀께서는 이 먼 곳까지 어인 일이오이까? 솔직히 산동과 이곳 거리는 꽤 될 터인데."
"하핫. 꼭 좀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어서 말입니다. 근데 흑살마신은 어디 있습니까?"
"왜 그를 찾는 것이오?"
광존이 잔을 기울이고는 잔잔히 미소 지었다.
"그 유명한 신교의 영웅을 꼭 한번 뵙고 싶어서라고 할까요. 겸사겸사 무(武)에 대한 가르침 좀 받기를 원하고 말입니다."
"겸손하시군. 천하의 다섯 존자 중 하나가 가르침이라니."
천마의 시선이 광존을 위아래로 훑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 그게 광존의 진짜 모습이다.
겉으로 보이는 존대나 예의 바른 몸짓에 속았다가는 아주 단단히 낭패를 볼 것이다.
'대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것이냐.'
슬쩍 본즉 투파창귀는 자리에 앉아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고, 적들의 대표로 광존이 나와 설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분명 뭔가 생각이 있으니 이러는 것 같은데 천마로서는 전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때 상대가 움직였다.
"이거 교주님 측도 그렇고, 저희 측도 그렇고. 아직 오지 않은 인원들이 있는데, 마냥 기다리기 뭐하니 간단히 오락이라도 하는 게 어떻습니까?"
"오락이라면?"
"지금부터 각 진영에서 한 명씩 나와 일대일로 싸우는 겁니다. 자신이 싸우고 싶은 상대를 번갈아 지목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승부 결과는 당연히 한쪽이 죽을 때까지로."
"그냥 다 모일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지."
숫자 자체가 적은 교주 측으로서는 한 명 한 명의 인력이 귀중했다.
또한 연회 발표 전, 이때를 대비해 미리 호흡을 맞춘 것도 있는 만큼 개개인의 싸움은 피하는 게 좋았다.
그러나 광존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제 제안을 따르는 게 좋을 겁니다. 안 그러면 제 기분이 언짢아, 이대로 확 싸움을 일으켜 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협박인가?"
"협박이라뇨. 그 무슨 오해할 소릴. 다들 지루해하니 협조를 구하는 것입니다."
슬슬 본색을 드러내는 광존.
그는 목을 좌우로 풀며 이야기했다.
"그럼 이런 건 제안한 사람이 먼저 움직이는 게 맞겠지요. 거기 늙은이. 저와 한판 붙읍시다."
천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제야 놈의 의도를 알아챈 것이다.
광존이 싸움 상대를 지목한 건 다름 아닌 괴기나한이었다.
"현경 고수가 화경을 지목하다니. 창피하지 않는가?"
"창피함이 밥 먹여준답니까?"
광존이 웃자 그를 따라 이곳에 온 수하 둘도 파안대소를 했다.
그 외에 다른 이들…… 교주 측과 여울나무, 정사파 무리들은 전혀 웃지 않았는데, 같은 무인으로서 그의 행태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여울나무 측 인원들의 시선이 투파창귀에게로 향했다. 투파창귀는 대기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 투파창귀께서는 가만 있어 주시오. 제가 알아서 다 처리할 터이니.
'……그게 이런 의미였나.'
투파창귀가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본 천마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광존. 그 명성이 아깝군."
"명성이야 다시 쌓으면 됩니다. 그래서 응할 것입니까, 말 것입니까?"
광존의 협박에 천마의 시선이 괴기나한을 향했다. 맹익이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자, 빨리빨리 준비해."
"무기만 챙겨 들어.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한다."
천산의 남쪽 어느 산자락.
막사가 수없이 설치된 군영 앞으로 약 삼천여 명의 병사들이 모여 도열했다.
그 위세가 자못 대단해, 그 주변으로 모든 동물들은 자리를 피했다.
군사들의 사열이 끝나고, 해당 병력의 지휘관은 후다닥 지휘첨사의 막사로 걸음을 옮겼다.
"지휘첨사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래. 수고가 많았네. 신호가 오면 지체 없이 출격하게."
"알겠습니다."
지휘관이 예를 갖추고 나가고, 지휘첨사가 자리에 편히 앉았다.
조금 있으면 천산 곳곳에선 싸움이 일어난다. 그에 맞춰 천산 곳곳에 독도 피어오르겠지.
그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면 그의 병사들이 출격할 것이다.
'그리고는 잔당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면 끝.'
간단한 싸움이었다. 전쟁이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어찌 보면 학살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게 승리를 기정사실로 하며 자축하는 그때였다.
밖에서 돌연 비명들이 들려왔다.
"끄아아악."
"도, 도망가!"
대체 무슨……?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막사 밖으로 향하려 하자, 밖에서 한 병사가 들어와 보고했다.
"지휘첨사님, 큰일 났습니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적의 급습이더냐?"
그들이 막사를 펼치고 자리 잡은 곳은 천산의 밑자락. 적의 공습이 있을 리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 누가 황실의 군대에 건방지게 싸움을 먼저 건단 말인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 그게……."
버벅대며 말을 못 하는 병사.
그를 지나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막사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 순간, 지휘첨사는 볼 수 있었다.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거대한 영물의 눈을.
세로로 길게 갈라진 그것의 눈은 보기만 해도 몸이 얼어붙었고, 혓바닥이 나왔다 들어갈 때마다 나오는 소음엔 오금이 저렸다. 소피가 마려웠다.
스스슷-
그것의 눈이 지휘첨사를 향했다.
"다, 당장 태감(太監)께 이 소식을 알리거라!"
그 말을 끝으로 그는 흑사의 밥이 되었다. 흑사는 신이 나 날뛰기 시작했다.
- 야. 너 간만에 밖에서 포식할 생각 없냐?
얼마 전 자신을 찾아와 제안할 때만 해도 무서워서 응한 거였는데, 이제는 천강에 대해 큰 호감이 싹튼 흑사였다.
'알고 보면 괜찮은 인간일지도!'
그렇게 흑사로 인해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관군이었다.
몇몇이 빠르게 천산을 올라 도움을 요청하러 가는 걸 보며 암룡 또한 발을 옮겼다.
[ 작전 성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