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65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65화
165화. 광존(狂尊)
웅성웅성. 여울나무 밖 앵화고목 뜰로 수많은 무림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투파창귀가 내건 태아(太阿)를 얻기 위해 모인 이들이었다.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면서도 서로를 견제하는 사람들. 그 모습을 투파창귀와 청청이 가만 내려다보았다.
"보이느냐?"
"예."
"어떻게 생각하느냐?"
"강한 이들이 제법 되는 것 같습니다."
"그걸 어찌 아느냐? 자고로 고수들은 힘을 숨겨 그걸 알아채기가 매우 힘들거늘."
칠현금 구소환패에 앉아 그들을 내려다보는 청청의 얼굴엔 고민 따윈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대답 또한 바로 시원하게 나왔다.
"강자들은 대체로 거만합니다. 자신감이 넘치고 여유롭습니다. 날 선 이들보단, 여유로움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 진짜배기들입니다."
"쭉정이일 수도 있지 않느냐?"
"힘이 없는데 여유로운 것과 진짜 여유로운 건 다릅니다."
"그것을 구분할 수 있다?"
투파창귀의 얼굴에 감탄이 올라왔다.
그것은 연륜과 경험이 필요한 부분. 아직 지학(志學)에도 이르지 못한 이가 깨달을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게 아니었다.
"그럼 네가 볼 때 저 중 가장 강한 자는 누구 같으냐?"
청청이 지체없이 한 남자를 가리켰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맹한 표정을 짓는 사내.
"이유는?"
"자신감이 마치 흑살마신을 연상케 했습니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듯 고수들마다 여유로움을 보이는 방식이 다소 다르다.
투파창귀의 경우엔 고압적이고 그 말과 행동에 거침이 없다면, 흑살마신은 직선적이어도 상하관계보단 수평적인 느낌이 강했다.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되, 약간의 배려가 엿보이는 행동.
"흑살마신이라…… 재미있군."
투파창귀는 사람을 보내 그를 불러들였다.
***
무림에는 열 명의 절대 강자가 존재한다.
다섯 명의 고귀한 존자와 다섯 군왕.
둘을 구분한 것에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굳이 그 분류를 따져보자면, 존자들은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고 나온 인물들.
왕들은 그 출신이 이전 왕조들 때부터 이어져 온 고수들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알 수 없고, 그저 각 개인이 능히 1만 대군을 상대할 수 있는 괴수들이라는 게 정설이었다.
그중 광존은 그나마 얼굴이 꽤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 자신이 광존임을 딱히 숨기고 다니지 않은 탓이다.
"보이는가?"
"광존과 그 무리도 왔군."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광존을 알아본 이들의 시선이 그 사내에게 머물러 떨어지지 않는다.
광존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근데 저 사람이 정말 광존이 맞나? 무슨 예의를 저리 차려?"
심지어 사람들에게 존칭을 꼬박꼬박 붙이는 모습에, 몇몇 이들은 자신이 전해 들었던 그 광존이 맞나 의아해했다.
소문에 그는 자비라고는 일말도 존재하지 않는 광인으로, 웬만한 사파조차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고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 건가?"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이 호의적으로 바뀔 무렵, 여울나무에서 사람이 와 그에게 예를 갖추었다.
"투파창귀님께서 뵙기를 청합니다."
"알겠습니다. 앞장서시지요."
광존이 주위의 시선을 슥 한번 살피고는 안내자의 뒤를 따랐다.
이 정도 했으면, 당가 일로 탈이 나도 소문은 금세 묻힐 것이다.
'이제 남은 건 태아를 얻는 것인데.'
모든 무림인은 강해지길 꿈꾼다.
힘이 곧 권력이고, 힘이 있다면 모든 게 다 통용되고 용서되기 때문이다.
광존 또한 절대 고수의 칭호를 받고도 그걸로 만족하지 않고 더 강해지길 바랐다. 그래서 당가로부터 물건을 갈취하고 이후엔 이렇게 태아를 얻으러 온 것이었다.
그의 궁극적 목표는 나라를 세워 중원을 다스리는 거였다.
'태아. 왕이 될 운명을 쥐여주는 무구. 그것만 있다면……!'
끝없이 늘어진 계단을 올라 투파창귀의 거처로 들어서자, 두 남녀가 그에게 나아와 가볍게 예를 갖추었다.
"오랜만입니다, 투파창귀."
"간만이오. 근데 좀 늦으셨소이다."
"아아. 미안합니다. 웬 늙은 개가 달려들어서. 다시는 달려들지 못하게 매질 좀 하고 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서글서글한 사내의 시선이 청청에게 닿았다.
"그런데 이쪽은?"
"내 제자요. 청청, 이쪽은 파안광귀. 세간에선 광존(狂尊)이라 불리고 있지."
광존……. 무림의 절대 고수 중 하나라 불리는 인물.
그를 보는 순간, 청청은 위화감을 느꼈다.
겉으로 예의를 차리는 모습이 그의 진짜 모습이 아닐 거라는 기분이 들었다.
"청청입니다."
"예, 만나서 반갑습니다."
"근데 이분은 왜……?"
"골칫덩이가 하나 있지 않느냐. 그 처리를 부탁하기 위해 특별히 초대했다."
중원에 사람을 구한다고 소문낸 건 그저 부족한 병력을 메우기 위해서일 뿐.
처음부터 광존에게 이 일을 맡길 생각이었던 투파창귀였다.
"흑살마신 처리, 가능하겠소?"
"걱정하지 마시지요. 제아무리 흑살마신이라 한들 저를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요."
"대단한 자신감이로군."
청청의 주먹이 꾸욱 움켜졌다. 그녀는 몸을 홱 돌려 거처 안으로 발을 옮겼다.
"어딜 가느냐?"
"훈련에 매진하려 합니다."
흑살마신은 내 것인데……. 그를 다른 이에게 맡긴다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들었던 탓이다.
'이대론 안 되겠어.'
- 청청?
'어떻게든 내가 먼저…….'
청청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가만 지켜보던 광존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제가 은원관계에 끼어들어 기회를 뺏은 모양입니다."
"별수 없지. 세상살이가 다 제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오."
"명언이군요. 그렇지요. 자신의 뜻대로 되는 건 거의 없는 법이지요. 그래서 적들의 동향은 좀 어떻습니까?"
투파창귀가 광존과 함께 거처 밑 계단을 내려가며 교주 측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전력은 우리가 압도적으로 많으나, 성만 없지 모양새가 영락없는 공성전이외다."
"그래서 이리 떠들썩하게 만든 거군요. 그 외에 특이한 점은 없습니까?"
"어제 올라온 보고에 따르면, 흑살마신이 단전을 키우겠다며 교주 측 인원들의 내기를 흡수하고 다닌다더군."
"훗. 괜한 짓을 하고 다니는군요."
천산을 내려다보던 투파창귀의 시선이 광존을 향했다.
"한때 단신으로 마교를 쓸어버린 인물이외다. 마교 내에서는 거의 최강이라 불리고 있지."
얼마 전 차를 마실 때 느꼈던 기운 또한 분명 범상치 않았었다.
"쉽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걸음을 멈춘 광존의 얼굴엔 그저 미소가 올라올 뿐이었다.
"그래봤자 마교 내에서의 강자일 뿐이지요."
***
"자, 빨리. 더 빨리."
암운곡 밑바닥. 천강의 지시에 따라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들은 암운곡 지하수로로 뛰어들었다가 나오기를 반복했다.
"더 빠르게 움직여. 그런 식으로 해서 이번 전쟁에 쓰일 수 있겠어? 자, 다시 원위치."
1년 차부터 5년 차까지 모두가 각자의 숙소로 되돌아간다.
팡! 천강이 내력을 발산하며 신호를 주자, 아이들이 빠르게 달려 나와 암운곡 지하수로로 뛰어들었다.
그 모습을 가만 바라보는 천강의 얼굴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요 며칠 계속 이 짓만 시켰더니 이젠 제법 속도가 붙은 것이다.
"나중에 실전이 되면 5년 차들은 1년 차들 챙겨줘야 해. 아직 속도가 부족하니까. 무슨 뜻인지 다들 알지?"
"걱정 마. 근데 지금 이게 의미가 있긴 해?"
연화가 천강 앞으로 다가와 팔짱을 끼고는 불만을 드러냈다.
"왜? 넌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거 무슨 의미야?"
단순 무식한 얘가 웬일이래? 요 근래 연화가 좀 머리가 좋아진 것 같다.
"그냥 싸우는 연습 하면 안 돼? 그게 더 실속 있잖아?"
"안 돼. 전쟁은 일대일로 싸우는 것과는 달라. 단체 행동이 중요하고, 개개인의 싸움 실력보단 협동과 기동성 위주로 움직여야 해."
"쳇. 대체 그게 뭔 소린지. 묵현이나 너나 요새 이상해."
이 훈련은 나름 묵현도 동의하고 나선 부분이다.
지금 암운곡 훈련생들은 전쟁에 적합하지 않다. 빠르게 치고 빠지는 전술을 위해서는 그에 맞는 훈련이 필요했다.
물론, 단순히 그것만을 위한 건 아니지만.
"자, 그럼 다시 원위치!"
훈련은 하면 할수록 강해진다. 천강의 지시에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숙소로 되돌아갔다.
그에 신호를 보내려는데, 위쪽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암운곡 위에서 바닥까지 뛰어내려 단숨에 착지한 그는 천수마검이었다.
"흑살마신!"
"무슨 일인데 그리 정신없이 뛰어와?"
"지금 정사파에서 다수의 무림인들이 여울나무 숲 앞으로 모이고 있다."
"그거야 뭐 예상한 일 아냐? 그동안 걔들이 보인 행보를 떠올려보면 뭐 당연한 거잖아?"
"그거야 그렇지. 근데 그게 다가 아니다."
주위에 듣는 이가 없나 살핀 그는 목소리를 낮춰 잔뜩 굳은 얼굴로 이야기했다.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어 암운사신이 은밀히 알아본즉, 투파창귀가 큰 보상을 내걸며 흑살마신을 죽일 자를 구했다더군."
과연…… 그런가?
큰 전투를 앞두고 중원 쪽으로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교주 측으로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으리라.
"중원의 조력자들뿐만 아니라, 아주 공개적으로 인력을 끌어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다."
"뭐? 광존?"
"그래. 광존과 그 세력…… 응? 알고 있었나?"
"뭐 그렇게 됐어."
묵범귀영의 협조를 받은 순간부터, 천산 근처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은 다 알게 된 천강이었다.
"일단 광존은 걱정할 것 없어. 지금 문제는 그게 아냐."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인가?"
"혹시 차출할 수 있는 병력이 얼마나 되지? 여유 좀 있나?"
천수마검이 고개를 저었다.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을 굴린 그는 그 수치를 구체적으로 말해주었다.
"많아 봐야 서른 명 남짓? 아마도."
"그럼 안 되겠는데."
"대체 무슨 일이기에."
궁금해하는 천수마검을 세워두고 천강은 입을 다물었다.
얼마 전 자신이 내기를 흡수하고 다닌 사실이 적들에게로 넘어간 만큼, 입을 좀 조심할 생각이었다.
"있다, 그런 게.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근데 우리 병력 배치 좀 바꾸면 안 될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인가?"
"총 세 군데로 나누자고."
"그럼 자칫 각개격파 당할 수 있다."
"그러지 않도록 하면 되지."
이번 싸움은 전면전이다.
싸움은 한순간에 각양 각지에서 벌어질 것이다.
그냥 인력을 최대한 한데 모아놓고 마음 편히 수성을 하면 좋지만, 그래선 안 된다. 그럴 경우 아군 적군 상관없이 모두 모이게 될 터.
'독을 태우는 데 최대한 불편하도록 배치해야 해. 흑막 녀석이 직접 관리가 어려워지도록.'
어쩔 수 없이 아랫것들에게 일을 맡겼는데 그 일이 틀어진다면, 본인이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으리라.
"어떻게든 세 진영으로 나눠보라고."
"아니, 흑살마신. 내게 그리 말해도……."
천강이 팔을 들어 올렸다.
내기를 폭발시켜 폭음이 만들어 내자, 숙소에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 빠르게 암운곡 지하수로로 들어갔다.
이제는 갑작스레 신호를 보내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아이들.
천강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천수마검은 머리를 긁적이며 교주에게로 돌아갔다. 그가 보기에도 지금 애들이 하는 훈련은 조금 기이했다.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인간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