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61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61화
161화. 전쟁 준비
"장군."
"무슨 일이냐."
고요한 가운데 책을 읽고 있던 무장에게 사람 하나가 와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동창(東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아무래도 또 무슨 일을 벌이려는 모양입니다."
"동창이?"
얼마 전 일은 반란으로 깡그리 몰아, 그 일가식솔까지 모두 잡아들여 목을 쳤을 터인데…….
"채비를 하는 모습이 마치 꽤 먼 거리를 이동하려는 듯하답니다. 근데 특이한 점이 하나 있사옵니다."
"무엇이냐."
"어제부턴가 마섬이 보이질 않는답니다."
중년 사내가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았다. 처음으로 그의 시선이 보고하는 자에게 닿았다.
"환관 마섬을 말하는 것이냐?"
"예."
아는 이가 거의 없지만, 마섬은 태감(太監)이 자리를 비울 때 은밀히 그 대역을 서는 인물이었다.
즉 그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건, 태감이 황궁을 비웠다는 뜻이 되었다.
"견무."
"예, 장군."
"마섬의 행방을 계속 추적하고, 발 빠른 이를 보내 공자에게 알려라."
***
천마신교의 본거지 천산.
연못의 잔잔한 수면처럼 속으로는 치열하게 생사를 다퉈도 겉으로는 늘 평온한 이곳은 때아닌 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천산의 밑자락으로는 신교의 주민들이 모여, '소교주를 석방하라!'라며 크게 소리를 높였고.
중턱에서는 여울나무와 교주 측 양 진영으로 나뉘어 훈련을 강행하며 상대 진영의 정보를 빼고자 치열한 접점을 벌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여파를 암운곡 또한 피하지 못했다.
전운은 졸업한 조교들부터 해서 암운곡에 들어온 지 채 1년도 안 된 햇병아리들까지 훈련에 매진하게 했다.
"좋아. 앞으로 1,000번만 더 하자!"
"그게 아니야.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전력으로 버텨! 그리해서야 토끼 한 마리라도 잡을 수 있겠어?!"
사백동굴 내로 후끈한 열기가 자욱했다.
그 긴장감 넘치는 모습이 그다지 탐탁지 않은 천강의 얼굴은 자연스레 굳었다.
'……어떻게든 빨리 싸움을 끝내야겠어.'
그때 그에게 연화가 다가왔다. 암운곡에서 천강이 조기졸업 하면서 자연스레 최강자의 자리에 오른 그녀였다.
즉, 먹보였던 그녀는 어느덧 암운곡 전체를 이끄는 지휘자가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반가운 얼굴로 가볍게 포옹했다.
"천강 요새 바쁜가 봐? 이야기 좀 하자고 연락 보낸 지가 언젠데 이제 나타나?"
"좀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밖에 한참 시끄럽다고 들었어. 사람도 부족하다고도. 거기에 우리 암운곡도 전원 참여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걸 밝히려고 널 부른 거야."
"무슨…… 아니, 근데 그 이야기 누구한테 들은 거야?"
분명 입단속은 철저히 시켰는데.
"묵현?"
"그 자식……."
가벼운 입에 주먹을 한 번 꽂아주려고 주변을 둘러봤으나 사백동굴 내엔 자리하지 않았다.
연화가 천강을 추궁했다.
"묵현 말로는 큰 싸움이 있을 거라던데."
"그런 거 아냐. 그냥 여울나무와 교주 측이 싸우는 거다."
"교주 측이면 우리 편이네. 그럼 우리도 싸워야지."
"없어도 돼. 너희들까지 무기 드는 일 없게 할 테니, 걱정 말고 수련들이나 열심히 하셔. 밥 잘 먹고."
그러나 버티는 소녀.
안 된다 해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보여주던 황소고집으로 끝끝내 버티고 섰다.
"왜 안 되는데? 우리 쪽 숫자 한참 부족하다고 들었어. 외부에서 다수가 들어온다매."
아니, 묵현 녀석 그걸 어떻게 안 거지?
순간 저번 회의 때 눈웃음을 짓던 흑선마희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눈치 빠르게 내 계획을 유추해낸 모양이다.
"천강. 우린 무조건 참가할 거다."
천강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아이들이 훈련을 멈추고 자신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후우.
- 왜 그리 고민하는 겁니까, 소년? 그냥 함께 싸우면 좋은 것 아닌가요?
천강이 애들이 참전하길 거부하는 이유.
아무리 마교라지만 전쟁이란 걸 겪기엔 너무 어렸던 탓이다.
사실 암운곡에서 5년간 훈련하는 시간은 마교에 적응하는 기간이라기보단,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마음의 준비 기간이 아닐까?
그 정도로 죽음이란 건 충격적이다. 특히 개개인의 죽음과 달리 다수의 지인이 죽어가는 전쟁이란 건 더더욱.
그러나 아이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우리도 참여하고 싶다."
"크게 도움이 되진 못해도 작게나마 이 일을 위해 쓰이고 싶습니다."
"이건 우리를 위한 일이기도 해. 내 동료들을 지키는 일."
동료라…….
줄곧 굳어 있던 천강의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천산의 쥐 굴에 들어온 아이들은 모두 팔려 오거나 고아인 아이들이다.
일평생 혼자 달려온 이들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고 스승을 모셨으며 동료를 얻었다. 가진 것 하나 없던 이들에게 처음으로 지킬 것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지킬 것이 있다 한들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은 괜히 있는 게 아닌 법.
"필경 싸움에 참여한 걸 후회할 거다. 난 허락할 수 없다."
그러자 연화가 성큼성큼 다가와 천강 코앞에 섰다.
"울 아버지가 그랬어. 이 싸움이 다 끝나고 나면, 앞으로 마교의 미래는 우리에게 달렸다고. 그러니 겁먹지 말고 싸우라고. 그래야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진정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그럴 것이다. 앞으로의 마교는 이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것.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이전과는 달리 많이 성장한 연화였다.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도 꽤 무겁고 진중하고.
"그리고 교관님도 늘 그러셨어. 약하면 약한 만큼 내 사람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라고. 힘들더라도 지금 더 움직이면 내 주위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지킬 수 있다고."
천강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장창에 몸을 기댄 채 한 남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흑철마괴의 사건 이후로 많은 성장을 이룬 암운곡의 유일 교관 비격창마였다.
그는 흑철마괴의 죽음을 꽤 오랜 시간 자책했었는데, 그래서인지 아이들의 의사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다시 시선을 거두어 주변을 바라본다. 아이들의 결연에 찬 표정에 천강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허락하지."
"얏호!"
"그렇지!"
환호성을 내지르는 아이들.
그중 제일 신이 난 것은 연화였다.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는 행태가…… 성장했다는 말 취소다. 아직 애구만 애.
"대신."
"응?"
"너희들 지휘는 내가 할 거다. 내가 시키는 것만 해. 그 이상은 하지 말고. 알겠어?"
예! 아이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그럼 싸움에 참여하는 게 결정되었겠다, 가만 있을 순 없지. 천강은 연화에게 손짓했다.
"왜? 뭐 당장 시킬 일 있어? 벌써 싸움 투입이야?"
목을 좌우로 뚜둑뚜둑 푸는 소녀.
……연화 얜 그냥 싸우고 싶어서 그런 거였구만.
"지금 애들 데리고 밖으로 나가서 이파리들 뜯어와. 싱싱하고 먹을 수 있는 걸로. 한 주먹씩."
"이파리?"
"어. 싱싱하고 먹을 수 있는 걸로. 한 주먹씩이다."
연화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애들을 데리고 나가 시키는 대로 했다.
애들이 각자 한 움큼씩 풀을 들고 왔을 때, 천강은 사백동굴 중앙에 기물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연화가 그것을 손으로 가리키며 갸웃했다.
"갑자기 웬 절구야? 응? 절굿공이도 있네?"
"무진아. 이쪽으로."
"예, 형님."
천강은 무진이 가져온 풀을 절구에 넣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힘껏 절굿공이를 내려쳤다.
'분명 토끼 녀석 이런 식으로 했었지.'
쿵. 쿵. 내려칠 때마다 동굴을 크게 흔드는 진동.
그렇게 큰 소음이 수차례 일고 이내 환한 빛을 뿌렸을 때, 그곳엔 작은 환 하나가 만들어져 있었다.
천강은 그걸 집어 무진에게 건네주었다.
"먹어봐. 어때?"
"형님, 이거…… 영약을 만드신 건가요?"
평소 잘 놀라지 않는 무진의 동공이 좌우로 흔들거렸다. 주위의 다른 아이들은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얼굴에 의아함을 드러냈다.
"맞아. 영약을 만든 거야."
"그런……."
"평범한 이파리로 영약을?"
머리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 말인즉슨, 저 절구만 있다면 영약을 무한으로 만들어 단전 크기를 한없이 늘릴 수 있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절구질을 하는데 기 운용이 꽤 까다로운데다가, 이게 한 번 만들고 나면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천강이 아이들로 하여금 한 번에 이파리를 따오라 시킨 건 다 생각이 있어서였다.
천강은 무진의 흡수를 도와주고는 무진에게 일을 하나 시켰다.
막힌 혈도를 다 개방한 무진에게 어마어마한 대자연의 기가 휘몰아치고, 무진은 자신에게 들어오는 기를 모두 절구로 이동시켰다.
"음. 잘 되네요, 형님."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회색빛의 절구가 점점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신병이기들이 감탄을 터뜨렸다.
- 허……. 그것참 기가 막히는군.
- 가만 놔두면 꼬박 하루는 걸리는 걸 일다경(一茶頃)이면 채우다니, 대체 얼마의 시간을 단축한 겁니까?
그러게 말이다.
아무튼 비록 하급 영약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것들은 앞으로 이 아이들이 마교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당장 앞으로 있을 전투에서도 생존확률을 몇 할이라도 높여주겠지.
천강은 훈련을 포기하고 대신 꼬박 나흘을 영약 만드는데 할애했다. 그로 인해 아이들의 내기 수준은 웬만한 마인들보다 높아지게 되었다.
***
"빨리 움직여. 어서."
"예!"
여울나무 숲 진영.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좁은 구역에 사람들을 다 끌어모아서인지, 평소엔 널따란 여울나무 숲 훈련지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부족한 공간으로 인해 앵화고목 뜰까지 뻗쳐나갈 정도로.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적삼혈마가 그 모습을 보고는 지휘관을 불러 상황을 간단히 보고받았다.
"우선 발이 빠르고 은신에 소질이 있는 이들부터 뽑아 정찰 쪽으로 배치 완료했습니다."
여울나무 숲은 현재 대대적으로 개편 중이었다.
전면전은 기존의 작은 싸움들과는 다른바 그에 맞는 편성이 중요했고, 가장 큰 이유는 간자들과 배신자들의 부재였다.
그저 부관들을 잃어 현장 쪽 정보원들과의 연락이 끊길 줄 알았더니, 어떻게 알았는지 암운사신과 그 사문이 그들을 모조리 색출해내 제거했던 것이다.
전쟁에서는 정보가 곧 생명. 그를 위한 양성과 배치가 빨리 이루어지는 게 관건이었다.
"수고 많았습니다."
지휘관의 인사를 받은 적삼혈마는 바로 발걸음을 옮겨 총책임자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투파창귀가 상석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왔느냐."
"예."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일은 순조롭게 준비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지원이 올 때쯤이면 편성도 마치고 병력 정비도 끝날 것입니다."
"수고했다."
감겨있던 투파창귀의 눈이 슥 뜨였다. 적삼혈마가 자리에 앉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문제는 흑살마신입니다. 외부로부터 병력을 지원받으니 그 부분은 저희가 압도적일 것이나, 어르신께서 교주를 상대할 때 흑살마신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아쉽군. 아쉬워. 청청이 조금만 더 빨리 성장했다면 다 잘 해결될 일이었는데."
그러나 이미 일은 앞당겨졌다.
혀를 끌끌 찬 투파창귀가 다소 굳은 얼굴로 나직이 이야기했다.
"신녀에게 사람을 보내라."
"어르신. 그 말씀은……."
"두 강자의 싸움을 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