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96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96화
196화. 천강의 뒤를 쫓는 사람들
밤이 깊다. 검은 하늘엔 구름이 떠다니고, 그 위로 노란 달빛이 은은히 세상을 비추고 있다.
그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연못을 응시하던 여인의 고개가 옆으로 홱 움직였다.
기다리던 발길이 당도한 까닭이다.
"아가씨. 당묵정입니다."
"들어오세요. 그래. 알아보셨습니까?"
"예. 그날 식당을 빠져나간 뒤로 줄곧 홍루에 머물고 있다 합니다."
자리에 앉아 산만하게 손가락으로 의자 팔걸이를 두드리던 여인의 손이 우뚝 멈춰 섰다.
"예? 어디를 가요?"
"그…… 홍루 말입니다, 아가씨."
당소여의 얼굴이 충격을 받은 듯 굳었다.
"여, 역시 남자들이란 다 그런 건가요?"
당소여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문다. 뭔가 불안하거나 뜻대로 안 될 때 나오는 그녀의 습관이었다.
"당장 그곳에서 뭘 하는지 알아 오세요."
……그곳에 뭘 하러 갔겠는가. 안 봐도 뻔하지.
당묵정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묵정."
"예, 예?"
혹시 한숨 내쉰 걸로 꼬투리 잡으시는 건…….
"홍랑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아나요?"
"홍랑……이요?"
"아니면 당소오라든지."
홍랑. 당소오.
"저 그건 왜 물으시는지……?"
"아니, 우리 가문 사람 중 그런 사람이 있다는데 처음 들어봐서요."
미간을 좁힌 채 고민하던 당묵정이 이내 활짝 웃었다.
"하핫.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군요. 당묵정이 모른다면 다른 이들도 모른다고 봐야겠죠. 이만 돌아가 보세요. 맞다. 걔들 거기서 뭐 하는지 조사하는 거 잊지 말고요!"
눈에 힘을 주고는 신신당부하는 당소여의 행태에 당묵정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어 보였다.
방을 나서는 남자의 얼굴은 다소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아가씨는 모르셔도 됩니다. 그분에 관한 건.'
한편 그 시각 천수향은 무진 일행을 따라 사천성에 거의 도달해 있었다.
사천의 서쪽 입구.
병사들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서서히 문을 닫기 시작한다.
"잠깐만요!"
저 멀리서 전속력으로 뛰어오는 네 사람.
성문이 닫히는 순간에 막 아슬아슬하게 넘어선 무진 일행은 한 차례 땀을 닦고는 숨을 돌렸다.
"후우. 진짜 아슬아슬했네."
"중간에 길을 헤매지만 않았어도 이리 안 늦었을 텐데요."
"그러게 말이야."
병사들에게 한 차례 인사를 한 그들은 고개를 사천성 안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그들 앞으로 사천의 명물. 야시장의 진귀한 풍경이 나타났다.
눈앞에서부터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까지 기다랗게 이어진 화려한 저잣거리와 그 거리를 활보하는 수많은 인파의 모습에 중원 초출인 세 사람은 말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여기가 사천?"
"……굉장하네."
그런 그들을 톡톡 때리며 일깨우는 청청.
"가자. 짐도 풀고 배도 채워야지. 언니, 어서 가요."
"그래. 가자. 천강 녀석 찾으러 가자!"
초아와 연화가 주먹을 불끈 쥐고는 눈을 빛냈다. 그들은 곧장 사람들에게 물어, 사천제일미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쾅. 문짝을 발로 차고 들어서는 네 사람.
"어, 어서 오십시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워낙 당당하게 들어오는 그들의 행태에 점소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초아가 턱 끝을 치켜들었다.
"천강 새끼 나오라 그래."
"처, 천강이요?"
"천강 몰라?"
"저어…… 그게 누군지."
"분명 이 식당에 왔을 거라고. 코는 이렇게 오뚝하고 눈은 크고 잘 생겼어. 옷은 지금 내가 입은 거랑 같은 옷에…… 아아. 혼자 나타났을 거야. 근데 진짜 몰라?"
초아가 낮게 으르렁거리나 점소이는 정말 몰랐다. 비슷한 옷을 입은 자들은 종종 오긴 하나, 최근에 혼자 드나든 손님은 전혀 없었다.
"하아. 이 사람 지금 거짓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 정말입니다요. 그런 분은 오시지 않았습니다요."
"정말로?"
초아가 단검을 꺼내 그 끝을 훅 내밀자 점소이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그 소란에 방중이 뭔가 하여 밖으로 나오고, 떡하니 마주친 다섯 명.
"초아 선배?"
"방중? 네가 여기엔 왜 있어?"
방중이 점소이를 진정시키고, 네 사람을 가게 지하로 인도했다.
"제가 이곳 사천 지부 부지부장입니다, 선배."
"뭐야. 정말로? 이야. 우리 방중이 잘 나가네? 나한테 한 수 가르쳐달라 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하하핫. 아무튼 소식은 들었습니다. 중원 정찰 임무로 차출되셨다고요?"
"어. 뭐 그렇게 됐어."
"잘 오셨습니다. 일단 짐부터 푸시지요. 좋은 방 많이 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지상으로 나가려는 그를 뒤에서 누군가 붙잡았다. 방중이 고개를 돌리자 초아, 연화, 청청이 매섭게 뜬 눈으로 그를 붙들고 있었다.
"저 무슨 추가로 하실 말씀이라도……?"
"천강 여기 왔었지?"
"천강 어딨어, 선배?"
"지금 당장 부세요."
방중이 여인 셋 너머에 자리한 무진을 쳐다보았다. 무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는다.
"저기 그것이……."
"왔어, 안 왔어?"
"어디 있어?"
"말 안 하시나요?"
딱 봐도 사실을 그대로 고했다간 천강이 화를 입을 상황. 그러나 방중에겐 힘이 없었다.
"우리 방중이. 나한테 얼차려 받은 지 오래지? 일단 간단하게 구르기부터 한 시진 정도 하고 시작할까?"
초아의 서늘한 눈빛에 방중의 결심이 섰다.
천강, 미안하다. 널 도와주곤 싶은데, 당장 나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
방중은 천강의 소재지를 조용히 이실직고했다. 그러자 더욱 불타오르는 초아와 연화.
"천강 녀석! 임무를 핑계 삼아 조강지처 둘은 천산에 내버려 두고, 자기는 여자들 끼고 술 마시며 놀고 있다 이거지!"
"잡히면 아주 다리 몽둥이를!"
뭐야. 언제 둘이 천강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어?
방중이 무진을 다시 쳐다본다. 무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 쉬고 내일 바로 잡으러 가자, 애들아."
초아가 방중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지나간다. 협박은 덤.
"너 우리가 나타났단 말 천강에게 하기만 해봐."
그 뒤 연화, 청청 또한 지나가며 잘 부탁한다고 인사하고. 무진만이 나가기 전 그에게 조심스레 한마디 위로했다.
"선배, 힘내세요."
"……고맙다, 무진아."
그렇게 간단히 해후 인사를 마치고, 음식을 먹는 사람들.
"근데 그 홍루인지 뭔지에서 천강을 무슨 수로 찾지, 아줌마?"
"듣기로는 엄청 크다던데. 사람도 많고."
"숨으면 찾기 쉽지 않을 거예요."
"가면 방도가 나오겠지. 나만 믿어!"
무진 일행이 나누는 이야기를 가만 듣던 천수향의 신형이 스르륵 바람을 타고 가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바람은 사천의 밤하늘을 타고 순식간에 유곽의 중심, 홍루의 상공에 도달했다.
***
홍루에서 하는 일은 생각 외로 간단했다.
사고가 일어날 때까지 가만 대기하고 있으면, 후다닥 여인들이 알아서 부르러 달려온다.
그때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사실 어느 정도가 나서야 하는 순간인지 판단하기가 참으로 애매한데, 그 선을 여인들이 알아서 정해주니 천강으로서는 사태 수습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심지어 암룡과 천강. 둘이서 뛰기에 그렇게 바쁘지도 않았다.
"네 이놈!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아직 덜 맞았나? 응?"
"……젠장."
유곽 거리로 허겁지겁 도망가는 사내. 술주정뱅이 하나를 홍루 밖으로 내쫓고 돌아오니, 홍연이 천강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오늘 쉰다고 들었는데."
"은인에게 보답 한 번 제대로 못 드렸잖아요."
"아니, 받았는데."
"네?"
"이거."
볼을 톡톡 두드리자 홍연이 작게 웃는다. 그녀는 찻잔을 천강과 암룡에게 건넸다.
"제가 차를 타는 것에 조예가 깊어서…… 종종 대접해 드릴게요."
"고마워. 잘 마실게."
홍연은 두 사람에게 차를 내주고는 자리를 비웠다.
확실히 기녀 일을 해서 상대의 심리를 잘 아는 건지, 달라붙는 그런 건 질색인 천강으로서도 꽤 만족스러운 대접이었다.
"천님. 암룡님!"
음? 이번엔 두 명이 뛰어오네.
천강은 암룡의 어깨를 작게 두드렸다.
"네가 저쪽 맡아. 내가 이쪽 맡을게. 잘하고 오고."
끄덕. 천강과 암룡은 각각의 여인을 따라 발을 옮겼다.
***
"한사. 저희끼리 이렇게 놀고 있어도 되는 걸까요?"
"후우. 글쎄 말이오. 동생 된 자로서 마음이 불편하구려."
"정말 마음이 불편한 것 맞죠, 한사?"
남궁선의 물음에 한사가 고개를 주억이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여인 하나가 그 입에 음식을 넣어주고, 한사는 그것을 받아먹는다.
그러고는 헤벌쭉 웃는 남자.
"어머멋. 귀여우셔라."
남궁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한사는 마음과 몸이 완전히 따로 놀고 있었다.
그 한심함에 시선을 배 바깥으로 돌리는데, 문득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이리떼마냥 성큼성큼 홍루를 활보하는 사람들.
근데 그들을 대하는 다른 이들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멀찍이 떨어진 채로 그들을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남궁선이 바라보며 이상함을 느끼는 그들은 바로 사해단이었다.
사해단의 단주 적월이 부하들에게 고갯짓을 했다.
"지금부터 두 무리로 나뉘어서, 한쪽은 야외에서 다른 한쪽은 누각에서 마음껏 뛰논다."
"예, 단주!"
사해단원들이 한 차례 고함을 치고는 신나게 뛰어나갔다. 곧 곳곳에서 여인들의 비명이 연달아 들려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그 비명은 남자들의 목소리로 뒤바뀌었다.
"끄아아악."
"이런 썅!"
저쪽인가? 가만 서서 대기하던 적월의 신형이 단원들의 비명이 터져 나온 곳으로 향했다.
***
'근데 이놈들 진짜 안 나타나나?'
오늘 올 거라 생각했는데.
지역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왈패들과 크고 작은 조직들을 족쳐본 천강의 경험상, 사해단이란 놈들은 한 번은 이곳으로 쳐들어올 터였다.
그것도 단주가 직접 수하들을 이끌고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깊어 가는데도 전혀 나타날 기색은 보이질 않고, 주위를 둘러보던 천강은 자신 앞에 부복해 있는 사내에게 시선을 주었다.
"어이. 형씨. 여자에게 손찌검하면 될까, 안 될까? 응?"
천강의 낮은 윽박지름에 남자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는 술을 먹기만 하면 여자를 때려대는 꽤 질 좋지 않은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무림인이라 그동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꼬박꼬박 손님으로 받아왔지만, 천강이 있는 시점에서 더는 통용이 안 되는 상황.
천강은 검지로 홍루 입구를 가리켰다.
"이번엔 그냥 보내주는 줄 알아. 얼른 꺼져."
"그, 그래도 비싼 값을 치렀는데 벌써 나가라 하시면……."
"그건 여인들 치료비로 쓸 생각이니 걱정 말고. 뭐 아니면 팔다리 하나씩 부러진 다음에 혼자 술 처먹고 가던가? 어때?"
그제야 남자가 후다닥 발을 놀려 홍루 밖으로 도망을 쳤다.
새삼 자기 몸 귀한 줄은 안다, 무림인이란.
천강은 다친 여인들 중 상태가 특히 심한 둘을 들고는 치료소에 데려다주었다.
'그래도 50년 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확실히 배신자들과의 알력 싸움으로 사천 문파들이 정신이 없다는 게 맞긴 맞는 모양이다. 저런 잡것들이 이곳에서 제 세상인 것마냥 설쳐대는 걸 보면 말이다.
"감사합니다, 천 대협."
"정말 감사합니다."
"무리하지 말고 쉬라고."
아무튼 사해단은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그건 무림에서 날고 긴 천강의 경험치였다.
천강의 머릿속에 사해단의 단주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중원 제1살수의 제자.
'놈이라면 날 어떻게 노리려나. 암살자니까 암살을 시도하려나.'
차라리 그래 주면 좋겠는데.
전생에 암살자들에게는 지긋지긋하게 시달려본 천강이다. 또한, 북명신공을 익히고 천령초를 먹은 뒤로는 웬만한 일격엔 타격도 안 받았다.
심지어 백호의 혼 때문에 잠도 안 자는 상황.
'그냥 암살 시도나 해줬으면 좋겠네!'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누각 1층에서 천강은 한 무리의 사내들과 조우했다.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 치는 여인들과 그런 그녀들을 강제로 옆에 낀 모습이 왠지 낯이 익다.
그리고 실제로도 익숙한 얼굴들이 몇몇 눈에 들어왔다.
"어어? 저 녀석은?"
"놈이다! 조심해!"
"단주님 불러!"
오오. 드디어 나타난 건가?
"여어. 왜 이렇게 늦었어? 한참을 기다렸잖냐."
"응? 우리를 왜?"
"빨리 너희들 손봐줘야 나도 좀 쉴 것 아니겠어. 쌈박하게 가자고. 한꺼번에 덤벼."
그러자 이번엔 제법 실력 있는 자들도 섞여 있는지, 녀석들이 여인들을 내팽개치고 앞으로 호기롭게 걸어 나왔다.
그들의 손엔 하나같이 날붙이가 쥐어져 있었다.
아주 작정하고 왔구만.
"천 대협! 조심하세요!"
한 차례 여인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누각에 울려 퍼지고, 놈들이 우르르 몰려와 천강에게 무기를 휘둘렀다.
천강이 아직 무기를 들고 있지 않은 지금이 쓰러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판단한 듯했다. 그러나…….
"꾸에엑."
달려들던 이들이 단번에 나가떨어진다. 땅바닥을 나뒹구는 그들 곁을 천강의 신형이 빠르게 스치듯 지나갔다.
"끄아아악!"
"아아악!"
사해단원들이 발을 부여잡고는 굴러다녔다. 천강이 지나가면서 그들의 발등을 밟아 뼈를 으스러뜨린 것이다.
그들 중 한 놈 앞에 쭈그리고 앉으며 천강이 물었다.
"너희들 단주 어딨어? 응?"
"끅. 끄윽. 그게……."
"빨리 단주님 하고 소리쳐 봐. 어서."
천강이 검지로 부러진 발을 꾹꾹 누른다. 남자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그들의 대장을 소리 높여 부른다.
그러나 나타나지 않는 사해단주.
'귀찮구만.'
주변에 내기를 펼쳐 봐도 뭔가 느껴지지도 않고.
설마 도망갔나? 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뒤쪽에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네놈이냐? 어제 우리 애들을 손봐 줬단 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