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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95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3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95화

195화. 루주의 제안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허겁지겁 도망가는 사해단의 모습에 사람들이 그들을 손가락질했다.

그리고는 하나둘 자신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가만 바라보던 홍연이 천강에게 다가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천 대협."

"별말씀을."

"근데 나가주세요."

음?

"돈은 돌려드릴게요. 그러니 저들이 무리를 이끌고 돌아오기 전에 어서 도망가세요. 선아. 얼른 이분들 짐 챙겨서 가지고 나오렴."

난 또 뭐라고. 기껏 도와줬다고 쫓아내는 건 줄 알았네.

"그럴 필요 없어."

"예?"

"나 그렇게 약하지 않거든."

"저들 단주가 누군 줄 알아요? 적월이라고 이름난 살수예요. 듣기로는 중원 제1살수 살혼의 제자라고 들었다고요."

"뭐? 살혼의 제자?"

금시초문인데.

살혼은 무영삼귀 중 일귀의 스승이다. 일귀가 독립한 뒤 새 제자를 들인 건가?

아무튼 살혼의 제자가 됐건 살혼 당사자가 됐건 천강은 걱정하지 말라며 이야기했다.

"제아무리 제1살수의 제자라 한들…… 여기 보여?"

암룡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천강. 암룡이 당황한 얼굴로 천강을 쳐다보고, 천강은 그녀의 등을 가볍게 때리며 말했다.

"내가 거금을 들여 데리고 다니는 호위야. 무려 현경을 바라보는 화경 고수지."

"혀, 현경?!"

그 넓은 중원 땅에도 몇 없는 현경.

그걸 코앞에 둔 화경 고수라는 말에 홍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령 내 실력이 부족해도 내 호위가 나서서 처리할 테니 걱정 말라고."

[ 주군, 어찌 거짓을. ]

천강의 등에 대고 글자를 막 적어대는 암룡에게 천강이 작게 웃었다.

- 거짓 아니거든. 암운신공과 암운행보를 배운 너라면 능히 현경과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라.

천강의 설명에 암룡이 쑥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그제야 홍연의 얼굴엔 안도감이 올라왔다.

그녀는 주위를 한 차례 살피더니, 천강에게 가까이 다가와 쪽 볼에 뽀뽀를 했다.

"어?"

"고마워요. 나서 줘서."

그러고는 다른 여인을 불러 교대하고는 사라지는 여인.

잠깐 볼을 쓰다듬은 천강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순수하게 감사의 의미로 받는 보상이라 그런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탓이다.

"자, 그럼 우리도 이만 돌아가 볼까?"

 

***

 

사천은 큰 도시다.

자시(子時)가 넘은 새벽에도 저잣거리엔 야시장이 형성돼, 환한 등과 사람들의 말소리로 북적거릴 정도로.

물론, 이 늦은 시간엔 주로 일터에서 하루의 고단함을 마친 사내들이 술을 마시며 떠드는 시간이긴 했다.

어찌 됐든 그런 시끌벅적한 저잣거리의 대로와는 달리, 그 뒤로 조금만 벗어나면 빛 한 점 없는 으슥한 골목이 자리했다.

이곳은 일반인들의 경우 잘 드나들지 않는다. 굳이 밤이 아니라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대낮에도 말이다.

저잣거리의 시끌벅적함과는 대비되는 고요가 이 골목에 늘 깔리곤 하는데, 오늘따라 뒷골목은 꽤 소란스러웠다.

그 대부분의 소란은 신음이었다.

"다, 단주님!"

"단주님!"

사해단의 거처 앞에 도착하자마자 단주를 찾는 사람들. 그들은 조금 전 천강과 암룡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자들이었다.

"무슨 일인데, 단주를 찾는 게냐?"

거처 안에서 사해단의 부단주 망주가 튀어나왔다.

그는 무슨 일인가 하여 나왔다가, 수하들의 몰골을 보고는 깜짝 놀라 그들에게 다가왔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이냐!"

"그, 그게……."

말을 못 하고 서로 눈치를 보는 단원들.

그러나 부단주가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마지못해 하나둘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고작 지학(志學) 정도 돼 보이는 어린 사내와 방년(芳年) 계집에게 너희 모두가 당했다 이 말이더냐!"

"그게…… 보통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정식 무예를 익힌 자들 같았습니다."

"정식 무예라……."

그렇다면 일리가 있었다. 거대 문파에서 정식으로 배운 이들은 그들 같은 무사들이 백날 뭉쳐본들 상대가 안 되니까.

막말로 사천당문의 당소여 혼자만 나서도 부단주인 자신을 포함해 그 밑으로 싹 다 정리가 가능했다.

그 정도다. 무림인들의 수준이란.

'그래도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일.'

조용히 넘어가고 싶어도 이야기를 들어본즉 수많은 이들이 목격했다고 했다.

아마 그 사실은 빠른 시간 안에 사천 전역에 퍼질 것이고, 이내 사해단의 명성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청성파와 아미파, 당가에서도 우리와 일을 안 하려 하겠지.'

그는 곧바로 그 사실을 단주에게 보고했다.

중원 제1살수의 제자인 단주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해.

"우리 애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개처맞고 왔다?"

"그렇습니다, 단주님."

"준비해라."

"바로 가실 겁니까?"

"아니. 일단 거사가 있으니 기본적인 준비는 해놓고, 내일이나 모레쯤 움직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준비토록 하겠습니다."

부단주가 꾸벅 예를 갖추고는 물러났다.

슥슥 달빛 아래 단검을 손질하던 손이 멈추고, 사해단의 단주 적월의 눈이 어둠 속에서 강하게 번뜩였다.

"재미있군. 흑살마신과 한판 붙기 전에 가볍게 몸풀이 정도는 되겠어."

 

***

 

환한 태양 빛이 사천의 땅에 내려앉았다.

산의 등선을 넘어 들어오는 그 빛에 차갑고 습한 기운이 사라지고, 주위를 덮던 안개는 빠르게 걷혔다.

화려함을 장식한 홍루의 주변은 온통 쓰레기로 가득했는데, 아침부터 여인들이 바삐 움직이자 해가 중천에 이르기 전 깨끗이 정돈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 홍루의 누각 뒤편에 세워져 있는 천강의 숙소에도 낮의 기운이 완연해졌다.

문이 벌컥 열리고, 한사와 남궁선이 밖으로 나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다.

"여어. 둘 다 일어났어?"

"천 형도 잘 주무시었소?"

"간밤에 잘 주무셨습니까."

두 사람의 인사에 천강이 지붕 위에서 손을 흔들었다.

"오냐. 근데 둘 다 밥 먹기 전 씻어야겠다."

"음? 저희 말입니까?"

천강이 그렇다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너희 둘 지금 온몸에 연지 자국이 그득한 거 알고 있냐? 아마 몸 전체를 씻어야 할지도 모르겠네."

"예에?"

"그 무슨……."

그제야 눈을 크게 뜨고는 서로를 자세히 쳐다보는 두 사람. 한사와 남궁선의 몸 곳곳엔 입술 자국이 그득했다.

"얼추 눈으로 세도 이백여 개는 넘는 것 같네."

"아니, 어찌 몸에 이리 많이……."

"어찌 많겠어. 아주 어제 둘이서 꽃밭에서 뒹굴더만. 꽃잎 물이 온몸에 잔뜩 밸 만하더라. 완전 딱 달라붙어서는……."

천강이 지붕 위에서 흉내를 내주자, 마치 망측한 걸 보기라도 했다는 듯 한사와 남궁선이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천강으로서는 어이가 없을 뿐이다.

"야! 너희들이 쪽팔려 하면 어떡해? 진짜 너희들이 막 이랬다니까? 응?"

"아, 알겠소. 알겠으니 그만하시오."

"처, 천님. 한 번만 봐주세요."

그렇게 아침부터 시끄럽게 떠드는 그때였다. 한 여인이 다가와 그들에게 예를 갖췄다.

"천님."

"응?"

"루주님께서 잠시 보자고 하십니다."

"루주가?"

천강이 여인의 뒤를 따랐다. 그 틈에 한사와 남궁선은 후다닥 씻으러 달려갔다.

 

***

 

"간밤의 일은 감사드립니다."

어제 일을 들은 모양인지 루주의 태도에 호의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첫인상이 제법 괜찮게 박힌 모양이다.

그에 천강 또한 의례상 가볍게 물어봐 주었다.

"그 홍연이란 여인은 어때? 얼굴을 세게 맞았던데."

"오늘까진 무리고, 내일 즈음이면 다시 일에 복귀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배포가 좋아. 힘도 없는 주제에 어찌 그리 당당하게 굴지?

새삼 사천은 음식도 강한데 여인들도 강하다.

"뭐 그렇다니 다행이네. 근데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한 거야?"

"간밤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저희를 거두어 주신 언니 일인데,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건 아닐까 걱정이 들더군요."

천강이 아무 말 않고 가만 응시하자,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서 천님의 요구에 응해드리기로 했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저희 부탁 하나를 들어주시면 됩니다."

"부탁?"

"예. 최근 저희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술 먹고 행패 부리는 이들이야 늘 있는 것 아닌가?"

술장사를 하면서 그런 이들이 없기를 바라는 건 무리수다.

특히 술장사와 유곽을 병행하면 진짜 별의별 것들이 다 나타난다. 여인들로만 이루어진 이런 곳은 더더욱.

"그렇긴 합니다만, 최근 영역을 급격히 확장 중인 신흥세력이 있습니다. 저희 가게에 와 아이들을 폭력으로 협박하며 정보를 뜯어내는 무뢰배들이지요."

"어제 그놈들인가 보네. 대체 걔들은 뭘 믿고 까부는 거야?"

"사해단이라고 이 지역 왈패들 출신인데, 어느 날 단주와 부단주가 물갈이되고 조직이 확 성장했습니다. 듣기로는 청성파로부터 지원을 받는다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였군. 그리 까불어댄 이유가.

단순히 단주 하나가 살혼 제자라고 이런 곳에서 설칠 순 없는 노릇이지.

'그건 그렇고 계획대로 되는군.'

천강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너는 어때? 얘들 충분히 맞은 것 같아?

- 아직 부족하다는데?

사실 어제 홍연이란 여인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천강에게 그만 때려도 된다고 말하려 했다.

그쯤에서 끝내지 않으면 다음 날 사해단으로부터 보복이 들어올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걸 눈치챈 천강은 일부러 놈들을 더 두들겨 팼다. 

천강이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얼마나 강한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 일이 터지고 커졌다.

그럼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

'자신들의 보호자를 고용하는 것뿐.'

그 고용인이란 응당 미오왕의 명패를 들고 나타난 나고 말이야.

그리고 그런 천강의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그들이 다시는 이곳에서 설치지 못하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알다시피 저희 쪽은 무력 있는 자가 없는지라."

그랬다. 홍루와 청루는 제대로 된 무인이 없다.

입구 문지기도 그저 삼류 정도의 무사들일 뿐.

그저 무인들 간에 암묵적으로 사고 치지 말자는 그런 훈훈한 분위기로 조성된 일종의 보호구역이었다.

그러나 최근 사천의 각 문파가 자신들의 내부 문제로 외부를 전혀 신경 못 쓰자, 그 틈을 노리고 사해단이 일을 벌인 것이었다.

"근데 그놈들을 처리한다고 끝날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아예 남자 무인들을 좀 고용하지?"

"몇 번 시도는 해봤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좀 힘이 들어서요."

"왜?"

루주가 길게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게…… 남자 무인들을 고용하면 다 반년이 지나기 전 그만두거나 죽는 바람에요."

"엥?"

"아시잖아요? 저희 홍루에 예쁜 아이들이 많은 거. 같이 지내다 보면 정도 붙고 하는데, 필연적으로 육체적 관계도 따라오더군요. 그러더니 다들 제 명을 못 채우고…… 그렇습니다."

쉽게 말해 복상사란 말이구만. 참네.

"그래도 죽은 자들은 제법 행복하게 죽었겠네."

어찌 됐든 사내로 태어나서 수많은 미녀들과 즐겁게 노닐다 갔으니, 암. 그 정도면 행복한 거지.

천강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루주도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사해단이라고 했지? 좋아. 그 제안 받아주지."

어차피 앞으로 이틀 후면 사해단은 제거될 운명이다.

딱히 할 일도 없겠다, 그때까지 이곳에서 봉사 좀 한다고 생각하자.

"감사합니다, 대협.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나도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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