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93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93화
193화. 루주(樓主)
"오호홋. 아이참. 어딜 만지세요."
"크하핫. 네가 너무 어여쁘니 나도 모르게 손이 갔지 뭐냐?"
"어멋. 그럼 전 별로라는 말씀인가요?"
"그럴 리가 있겠느냐. 내 너도 바로 만져주도록 하마!"
양쪽에 여자를 하나씩 끼고는 지나가는 한 남자의 모습에, 한사와 남궁선의 시선이 떨어지질 않는다.
두 사람은 그가 바깥으로 나가 배에 올라타는 순간까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이. 둘 다 뭐해? 빨리 와."
"천 형. 근데 진짜 이 이곳에 묵을 생각이오?"
"왜?"
"그, 그게 이리 화려하고 시끄러우면 잠이나 제대로 잘 순 있을지……."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돼."
천강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1층 누각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의외로 중앙 입구는 조용하고 사람 하나 없었으며, 그 중심을 가르는 복도 끝에는 한 여인이 앉아 사무를 보고 있었다.
어수룩한 두 사람의 모습과 너무도 자연스러운 천강.
그들의 모습을 본 홍루의 기녀 배정자 홍연은 유경험자가 무경험자 둘을 데려온 것이라 판단해, 영업 미소로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시지요. 홍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총 몇 분이십니까?"
"세 명."
"존함은 어찌 되십니까?"
천강은 잠깐 고민에 잠겼다.
홍루에는 보통 이름을 남긴다.
단골을 잘 만들기로 소문난 이곳은 손님이 방문할 때마다 매번 기록을 남겨 돈을 쓴 만큼 챙겨주고, 예전에 접점이 있었던 여인들을 다시 연결도 해주고 그런다.
특히나 천강과 같이 정보를 많이 사 가는 사람에겐 그게 굉장히 중요한데, 그들에게 대가를 지불한 만큼 정보료를 깎아주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까.'
잠깐 고민한 천강은 웃으며 말했다.
"청해에서 온 천이라고 한다."
"청해에서 온 천님……. 처음 오신 분이신가요?"
"처음은 아니다. 몇 번 왔는데, 돈 내는 이의 일행으로 와서 기록이 안 되어 있을 거다."
"호호호."
홍연이 눈웃음을 지었다.
저 어린 나이에 저리 잘생긴 외모라면 분명 기억에 남았을 터인데, 전혀 그런 게 없었던 탓이다.
'분위기로 보면 정말 한두 번 와본 건 아닌데 말이야.'
홍루엔 여러 손님이 온다. 한낱 일반인부터 아주 위험한 사람들까지.
'……후자일까?'
루주(樓主) 언니를 불러봐야 하나.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는 그때, 천강이 선수를 쳤다. 그녀의 눈앞에 떡 하니 금원보 하나를 내어놓은 것이다.
"일단은 십 일 정도 묵을 생각이야. 이 정도면 방이랑 식비까지 충분히 될 것 같은데."
홍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충분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차고 넘친다.
혹여나 50년간 물가가 많이 오르진 않았을까 생각해 건넨 것이었는데, 그 한 번의 선택에 홍연의 사고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남는 돈의 반은 네가, 그 나머지는 이쪽 홍루에서 수고료로 챙겨가고."
"호호호호호."
영업이 아닌 진짜 기분 좋은 미소가 흘러나오고, 홍연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가 펴며 말했다.
"성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천님 그리고 일행분들. 선아야!"
"네, 언니!"
"극진히 모셔라. 매우 귀한 손님이시다!"
누각의 뒤쪽.
고급스러운 저택이 여러 채 놓여 있고, 그중 가장 큰 건물로 안내를 받은 천강 일행은 각자의 침구 자리에 궁둥이를 붙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사와 남궁선이 천강의 앞에 모여들었다.
"천 형. 아니 어찌 그리 말을 잘하시오? 이 한사, 오늘 형님을 보고 크게 배웠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여나 무슨 비법이 있는 것입니까?"
자신들 같으면 아까 그 여자 앞에서 대답도 잘 못했을 것인데, 뒷짐을 지고는 여유롭게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에 두 사람은 완전히 감명받고 말았다.
"비법?"
천강은 잠시 생각하더니, 가장 현실적인 답안을 내주었다.
"평소에 많이 다녀. 그럼 자연스레 알게 돼."
"아아!"
"그런 명안이……!"
"자, 그럼 나가자. 우리 데리러 왔다."
밖으로 나가자 여인 하나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천강 일행에게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물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니. 여기서 먹을 생각이다."
"그럼 어디서 하시겠습니까? 원하신다면 큰 배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것 없고, 누각으로 가지."
그녀는 천강 일행을 누각 최상층으로 인도했다.
자리에 앉아 주변을 흘끗흘끗 둘러보는 한사와 남궁선. 한사가 흥미롭다는 듯 묻는다.
"천 형. 사천의 거리가 다 보이는 높은 곳임에도 바람이 거칠거나 하진 않소. 이 무슨 귀신같은 조화인지."
"거기 지주들 잘 살펴봐."
이곳 누각은 평범한 것 같아도 절대 평범하지 않다.
수많은 기관진식이 지주에 새겨져 있어, 건물의 내구도를 보존하고 늘 최상의 환경을 유지한다.
'처음에는 값비싼 기술자를 잘도 구워삶았다 생각했는데, 그 주인이 미오왕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아마 황실 건물도 이 정도는 아니니라.
그렇게 한참 바깥 경치와 기둥의 진식들을 구경하는 있는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음식 들이겠습니다."
여인들이 들어와 음식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쭈욱 깔기 시작한다.
스무 명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양을 차려놓은 그들은 이내 천강 일행 옆으로 둘씩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나 천강은 그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천 형. 왜 돌려보내는 것이오?"
"아아. 추가 요금 붙기 싫어서."
"에?"
"쟤들 끼고 노는 건 요금이 따로 붙거든."
그것도 많이 붙는다. 그러나 천강의 지시에 다 빠져나가도 한 여인만큼은 그대로 천강 옆에 앉아 있었다.
외모도 외모지만 기세가 보통이 아닌 게, 천강은 그녀가 이곳의 관리자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쪽이 루주(樓主)?"
"후훗.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소선이라 합니다. 큰 고객께서 계시다 하여 인사차 방문하였나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주전자를 들어 올렸는데, 천강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술 마시러 온 건 아니라서."
"그럼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술도 안 마시고, 여자를 끼고 놀지도 않는다. 그런데 십 일간 머물겠다고 고액의 값을 치렀다.
그녀로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
"혹 정보를 얻으러 오셨습니까?"
천강의 귓가에 대고 소곤거리는 그녀의 행태에 천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눈칫밥 하나는 기가 막힌다.
"잠깐 단둘이 이야기 좀 하지. 두 사람은 먼저 먹고 있어."
"예!"
"얼른 다녀오시오!"
루주는 천강을 어느 은밀한 방으로 인도했다.
그곳은 그녀가 정보를 사고파는 곳으로, 일정한 값을 치른 자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다.
물론, 그 일정한 값이란 홍루의 매상을 올려주는 일이다.
루주가 권하는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자,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이번 루주는 꽤 거추장스러운 걸 싫어하는 듯했다.
"정보를 사실 생각이시면 처음부터 그리 말씀하시면 되셨을 텐데요."
"값을 치러야 한다고 들어서."
"후훗. 꽤 옛날 사람에게 듣고 오신 모양이군요."
"옛날?"
한 차례 웃은 루주가 말을 이었다.
"기존과는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조금 더 현실적인 방법으로."
"그런가? 그럼 값을 다시 치르도록 하지. 어찌해야 하나?"
"그 부분은 돌아가실 때 자연스레 알게 되실 겁니다. 그래서. 무슨 정보를 얻고 싶어, 많고 많은 곳 중 이곳 홍루를 방문하셨는지요."
정보를 사고파는 조직은 많다.
제일 이름난 세 곳을 뽑으라면 개방, 하오문, 그리고 홍루‧청루다.
그중 중원 무림이 돌아가는 상황은 개방 혹은 하오문 쪽이 압도적으로 좋다. 그들의 눈과 귀는 사방에 넓게 펼쳐져 있으니까.
사실 그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한 천강이었다. 그러나 오면서 수차례 고민해본 결과 이곳 홍루가 가장 낫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내가 싸우는 상대는 태감(太監). 그 무대는 중원 전체.'
신선환은 단순히 무림만의 일이 아니다.
일반 주민들과 황실 분위기. 이런 걸 살피는 데에는 홍루가 더 좋을 것이다.
어찌 됐든 홍루와 수도에 있는 청루는 한 자매니까. 그곳에 방문하는 고관대작들의 정보는 고스란히 이곳 홍루에도 전달이 된다.
그러니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아마 미오왕이 이곳을 추천한 것도 대략 그러한 맥락에서겠지.'
근데 그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다, 천강은 품에서 물건 하나를 빼 루주에게 건네주었다.
옥색 명패에 특유의 필체로 쓰인 석 자. 미오왕(美烏王).
"……언니께서 직접 주신 건가요?"
"어. 사태가 급박해서 말이야."
"그래서 저희가 뭘 도와드리면 되죠?"
"중원 돌아가는 사소한 것들부터 해서, 신선환, 각 문파의 동향, 그리고 황실의 세세한 정보가 필요하다."
***
루주와의 대화를 마친 천강은 한사와 남궁선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지금쯤이면 밥도 거의 다 먹었겠다, 애들 보고 이만 자라고 하고 천강은 좀 조용히 생각을 정리해볼 참이었다.
그러나 문을 여는 순간 귓가를 강타하는 여인들의 간드러진 교성.
"어머어머. 귀여웟."
"자, 아아~ 이것도 드셔 보세요."
천강은 잠시 눈을 끔벅이며 방안의 행태를 살펴보았다.
한사와 남궁선이 각각 여인들과 한데 어우러져 놀고 있다. 그게 한 명도 아니고 십여 명.
아주 끼고 노는 게 아니라 꽃 속에 파묻혀 있는 수준이었다. 그 짓만 안 했지, 더 가만 놔뒀다가는 아주 정기를 홀라당 빼앗길 기세로.
'……아까 한 말이 이 말이었나?'
- 기존과는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조금 더 현실적인 방법으로.
- 돌아가실 때 자연스레 알게 되실 겁니다.
단순히 가게 매상을 올려주는 게 아니라, 여인들과 함께 어우러져 놀아야 한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러면 홍루의 여인들과 자연스레 친밀도도 상승하고, 가게와도 긍정적인 관계로 발전할 테니까.
무엇보다 여자들과 놀다 보면 남자란 주둥이를 쉴 새 없이 놀리며 자랑을 하는 생물.
의도치 않게 정보를 빼먹을 수도 있으리라.
'참으로 현실적인 방법으로 바꾸긴 했네.'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고……. 후우. 돈 좀 나오게 생겼구만.
미오왕의 명패를 잠시 만지작거리던 천강은 열었던 문을 조용히 닫았다. 방음이 잘 되어 있던 탓에, 바깥까지 여인들의 신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문제는 문제네.'
복도를 거니는 천강의 입에서 나지막이 한숨이 흘러나온다. 조금 전 루주로부터 들은 대답 때문이다.
- 죄송합니다. 아무리 왕언니의 부탁이라도 황실과 연관된 일. 저희 애들 수백의 목이 걸린 만큼, 거절할 수밖에 없는 제 상황을 이해해주리라 믿습니다.
그들 말마따나 목숨이 걸린 일인데 함부로 협조하라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살짝은 답답함에 지상으로 내려가 물가에 섰다.
그곳에선 알록달록 등불을 매단 배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부평초마냥 물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 바라보고 있는 그때, 천강의 뒤로 누군가 다가왔다. 고개를 돌려본즉, 익숙한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 주군.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
종이에 붓으로 글을 써 보여주는 여인. 암룡이 천강의 시선을 받고는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